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이차원의 존재 2
“이게 뭐하는 짓이냐?”
세하는 눈앞에서 ABW-404가 파흐트 계의 존재를 집어삼킨 것에 어이가 없음을 넘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실례했군. 하지만 프로스가 이렇게 군 건 내 탓이지.”
그 반면에 마그티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게 말했다.
“프로스?”
세하는 낯선 이름에 당연히 물었고 마그티스는 ABW-404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프로스. 이 아이의 이름이지. 대충 동료나 친구의 의미라고 보면 된다.”
순간 세하는 희한한 생각이 다 들었다.
‘별 걸 다 친구라고 하네. 머리가 돌았나?’
사실 마그티스는 본래 시서펜트. 그 중에서도 드래곤에 가까운 존재였으니 보통의 인간과 관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하는 금세 이해하고 좀 더 굳은 얼굴이 되었다. 물론 라인버스터 슈트의 헬멧을 해제하지 않은 상태라서 그 표정은 마그티스가 볼 수 없었다.
“아무튼 정보를 캐내려는 차에 네 친구 놈이 잡아먹어버렸으니 해명을 좀 하시지?”
그래도 목소리에 불쾌감이 자리해 있었다. 그럼에도 문제의 늑대, 프로스는 입을 쩍 벌려 트림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정전기처럼 바직거림이 일어났지만 프로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었다.
“그놈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지?”
마그티스가 짐짓 차가운 얼굴이 돼서 물었다. 거기에 세하는 바로 답했다.
“파흐트 계에서 왔다고 하더군.”
“그렇지? 확인 차원이었다. 아무튼 이것들은 쓰레기다. 내가 속한 차원인 슈타크카이트에도 심심치 않게 침범해 와서 뒤통수를 치기를 일삼는 놈들이었지.”
마그티스의 선한 얼굴이 제법 노기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통수를 친다고?”
“그래. 겉으로는 뭔가 대단하고 선한 척하며 접근하지만 이것들의 기저 심리에는 일반적인 생명체들을 깔보고 하등하게 여기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들이다. 에너지체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보니 필요에 따라 육체를 취하고 조종하다가 갖다 버리기도 하는 등 아주 쓰레기 같은 것들이지.”
마그티스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갑자기 두 눈에 이채를 띠고 세하를 바라보았다.
“넌 확실히 다른 것 같군. 저것들을 처음 만나면 보통 손도 못 쓰고 당하기 마련인데 너는 아주 손쉽게 때려잡더군.”
“내 힘 때문이려나?”
세하는 자신의 능력이 정신파인 사이킥 에너지에 기초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럴 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오늘 나타난 이것들은 일종의 첨병 같은 것들일 거다. 우리 차원에서 넘어가지 못하게 최대한 막을 거지만 아무튼 주의하기 바란다.”
마그티스는 그렇게 세하에게 당부하고는 프로스와 더불어 게이트로 몸을 돌렸다.
“저기 혹시 이놈들 말고 다른 차원 녀석들도 넘어오나?”
세하는 궁금증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마그티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알게 되면 별로 좋진 않을 텐데?”
“어차피 넘어온다는 거군. 마음 편하게 말해봐라.”
세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물었다. 그러자 마그티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린시지오. 케나아찰. 일단 이 두 차원이 연관될 수 있다. 몬스터로서 사나운 특징이야 있겠지만 특히 조심할 것은 린시지오다.”
“린시지오?”
마그티스가 강조해서 말하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세하가 묻자 마그티스는 바로 답했다.
“피에 관련된 것들이다. 대상에 상처를 입히고 피로서 연결되어 자신들과 같은 대상으로 변이시키는 것들이다.”
그날따라 마그티스의 말이 세하에게 가득 와 닿고 있었다.
*
-마스터. 신경 쓰이시나요?
세하는 자신의 집에서 침대에 누운 채 뭔가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루이제가 물은 것인데 세하는 영상에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신경 안 쓰이면 거짓말이겠지.”
그 뒤로도 마그티스와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린시지오 차원에 대한 내용이 많았는데 파흐트 차원은 그 본질만 알고 나면 때려잡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피를 통해서 감염을 시키는 린시지오 차원에 대해 마그티스는 제법 열을 올려서 말했었다.
“협회에 정보를 전달하긴 했는데 그래도 기분이 찜찜하군.”
어차피 정보는 공유하기로 한 터라 곧장 협회 그리고 제너럴 마이트에 해당 정보를 전달했다. 그럼에도 세하의 표정은 풀릴 길이 없어 보였다.
“너무 걱정이 많은 것도 탈이네요.”
어느새 루이제가 실체화해서 세하의 옆에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처럼 긴 은발에 붉은 눈을 지닌 미인이었지만 복색은 전처럼 제복이 아닌 편안해 보이는 스포츠 웨어 차림이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내니 좋네.”
