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의외의 성과
처음에 볼 때는 아다만테르처럼 지룡(地龍)이 연상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융합체 특유의 뒤틀림이 곧 보였다. 주변의 방벽과 쓰러진 병사들과 헌터들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
융합체가 울부짖었다. 세하는 거기에 혐오감을 가득 느끼며 일단 블릿츠 캐논부터 날렸다.
파치치칙!
크아아아!
블릿츠 캐논의 전격에 당한 융합체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부셔가던 방벽에서 물러났다. 세하는 일단 블릿츠 캐논을 계속 탄환 식으로 연사하며 융합체를 밀어냈다.
“일라이저! 저 자식이 발붙인 곳에 한 방 날려!”
세하가 그러면서 일라이저에게 통신을 날렸다. 그러자 일라이저는 바로 알아듣고 두 손을 치켜들었고 바직거리는 뇌전의 기운이 점점 모여들기 시작했다.
-일단 마스터 덕분에 방벽에서는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세하의 디스플레이에 비친 광경은 그리 낙관적이진 않았다. 융합체의 뒤에서 계속 대형 몬스터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그 개체들도 융합체로 보이는 촉수나 확장되는 신체를 보이고 있었다.
키에에에!
게다가 앞서 보았던 와이번 같은 대형 비행형 몬스터도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그 덕에 방벽에서 체여 나가거나 물려나가는 병사들과 헌터들이 늘어났고 각성자들이나 각종 대공병기들이 불을 뿜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화력의 공백이 생기고 있었다.
콰앙!
하지만 갑자기 허공에서 어둠의 파동이 번져나가며 와이번을 비롯한 비행형 몬스터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민세하. 괜찮아?”
라설연의 통신이 들려왔다. 게다가 육상에서는 어둠으로 만들어진 온갖 야수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방벽이 뚫린 지점을 중심으로 몰려가며 육상 몬스터들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광기의 사신! 유주리 등장! 세하 오빠. 안 늦었죠?”
유주리의 활달한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녀가 어둠의 야수들을 휘몰아 막으면서도 근접해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은 어둠의 낫을 휘둘러 베어버리는 것이 가히 용맹하다 못해 여유가 넘쳐보였다.
유주리가 그렇게 뚫린 방벽 지점을 정리하자 소실된 지점에서 갑자기 강철로 된 벽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유주리가 잠시 놀랐는데 그의 뒤에는 검은색의 파워드 슈트 차림인 하워드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일단 메워두는 것이 좋을 거다.”
아직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아서 그의 느긋한 표정이 그대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유주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격은 저보다 떨어지지만 쓸 만하시네요.”
“아무래도 할 일이 이거다 보니 말이지.”
“알았어요. 최대한 버텨 봐요.”
유주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도 몸을 띄워 방벽 위로 올라갔다.
“저번에 말할 때 탱커라더니.”
세하는 그런 유주리와 하워드의 모습을 지켜봤는지라 잠깐 정신이 팔렸다.
“지금이다!”
그때 일라이저의 고함이 세하의 정신을 깨웠다.
그리고 마치 뇌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체가 먼저 제압하고 있던 융합체에게 날아갔다.
순식간에 폭발이 일어나며 그의 일대의 지면이 아예 뇌전으로 이뤄진 땅이 되고 말았다. 융합체는 물론이고 그 뒤에 달려오는 몬스터들도 모조리 휘말려서 전신이 불탈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일단 이 정도라면.”
세하는 도리어 고도를 높였다. 비행형 몬스터들이 여전히 나타나곤 있었지만 라설연이 능력을 발휘해서 계속 요격하고 있었고 유주리도 어둠의 야수들을 아예 날개를 지닌 존재로 변화시키며 덩달아 대공망을 형성해서 세하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었다.
“아예 박살을 내주마.”
세하의 어깨위에 있던 블릿츠 캐논의 런쳐들이 하나로 뭉쳐져 긴 포신을 만들어냈다.
그 포신 끝에서 바직거리는 뇌전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루이제가 다른 조언을 하지 않는 걸로 볼 때 지금의 행동은 상당한 이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지금입니다.
그렇게 사이킥 에너지를 집중하다가 어느 순간 루이제가 말했다. 거기에 세하는 망설임 없이 발사했다.
콰아앙!
강렬한 뇌전의 기둥이 고공에서부터 융합체에게 내리 꽂혔다. 이미 한 번 확산된 뇌전은 거기에 더욱 확산을 일으켜 세하의 눈앞이 아예 새하얗게 물들 정도로 발광하게 되었다.
