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초전의 밤 (29/72)



〈 29화 〉초전의 밤

‘제너럴 마이트가 만약 엑펠트를 언급한다면 믿으세요.’

세하는 순간 레이린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그랬었지.’


그래서 세하는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물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아셨습니까?”
“저도 나름 본사에서 위치가 있으니 말이죠. 그리고 민세하 헌터님의 이름을 언급 했습니다.”
“흐음.”


일단 레이린의 조언이 있어서 세하는 진정할  있었지만 토마스는 어딘가 의뭉스러운 구석이 보였다.


“사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이 오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아시겠죠?”


세하가 일단 던진 말에 토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해합니다.”
“게다가 저를  찍어서 협조 요청했으니 더욱 의심이 갑니다. 약조 하나만 해주시죠.”

세하가 약조를 언급하자 오히려 토마스는 처음보다 부드러워진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이번 일을 해결하고 나면 제너럴 마이트 본사의 상층부를 만나게 해주시죠. 특히 엑펠트와 저를 언급한 사람을 말이죠.”

세하의 요구에 토마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민되긴 하겠죠.
‘그래. 하지만 의외로 전권이 있을  같은데?’


세하는 루이제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지금껏 본 토마스의 모습을 믿었다.

“좋습니다.”


생각 외로 길지 않게 토마스가 답했다.

“사실 요청을 받아들이실 지도 반신반의했습니다. 망나니 동생 놈이 민세하 헌터님을 대단하다 노래를 불러 대서 말이죠.”
‘세상에. 일라이저,  놈이 설쳤구나.’


세하는 왠지 토마스의 심정을 이해했다.


“하하하.  경망스럽긴 하더군요.”
“혹시라도 민세하 헌터님께 동생놈이 피해를 끼치면 즉각 알려주십시오.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생각 외로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
그  세하에게 개인 막사가 주어져서 생각 외로 편한 밤을 맞이했다.


“그래도 뭔가 멍해지네.”


세하의 눈앞에는 루이제가 상태 영상을 재생하고 있었다. 누군가 들어온다면 루이제가 순식간에 꺼버릴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주변이 조용해서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고 있었다.

-많이 배려해주는 군요. 좋은 게 좋은 겁니다.


루이제가 지금 상황을 긍정했다. 하지만 세하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레이린이 언급하기 무섭게 엑펠트를 언급한 사람이 나왔으니 이상하긴 해.”
-레이린 리의 말대로 미국. 그리고 북미를 아우르는 제너럴 마이트라면 이상할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화가 통할 구석이 있으니 긍정적이라 봐야겠죠.
“그래. 하지만 나는 되도록 엑펠트 오염 현상이 없길 바라니 기분이 안 좋은 걸 수도 있어.”


세하는 그렇게 말하더니 계속 슈트의 상태를 살피다가 손짓을  화면을 넘겼다. 그러자 규격을 달리는 존재가 영상으로 보였다.

“엘리미네이터 아머.”

높이만 10미터에 이르는 대형 아머. 그것의 스펙을 보고 있는 세하는 제법 그리운 것을 떠올리는 얼굴이 되었다.

-아직 마스터의 수준이 일천해서 발동에 시간이 걸리고 제한시간이 30분밖에 없습니다.


그런 세하를 놀리듯 루이제가 말했다. 그럼에도 세하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사기 수준의 능력이잖아?”
-나중에 엘렉티오를 구현할 수 있을 때가 궁금해집니다. 그때 마스터의 호들갑은 굉장할 거 같군요.

본래대로라면 이렇게 하루가 마무리  터였다. 하지만 갑자기 바깥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커졌다.


“습격이다!”
“대열 정비해! 어서!”

사이킥커인 세하로서는 신경을 쓰면 조그만 소리만으로도 그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
-한국의 전해지는 말 중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지요.
“재수 없지만 옛말이 틀린 게 없는 법이니 부정 못 하겠군.”


세하는 추운 날씨에 대비해서 일단 옷차림을 든든히 하고 막사 밖을 나섰다.

콰콰쾅!


“........”


나오자마자 장대하게 들리는 폭음에 세하는 할 말을 잊었다. 수많은  병력이 급히 움직이고 있었고 헌터들도 간간히 보였다.
 밤 중이라서 기초 조명 외에 컴컴해야할 밤하늘은 순식간에 밝혀지는 추가 조명들로 인해 환해지고 있었다. 그 소란 통에 세하는 벌레라도 씹은 양 처참한 표정이 됐다.

