〈 67화 〉결국은 돌입
세하는 그 공간의 일그러짐을 보고서 도리어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왔군.”
문제의 현상 속에서 세하에게 눈에 익은 순백의 소년 마그티스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의 옆을 지키는 새하얗고 커다란 늑대 프로스도 있었다.
“오랜만이로군.”
마그티스가 세하와 악수를 했다. 프로스는 세하에게 앞발을 살짝 앞으로 뻗었고 세하가 거기에 주먹을 대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슈타크카이트와 관련이 있다고 해서 올 줄 알았지. 음?”
그렇게 마그티스와 프로스가 왔음에도 게이트가 닫히지 않았다. 그래서 세하가 의아해 하려는데 마침 또 한 명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이 일이라서 동행이 있어.”
마그티스는 말하는 막 모습을 드러낸 이 또한 순백의 로브 차림이었는데 그가 눌러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긴 푸른 머리칼이 찰랑거렸다.
“엘트레이라고 합니다.”
무척 준수한 용모의 청년이었다. 그가 그렇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자 마그티스가 그를 소개했다.
“우리 슈타크카이트의 아크메이지다. 메이지 클랜이 지구에 세워지는 데 도움을 많이 준 존재이지.”
“그렇군. 반가워.”
세하는 별 생각 없이 엘트레이와 악수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본 데이비드와 젠크리드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슈타크카이트의 분들과 이렇게 친분이 있으시다니 더욱 일이 수월하겠군요.”
인사가 끝나자 데이비드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세하는 머쓱한 반응이 나왔다.
“아. 네. 앞서 일이 있다 보니 이래저래 안면이 있습니다.”
“굉장하군요. 역시......”
특히 젠크리드는 무척 세하를 우러러 보는 분위기였다. 나쁘게 보는 것보다야 훨씬 좋은 느낌이었지만 세하는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문제가 되는 현장을 보고 싶군요.”
그렇게 화제를 돌리자 젠크리드가 눈앞의 절벽가를 가리켰다.
“여기를 내려다보시면 될 것입니다.”
“.......”
아무래도 위험하기에 일종의 펜스가 쳐져 있었지만 세하는 느와르레이드 슈트를 장착하고 있기에 그것을 훌쩍 넘어 비행했다.
그런 그의 발밑에 까마득한 높이의 낭떠러지가 있었지만 온통 시커멓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혈관과도 같은 회색의 줄기들이 가득히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융합체 반응인데 굉장히 광범위하군요.”
세하는 핵심 마력로가 저 밑에 위치한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섰는데 데이비드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네. 원래 메이지 클랜은 우리 유럽 헌터협회가 협업.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헌터협회 영국 지부와 긴밀한 관계였죠. 게다가 이 핵심 마력로로 인해 상당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엑펠트에 의해 침범 당해서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되었죠.”
일단은 류한호 보다야 연하였지만 세하보다는 연상인 그였다. 하지만 그는 세하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있어서 세하도 좀 표정이 굳어지고 있었다.
“거기에 마법 적인 지원이나 제휴를 슈타크카이트가 해왔다 이거군요.”
그러면서 세하가 마그티스와 엘트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엘트레이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길을 추구함에 있어서 이차원간의 교류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엘트레이의 말을 세하는 곰곰이 들었다.
-의심하고 계신 건가요?
세하가 사뭇 진지해 보여서 루이제가 말했다. 거기에 세하는 바로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니. 엑펠트와 관련이 있다면 대번에 네가 눈치 챘을 걸?’
-하긴요. 게다가 아이에르 씨도 있으니 민감하게 반응했을 겁니다.
세하와 루이제가 이렇게 서로 납득하는 가운데 모여든 이들이 조사를 개시했다. 일단 세하는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
오전 내내 조사가 이어졌다. 엑펠트의 반응이 강하게 느껴지고는 있었지만 그 이상 범위가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저 마력로는 사용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세하는 확인 차원에서 물었다. 거기에 젠크리드는 답답한 심정을 표정에 담고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마력로에 모인 마력이 전부 엑펠트의 힘으로 변환된다면 상상 할 수 없는 참극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 위험도에 대해서는 조사 내내 세하도 듣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마음의 결정을 해야 했다.
