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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뒤엉킨 진실 1 (47/72)



〈 47화 〉뒤엉킨 진실 1

“이건 무슨.......”

세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할 말을 잃었다.
뭔가 달리 끔찍하다거나 이상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평온해 보이는 평야의 모습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이곳은 린시지오 계의 공간으로 보입니다.

그 사이 루이제가 분석을 끝내고 말했다.

“뭐라고? 그럼 방금  괴물 놈은?”


세하는 자신을 집어삼켰던 리더 몬스터를 떠올리고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일종의 생체 게이트 정도로 보입니다. 마스터를 이곳으로 던져 놓고 사라졌습니다.

상상을 초월한 게이트에 세하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무튼 생각 이상으로 평화로운 린시지오의 광경에 자연스레 몸이 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얏!”


순간 세하의 뇌리에 따가운 감각이 이어졌다.


-마스터. 주의하셔야 합니다.
“음.”

그리고 차가운 루이제의 음성에 세하는 정신을 퍼뜩 차릴 수 있었다.

-이곳은 린시지오의 영역입니다. 이계이지요. 당장 마스터의 슈트를 뚫을 정도로 위험한 요인은 없지만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정신을 풀어놓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그렇네. 고마워.”

세하는 루이제가 감사하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라인버스터 슈트의 육중한 모습인지라 고운 잔디를 짓밟는 게 죄스러울 정도였지만 이내 힘차게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오. 낯선 이여. 만나고 싶었소.”

그때 노래하는 것처럼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세하가 천천히 시선을 돌려보니 제법 고즈넉한 고목 밑에 은은한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제법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그야말로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르고 환한 은발을 지닌 중년인이었는데 딱히 옷차림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 몸가짐 자체로도 기품이 느껴지는 존재였다.

“혹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거냐?”


하지만 세하는 경계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거기에 은발의 중년인은 허허 웃어보였다.


“경계하는 게 당연하시겠구려. 문트 포르타를 통해 갑자기 이곳으로 왔으니 말이오.”
“.......”


세하는 거기에 오히려 긴장을 풀고 다가갔다. 그리고 라인버스터 슈트 상태 그대로 털퍽 주저앉았다.

“아무래도 다른 차원에서 왔는지라 얼굴을 안 보이는 걸 용서하십시오.”

말투까지 존대로 변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 차원으로 들어오게  정도면 상대의 힘이 상당하는 걸 인정하기도 해서였다.

-마스터에게 적대적일 거면 이러지도 않겠죠.


루이제도 지금의 분위기를 긍정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세하가 말하자 은발의 중년인은 시원스레 웃었다.


“벨레토르 후작에게 이야기는 잘 들었소. 나는 린시지오의 지성파 수장인 체펠카 대공이라고 하오.”
‘대공이라고?’

세하는 순간 시대를 잘 못 왔나 싶었다. 하지만 눈앞의 중년인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쪽이 지구의 민세하님으로 알고 있소. 만나서 반갑소.”

너무도 멀쩡하고 차분한 분위기인지라 세하는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세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튀어나온 괴물들을 생각하면 가히 피가 바다를 이룰 거라 생각했습니다.”
“무리는 아니오. 실제로 우리 차원의 본질은 그런 쪽이니까. 하지만 우리 지성파는 항상 한도와 자제를 생각했소. 왜냐하면 어떤 것이던지 과한 것은 화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니 말이오.”


체펠카는 가슴까지 드리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던 차에 다른 차원에서 이상한 것들이 유입되었소 그러니 본성파의 존재들이 더욱 광분했고 민세하님이 알다시피 파흐트 계나 케나아찰 계 그리고 슈타크카이트 계까지 연결되어 난리가 나고 있소. 우리 지성파로서는 참으로 통제하기가 난감할 지경이오.”


체펠카의 얼굴에 어느덧 그림자가 드리웠다.

‘제법 고민하는데.’

세하도 체펠카의 반응에 공감했다.

“이거 무슨 짓거리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분위기를 깨는 음성이 있었다. 마치 깨진  마냥 요란하고 격한 음성이었는데 세하가 그 때문에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


‘이것 봐라?’

평온했던 평야의 풍경이 일그러지며 그 주변에서 핏빛의 섬뜩한 기운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신장이 2미터는 됨직한 거한이었다. 짧은 회색 머리칼에 장대한 체구는 무슨 용병처럼 보였는데 두 눈이 핏빛이 물들어 번들거리는 꼴이 그를 무슨 마왕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모셨소이다. 본성파의 수장인 인테르프 6세 시오.”
“인페르프 6세?”

