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의외의 공세
그레이스는 재빨리 뒤로 회피했다. 등 뒤에 달린 빛의 날개가 폼은 아닌 듯 상당한 기동성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꽤나 난감한 감정이 스치고 있었다.
‘역시 동족이라 이거군. 젠장.......’
그 반면에 세하는 속으로 욕지기를 퍼붓고 있었다. 파베를 거의 다 잡았는데 두 엑펠트의 출현은 그에게 부담이 되고 있어서였다.
-마스터.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때 루이제의 경고도 잇달았다. 헤러커가 갑자기 입으로 커다란 불길을 내뿜으면서 서서히 형태를 변화시키고 있어서였다.
‘젠장! 드래곤이냐!’
안 그래도 얼굴 생김새부터가 그랬는데 헤러커가 그렇게 변하자 세하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버티고 서서 리버스 필드를 최대한으로 전개했다.
강렬한 에너지의 파장이 퍼져나갔고 이제는 완연히 레드 드래곤의 모습을 변한 헤러커가 내뿜는 불길의 브레스가 정면충돌했다.
‘빌어먹을.......’
PLB 아머 상태라면 능히 정면 승부가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라인버스터 슈트 상태였다. 그래서 출력이 딸리는 것을 감수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상하게 헤러커 또한 뭔가 힘겨워 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뭐야?’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리버스 필드의 파장이 더욱 퍼져나가면서 헤러커의 브레스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헤러커는 거짓말처럼 브레스를 꺼버리더니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저 자식들이!”
그 사이에 그레이스가 파베를 무슨 수로 움직이는 지 뒤에서 한창 열려 있는 게이트에 그 커다란 몸집을 집어넣고 있었다. 그녀가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 빛으로 이루어진 사슬 같은 걸로 파베를 묶어버린 다음에 움직이는 터라 세하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크아아아!
그 사이 헤러커가 다시 맹렬하게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냥 뒀다간 후방에 있을 아군에게 피해가 갈 노릇인지라 세하는 다시 리버스 필드를 일으켜서 막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보자! 민세하!’
그 사이 헤러커가 외쳤고 그를 마지막으로 그레이스와 파베 등등이 게이트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지면에 남은 몬스터들은 헌터들과 군병력에 의해 차례차례 격파되고 있었다.
“제길.......”
세하는 분함에 지면을 내리쳤다. 하지만 상황은 끝나 버린 터라 그로서는 원통함을 이렇게 푸는 수밖에 없었다.
*
엑펠트들이 물러가고 나서 주둔지에는 긴 회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세하는 바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그놈들 물러간 걸 보니 아직 힘이 달리는 것 같아. 지난번에 린시지오로 들어갔을 때처럼 처리하도록 하겠어.”
아무래도 세하가 엑펠트들과 벌인 전투는 주둔지 내 거의 모든 인원들이 지켜보기도 한 터라 달리 반대가 없었다. 그만치 뾰족한 수가 없었다는 게 현실이었다.
세하가 그렇게 채비를 갖추고 게이트로 바로 돌입하려는데 레이린이 다가왔다.
“왜 그러지? 알페렌도 합의한 상황인데?”
안 그래도 화상회의 식으로 알페렌도 동의한 사항이라서 세하는 조금은 급한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레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가셔야 하니 제가 다른 말씀은 못 드린답니다. 다만 장기전을 각오하셔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제법 날이 어두워진 상태에서 게이트는 여전히 훤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가운데 레이린이 처연한 표정으로 말하자 세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엑펠트 개별체들이 나타나니 영향을 받은 모양이지?”
“부정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그들이 오늘의 격전으로 상당히 약해진 건 예상할 수 있어요. 그러니 적어도 한 개체 이상은 처리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레이린으로서는 상당히 독하게 마음을 먹고 말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세하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잘하면 셋 다 처리해버릴 수도 있어. 그럼 간다.”
세하가 순식간에 느와르레이드 슈트로 전신을 감쌌고 그대로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 레이린 리는 정이 안 갑니다.
