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이차원의 존재 1
“연구시설의 실험체군요.”
토마스가 가장 먼저 알아보고 말했다. 거기에 마그티스는 잔잔하게 웃을 뿐이었다.
“정화됐으니 괜찮을 겁니다.”
세하는 혹시나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말했다. 하지만 토마스와 알페렌의 반응은 걱정한 것과 다르게 싱거웠다.
“사실 우리라고 제너럴 마이트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건 아닙니다.”
알페렌 중 여성의 음성이 말했다. 거기에 마그티스는 감사를 표했다.
“알겠다. 아무튼 내가 거두기로 해서 뭔가 문제가 생길 거라 생각했었다. 이해심에 감사한다.”
물론 다른 차원의 존재라선지 존대를 하진 않았다. 물론 세하나 알페렌도 그런 걸 지적할 정도로 꽉 막히진 않아서 바로 대화를 이어갔다.
“슈타크카이트라고 했습니까? 엑펠트가 어느 정도나 잠식하고 있습니까?”
다시 알페렌 중 중년 남성의 음성이 물었다. 거기에 마그티스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사실 우리 세계는 상당히 넓다. 그래서 그 잠식이라는 범위를 어느 정도로 생각해야 할 지 모르겠군.”
“어이. 마그티스.”
하지만 그걸 두고 볼 세하가 아니었다.
“그 쪽 몬스터들이 게이트로 우리 세계에 넘어오는 게 엑펠트 때문인지 알 필요가 있어서 그렇다. 그러니 바로 답해라.”
“성미가 급하군.”
마그티스는 세하의 채근에도 표정을 풀지 않았다.
“사실 우리 세계는 엑펠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혼란한 편이다. 그리고 우리 세계만의 문제는 아닌 걸로 안다.”
“?”
순간 세하는 머릿속에 불길한 느낌이 스쳤다.
“아무튼 좀 더 조사를 해봐야 알 것 같군. 아무튼 지구 측이 원하는 건 우리 세계에서 지금 게이트로 지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엑펠트가 얼마나 잠식 했느냐 겠지?”
“그래. 넌 죽다 살아났으니 그 심각함을 잘 알겠지?”
세하가 짐짓 화난 얼굴로 으름장을 놓자 마그티스는 힘없이 웃었다.
“물론이다.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엑펠트에게 죽으니만 못하는 꼴이 됐을 테니까.”
마그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같이 온 ABW-404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는 크기만 커다랗지 지극히 바른 모습이 된 은빛의 늑대는 그 손길이 기분 좋은 듯이 그르렁 거렸다.
“아무튼 정기적으로 너를 통해서 연락하겠다. 우리 세계로서도 지금의 혼란이 달가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나는 확실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는다. 현재로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거기에 세하는 쿨하게 받아넘겼다.
“알았다. 하여간 알아낸 게 있다면 바로 이야기해라.”
“명심하지.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겠다.”
그렇게 마그티스는 ABW-404와 기겔슈를 데리고 다시 게이트로 사라졌다. 그러자 세하는 박수를 짝 치며 알페렌과 토마스 그리고 레이린의 주의를 끌었다.
“자. 그럼 다시 정리해봅시다.”
*
그 뒤로 이어진 회의는 별 것이 없었다. 일단 대한민국 헌터 협회와 제너럴 마이트의 핫 라인이 연결되었고 슈타크카이트에 대해서는 세하를 통해서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로만 정리가 된 상태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입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송기 안에서 루이제가 말을 걸었다. 제너럴 마이트의 회의장에서는 통 말을 하지 않아서 세하로서는 이상했는지라 쓴 웃음을 지었다.
“그래? 나는 왜 그것밖에 못하냐고 욕할 줄 알았는데?”
-마스터는 저를 막가는 존재로 보시는 군요.
왠지 음성에서 섭섭해 하는 느낌이 들어서 세하는 짓궂은 웃음을 띠고 말았다.
“뭘? 전에 드레인라이징한다며 나를 무슨 아이언 메이든에 처넣는 것처럼 괴롭힌 게 누구더라?”
-다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저는 마스터의 안위만 생각합니다.
워낙 정색하는 음성이 이어져서 세하는 더 이상 놀릴 생각이 사라졌다.
“하하하... 미안미안. 아무래도 루이제는 엄격한 것 같아서 말이지.”
-마스터가 지금처럼 성장하셨으니 괜찮습니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제너럴 마이트와의 회의에서 잘 대처하셨어요. 물론 실수를 하셨다면 제가 즉각 조언을 드렸겠지만 말이죠.
