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이차원의 존재 3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는 광경에 어지간한 세하조차도 놀라서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루이제. 이놈들 뭐지?”
세하가 가만히 서서 묻자 루이제의 답이 곧장 나왔다.
-케나아찰 계의 몬스터들이네요.
“케나아찰?”
세하는 그제야 마그티스가 알려준 정보를 깨달았다.
-듣자하니 린시지오와는 사이가 안 좋다는 군요. 게다가 상성도 서로 나쁘다는 군요.“
루이제가 말한 대로였다. 케나아찰의 몬스터들은 형태를 떠나서 다들 온 몸에 고슴도치마냥 가득히 삐죽 튀어나온 가시와 단단한 금속질의 표면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린시지오의 몬스터들이 아무리 손톱과 발톱 등으로 상처를 내려고 해도 먼저 가시가 찔리거나 단단한 표면을 뚫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막무가내 격인 육박전으로 흐르고 있었다.
“진짜 가관이네. 아무튼 계획대로 해도 되겠네.”
세하는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슈트 주변에 강렬한 파장이 일어나더니 서서히 그 크기를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고가 10미터나 되는 거인이 되었다. 강력한 출력을 자랑하는 엘리미네이터 아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사선상에 생존자는 없는 걸로 판명됩니다. 그대로 풀 버스트로 가셔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루이제가 조언했고 세하의 눈앞에 펼쳐진 디스플레이에는 린시지오와 케나아찰의 몬스터들이 일일이 락온 되기 시작했다.
퓨화화학!
엘리미네이터 아머의 양 손과 양 어깨 그리고 두 다리의 허벅지 부근에서 사이킥 캐논의 커다란 포구들이 드러났고 이윽고 강렬한 화염의 기운을 띤 파멸적인 에너지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그 어떤 존재라 할 것도 없이 죄다 쓸려나갔고 불타올랐다. 놀랍게도 단단해 보이는 케나아찰의 몬스터들조차도 그런 모양이었는데 그만치 린시지오의 몬스터들과 복장 터지도록 맞붙고 있는 상황도 한 몫하고 있었다.
“후우.......”
그렇게 한 2분 여 정도를 에너지로 쏟은 세하는 포격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눈앞의 디스플레이에는 더 이상 적이 없는 걸로 드러났고 게이트들도 죄다 파괴된 것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더 이상 게이트 반응은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마스터.
루이제가 확인 보고를 하자 세하는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것들. 이제야 오고 있어.”
세하가 감지되는 반응에 고개를 돌려보니 헬기와 각종 운송수단을 동원해서 다수의 헌터들이 방벽을 넘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 세하는 중지라도 세우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
“그랬군.”
문제의 현장 외각에 위치한 야전 막사. 거기서 세하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류한호를 만나고 있었다.
“볼 것 없이 싹 쓸어버렸습니다. 혹시라도 살아 있을 생존자를 죽게 했다는 식으로 비난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류한호가 세하를 마주하고도 한 동안 말이 없자 세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류한호는 쓴 웃음을 지었다.
“아닐세. 뭐랄까 자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겠구나 싶어서 말일세.”
“게다가 또 하나의 차원이 끼어들었습니다. 케나아찰이라고 하죠. 저번에 파흐트까지 합쳐서 총 4개의 이차원이 게이트로 끼어들 판국이라는 겁니다.”
세하는 다시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미 관련 정보나 오늘의 전투 데이터는 협회에게 전달한 상태였다. 그걸 아는 류한호의 표정은 도무지 풀릴 길이 없어보였다.
“이거 생각한 것 이상으로 일이 커지는 것 같군 그래.”
그래서 류한호가 무겁게 말하자 세하는 팔짱을 끼고서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서 어쩌실 겁니까? 포기하고 싶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제 전생인지 회귀 전인지 모를 시기에는 이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싸워 왔습니다. 엑펠트라는 것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의 존엄을 짓밟고 능욕하며 퍼져만 가는 놈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것들은 충분히 대처법을 익히고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의 엑펠트도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에 가서는 세하는 눈에 힘을 가득 주고 말했다. 거기에 류한호는 허탈 한 듯 웃으며 사과했다.
“그랬었지. 내가 나이가 들다보니 마음이 약해진 모양일세. 자네 같이 생지옥을 겪은 사람도 있는데 말일세.”