게이트에 들어가자 아직은 밝은 세계의 풍경이 비춰졌다. 그런 가운데 루이제가 입을 열자 세하는 순간 폭소할 뻔했다.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어?”
-네. 그리고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녀는 저와 맞지 않습니다. 큰일을 앞둔 마스터께 요상한 말이나 하다니요.
세하는 비행하면서 지면을 천천히 살폈다. 처음에는 단순한 평야인가 싶었지만 무슨 송곳 마냥 솟은 것들이 많았으며 나무도 풀도 어딘가 날카로운 예기를 간직한 곳 같았다.
“여기가 케나아찰의 세계로군.”
거칠고도 뾰족했다. 아무래도 상식 밖의 세계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세하가 전진해 가는데 갑자기 흙먼지가 일면서 일단의 존재들이 출현했다.
‘몬스터인가?’
세하는 정신을 집중했고 사이킥 에너지를 통해 슈트의 메인 카메라가 그 광경을 포착했다.
-아닙니다. 저건 그냥 자연현상과도 같군요.
“.......”
루이제의 말대로 그냥 가시의 산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참 알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며 세하가 생각을 정리하려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레이스?”
문제의 엑펠트 개체 중 하나인 그레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앞서의 대결이 부담이 됐는지 그녀는 완전히 무장을 해제한 상태였다.
“민세하 님.......”
그레이스는 참담해 보이는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멈춰선 다음에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참 희한한 곳이로군. 그런데 왜 왔지?”
“그건.......”
그레이스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거기에 세하는 사이킥 캐논을 겨누며 말했다.
“단순히 말로 나를 어떻게 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너희 엑펠트 놈들이 결국에 무슨 짓을 하는지 뻔히 아니까 말이야.”
“그렇네요. 저도 왜 이러는 지 알 수가 없어요.”
“호오?”
그레이스가 솔직하게 말하자 세하는 솔직히 감탄했다.
“지성체로서 개성을 부여받으니 힘든 모양이군. 그러면서 내 존재에 대해 흥미는 가는 거 같은데 나는 별거 없어. 너희 같은 놈들 죄다 없애버리고 엑펠트 그 자체를 작살내고 싶은 게 내 심정이니까.”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에 다른 반응이 감지되지 않는 지 신경 썼다.
-헤러커나 파베 같은 다른 개체들은 감지되지 않습니다. 안심하세요.
루이제가 그런 세하를 배려해서 보고했다. 거기에 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더 이상 헛소리하면 머리통부터 날려버릴 거다. 헤러커랑 파베는 어디에 있어?”
세하는 물으면서도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레이스가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볼 생각이었는데 갑자기 그레이스가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프로타 에고여? 이건.......”
“프로타 에고?”
처음 듣는 단어에 세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장 그레이스에게 변화가 시작되고 있어서 세하는 바로 슈트를 변환시켰다.
-PSGX-704 디스트로이어 플롯. 가동합니다.
루이제의 보고와 함께 세하의 슈트를 순식간에 육중하고도 넓은 비행형 장비들이 둘러쌌다. 그러자 그레이스도 순식간에 변형하기 시작했다.
‘우스운 자로다.’
그레이스는 전신에 수도 없는 가시가 돋으면서 아예 전신이 눈부신 빛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가운데서 지극히 변질된 음성이 나오고 있었는데 세하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허이구. 윗대가리가 손 좀 쓴 모양이네. 그래도 어찌 할지 몰라서 대화 좀 하려는 애를 이런 식으로 망쳐 버리냐? 정말 엑펠트는 엿 같은 놈들이네.”
‘이상한 존재군. 우리를 마주하고서도 버틸 수 있다니.’
아무래도 단일 개체가 아닌 군집으로서 세하를 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변이해버린 그레이스가 하는 말에 지오는 바로 중지를 세워보였다. 플롯 안의 PLB 아머의 커다란 손이 움직여서 그런 모양을 만드는지라 상당한 박력마저 느껴졌다.
‘우리가 하등한 존재가 하는 모욕에 반응할 것 같은가?’