세하는 갑자기 나타난 거한의 이름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몸이야 말로 린시지오의 진정한 왕인 인테르프 6세니라.”

그리고 그 거친 인상의 거한이 세하와 체펠카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제야 불길한 흐름이 사라져서 세하는 거북함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인테르프를 바라보는 두 눈은 적의에 차있었다.

“그 쪽이 막가는 본성파의 우두머리로군.”
“뭐? 우두머리?”

인테르프가 세하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세하는 불난 집에 기름 뿌리듯 말했다.

“그래. 벨레토르라는 놈이 그러던데? 지구에 넘어오는 괴물 녀석들은 죄다 본성파의 놈들이라고 말이야.”
“벨레토르... 그 처 죽일 놈이!”


인테르프가 고함을 쳤다. 하지만 체펠카는 가벼운 손짓으로 그를 불렀다.


“어렵게 오셨으니 자리하시지요. 인테르프 폐하.”
“흥! 네 놈 같이 미친놈의 부름에 어려운 걸음을 했다. 그만치 이 세계가 정상이 아니니 어쩔  없군.”
“.......”

마지못해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인테르피를 보고서 세하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왕인가?’
-그럴지도 모르죠. 체펠카 대공의 태도를 봐도 그렇고 말이죠.


세하와 루이제가 그렇게 인테르프와 체펠카에 대해서 평하는 사이 인테르프가 세하를 보면서 말했다.

“네 놈이 보기에는 이 작자가 정상으로 보이느냐? 아니다. 본래 세계의 본질에 반대하고 미친 짓을 하는 이레귤러의 극치지!”


분명 체펠카를 보고 하는 말인지라 세하는 쉽게 들을 수가 없었다. 체펠카도 쓴 웃음을 짓는 것이 이를 긍정하는  같았다.

“폐하께서는 언제나 신랄하시군요.”
“네 놈이 요상한 짓거리만 안 했어도 이곳은 나름 평온할 것이다. 피와 강함의 질서 아래 흔들림이 없겠지. 하지만 네 놈이 그 잡것들의 영향을 받는 바람에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 할 말이 있느냐!”

인테르프의 분노는 정당하게 보였다. 체펠카가 쉽게 대답을 못하고 웃고만 있는 것도 그렇고 세하도 뭔가 의심이 가고 있었다.

“잘 들어라. 지구의 민세하! 네가 말하는 엑펠트라는 것들의 영향을 받은 건 저 체펠카 놈이다! 저 놈이 변해서 이 차원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바람에 그놈들이 넘어와서 이곳을 변질시켰고 지구에 게이트가 연결되고 만 거다!”

그리고 인테르프가 쐐기를 박듯 말했고 체펠카도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의 말씀이 맞소이다.”
“돌겠네.”

세하는 간단하게 말했다. 그리고 말투가 확 바뀌어서 체펠카에게 말했다.


“정상적인 게 비정상인 세상이네. 내가 무슨  하는  아냐?”
“알고 있소이다. 나는 본래의 본질에 벗어나 조화롭고 평화로움을 추구했소. 그러니 벨레토르를 보내 민세하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테르프 폐하께서는 다른 차원에 손을 벌리는  죽기보다 싫어하시는 분이라서 말이오.”

체펠카는 그렇게 말하더니 오른쪽 소매를 걷어보였다.


“?!”

세하는 그걸 보고서 헛숨을 크게 들이켜야 했다. 분명 엑펠트의 것처럼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팔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4할 정도는 잠식됐겠지. 하지만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는 판이다.”


인테르프가 그 모습을 보고서 제법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 되었다. 체펠카도 자신의 팔을 보며 말했다.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다는  맞을 겁니다. 아무튼 저는 린시지오의 2인자니까요. 그간 쌓아온 권능이 이 정도로 잠식당한다면 우리 차원은 끝장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체펠카의 표정에서 어딘가 회한마저 엿보였다. 거기에 세하는 한숨을 저절로 나왔지만 이내 진정하고 인테르프에게 말했다.

“제가 여기 오는 데에 폐하도 동의했습니까?”


세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말투가 휙휙 바뀌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테르프와 체펠카의 대화를 미루어보아 마냥 적대적으로 대할 것이 아님을 깨달아서 다시 존중을 갖추기로 했다.