“흠. 그런데 마그티스 녀석 말이 꽤 신경 쓰이는 군.”
제법 분위기가 풀어진 것 같자 세하는 생각했던 바를 털어놓았다.
“다른 차원이 있다는 식으로 말해서 말이지.”
-충분히 생각할 이야기입니다. 마스터가 회귀하기 전에도 엑펠트에 대해서 분석하다보면 다른 차원도 부수고 왔다는 뉘앙스를 풍기긴 했습니다.
“쩝. 이거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질지도 모르겠는데.”
거기까지 말하고서 세하는 피곤함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레이린은 자체 게이트를 통해서 협회로 돌아가 버려서 달리 대화할 사람도 없었고 어차피 안락하게 몸을 눕힐 수 있는 개인구역으로 나뉘어있는 데다가 루이제도 세하의 피로를 감안해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
그 뒤로 이어진 나날은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이었다.
“이게 평범한가?”
물론 서울 외각 지역에 발생한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을 박살내는 것을 평범하다고 말하자면 어폐라고 할 만 했다.
-마스터로서는 평범한 거죠.
와아아아!
근처에 배치되어 있던 헌터들이나 군병력들이 막 허공으로 날아오른 세하를 보고서 환호하고 있었다.
“이런 맛에 헌터나 영웅이 되고 싶은 거 같네.”
어차피 느와르레이드 슈트의 헬멧을 쓰고 있어서 바깥으로 말이 세어나가지 않기에 세하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마스터가 긴급하게 요청을 받긴 했죠. 사실 무시해도 됐는데 뭐 공짜로 해주는 게 아니니 이 정도면 양호한 거죠.
루이제의 말대로 협회의 요청이 의무는 아니었다. 하지만 세하는 급히 나서서 위급한 게이트를 처리했다.
“알아. 알아. 호구 잡힐 생각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긴요. 마스터는 꼬박꼬박 타먹을 거 다 타 먹는 성격이니 걱정은 안 해요. 그나저나 최근에 엑펠트나 슈타크카이트에 대한 소식은 없는 거 같네요.
어차피 전산 상으로 오늘의 활약상이 협회로 보고 됐을 거라서 세하는 미련 없이 허공을 가르며 현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렇네. 그나마 마그티스 녀석이 꼬박꼬박 연락을 해오는 건 다행이려나?”
물론 그 방식이 게이트를 열고 눈앞에서 나타나는 식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한 번도 협회나 헌터들에게 감지되지 않는 걸 볼 때 그만의 특수한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네. 그런데 아직 자신의 차원에서도 많이 혼란한 가보네요. 게다가 다른 차원의 연관성을 우려하는 것이 조만간 이곳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만가지 놈들이 올 수 있다는 거로군.”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맛이 썼다. 아무튼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인지라 세하는 거처로 돌아가기 위해 속도를 높여 비행해나갔다.
“응?”
그때 헬멧의 디스플레이에 뭔가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게이트 반응이네요.
루이제가 차갑게 보고했다. 물론 세하는 그리 힘을 쓰지 않아서 걱정이 없었지만 앞서 루이제와 나눈 대화 때문에 뭔가 쎄 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겠지?”
-방금 했던 말이 신경 쓰이시나요? 그래도 엑펠트나 융합체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쉬울 텐데요?
루이제의 핀잔에 세하는 피식 웃으며 디스플레이로 표시되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다행히도 이번에도 교외 지역에 가까웠다.
“일단 선점했으니 내가 확 처리해버려도 되겠지?
-이른바 선 조치 후 보고인 셈이죠. 마스터의 헌터 등급을 생각할 때 누가 딴지를 걸까요?
세하는 우선 지면에 내려섰다. 사실상 게이트와 몬스터의 시대에서 교외 지역은 거의 시설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펜션이 있어도 좋을 호젓한 분위기의 장소였지만 지금은 황폐한 공간에 불과했다.
파치치칙!
그리고 세하의 앞에서 스파크를 일으키는 게이트가 보였다. 그걸 보고 있자니 세하는 뭔가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
“보통 게이트가 이렇던가?”
-보통은 그냥 공간의 일그러짐 수준이지요.
“아. 말이 씨가 된 모양인데.”
세하는 마그티스가 언급했던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생각했다.
‘아무래도 슬슬 올 모양인데.’
그렇게 세하가 내심 긴장하고 있자 게이트 안에서 서서히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시 달라.’
형태는 각양각색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몸체를 이루고 있는 빛이나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루이제. 물리 공격은 안 통할 놈들 같은데?”
