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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존재 증명 2 (58/72)



〈 58화 〉존재 증명 2

그레이스는 세하가 위협적인 행동을 보임에도 동요하진 않았다.  점에 흥미가 동한 세하는 묻지 않을  없었다.


“생각보다 침착하네?”
“달리 저항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그레이스는 아무래도 세하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한 건지 아예 자포자기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세하는 도리어 사이킥 블레이드를 집어넣고 슈트마저 해제해버렸다. 그러면서 투덜거렸다.

“이렇게 들으면 내가 무슨 고문을 즐기는 줄 알겠군.”
“아.......”

그레이스는 그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모습에 세하는 피식 웃었다.

“솔직히 네가 딱히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 잖냐? 다만 레이린에게 이야기 했던 걸 네가 얼마나 알았느냐가 궁금했을 뿐이야.”


그 뒤로 이어진 대화에서 레이린이 그냥 세하가 과거에 엑펠트와 싸웠었다 정도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면 별 문제 없겠네. 그리고 앞으로 계속 보게  사이이니 더  알게 될 거야. 그럼 이만.”

세하는 그렇게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은 그레이스는 황망히 그런 세하의 뒷모습을 볼 뿐이었다.



*
그 뒤로 세하는 레이린에게도 주의를 주었다. 아무래도 그레이스의 거취가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정보공개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인데 거기에 레이린도 놀라며 사과했다.

-동족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설렘에 급했던 거 같네요.

루이제의 표현이 아무래도 와 닿았다. 아무튼 그레이스에 대한 것은 일단 제너럴 마이트와 알페렌에게 맡기고 세하는 한국으로 귀환했다.

‘뭔가 달라진 건 없어 보이네.’

여전히 게이트에 몬스터가 나오고 퇴치하기에 바빴다. 다만 케나아찰을 통해 파베가 등장했던 시점에서는 전세계적으로 게이트 출몰 규모가 막대해서 꽤나 힘들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평시 수준으로 회복된 것 같았다.

‘그걸 회복이라고 봐야 될지 모르겠지만.’


세하는 일단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벌어 놓은 돈도 많았고 한동안 차원 간을 뛰어다닐 만큼 고생했기에 당분간 어떤 의뢰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날세. 시간 좀 내줄 수 있나?”

그렇게 시간을 보낸 지 일주일 대한민국 헌터협회 협회장 류한호에게 연락이 왔다. 세하는 본능적으로 귀찮은 일이 발생했음을 깨달았다.

“엑펠트 관련 건입니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네. 하지만 통신상으로 모든 걸 말하기는 어려우니 직접 만나서 대화했으면 하는 군.”
“........”


세하는 귀찮았지만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고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
류한호는 바로 집무실로 들어오는 세하를 보고서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내데스크를 거치고 온 것도 아니고 분명 협회 본사 헬리포트에 착륙해서 왔기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비행수단이 있으니 어쩔  없군 그래.”

세하는 류한호가 자신을 책망하고자 하는 게 아님을 알기에 바로 슈트를 해제하고 근처의 소파에 앉았다.


“엑펠트 관련인 것을 확신할 수 없다고 하시니 이상하군요.”


그리고 세하가 꺼낸 말에 류한호는 잠시 난감하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네. 솔직히 각 차원의 문제만 해도 골치 아픈데 뭔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니 머리가 아프다네.”

류한호는 그렇게 운을 떼더니 개인 단말기를 조작해 세하의 앞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자네 메이지 클랜이라고 아는가?”
“마법사 계열 인간들만 뭉치는 곳 아닙니까?”

세하도 들어본 적이 있는 집단이었다. 류한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찌 보면 기존의 헌터 길드와 비슷한 곳이지. 하지만 요즘 이들의 행동이 수상하더군.”
“........”


여기까지 듣고서 세하는 짐작했다.


‘그놈들이 사고를 쳤구만. 엑펠트와 관련도 되고 말이야.’

