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0화 〉변수의 연속 2 (40/72)



〈 40화 〉변수의 연속 2

처음에는 놀랐다. 하지만 이어진 세하의 손속은 잔혹했다.


퍼억!

“깨깽!”

마치 커다란 굴삭기의 포크  방에 날아가는 잡충처럼 엑필트가 다시 박살나며 나뒹굴었다. 높이만 10m인 엘리미네이터 아머 상태인 터라 이런 결과는 당연할 정도였다. 거기에 루이제가 한 마디했다.


-마스터. 과잉진압입니다.
“뭐 어때? 차라리 당하는 거보다는 낫지.”

완전 떡이 돼서 꿈틀거리는 엑펠트를 내려다보며 세하가 투덜거렸다. 다시 오른손이 커다란 캐논의 포구로 변하면서 쓰러진 엑펠트를 완전히 소각시키려 들었다.

‘자... 잠깐!’

꼴사납게 배가 뚫렸던 드레이크가 다급하게 외쳤다. 순식간에 상처가 아무는 걸로 볼  상당한 재생력이라 할만 했지만 세하는 금세 엘리미네이터 아머의 왼손도 캐논으로 만들며 드레이크를 겨누었다.


“뭐가 잠깐이야? 등신 같이 소화도 못할 걸 삼켰다가 배가 터진 주제에 할 말 있어?”
‘.......’

세하가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통에 드레이크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사이 세하는 열심히 생각했다.


‘빨리 수를 써야겠군.’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단숨에 엑펠트를 제압하고 드레이크도 공격하는 것이었고 그건 헬멧의 디스플레이에 루이제가 문자로도 보조하고 있는 판이었다.

“잠시만 기다려다오!”

하지만 곧장 다른 변수가 나타났다. 모든 색이 백색으로 물든 소년, 마그티스가 갑자기 세하와 드레이크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그티스?’
-마스터. 잠시 상황을 보죠.


그 모습에 루이제가 조언했고 세하는 캐논의 포구들을 내리게 되었다.


‘마그티스님?’


드레이크도 마그티스를 알아보고 놀라고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고 세하는  더 기다릴 생각이 들었다.


“허허허... 이거 신기한 인연이로군.”


마그티스는 드레이크를 돌아보더니 소년의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회한이 느껴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가 여기에 올 줄은 몰랐다네.”

뒤이어 마그티스가 한 말에 드레이크는 그  머리를 조아렸다.

‘우리 차원을 좀 먹어가던 것을 추적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건 도무지.......’
“그건 잘한 일이지만 자네도 실수하다간 먹힐 걸세. 실제로도 아까 등신 같이 당할 번하지 않았나? 저기 민세하가 없었다면 자네가 침식당했을 걸세.”
‘.......’


세하에 이어 마그티스에게도 등신 같다는 말을 듣자 드레이크는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커다란 파충류의 얼굴임에도 인상이 구겨지고 말았다.

“뭐야? 마그티스.  세계의 존재냐?”


마그티스에게 수그러드는 드레이크를 보고 세하는 아예 엘리미네이터 아머의 상태도 풀어버렸다.  덕에 라인버스터 슈트로 돌아와서 다시 적당한 높이로 돌아오자 드레이크를 제법 올려다봐야 했다.

‘그렇다고 할  있지.’

마그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세하는 다시 오른손을 사이킥 캐논으로 만들며 아직 바닥에 꿈틀거리는 엑펠트를 겨눴다.


“아무튼 이 자식부터 처리하고 이야기하자고.”

그렇게 세하가 움직이려는데 마그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잠시만 기다려다오.”
“뭐?”

당장 처리해도 모자를 판에 마그티스가 이렇게 나서자 세하는 답답했다. 그래서 성을 내려는데 마그티스가 순식간에 엑펠트에게 다가가더니 손을 댔다.

“야... 너.......”

세하가 놀라서 뭔가 말하려했지만 뒤이은 현상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은은한 빛이 일어나더니 그대로 그 안에서 커다란 흰색의 늑대가 분리되어 나왔다.


헥헥......

늑대가 눈을 감은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모습은 세하가 ABW-404를 이곳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과 같았다.


“아주 불쌍한 존재더군. 이곳의 인간들에게 탄생해서 죽어라 실험만 당해왔었지.”


