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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거친 전진 (37/72)



〈 37화 〉거친 전진

-마스터. 라인버스터 슈트 때는 거의 불덩이 같네요.

지금 벌어지는 현상을 보고 루이제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게. 그런데 항상 상황이 그렇다고.”

눈앞에 펼쳐진 꼴들이   불사르고 싶은 심정인지라 세하는 부정하지 않았다.


퓨화화학!


세하의 마음이 그렇기에 사이킥 에너지로 발현되는 무기들은 죄다 불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한 없이 생체 조직들이 타올랐고 그 사이사이에 숨어 있던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세하는 자신에게 둘러 쳐진 리버스 필드를 믿고 됐다 싶으면 그대로 전진을 감행했다.


“나도 신경 쓰긴 하는데 주변에 별 건 없지?”


세하는 그렇게 전진하면서도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정보를 신경 쓰고 있었다.


-네. 그대로 전진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워낙 돌파해야 할 구간이 넓은지라 이런 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건 현명한 선택인 것 같습니다.

가히 리버스 필드의 특성을 잘 활용했다 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좀비나 뒤틀린 동물 같은 것들이 계속 튀어나왔지만 화염으로 구현된 사이킥 에너지나 리버스 필드를 도무지 뚫지 못했고 리버스 필드 덕분에 사이킥 에너지가 계속 충전되는 구도다 보니 세하는 넓은 파도 속을 무한의 동력으로 헤엄치는 격이 되고 있었다.

-목표 지점까지 1km 남았습니다.

루이제의 보고에 세하는 더욱 힘을 냈다. 생각보다 늘어선 적들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지금까지는 전진 속도에 문제가 없었다.

“꼭 이 시점에 나오는 게 있지.”

쿵!


세하의 돌파가 워낙 심상치 않은지라 방해자가 나타났다. 신장이 5m는 될 인간형 전투 병기였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기본 틀은 2족 보행형 전투 유닛이지만 그 내부는 지독하군요.

루이제가 눈앞의 상대에 대한 데이터를 내보냈다. 겉면의 장갑을 투시해서 보여주는 모습에 세하도 역겨움을 느낄 지경이었다.


“말 그대로 기계와 생체의 혼합이로군.”
-제법 내구도가 있을 것 같으니 주의하세요.
“알고 있어!”

세하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강철의 거인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양 손 끝이 이글거리는 화염의 검날을 만들어냈고 그대로 강철의 거인의 머리통을 베어버렸다.

“웩!”


그 순간 세하는 속이  좋았다. 겉면의 헬멧 같은 장갑 부위가 쪼개지면서 그 안에서는 온갖 생체로 된 촉수 같은 것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슈트에 잔뜩 펼쳐진 리버스 필드가 반전해서 폭염을 발생시키며 그 촉수들을 태워버렸다. 하지만 그 덕에 거인의 장갑이 모조리 불타올라 떨어졌고 그 내부의 끔찍한 꼴이 드러나고 말았다.

“이러니 내가 속이 끓지.”


군데군데 속에 기계로 된 프레임이 보이긴 했지만 온갖 생체 조직으로 된 거인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세하는 그대로 불벼락을 퍼부어서 그 생체 거인을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거인과 비슷해 보이는 존재들이 20여 개체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단 돌파하고 봐야 겠는데?”
-네. 우선 시설의 내부로 침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알려드리죠. 우선 뛰세요.

루이제의 충고대로 세하는 냅다 뛰고 있었다. 눈앞을 막고 있는 거인들 중에서는 막 팔을 늘여서 가로 막거나 머리 부분의 장갑이 열리면서 촉수들을 마구 뻗으면서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지만 화염이 구현된 사이킥 블레이드나 캐논에 인해 불타오르면서 속속히 진로를 개방하고 있었다.


-마스터.

그러다 보니 1km를 주파하는 건 금방이었다. 루이제의 알림에 세하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자 주변에 마구 재생되어 가는 생체 조직들과 몬스터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바로 밑입니다.
“알았어!”


세하는 일단 리버스 필드를 한도까지 개방하며 주변에 밀려든 몬스터들과 생체 조직들을 전부 태워버렸고 양손에 사이킥 블레이드를 일으켜서 혼신을 다해 지면을 내리쳤다.