크아아아!
융합체의 비명이 사방의 공기를 찢을 기세였다. 하지만 세하는 정신을 틀어잡고 뒤흔들리는 공기 속에서 중심을 잡았다.
-마스터. 어쩌실 참이죠?
가히 혼신을 다한 공격을 날리고도 세하는 눈앞의 상황을 확인하고자 버티는 거 같았다. 루이제는 그런 세하에게 재차 물었다.
-저 정도면 충분히 무력화 될 공격입니다. 더 이상........
“아니야.”
세하는 부정했다. 그렇게 한동안 공간 자체를 뒤흔들던 발광과 충격파가 걷히고 드러난 광경에 루이제는 헛숨을 들이 삼켰다.
-이럴수가.......
그런 인간적인 반응에 세하는 오히려 빙그레 웃을 수 있었다.
“왠지 뒤 쪽에 진짜배기가 있을 것 같았어.”
분명 세하와 일라이저의 공격은 통했다. 그 결과로 융합체와 몬스터들이 아예 조각 단위로 분해되어 새카맣게 타버린 지면 위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이 꿈틀거리면서 한데 뭉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세하는 도리어 송곳니가 드러날 정도로 웃었다.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는 녀석들은 잘 들어둬.”
세하가 최대한 통신 주파수를 맞추며 말했다.
“최대한 방벽에서 멀어져라. 지금 오는 녀석은 잘 못 걸리면 죽으니 만 못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반복한다.”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면에 내려섰다. 어느새 마크3 라인버스터 슈트로 변환하며 둔중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콰직!
그러면서 밟히는 융합체의 조각들을 아예 물리적으로 부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세하의 주변에 일정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리버스 필드는 잘 작동되고 있고.’
아무래도 융합체에게 상극인 사이킥 에너지가 발휘되는 터라 게이지가 올라가고 있었다. 점점 세하의 근처에는 눈에 띨 정도로 필드의 여파가 드러나고 있었다.
쿵!
갑자기 굉음이 들려왔다. 그럼에도 세하는 천천히 눈을 들어 정면을 노려보았다.
어둠의 저편에서 이미 그 음영만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지면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점점 그 존재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무슨 일기토도 아니고.’
세하는 그 존재를 보고서 생각했다. 딱 한 개체만이 모습을 드러냈다. 높이는 방벽과 비슷한 5미터 정도여서 그것들보다 커다란 몬스터들을 상대해온 세하로서는 잠깐 여유를 가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 형태를 보고서 세하는 긴장의 끈을 조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악마냐?’
세하는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악마의 형상을 생각했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말하는 악마라면 저렇지 않을까 싶군요.
루이제의 감상도 비슷했다. 두 개의 뿔이 존재했고 커다란 피막의 날개를 한 쌍 가졌다. 게다가 튼튼한 다리로 직립 보행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마치 그 끝이 칼날과도 같은 꼬리마저 지녔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일단 목부터가 길었고 그 면상은 사나운 투견과 파충류인 악어가 뒤섞인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 표면이었다. 금속, 생체 그 외에 흔히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물질들이 뒤엉켜서 지금의 융합체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 엑펠트 놈들이 굴려먹는 괴물이네.”
세하는 그 융합체를 보고서 어딘가 기억을 들추는 것처럼 말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무슨 추억이라도 떠올리는 것 같아요.
“저딴 게 추억이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말지!”
세하는 일단 마음이 정해지자 다시 움직였다. 눈앞에서 악마인지 드래곤인지 모를 융합체를 무시하고 지면에서 꿈틀거리는 융합체의 조각들을 다시 짓밟기 시작한 것이었다.
쿵쿵쿵!
그것도 전력을 다해서 뛰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예 화염처럼 이글거리는 기운이 감돌면서 융합체의 조각들을 태웠고 세하의 주변에는 아예 업화의 장막마냥 리버스 필드가 현상화되고 있었다.
-굉장하시네요.
루이제는 솔직히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대답 없이 계속 뛰고 있었다.
융합체의 조각들은 일부는 계속 돌진하는 세하에게 소멸되고 있었고 일부는 막 나타난 융합체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양 쪽의 기세가 엇비슷해졌다. 세하는 지금 아예 화염의 현신이라도 된 것 마냥 이글거리는 기운을 몸에 휘감고 있었다.
‘넌 누구냐?’