-동감합니다. 물론 마스터의 사이킥 에너지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어느새 분석을 끝냈는지 루이제가 자신 있게 말했다.
크허허헝!
나타난 몬스터들 중 사자의 형태의 적이 먼저 달려들었다. 세하는 우선 오른손을 순식간에 포구로 만들어 광탄을 날렸다.
콰콰쾅!
에너지로 이루어진 사자가 순식간에 광탄의 폭발에 휩쓸리며 사라졌다. 그렇게 잔여물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나 싶어서 세하가 놀라려는데 무슨 동전이 떨어지는 것처럼 짤랑 소리를 내며 주먹만한 크기의 코어가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 코어는 나오네.”
-지금 그게 문제인가요?
루이제가 핀잔을 던지기 무섭게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하는 슈트를 순식간에 라인버스터 슈트로 전환하고 그대로 눈앞의 몬스터들과 육박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마치 고릴라처럼 늘어나고 두터운 팔이 뻗어나갔고 그 끝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순간 제일 앞에 있던 커다란 유인원 같은 몬스터가 세하가 뻗은 전격의 주먹에 강타당해 머리통이 날아갔지만 이 조차 에너지로 이루어져서 있어서 그냥 형태가 흩어지며 코어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신기한 놈들이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타입의 몬스터들이라서 긴장했지만 세하는 오히려 시각적인 혐오감은 일반적인 피륙으로 이루어진 몬스터들보다는 덜해서 손쉽게 전투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하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주변의 몬스터들을 죄다 때려눕혔고 당한 몬스터들은 죄다 에너지로 이루어진 몸이 흩어지며 코어를 무수히 떨어뜨리기 바빴다.
‘그대는 누군가?’
그때 가장 뒤에 있던 존재가 입을 열었다. 공기를 진동시켜 말하는 터라 세하는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런 놈들이 제일 짜증나. 꼭 뭐나 된 것처럼 떠들잖아?”
-아무튼 상위의 존재로 보이네요. 하지만 마스터가 못 잡을 건 없으니 대화를 해보죠.
루이제가 조언했기에 세하는 불쾌감을 잡고 입을 열었다.
“너는 뭐하는 놈이냐?”
이미 라인버스터 슈트의 리버스 필드가 완충되어 있는 상태라서 세하의 주변에는 바직 거리는 에너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펼쳐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세하가 위협적으로 양 주먹을 부딪쳐 보이자 눈앞의 상대는 적지 않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
‘나... 나는.......’
그 사이 세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상대의 모습을 살폈다. 앞서 쓰러뜨린 것들과 다를 바 없게 빛이나 에너지로 몸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그 형태가 남달랐다. 마치 갑옷을 갖추어 입고 날개를 지닌 인간의 형태 같았다.
물론 그 신장이 제법 커서 2미터 정도 됐고 그 체구도 우람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 존재는 세하의 존재감에 눌려서 별로 기를 못 펴고 있었다.
‘생각 외라서 쫄아 버린 모양인데?’
세하는 대번에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고 좀 더 위압감을 담아 말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으면 상관없고. 난 귀찮은 건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자... 잠깐!’
상대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세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애써 목소리는 담담하게 유지했다.
“그럼 먼저 말해. 어디서 왔고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나... 나는 파흐트 계에서 왔다.’
상대가 말하는 내용에 세하의 귀의 솔깃했다.
‘파흐트 계?’
-아무래도 차원의 이름인 것 같네요. 마그티스가 알 지 궁금해지네요.
일단 차원을 밝혔기에 대화가 손쉽게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세하가 좀 더 정보를 캐내려고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파치치칙!
갑자기 게이트 안쪽에서 다시 스파크가 일더니 세하의 눈에 제법 익은 존재가 나왔다.
“어?”
그 모습이 의외라서 세하는 놀랐다. 순백색에 푸른 눈을 가진 커다란 늑대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선 온통 새하얀 소년은 바로 슈타크카이트의 마그티스였다.
“네... 네 놈은!”
파흐트 계의 존재가 마그티스의 모습을 보고서 경악의 의미로 온 몸을 떨었다. 그러자 마그티스는 가시 썩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역시나 나타났군. 파흐트의 쓰레기들!”
세하가 알던 마그티스와는 어딘가 달랐다. 말 그대로 경멸과 분노가 담겨있는지라 세하는 급히 물었다.
“어이! 마그티스! 이게 어떻게 된.......”
하지만 세하는 말을 맺을 수 없었다. 어느새 마그티스의 옆에 선 늑대, ABW-404가 찢어져라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파흐트 계의 존재를 집어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