세하의 짐작대로였다. 계속 가상화면으로 보이는 자료들을 보니 엑펠트. 적어도 융합체와 관련이 있어 보이는 모습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솔직히 이들은 오히려 게이트나 던전 공략에 적극적이었다네. 물론 다른 헌터 길드들과 연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나서고 있지만 말일세.”


그리고 이어지는 류한호의 설명에 세하는 바로 답했다.


“하지만 엑펠트나 융합체와의 연관이 발견되고 있어서 더욱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씀인 거죠?”
“그렇다네.”


류한호는 솔직히 인정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세하는 이마에 손을 짚고 말았다.

“마침 그들이 우리 협회에 도움을 요청했다네. 그것도 자네를 지목했다는 말일세.”
“.......”


세하는 예감이 이상했다. 그래서 좀 더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루이제가 첨언했다.


-심상치 않은 일이네요. 엑펠트 관련 일이니 그냥 넘어가긴 안 좋겠는데요?


세하는 여기에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세하의 이동은 언제나 간단했다. 느와르레이드 슈트가 상시 가능하게 된 때부터 그의 가장 기본적인 슈트였으며 비행 능력 자체가 기본이기에 거리나 시간, 지형 등의 문제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민세하 헌터님.”


그리고 초저녁에 강원도 대관령 부근에서 메이지 클랜의 한국 지부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말이 한국 지부이지 사실상 한국에 활동하고 있는 메이지 클랜원들이라는 말이 옳았다.

‘전부다 마법사들이라 이거군.’

사실 세하는 여기 오기 전에는 별 자각이 없었다.

‘기껏해야 좀 특이한 인간들 모임이라고만 생각했었지.’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자들을 보니 죄다 이상했다. 단순히 용모가 이상한 것이 아닌 주변에서 기분 나쁘게 만드는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스터를 위협할 수야 없지요. 지금의 마스터는 거의 1인 군단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루이제가 하는 말은 수틀리면 쓸어버리라고 하는  같아서 세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마중 나온 마법사들을 따라  곳에서는 원래 양떼 목장이었던 드높은 언덕 너머에 고풍스러워 보이는 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
-아무래도 일반적인 건축 방식으로 세워 진 곳은 아니겠죠. 메이지 클랜은 역시 수상해요.

오늘따라 루이제의 말이 많은 것 같았다. 딱히 세하로서 제지할 생각도 없었고 오히려 긴장을 푸는데 도움이 돼서 편한 마음으로 성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메이지 클랜 대한민국 파견팀의 팀장 아이에르 아쉬카라고 해요.”


그리고 성안에서 맞이한 이를 보고서 세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애 잖아?’

물론 신비한 미모를 지닌 소녀이긴 했다. 짙은 보랏빛 머리칼에 황금색의 두 눈은 그녀가 범상치 않은 존재라는 걸 드러내고 있었고 작은 체구이긴 하지만 절대 작아 보이지 않았다.

“민세하라고 합니다. 아쉬카 팀장님이라고 부르면 되겠습니까?”


일단 세하가 예의를 차려서 말하자 아이에르는 손을 내저었다.


“아이에르라고 불러주세요. 애칭으로 아이라고 불러주면 좋긴 하겠지만 그건 선을  넘은  같네요. 우선 식사부터 하실까요?”


아무래도 저녁 시간이기도 한 터라 아이에르의 제안은 무리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 이동해서 세하의 눈앞에 보이는 정경은 가히 귀족가의 정찬이라  만 했다.


‘이런 거 못 먹을 정도로 네가 기가 약한 건 아니지.’

세하는 잘도 먹었다. 혹시 식사에 무슨 수작이 있을까 생각할 법도 했지만 이미 세하의 내부에서 루이제가 모든 것을 감지하는 판국이니 그런 염려는 없었다.

“듣자하니 엑펠트와 관련이 있으신 것 같더군요.”

그렇게 평이하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들게 되자 세하가 말했다. 그 자리에는 아이에르와 3명의 간부급만 있었는데 그렇게 세하가 언급하자 아이에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렵사리 계속 처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외부에 협조를 구해야 할 정도가 되었어요. 일단 우리 메이지 클랜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긴 하지만 각기 역할이 있어서 큰 지원은 어려운 판국이라서 그렇습니다.”