콰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마치 무저갱을 떠올릴 법한 검은 구멍이 생겨났다. 세하는 일순 망설였지만 주변에서 빠르게 재생되는 적들을 보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
“후우.......”


세하는 휴게 지점으로 보이는 곳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자판기라던가 테이블이나 소파 등등의 시설이 본래 쓰이던 용도를 알게 해주는 것 같은지라 세하는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여기까진 오염이  된 거 같은데?”

세하가 뚫고 들어온 통로부터가 그랬다. 간간히 생체 조직이나 몬스터를 안 본 건 아니지만 지상처럼 사방을 뒤덮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만 볼 때 엑펠트에 대한 의심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새 루이제가 은발의 여성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엑펠트는 강력한 사이킥 에너지에 영향을 받으니까요. 마스터 같은 복수자라면 일단 조심부터 하고 볼 겁니다.”
“그래? 그런데 보통은 사이킥 에너지를 느끼면 더 들러붙지 않나?”


세하는 의문을 표하며 근처의 소파에 몸을 가득 기댔다. 먼지가 풀썩 일어났지만 라인버스터 슈트 상태로 헬멧만 해제한 상태라서 세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스터의 경우가 일반적이진 않죠.”

루이제는 자신에게 직접 닿는 것이 아니면서도 날리는 먼지에 질색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 이런 막 가는 곳에 들어왔지. 이번에는 좀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 어떤 거요?”

루이제가 묻자 세하는 손가락을 튕기며 답했다.

“엑펠트에 대한 정보가 우선이고 내 사이킥 에너지가 강해지는 것이  번제지. 지금도 강한 편이긴 하지만 엘렉티오를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 들어.”
“그건 그렇네요.”


루이제도 엘렉티오를 생각한 모양이었다.


“전고 40m의 강철의 거인. 하지만 사이킥 에너지로 인해 엑펠트들에게서는 사신 그 자체. 지금 저와 마스터의 상태에 엘렉티오까지 쓸  있게 된다면 그들에게는 재앙 이상의 존재일 것 같네요.”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니 기대되는 군 그래.”
“하지만 아직은 엘렉티오를 쓸 정도의 적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마스터. 그걸 아셔야 해요.”


어느덧 루이제의 표정에 그늘이 감돌았다.


“강한 힘은 그만치 책임과 그에 따른 여파가 따른  아셔야 해요.”
“네가 여태  봤던 거지?”

세하는 루이제가 자신이 각성하기 전까지 제법 오랜 시간을 보낸 걸 인정했다.

“그렇죠. 사실 마스터가 몬스터에게 위협받아서 각성하지 않았다면 저는 꽤나  시간 동안 방관자로 살았겠죠. 마스터가 아무 것도 모른 채 평온하게 살기를 원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번에 대화에서 알았죠. 마스터는 결국 각성할 운명이라는 걸 말이죠.”

루이제는 여기까지 말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하고 나서는 힘이 없고 방법이 없으니 그냥 안전한데서 살자 이거였지. 만약 너로 인한 각성이 아니고 다른 식으로 힘을 얻었다면 다른 식으로 싸움질하고 다녔겠지. 다만 엑펠트에 대해서는 모르고 살았을 거고 말이야.”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많이 쉬었으니 다시 갈까?”

루이제의 모습이 다시 사라졌다. 세하도 헬멧을 장착하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여기는 레이린 리. 민세하 헌터님. 들리시나요?”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영상까지 비출 지경은 아닌지라 세하는 살짝 아쉬움을 느꼈지만 이내 활달하게 답했다.


“카피. 잘 들려.”
“무사히 들어가셨군요. 저희는 균열 지대 방벽 부근에서 간신히 주둔지를 구성했어요.”


레이린은 세하의 무사함에 반가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왠지 아쉬움을 드러냈다.

“얼굴 보고 이야기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통신 채널 상 그게 안 되네요. 하지만 민세하 헌터님의 위치 파악은 되고 있으니 안내가 가능할 것 같아요. 마침 DA-32. 휴게 구역에 계시네요?”

그리고 세하의 헬멧 디스플레이에 지도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좋네. 이렇게 지도 데이터가  정도라니.”
“비교적 연구시설에서 외각인 지라 오염도가 심하진 않네요. 상당히 적절한 지점으로 들어오신 것 같아요. 그래선지 엑펠트 오염 반응도 약해서 아직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에요.”