그런 ABW-404를 내려다보며 마그티스가 연민의 감정을 띤 채 말했다.


“단지 자유롭고 싶었을 뿐이네. 아프지 않았으면 했을 뿐이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돼서 엑펠트라는 것에게도 이용당하고 말았지.”
“.......”

그 사이 세하는 ABW-404에서 분리된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구체. 바로 엑펠트의 마커라고 할 수 있었다.
세하는 그것을 잡더니 그대로 양손으로 구겨 없애버렸다. 그러자 루이제의 차분한 음성이 그의 귓가에 와 닿았다.


-일단 엑펠트의 코어라고   있지만 마스터에게 호되게 당해서 완전 잠들어버린 상태입니다.
‘제너럴 마이트로 가져가서 레이린이나 알페렌에게 보여주면 뭔가 나오겠지.’

그렇게 엑펠트에 대한 것을 마무리 짓고 세하는 아예 헬멧을 열고 마그티스와 드레이크를 바라보았다.

“이제 설명을 해보실까? 저 놈은 누구지?”


세하가 턱짓으로 드레이크를 가리키며 묻자 마그티스는 멋쩍은 미소를 띠었다.


“저 자의 이름은 기겔슈. 하이 드레이크라 불리우는 고위의 존재이지. 물론 드래곤보다는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지.”
‘아니! 마그티스님! 인간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이 드레이크, 기겔슈가 마그티스의 설명에 펄쩍  기세로 외쳤지만 이내 세하가 노려보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자네는 저 인간에게 졌다네. 게다가 상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달려들었다가 해를 입을 수 있었네.”
‘죄...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마그티스가 기겔슈보다는 위의 존재라선지 기겔슈는 상당히 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튼 세하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엑펠트에게 당한 이세계의 존재라는 거지?”


단순하게 축약할 말이었다. 거기에 마그티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우리는 슈타크카이트라는 세계의 존재지. 그리고 슈타크카이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엑펠트의 침공을 받아서 흐트러지고 게이트를 발생시켜 지구에 연결되고 있었지.”
“.......”

이어지는 마그티스의 말을 듣자마자 세하는 머릿속이 아려왔다.


‘이거 뭔가 커지는 기분인데?’
-마스터. 원래 마스터는 앞에서 싸우기만 할 분이에요.


루이제가 그런 세하를 위로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모를 소리를 했다.


“음... 그러니까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결국 엑펠트와 연관이 있다 이건가?”


그래도 어렵사리 세하가 상황을 정리해서 묻자 기겔슈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 사실 이곳 지구 따위는 우리에게.......”

기겔슈는 뭔가 험한 말을 하려다가 마그티스가 천천히 시선을 향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무튼 우리와 연관될 일이 없는 세계였는데 연결되고 말았다. 그리고 연결된 곳으로 나가는 놈들은 죄다 오염된 것들이지. 네가 말한 그 엑펠트라는 존재들에게 말이다.”

거기까지 들은 세하는 뭔가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
세하는 르와르레이드 슈트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느덧 어두워진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터라 그 자신도 제법 상념에 빠질 듯 했지만 그의 머리는 루이제와 대화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다.


-결국 그 실험체는 마그티스가 데려갔네요.
“네가 보기에도 별 위험은 없었잖아?”

연구시설의 거의 유일하게 남은 실험체인 ABW-404는 결국 마그티스에게 거둬졌다. 세하가 밖으로 나왔을 때 생체조직의 바다처럼 보이던 외각지대는 이제 완연한 사막지대로 돌아가 있었다. 이제 실험의 잔재는 파괴되고 손상된 연구시설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네. 아무튼 실험체의 마음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연민을 느낀 거 같네요.

그렇게 말하는 루이제의 음성에는 제법 안쓰러워하는 감정이 느껴졌다.


“기겔슈라는 녀석이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세하는 마그티스의 곁에 기겔슈가 붙은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법 터프한 놈이었어. 엑펠트한테 당했는데 금세 회복하는 것도 그렇고 아마 제대로 치고받았으면 내가 이겼겠지만 제법 피는 봤을 거야.”


세하가 제법 객관적으로 내놓는 평에 루이제는 피식 웃었다.