“그렇다. 아무래도 우리들만으로는 답이 없어서 말이다. 어차피 이레귤러로 인해 뒤집힌 세상이라면 이레귤러로 바꾸는 게 맞겠지.”


인테르프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블러디 헤스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어.......”


세하가 놀라는 사이 인테르프가 서슴없이 블러디 헤스의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뭔가 처참한 꼴이 날 것 같아 세하가 이를 악물었는데 놀랍게도 블러디 헤스의 전신에서 핏빛의 기운이 싹 걷히더니 갑자기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모습이 드러났다.

‘이건  뭐냐?’

물론 형태 자체는 이빨이 머리의 7할을 차지하는 꼴은 같았다. 하지만 분명 인테르프의 손에 잡혀서 버둥거리고 있는 블러디 헤스의 모습은 엑펠트의 특징과 유사해보였다.

“이것들은 우리 세계의 주민들이 아니다.”


그리고 인테르프는 그대로 블러디 헤스를 박살내버렸다. 가히 가루도 남지 않고 없애버린 터라 세하는 할 말이 없었는데 인테르프는 자신의 손을 훅 불어 그 잔재를 날려버리고 말을 이었다.


“단지 우리 차원의 존재처럼 위장하는 잡것들이지. 그리고 그 원인을 제공했던 게 저 망할 체펠카 대공이고 말이야!”


다시 체펠카에게 원인을 추궁하며 인테프르가 외쳤다. 거기에 체펠카는 송구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의외로 정상적이네요.


루이제의 반응이 이랬다. 아무튼 세하는 뭔가 정리되는 것 같아서  더 차분해진 머리로 말했다.

“아무튼 내가 원인이 되는 걸 없애면 되는 겁니까?”
“잘 아는 군. 사실 나와 체펠카는 이 세계에서 지구나 다른 차원에서  망할 괴물들이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인테르프의 말에 뭔가 어폐가 있었지만 세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시겠죠. 그리고 게이트에 출몰하는 괴물들의 출처는 당연히 이 차원에 있는 엑펠트이고 말이죠. 그런데 체펠카 대공.”


세하의 시선이 체펠카에게 향했다.

“계속 버티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엑펠트에 변질된 팔을 보고 있자니 세하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물었다. 그러자 체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미흡하여 벌어진 일이오. 그러니 책임을 져야하오.”
“뭐 좋습니다. 그럼 어디부터 해야 합니까?”

세하도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인테르프가 첫인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진지한 얼굴로 세하를 바라보았다.


“참 특이한 자로다. 분명 이상한 갑주로 나약함을 감춘 것 같은데 그 속은 꽤나 강건하군. 이상한 자로다.”
“제가 엑펠트라는 놈들하고 엮인 게 많아서 그럽니다.”

세하는 그렇게 일축했다. 그러자 인테르프는 다시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이번에는 핏빛의 기류가 웅혼하게 움직이며 뭔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을 기점으로 그 북쪽에는 저주 받은 것들의 영토가 이어지고 있지. 겉으로는 우리 차원의 생명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그대가 알고 있는 엑펠트라는 놈들의 것이다.”

세하는 지금 인테르프가 그려낸 것이 일종의 지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엑펠트가 점령한 곳이 한 4할 정도인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꼭 체펠카의 팔 같군.’


뭔가 의미하는  같아서 체펠카를 볼까 했지만 체펠카는 이미 문제의 팔을 소매로 감추고 있었다.


“일단은 병력을 동원해서 직접적으로 맞부딪칠 것이다.”


그 사이 인테르프는 지도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을 손으로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면 피해가 막심할 텐데요?”

세하는 당연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인테르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 세계의 존재들을 잘 모르니 하는 말이다. 슈타크카이트에서는 우리더러 흡혈귀이니 뱀파이어니 하는 모양인데 그것들과는 질 자체가 다르다는 걸 말이다.”


순간 세하는 마그티스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혹시 마그티스는 아십니까?”

블러디 헤스에 대한 정보를  것이 마그티스라서 세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질 인테르프의 반응이 걱정되기도 했다.


“마그티스? 후우... 그 자도 웃긴 자로다. 아무래도  번에 정보가 들어오면 그대가 혼란한 거라 생각한 것이겠지. 오늘 이렇게 만남이 이루어졌으니 그의 의도도 성공한 셈이로군.”

그리고 인테르프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세하의 눈에 무척 익은 존재들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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