“더 이상 놔두면 위험하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군요. 그럼 지금 당장 처리하시죠?”
“네? 하지만.......”
데이비드가 놀라서 주저했지만 세하는 거침이 없었다.
“오전 내내 조사를 해봤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범위가 확대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핵심 마력로의 근처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일단 현재로서 가장 강한 전력이라 할 제가 있습니다. 그러니 돌입해 봐야 할 일이지요.”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트레이와 아이에르를 바라보았다.
“제가 혼자 내려갈 수도 있지만 만약에 대비해서 두 분이 동행하셨으면 하는 군요.”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저로서도 엑펠트가 무슨 짓을 저질러 두었는지 확인할 필요를 느낍니다.”
엘트레이는 선선히 승낙했다. 아이에르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가겠어요. 우리 메이지 클랜의 본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누군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에르까지 승낙하자 세하는 데이비드를 바라보았다.
“헌터 협회 측 대표로는 제가 가는 겁니다. 메이지 클랜과 슈타크카이트 대표도 정해진 것이니 이견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 말에 데이비드는 젠크리드와 마그티스를 바라보았다. 세하의 말대로 이번 일에 관련 있는 3개 세력의 대표들이 잠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좋습니다. 민세하 헌터님의 말대로 대표가 한 명씩 가는 것이니 문제없을 것 같군요.”
이윽고 젠크리드가 말했다. 거기에 엘트레이와 아이에르는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스터. 정말 두 사람을 데리고 갈 것입니까?
루이제는 아무래도 불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세하는 지극히 평정심을 가지고 텔레파시로 말했다.
‘아이에르만 해도 상당한 전력이었잖냐? 게다가 엑펠트 감염에서 한 번 벗어났으니 저항력이 있을 수밖에 없어. 게다가 엘트레이라는 자의 실력이 궁금해. 아크메이지라고 하며 메이지 클랜이 생겨나는 것에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하니 이번 일에서 무시할 수는 없으니 말이야.’
-마스터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따를 뿐입니다.
일단 루이제가 납득했다. 세하는 엘트레이와 아이에르가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하고 먼저 핵심 마력로가 있는 공간으로 뛰어내렸다.
‘별 거 없잖아?’
혹시 몰라서 부스터를 조종해 저속으로 비행했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내려가고 있으니 엘트레이와 아이에르도 마치 깃털처럼 천천히 하강해 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초입이라선지 별 반응이 없군요. 하지만 깊게 들어갈수록 반응이 강해질 겁니다. 우선 민세하님에게 전위를 맡겨도 될까요?”
엘트레이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하로서도 그럴 생각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받으세요.”
아이에르가 귀걸이 형태의 무언가를 던졌다. 물론 그 조차도 마법의 영향을 받아 허공에 둥둥 뜨게 되었고 엘트레이는 그걸 받아서 한쪽 귀에 걸었고 세하는 일단 헬멧을 해제해서 자신도 한쪽 귀에 걸고서 다시 헬멧을 썼다.
“일종의 마력 통신기에요.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 때 위에서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실시간으로 통신도 가능해요.”
아이에르가 방금 건넨 물건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었다. 세하는 루이제를 통해서 통신기에 문제가 없는 걸 체크했는지라 좀 더 부스터의 속도를 높여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무저갱의 공간 같아요.
계속해서 회색의 혈관 같은 것이 일어난 금속의 협곡을 내려가는 것 같았다. 루이제가 그걸 우려하는 것 같아서 세하는 애써 부정했다.
‘엑펠트 놈들이 하도 우리한테 데여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걸?’
-그건 그렇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는 법이죠. 어?