레이린의 말 대로였다. 그래서 세하는 좀  과감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제 더 전진해 볼까 해.”
“알았어요.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알아볼 건 알아보고 있으니까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세요.”


그렇게 통신이 끊어졌다. 세하는 거기에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움직였다.




*
계속 되는 실험은 ABW-404에게 권태감만 주고 있었다.


‘이거 괜찮을까? 발휘되는 근력은 장난 아닌데 말이야.’


자신을 유리 너머에서 지켜보는 이들은 항상 우려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이곳저곳을 기계로 조종되는 무언가로 찔러보거나 자극을 주기에 바빴다.

ABW-404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초고열로 화상을 입어도 강도 높은 산성으로 몸을 녹여도 ABW-404는 원형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원래 뭐였더라?’

온갖 기억들이 뒤엉키다보니 ABW-404는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실험을 한다는 연구원들이 자신을 두려워 한다는 건 잘 알았다. 궁극생물이니 초전투수단이니 하는 말들도 들렸지만 자신은 상관없었다.

‘날 괴롭히지 마라. 언제까지 그럴 참이냐?’

자극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한계를 측정하는 일이 계속됐다. 그리고 서서히 실전 투입이 가까워진다는 말도 들렸다. 거기에 ABW-404는 길게 나온 자신의 혀로 주변을 핥았다.
뜨거운 피맛이 느껴졌다. 뭔가 쇠 맛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신경 쓴 지가 오래 되서 이제는 상관없을 것 같았다.

‘으아아악!’


갑자기 최근 분위기가 이상했다.
항상 어수선하고 요란하다 싶더니 이제는 온갖 비명과 폭음 등등 뭔가가 죽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ABW-404는 생각했다. 언제부터 뭔가 죽는다는 느낌을 알았는지 스스로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 말하기 시작했다.


‘쓰임을 모르고 가련히 있는 자여.’

딱 듣기에도 뭔가 가르치려 들고 한참 위에서 내려다보는 음성이라서 ABW-404는 화부터 났다. 안 그래도 연구진이라는 놈들이 항상 육체적으로 학대, 아니 아예 죽일 기세로 실험이랍시고 괴롭혔는데 이제는 머릿속에서 웬 놈이 잘난 척을 해대며 어지럽히니 참을 수가 없었다.

‘어.......?’

하지만 자신의 몸이 갈기갈기 찢기고 나서야 ABW-404는 자신의 처지를 알  있었다. 너무도 아팠다. 온몸으로 아니 영혼을 통해서 아픔이라는 것이 전해질 수 있냐를 깨달았다. 계속 아프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는 네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행할  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버려라. 때가  것이다. 일단은 잠들어 있어라.’


그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잠이 왔다. 기억이라는 게 생긴 후 얼마만의 휴식이라는 건지 몰랐다.  깊은 심연 속에 몸과 정신을 맡긴 ABW-404는 정말로 잠들어 버렸다.



*
레이린이 데이터를 보내준 덕분에 세하는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지점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마스터.

그때 루이제가 불렀다. 어느 때보다 경계심이 가득한 느낌이라서 세하도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신경 쓰이는 반응이 있어요. 물론 이를 지나치고자 한다면 지나칠 수는 있어요. 지금은 마치 잠든 것처럼 존재하고 있어요.

루이제의 말대로라면 그냥 지나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세하는 무슨 생각에선지 흥미를 드러내며 물었다.

“대체 뭔데 그러지?”
-모르겠어요. 몬스터 치고 상당히 강하다는 건 알겠는데 융합체로서의 느낌도 있어요. 그런데 엑펠트로서의 느낌도 있다는 게 문제죠.
“.......”


세하는 루이제가  정도로 반응하는 일이 드물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근처에 있다면 그냥 지나갈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 정도 되는 녀석이 내가 지나친다고 한들 가만히 있을까?”
-마스터. 하지만.......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서서히 알  같아. 지금 머릿속을 따끔하게 자극하는 느낌이 있어. 아마 내 사이킥 에너지를 느낄  있다면 깨어나겠지. 그러니 단단하게 마음먹고 가자고.”


세하는 그렇게 긴장의 끈을 가득 조인 채 전진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머리를 자극하는 따가움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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