“아무튼 나름의 대처법을 데이터로 남겨두었습니다. 제대로 배포하시고 한동안 경계 상태를 격상시켜서 대처해야 할 겁니다. 엑펠트에 관련 되서도 마찬가지고요.”
세하는 그렇게 말하고서 막사를 나섰다.
“여기 사람들로서는 당연하려나?”
하지만 류한호의 표정이 신경 쓰여서 세하는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겠죠. 하지만 마스터가 나서야 할 판이었습니다.
루이제가 세하와 단둘이 되자 입을 열었다.
“끙! 전생 때나 지금이나 뭔가 짊어지는 건 똑같군 그래!”
-그게 다 운명이라는 거지요. 한껏 발버둥치세요. 제가 신나게 타박해드리죠.
“내가 말을 말지.”
세하는 그러면서 주둔지 내서를 거닐었다. 다들 뒷수습을 하느라 바빠 보였지만 당장은 세하가 나설 정도로 급한 일은 없어보였다.
“흐음.”
그래서 세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린시지오의 몬스터들이 들고 일어난 병원 쪽으로 향했다. 물론 방벽이나 그 너머로도 조사 인원들이 면밀히 살피는 중이었지만 다들 세하를 알아보고는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냥 봐서는 일반적인 대학병원인데 말이지.”
그 안에 있을 수많은 환자들도 의료진 그 외에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좀비 영화의 예시를 들어봐도 자명한 일인지라 세하의 표정은 병원 내로 들어갈수록 썩어 들어갈 판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하의 힘이 정신적인 사이킥 에너지인 탓에 생각보다 병원이 피해를 입지 않아서 제법 멀쩡한 상태인 로비까지 가게 되었다. 제법 노을이 지는 탓에 붉게 물든 광경을 보며 세하가 한숨을 내쉬려는 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괜찮나?”
순백색의 소년 마그티스와 마찬가지 색체를 띤 커다란 늑대 프로스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세하는 맥이 풀린 듯 웃었다.
“언제 나오나 했다.”
“아무래도 지구의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는 건 부담스러워서 말이지.”
마그티스가 그렇게 말하자 세하는 휘파람을 불었다.
“기겔슈는 어디 있어?”
그가 아크 드레이크인 기겔슈를 언급하자 마그티스는 갑자기 골치가 아픈지 미간을 찌푸렸다.
“좀 바쁘지. 오늘 여기에 린시지오와 케나아찰 계의 몬스터들이 나타나지 않았나? 그 여파는 우리 세계에서도 있어서 말이야.”
“그러는 너는 여기와도 괜찮은 거냐?”
세하로서는 당연한 물음이었다. 그러자 마그티스는 잠시 고민하는 것처럼 턱에 손을 괴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는 단순히 지구와의 교섭책으로 임명됐을 뿐이다. 나 의외에도 세계의 안정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은 제법 있지.”
어찌 들으면 세하로서는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슈타크카이트에서도 나름 노력하는 모양입니다.
루이제도 감상을 내놓았고 세하는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 좋아. 너 말고도 다른 녀석들이 있다는 건 그만치 협력자가 많다는 말도 되니까 말이야. 그런데 거기... 슈타크카이트에도 파흐트나 린시지오 그리고 케나아찰 같은 다른 차원에서 마구 넘어오나?”
그 말에 갑자기 마그티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실 그 점이 염려되는 판이다. 우리 세계에는 한 차원의 존재나 몬스터들만 가끔 넘어오는 편이다. 이렇게 지구처럼 2곳 이상의 차원에서 한 번에 넘어오는 일은 없었다.”
“.......”
세하는 순간 입에서 욕이 나오려다가 꾹 참았다.
“그게 엑펠트 때문이려나.”
세하가 마지못해 꺼낸 말에 마그티스도 걱정이 되는지 표정을 풀지 못했다.
“그럴 거다. 게다가 전에 말하지 않았나? 민세하. 네가 회귀이던 전생이던 지구 출신이고 엑펠트와 장구할 정도로 싸웠다고 말이다.”
여기까지 듣자 세하는 엑펠트에 대한 증오가 다시 솟구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금 그래봐야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아는지라 순식간에 머릿속이 식는 것도 느꼈다.
“아무튼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줘. 그리고 다른 협력자들도 만날 수 있으면 만나면 좋겠고. 아. 그리고.......”