루이제가 실체화한 것에 세하는 기분이 좀 풀린 것 같았다. 하지만 루이제는 양 볼을 부풀렸다.
“못할 것도 없지요. 그나저나 지금 보고 계시는 거 좀비 영화 맞죠?”
루이제가 눈앞의 화면을 가리켰다. 커다란 가상화면이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처럼 넓게 퍼져서 영상을 비추고 있었다.
거기에는 속칭 좀비라 불리는 감염자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서 어지간한 육상 선수 저리가라 싶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맞아. 아무래도 감염이니 그런 걸 생각하면 이미지 하기 좋아.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이고 말이야.”
세하는 눈앞의 영화를 보면서 씁쓸한 기억을 곱씹는 표정으로 말했다.
“생각해보면 전생 때도 엑펠트의 융합체 중에서도 비슷한 예시가 있긴 했네요.”
루이제는 대번에 세하의 전생 때 기억을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도 기계적으로 움직이긴 했는데 뒷맛은 쓰지. 일단 사람으로 살아있던 것을 괴물이라고 죽여야 하니 말이야.”
“마스터는 사이킥 에너지를 극단적으로 낭비하지 않는 한 슈트 때문에 물릴 일은 없을 거예요.”
루이제는 그런 세하를 위로하듯 말하고는 제법 영화에 흥미를 느꼈는지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막 주인공으로 보이는 남자가 커다란 전기톱을 휘두르며 막 좀비의 머리통을 날리는 장면이 보이고 있었다.
*
그 뒤로 일주일, 별 탈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예전에 협회나 엑펠트에 관련된 일로 동분서주했던 세하로서는 뭔가 믿기지 않는 나날이었다.
‘느낌이 안 좋다.’
하지만 그 날 아침은 눈을 뜨기 무섭게 가슴 속에 뭔가가 얹힌 것 마냥 좋지 않아서 세하는 저절로 우거지상을 짓고 있었다.
-마스터. 아침부터 그런 얼굴이면 한 대 치고 싶어요.
루이제가 핀잔 아닌 핀잔을 날렸음에도 세하의 표정은 풀릴 길이 없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려나?”
세하는 스스로에게도 반문했지만 계속 괴상한 이물감이 사라지지 않아서 표정이 계속 구겨졌다. 아무튼 그런 상태에서 TV를 켰다.
“어제 새벽 3시경. 부산 외각 지역에서 발생한 게이트에서 특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침뉴스의 아나운서는 평소처럼 말하고 있었지만 세하는 괜히 귀가 따가웠다.
“최근에 나타난 몬스터들과 다른 형태를 지닌 것들이고 상당한 저돌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헌터 몇 명이 다치긴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 되니 무슨 열병이 난 것 마냥 일어나질 못하는 군요.”
그리고 그날 작전을 지휘했다는 선임 헌터가 인터뷰에 나오고 있었다. 순간 세하는 내뱉고 말았다.
“씨팔!”
-........
순간 루이제가 헛숨을 들이 삼켰다. 세하는 지금 화면에 비친 몬스터의 모습을 보고서 외쳤다.
“저거 블러디 헤스잖아! 마그티스 놈이 말했던 몬스터!”
지금 뉴스에서 소개하고 있는 몬스터는 대략적으로 신장이 180을 전후한 건장한 인간형 체격에 손톱과 발톱이 길고 날카롭게 돋아있었고 팔이 마치 원숭이처럼 길었다. 게다가 표면이 마치 핏빛을 띠고 있었고 머리는 커다랗게 벌려진 이빨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흉악한 생김새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 맞네요.......
세하의 기세가 워낙 거세서 어지간하던 루이제 조차도 말끝을 흐릴 지경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
“그 병원 근처는 당장 봉쇄하고 고화력으로 접근도 못하게 막아요!”
세하는 느와르레이드 슈트 상태로 비행하며 협회에 통신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인가? 일단 그 쪽으로 헌터들과 군병력이 급파되고 있긴 한데.......”
협회장 류한호는 제법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통신 화면상으로도 놀란 기색이 역력할 정도면 세하가 얼마나 다급하게 말했는지 짐작할 만 했다.
“전에 정보공유 제대로 했잖아요! 아무튼 대책 없이 접근전해서 물리거나 상처 하나라도 나면 그대로 몬스터와 같이 취급해야 됩니다! 알겠어요?!”
세하는 그렇게 외치고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미 사이킥 에너지의 총량이 막대해진 터라 경기도에서 부산까지 날아가는 데는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마스터. 이미 상당한 열원이 감지됩니다.
루이제의 보고에 세하가 헬멧의 디스플레이를 보니 붉은 점 같은 것이 상당히 퍼져보였다.
“돌아버리겠네. 그새 저렇게 퍼진 거야?”