루이제가 대화를 이어가다 갑자기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안 그래도 세하도 계속 밑으로 내려갈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 지면에 생겨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물론 발을 딛기 전에 루이제가 주변을 스캔했다.
-마력 감응도가 강한 금속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무해합니다. 설사 뭔가 있더라도 슈트의 방호력을 뚫을 정도는 못 됩니다.
루이제가 확인을 끝내자 세하는 일단 지면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순식간에 라인버스터 슈트로 전환했다.
“아... 생각보다 그리 깊진 않네요.”
뒤이어 아이에르와 엘트레이가 내려왔다. 그 와중에 세하는 계속 센서와 스캔을 반복하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별 위험은 없군요. 하지만 이상하군요.”
엘트레이도 벌써부터 지면에 닿은 것을 수상히 여기는 눈치였다. 그래서 세하는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모양이지?”
“하하하... 그도 그럴 것이 핵심 마력로를 제가 설계했기 때문입니다.”
“.......”
엘트레이가 털어놓는 말에 세하는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헬멧으로 가려져 있어서 그 표정이 엘트레이에게 보여 질 일은 없었다.
“저기. 엘트레이님. 혹시 구조가 변한 건가요?”
아이에르도 심상치 않은 걸 느낀 것 같았다. 거기에 엘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더 깊이 내려가야 하는 데 벌써 지면에 도달했습니다. 뭔가 변했다고 볼 수밖에 없군요.”
이렇게 확인사살까지 되자 세하는 잠시 고민해야 했다.
‘좀 더 들어가 봐야 하나?’
하지만 지금 도로 돌아가 봐야 위에서 이런저런 고민만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세하는 엘트레이에게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을 엄중히 봉한 다음에 전부 시설 밖으로 인원들 대피 시킨 후 최대 화력으로 소멸시켜야 합니다.”
우선 나가자고 할 줄은 알았지만 엘트레이의 생각은 그보다 앞서 있었다. 거기에 세하도 동의했다.
“그건 그렇네. 괜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 보단 차라리 박살내버리는 게 낫겠어.”
“자... 잠깐만요!”
아이에르는 두 사람이 벌써부터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려 해서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이렇게 들어왔는데 그냥 물러나는 것도 너무 급하지 않나요? 저 안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뭔가 진행되고 있는 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강화 되서 손도 못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잖아요?”
아이에르가 내 놓은 의견도 세하는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트레이와 의견이 갈려서 세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루이제. 네 판단은 어떠냐? 우리가 만약의 경우 엘렉티오를 써서라도 해결 할 수 있겠어?’
세하는 아예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거기에 루이제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가능이야 합니다. 하지만 저 두 분은 내보내야 합니다. 또 마스터만 피곤해 질 일이군요.
루이제의 한숨이 세하의 머릿속으로 퍼졌다.
-현장이 단순히 개방되고 넓은 곳이라면 많은 전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넓긴 하지만 결국에는 폐쇄된 공간인 것이죠. 그리고 저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말이에요. 마스터께서 저 두 분의 안위를 생각지 않으신다면 상관없겠지만 마스터는 또 그런 분은 아니시잖아요?
루이제가 여기까지 말하자 세하는 결정할 수 있었다.
“결정했다. 나 혼자 들어간다.”
“네?”
세하의 결정에 아이에르가 놀라 말했지만 세하는 검지손가락을 세웠다.
“1시간이다. 1시간이 지나도 내게 다른 연락이 없거나 나오지 않는다면 엘트레이가 했던 말대로 해버려. 그럼 되겠지?”
“하... 하지만.......”
아이에르는 세하가 단독으로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걸 말리고 싶었지만 엘트레이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아이에르님의 말대로 이 안이 어떻게 된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부에서 부술 방법만 생각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그티스님에게 들은 대로 민세하님은 어떻게든 방법을 만들 분 같군요.”
“뭐라고 부른들 상관없어. 그럼 어서들 올라가봐.”
세하는 그렇게 일별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이에르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 엘트레이와 함께 비행 마법으로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