반면에 문제의 존재, 프로타 에고는 쉽게 대답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눈앞의 모습이 무슨 빛나는 성개 같아 보이는지라 도리어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 아주 잘났다. 그럼 이거부터 받아봐라!”
세하는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을 버리고 공격에 나섰다. 웨폰 컨테이너에서부터 수 없는 미사일이 뻗어나갔고 각종 화기에서 강렬한 사이킥 에너지의 격류가 뿜어져 나갔다.
그 포화에 프로타 에고의 형태는 삽시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세하는 거기에 방심하지 않았고 AI인 루이제는 재빨리 연산에 들어가 이상 반응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그러다가 지상의 대지에서부터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갖 형상의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데 하나 같이 수 없는 가시를 일으키고 있었고 그 표면 자체가 마치 금속으로 이뤄진 것 같았다.
콰앙! 쾅!
그리고 파베가 했던 식으로 가히 금속의 포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디스트로이어 플롯 자체도 리버스 필드가 있는지라 어지간한 충격들은 도리어 충격파로 전환해서 지상의 몬스터들을 쓸어버리고 있었지만 세하는 조금은 부담을 느꼈다.
‘이거 너무 수가 많은데?’
물론 멀티 락온 시스템에 의해서 대다수의 몬스터들을 화력으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세하는 자신이 함정에 빠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크아아아!
하지만 그 안에서 익숙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자 세하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메탈릭한 거북이 형태인 파베. 그가 노성을 터뜨리며 지면을 깨뜨리며 나타난 것이었다.
“잘 만났다! 거북이 놈!”
세하는 바로 플롯을 하강시켰다. 수 없는 공격이 날아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게다가 4개의 보조 암을 순식간에 펼치며 거기서 강렬한 사이킥 블레이드가 발출되기 시작하자 수도 없는 몬스터들이 썰려나가고 있었다.
카카캉!
그때 모습을 감췄던 프로타 에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아예 4개의 검을 지닌 거인의 모습이었는데 그걸 본 세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식이.......’
그런 세하의 생각을 알기라도 하듯 프로타 에고가 외쳤다.
‘적어도 우리가 만들어낸 개체들이니 우리가 보호한다. 네 놈의 간악한 수를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
세하가 부스터를 풀가동해도 밀리지 않는 판국이었다. 그 사이 파베가 입을 벌리며 금속의 브레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리버스 필드의 파장이 일어나며 이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세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제길 욕심 부리다가 뒈지는 건가.......’
하지만 갑자기 눈앞에 세찬 파도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어?’
케나아찰의 몬스터들도 파베도 이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순식간에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사방의 공기를 찢어발기는 포효가 들려왔고 아예 핏빛의 기운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지원군입니다. 슈타크카이트와 린시지오로군요.
세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이차원의 지원군이었다. 온통 핏빛으로 이루어진 군세와 그 반면에 온갖 철기로 무장한 병력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무슨.......’
그 반격에 프로타 에고도 당황한 것 같았다. 게다가 그들뿐이 아니었다. 세하로서는 무척 눈에 익은 군세들도 보이고 있었다.
‘돌아가시겠군.’
바로 미군이 주된 전력인 헌터와 군의 합동 병력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대규모로 지원이 올 줄은 몰랐는지라 케나아찰과 엑펠트 군은 삽시간에 밀리기 시작했다.
일단 세하는 수적 열세를 극복해서 더욱 과감해졌다. 사이킥 블레이드에 최대한 출력을 일으키자 프로타 에고도 흔들리는지 서서히 그 모습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프로타 에고는 계속 중얼거리더니 결국 그 형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치 빛이 팍 꺼져버리는 것처럼 사라졌는데 세하는 바로 이를 지나치면서 눈앞에 보이는 파베를 향해 하강해나갔다.
“이 망할 거북아! 끝장을 보자!”
크아아악!
한층 거대해진 사이킥 블레이드의 칼날들이 삽시간에 파베의 거체를 짓이기 시작했다. 파베는 거기에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었고 세하는 거기에 힘을 받듯이 더욱 사이킥 에너지를 쏟아 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