그때 융합체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세하도 멈춰 섰다.
“너 같은 것들을 잡아 죽이는 존재지.”
세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융합체는 다시 말했다. 물론 드래곤 같은 머리는 입을 다문 채였다. 공기 자체를 진동시키며 그 뜻을 전하고 있었다.
‘그런 존재가 이 세계에 있을 수 있나?’
“지금 네 놈 앞에 있지!”
그리고 세하는 그대로 오른 주먹을 올려치는 기세로 융합체의 턱을 강타해버렸다.
순식간에 타격면에서 화염이 옮겨 붙었다. 그 때문에 융합체가 괴로워했고 세하는 다시 내려오는 기세를 이용해서 양 손을 도끼로 내려찍듯이 융합체의 머리를 강타했다.
크아아아!
융합체가 그대로 쓰러졌다. 이미 그 머리에는 사이킥 에너지로 발현된 화염이 그 육신을 좀 먹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퍼억! 퍼억!
그런 융합체를 세하는 계속해서 파운딩을 퍼붓듯이 후려갈겼다. 놀랍게도 타격이 계속 될수록 세하의 몸 주변에 어린 화염이 줄어드는 게 아니고 기름을 붓듯이 더욱 화려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은 차갑게 유지되며 지금의 공격들을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키아아아!
그렇게 얻어맞고 있던 융합체가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꼬리를 움직였다. 마치 거대한 렌스처럼 날카로운 꼬리의 끝이 그대로 세하의 등 뒤를 노렸다.
“방출.”
퓨화화확!
순간 세하가 내뱉듯 한 말에 폭염의 파도가 펼쳐졌다.
세하를 공격하려던 꼬리는 그 끝에서부터 삽시간에 잿더미가 돼서 떨어졌고 융합체의 몸 전체로 화염이 번져나갔다.
하지만 세하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타격을 멈추고 어느 새 양 손이 커다란 캐논의 포구로 변하면서 말했다.
“넌 누구냐?”
‘크으윽... 어떻게 이런 일이.......’
융합체는 한 없이 괴로워할 뿐이었다. 하지만 세하는 다시 물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산 것도 아닌 것들이... 감히.......’
하지만 융합체는 계속 현실을 부정할 뿐이었다. 그러자 세하의 양 쪽 포구에서 화염의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퓨화화확!
‘크아아아!’
융합체의 비명이 한층 커졌다. 아예 화염의 신이 강림한 것 마냥 세하가 화염을 줄기줄기 내뿜는 지경인지라 그 일대가 정말 지옥이 강림한 것 마냥 불타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둔지의 방벽을 기점으로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 세하는 다시 물었다.
“대답해라. 넌 누구냐?”
더 이상 융합체의 답은 없었다. 이미 작열하는 화염 속에서 간신히 형상만 유지하던 그것은 이제 천천히 그 형태가 무너지고 있었다.
-융합체가 완전히 소멸됐습니다.
루이제의 음성에서는 어딘가 안타까워하는 감정이 깃들었다.
“그렇군.”
세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창 대지를 불태우던 화염이 천천히 사라졌다.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현상이 세하의 사이킥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괜찮습니다. 기회는 또 있을 겁니다.
세하의 마음을 짐작한 루이제가 말했다.
“그렇겠지?”
세하는 갑자기 앞으로 손을 뻗었다.
두터운 장갑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손이 허공을 짚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손끝에서 마치 바람이 일어나는 것처럼 어떤 기류가 일어났다.
“음?”
세하는 들끓던 속이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융합체와 엑펠트에 대한 분노가 사이킥 에너지로 발현됐었지만 지금의 것은 정신이 맑아지며 머릿속에 많은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탓이었다.
“성과를 거두신 거 같군요.”
그때 차분한 음성이 세하의 등 뒤에 들려왔다.
세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시야에는 토마스가 어느새 맨몸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뭔가 무기를 들거나 방어구를 장착한 것도 없었다. 마치 연구원처럼 정장위에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을 뿐이었다.
토마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세하의 옆에 섰다. 그도 손을 뻗어서 어느새 허공에 천천히 돌고 있는 기류를 잡았다.
“목소리가 들리는 군요. 민세하 헌터님 덕분에 단서를 잡을 수 있겠습니다.”
세하는 그렇게 말하는 토마스의 손끝을 보았다. 거기에는 기류가 서서히 뭉쳐서 흐릿하게나마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형상은 뭔가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