세하는 1주 전에 봤던 좀비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아침 뉴스에 나온 병원 인근은 다행히도 군병력이 철통 같이 그 주변을 봉쇄해놓고 있었다.
투타타타!
게다가 별 패닉 없이 병사들이 화기를 연사하며 방벽 너머 몰려드는 좀비나 몬스터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수가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돌겠군.”
세하가 슈트의 메인카메라를 확대해서 보니 병원과 그 주변 부지에서 피처럼 붉은 게이트가 10개는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안에서 뉴스에서 보았던 블러디 헤스는 물론이요 마치 커다란 육식 공룡이 피에 절은 것 같은 것들도 튀어나오며 포효하는 등 난장판이 펼쳐져 있었다.
-감염된 숙주를 통해서 게이트를 연 것으로 판명됩니다. 그리고 협회와 군병력이 움직이고 있지만 지원은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하처럼 단독으로 고기동력을 갖춘 헌터가 드물다 보니 이해할 수는 있는 현상이었다.
“S급 헌터가 둘만 더 와도 좋겠군. 뭐 지금 내가 여기 왔으니 어쩔 수 없나?”
세하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대로 군병력의 방벽을 넘어 날아갔다.
-마스터. 슈트의 방호력은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라인버스터 슈트로 기선을 제압하고 후에 틈을 봐서 PLB 아머로 전환해서 쓸어버리죠.
“알았어!”
세하는 루이제의 조언을 듣기 무섭게 그대로 수직으로 지면에 내리꽂혔다.
파콰콰쾅!
사방에 강렬한 충격파가 일어나며 주변에 달려들던 블러디 헤스를 비롯한 몬스터들을 날려버렸다. 그 광경에 방벽 너머의 군병력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블랙메탈이다!”
“S급 헌터잖아? 살았다!”
세하는 마음 같아서는 그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싶었지만 눈앞의 상황이 급해서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이미 라인버스터 슈트의 두터운 장갑판으로 전신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사이킥 에너지의 발현으로 그 주변에는 이글거리는 불꽃으로 필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크워워워!
블러디 헤스들은 거기에 위협 받지 않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하의 필드에 닿기 무섭게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며 재를 날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물론 그 안에서 코어가 떨어져 내리는 광경에 세하는 저절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마스터. 솔직히 걱정했죠?
“말도 마라. 하여간 나도 제정신 박힌 놈은 아니군.”
세하는 자신이 뼛속까지 헌터임을 자각하며 다시 움직였다. 양손이 사이킥 캐논의 포구가 되어서 그대로 광탄. 아니 지금은 강렬한 화염탄을 날리기 시작했고 라인버스터 슈트의 리버스 필드는 계속해서 불꽃의 방어막이 돼서 린시지오의 몬스터들의 접근을 불허하고 소멸시켜서 접근전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만들어가게 되었다.
크아아아!
그렇게 가장 근처에 있는 게이트의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갑자기 커다란 발 하나가 내리꽂히며 우렁찬 포효가 세하의 귀청을 흔들었다.
“와. 가관이네.”
세하는 그걸 향해 올려다보며 중얼 거릴 수밖에 없었다. 신장만 6미터는 훌쩍 넘을 존재가 찢어져라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가장 유명한 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를 떠올릴 법했다.
하지만 전신 상태가 마치 핏물을 뚝뚝 흘리는 것 같은 꼴이었고 앞발이 티라노처럼 작은 것도 아니고 마치 드래곤의 것처럼 온전히 크고 날카로운 손톱들을 들이미는 모습이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그래봐야 네가 드래곤이겠냐!”
세하는 기합을 올리며 그대로 달려들었다. 이미 라인버스터 슈트의 오른 주먹에는 이글거리는 불꽃이 맺혀 있어서 그대로 내뻗어 오는 몬스터의 앞발과 충돌했다.
콰콰콰쾅!
크아아아악!
놀랍게도 몬스터의 앞발이 라인버스터 슈트의 주먹에 적중당하기 무섭게 폭발하며 화염이 일어났고 그것은 몬스터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 덕에 몬스터가 뒤로 나자빠졌다. 세하는 그대로 그 위로 타고 올라서 결정타를 날리려고 했다.
-마스터. 또 다른 게이트 반응입니다.
그때 루이제가 말했고 세하는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눈앞에 보이는 것은 게이트였다. 하지만 린시지오의 것과는 달랐다.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난 직후에 그 주변을 마치 날카롭고 뾰족한 것들이 무수하게 튀어나오며 그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설마.......”
세하에게 당한 몬스터는 쓰러진 채 불타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새로 발생한 게이트를 보고 있자니 세하는 생각했던 불안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서 욕이 나오려 했다.
키아아아!
그 사이 새로이 등장한 게이트에서 일단의 몬스터들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은 주변에 퍼져 있는 린시지오의 몬스터들과 충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