-마스터답지 않게 제법 객관적이시네요.
“그래도 결국은 내 밑이라는 거지. 게다가 내가 잡았던 마그티스한테도 설설 기는 걸 보면 말 다한 거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눈앞에 커다란 수송기가 떠오르는 게 보였다. 밖으로 나오기 전에 이미 레이린과 통신을 해서 상황종료와 철수 논의를 끝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아. 이제 의논을 좀 해봐야지.”

세하는 이제 레이린과 제너럴 마이트 측과의 대화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궁리하게 되었다.



“흐음.......”


늦은 시각. 제너럴 마이트의 심층부. 5인의 알페렌은 세하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엑펠트의 코어를 꺼내들자 제법 심각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족의 코어를 오랜만에 보니 뭐라고 말해야   모르겠어.”

알페렌  소년의 음성이 제법 무겁게 말하고 있었다.


“어떻겠습니까?”

토마스가 묻자 소년의 음성이 다시 말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군. 민세하가 말 그대로 박살을 내놓아서 지금 빈사 상태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이것이 회복될 때까지 어떤 정보도 읽을 수 없어.”
“그래요?”

세하가 그 말에 귀가 쫑긋 서는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확실히 해놓아서 우리가 서서히 정보를  수 있겠어. 물론 세상의 일이라는 게 100프로 장담할  없겠지만 동족들이 10 개체 이상이 뭉치지 않고서는 이곳을 뚫을 수 없다는 건 말할  있어.”

그렇게 알페렌 중 소년이 말하자 세하는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마스터. 말이 씨가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캐치한 루이제가 한 마디해서 세하는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렇군요. 아무튼 알페렌 여러분.”

레이린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주의 깊게 보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

“여러분과 저, 아니 대한민국 헌터협회는 계속 엑펠트에 대한 조사와 연구 과정을 공유하길 바랍니다.”
“물론이라네. 하지만 그 외의 업무 교류는 드러나지 않게 해야 할 걸세. 아무래도 다른 헌터 길드나 국가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할 테니 말일세.”

알페렌  가장 노인이 말했다.

“물론 우리처럼 동족. 그것도 협조적인 동족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걸세. 하지만 지금은 조심해야  시점인 것 같네.  그래도 민세하 헌터가 말한 대로 지금의 게이트와 몬스터가 발생되는 차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세하도 그 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미리 약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생각할 문제지. 그리고 그 차원, 슈타크카이트에서 제법 고위의 존재를 둘이나 만났으니 상당한 소득이라고 할 수 있어.”

세하가 마그티스와 기겔슈에 대해서 말하자 알페렌은 뭔가 걱정하는 투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공조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정말 게이트와 몬스터가 슈타크카이트에서만 오는 거라고  수 있겠습니까?”

이번에는 중년의 음성이 물었다. 세하도 그 가능성을 생각 안 해본  아니라서 살짝 아미를 찌푸렸다.


“그것도 그렇겠지. 하지만 일단은 연결된 쪽하고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데?”
“........”


그때 레이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세하를 바라보았다.


“민세하 헌터님. 지금 이야기는 조금.......”

아무래도 생각한 것 이상으로 범위가 넓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세하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이미 안면을 터놨으니 이야기를 안 하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지? 안 그런가? 다들.”

거기에 토마스와 알페렌도 긍정의 뜻을 보였다. 그러자 레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협회장님에게 보고할 일이 걱정이에요. 뭔가 가감이 있거나 왜곡할 것은 아니지만 그  성격 상 걱정이 많으실 것 같네요.”
“큰 그림 그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그럼 불러볼까?”


세하가 엑펠트의 코어를 갑자기 위로  던졌다. 그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떠오르더니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들 지겹도록 봤던 공간의 일그러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속칭 게이트였다. 하지만 세하는 그 안에서 누가 올지 알기에 여유롭게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불러주는 군.”

먼저 마그티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순백색의 소년의 모습이었고 그 옆에는 황갈색의 머리를 가진 사나운 인상의 청년이 따라왔다.

‘저 놈은 기겔슈일테고. 어?’

세하는 순간 당황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몸길이가 3미터는 될 하얀 늑대 때문이었다. 그 하얀 늑대는 여유롭게 걸음을 옮겨 게이트에서 나오더니 맑고 푸른 두 눈으로 세하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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