아이에르가 흔들림 없이 말하고 있었지만 세하는 그 모습이 이상하게 수상해 보였다.

“그렇군요. 사실 지난번에 북미 지역을 시점으로 엑펠트 세력이 상당히 많이 몰려왔었는데 메이지 클랜에서는 어떻게 하고 계셨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세하가 던진 말에 간부들이 발끈했지만 아이에르는 태연했다.

“아무래도 우리 메이지 클랜의 기조가 있으니까요.”
“기조라.......”


세하는 아이에르의 반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에르는 그런 세하의 시선을 느꼈는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사실 오늘 민세하 헌터님을 오시게 한 것 자체부터가 우리 클랜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랍니다. 그걸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에르는 그렇게 사과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늦었으니 휴식을 취하시지요. 본격적인 활동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

듣기에 따라서는 세하에 대한 배려 같았지만 세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당장에 증거가 없는데 난리를 치는 것도 추할 것 같아서 일단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
“일단 좋긴 하네.”


편안한 침대. 눈에 거슬리는  없는 방안. 휴식처로 안성맞춤이긴 했다. 하지만 세하는 자신이 온 목적을 생각하고 그리 편하게 누워만 있을 순 없었다.

-왜요? 당장 들어 엎고 부셔야 존재 증명이 될 것 같아요?


이어진 루이제의 물음에 세하는 생각에 잠겼다.

‘존재 증명이라.’


그건 그레이스에게도 적용되는  같았다. 그래서 세하는 생각에 잠겼다.


“그나저나 루이제. 뭔가 수상한  감지되지 않지?”

일단은 확인 차원에서 묻자 루이제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네. 뭔가 실망스러울 정도예요. 마음 같아서는 이들이 마스터를 습격하기를 바랬을 정도랍니다.
“너, 뭔가 비틀린 거 같다. 저번에 그레이스나 레이린 건도 그렇고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데?”

세하가 그렇게 묻자 루이제의 말이 멈췄다.

“뭐 상관없어. 지금의 나로서는 엑펠트에 관련된 건 모조리 족칠 뿐이니까. 하지만 그 정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을 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세하는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모습을 드러내고 대화하고 싶지만 아이에르. 그 여자가 심상치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만 대화를 나눌 생각입니다.


거기에 루이제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세하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네. 이상하게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타입 같던데 말이야.”
-적어도 팀장급이라면 능력이 남다르겠죠. 그리고 만약 엑펠트와 연결되어 있다면 상당히 까다로운 적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루이제의 이어진 평가에 세하는 마음이 불편했다.

‘왠지 그럴 것 같아서 말이지.’


그렇게 세하가 아직 잠을  이루고 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에르입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괜찮으실까요? 민세하 헌터님.”
‘와. 호랑이네 호랑이야.’


세하는 생각하기 무섭게  아이에르 때문에 도리어 정신이 바짝 조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들어오세요.”


어차피 피할 생각도 없어서 세하는 승낙했고 이어 아이에르가 들어왔다. 복색은 처음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표정에서 미묘한 색기가 느껴지고 있는 터라 세하는 경계심을 드높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 죄송했어요.”


아이에르는 그렇게 들어오기 무섭게 사과부터 했다. 여기에 당연하게 물어봐야 했지만 세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팔짱만을 꼈다.


‘얼른 이야기 해보라 이거지.’

세하는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다. 그런 세하의 반응에 아이에르가 살짝 놀랄 정도였지만 그녀도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하고 온 모양인지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저희가 민세하 헌터님을 오시라고 한  역시나 엑펠트 관련이랍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나?”

세하는 무슨 대답이 나오던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곧이어 아이에르가 한 행동에 그는 그 생각을 철회해야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아이에르가 긴 소매를 걷었다. 그리고 그 팔에 얽혀 있는 걸 세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엑펠트가 부리는 융합체의 특징. 온갖 존재들이 뒤엉킨 가운데 간신히 팔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인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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