순간 세하는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다른 차원의 녀석들하고도 대화가 통할 수 있을까? 파흐트나 다른........”
마그티스는 갑자기 생각지 못했는지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엎드려 있던 프로스가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보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다.
“어이. 생각하지 못한 거냐?”
세하가 그런 마그티스의 표정을 보고서 물었다. 그러자 마그티스는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랬다. 사실 그 놈들은 우리 세계와 다들 적대적이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사이도 안 좋지. 이번에 엑펠트로 인해 자주 부딪치게 되자 더 시끄러워졌고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네. 하지만 대화가 여지가 통한 다면 말해볼 필요는 있겠지. 하지만 린시지오 놈들은 당장은 힘들겠어. 그 망할 것들이 여기에 쳐들어와서 애먼 사람들까지 내 손으로 죽게 만들었으니까.”
세하는 자신이 한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갑자기 프로스가 다가오더니 끙끙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세하의 다리에 몸을 부비 대기 시작했다.
“이놈은 또 왜 이래?”
세하는 황당하면서도 크기는 크지만 제법 귀여운 모습인 프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프로스가 나름 위로를 하는 것 같군. 사실 말을 제대로 못해서 그렇지 우리의 대화는 다 이해할 거다.”
마그티스가 프로스의 모습을 보고 말하더니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이 통할 놈들은 파흐트 녀석들이군. 그런데 전에도 말했다시피 그 놈들의 기저심리는 타 차원 멸시다. 하지만 그놈들도 엑펠트에게 지독하게 데였다면 대화의 여지가 있겠지. 케나아찰은... 흐음.......”
마그티스도 비슷한 생각인지 린시지오는 빼놓고 있었다. 그렇게 세하와 마그티스 그리고 한 마리의 축생인 프로스가 고민을 하는 사이에 갑자기 그 근처에서 하나의 게이트가 나타났다.
“이거 봐라?”
처음에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났다가 그 주변에 바직거리는 스파크가 일어나는 꼴을 보고서 세하는 그것이 파흐트 계의 연결인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일단 느와르레이드 슈트로 전신을 감싸고 양 손을 사이킥 캐논의 포구로 만들어서 그 쪽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마그티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슈타크카이트의 마그티스인가? 그 쪽은 지구의 민세하?”
그러는 사이 게이트 안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성스러운 존재가 강림을 한 것 같았다. 제법 얼굴선이 가늘고 우아한 자태의 금발을 지닌 남성이었는데 그의 몸 주변에서는 새하얀 에너지가 마치 구름처럼 휘감고 있어서 세하는 두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그러는 네 놈은 누구냐?”
물어보는 꼴이 제법 오만해 보여서 세하는 반발심에 물었다. 그러자 파흐트 계의 존재는 갑자기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미안하군. 그대의 강함은 마그티스에게 들었다. 나는 파흐트 계의 7명의 로드 중 한 명인 엘파타르라고 한다.”
자신을 엘파타르가 소개한 존재가 그렇게 예의를 갖추자 세하는 빠르게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지구의 민세하다. 마그티스가 불러서 온 건가?”
세하의 물음에 엘파타르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아무튼 최근에 린시지오의 저주 받을 것들이 사고를 친 모양이군. 가끔 우리 차원의 변경에서 나타나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다른 차원으로 건너와 인명을 살상한 것은 통탄스러울 정도의 일이로다! 오오! 천상의 주신이신 우리스께서 그 모든 것을 굽어 살피실 것이로다.”
“.......”
갑자기 성직자처럼 누군가를 찬양하자 세하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듣자하니 그 쪽 세계에서는 신이 강림하는 모양인데 여기는 아니다. 그러니 어설프게 전도하려다가는 머리통이 깨질 줄 알아라.”
세하가 그렇게 으름장을 놓자 엘파타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럴수가! 이곳에는 신의 은총이 없는 건가?”
“그만해라.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장황하게 떠드는 건 여전하구나.”
참다못한 마그티스까지 나서자 엘파타르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상황이 진정되나 했는데 갑자기 또 다른 게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뭐야?”
혹시 케나아찰인가 싶어서 세하는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드러난 게이트의 모습을 보고서 세하는 머릿속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문제의 게이트는 피처럼 붉은 색체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