“와. 진짜 재수 없네.”
-저보고 한  아니죠?
“그래. 아무튼 심상치 않네.”

세하는 일단 토마스를 만났던 막사를 기억하고 움직였다. 주둔지 내가 혼란해서 좀 힘들었지만 그래도 찾아가자 어느새 일라이저를 비롯한 헌터들도 세하처럼 막사에 들어와 있었다.

“다들 와주셨군요.”


토마스는 헌터  지휘관도 겸임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그의 옆에는 대령 계급장을 단 미군 지휘관이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30분 전 퍼스트 캠프에서 통신이 끊겼습니다.”


그 와중에 한 오퍼레이터가 보고하자 미군 지휘관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문제 되는 괴물들이  설치는 모양입니다.”


토마스보다는 스무 살 가까이 연상으로 보이는 지휘관이었지만 토마스에게 깎듯이 존대를 쓰고 있었다.
그 광경에 세하는 제너럴 마이트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토마스에게 시선을 집중했는데 토마스 또한 세하와 눈이 마주쳤다.

“이곳 베이스의 방어선은 탄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토마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커다란 스크린에 이곳 주둔지의 현황이 실시간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진 각각 나뉜 화면에서 지금 교전중인 구역들을 비추고 있었다. 이미 중장거리에서 상당한 화력이 퍼부어지며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토마스는 뭔가 불만스런 감정을 보이며 말했다.

“일라이저.”
“네... 넷?!”

아무래도 미군 지휘관도 있고 공적인 자리인지라 일라이저는 존대를 썼다. 토마스는 그런 일라이저를 보더니 차가운 신색을 유지한 채 말했다.


“당장 방어선 전열로 나가서 지원해라.  정도는  수 있겠지?”

세하에게 예의 발랐던 것과는 천양지차인지라 세하는 그 온도차에 목덜미가 스산해질 지경이었다.

“알겠습니다.”


일라이저는 두 말 않고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세하가 손을 들었다.

“하퍼 수석조사관님.”

세하는 그 직책까지 깍듯이 불렀다. 그러자 토마스의 두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제가 일라이저 헌터와 함께 동향을 살필  나서볼까 하는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


토마스는 그런 세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실 먼 비행에 힘드시겠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찰나 토마스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리고 미군 지휘관을 바라보았고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 브로. 가자.”

세하가 왠지 주눅이 든 일라이저를 보고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 그래.”

아무튼 두 헌터가 제법 시끄러운 주둔지 내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후우. 확실히 형은 어렵다니까.”

일라이저가 그제야 푸념을 터뜨렸다.

“얼마나 사고 쳤으면 그러냐?”

세하는 당연할 정도로 물었다.

“많이? 처음에 각성자가 되자마자 마음에 안 드는 Fxxxxx  놈들 머리통을 부수러 다녔거든. 그 와중에 형이 수습하느라 골치 썩었었지.”


항상 밝게 웃던 것과 다르게 어딘가 회한 어린 표정을 지어서 세하는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있었다.


‘완전 개망나니였나 보군.’
-마스터. 마스터 전생에는 안 그랬을 거 같나요?


갑자기 루이제의 음성이 세하의 뇌리에 파고들어왔다.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그런 법이야.’
-네에 네에.


루이제의 성의 없는 대답을 들으며 세하와 일라이저는 어느덧 주둔지의 방벽 앞에 도착했다.
5미터를 훌쩍 넘는 콘크리트 방벽 위에 미군과 헌터들이 각종 화기를 아래로 쏟아 붓고 있었다.
세하와 일라이저는 그 정도는 훌쩍 오를 수 있었다. 세하는 어느새 마크2 슈트로 무장하고 비행했고 일라이저는 전신에 전격을 일으키더니 방벽 위에 올라섰다.

“아스트라테다!”
“블랙메탈도 왔어? 이거야 원!”

헌터들 중 일라이저와 세하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세하는 잠시 입맛을 다시더니 좀 더 상승해서 방벽을 습격하는 몬스터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구도까지 올라갔다.

-대체적으로 C급 정도의 몬스터들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수가 상당하군요.


루이제의 보고대로 마치 사족으로 보행하는 곤충들이 커지고 일그러진 형상의 몬스터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세하는 우선 블릿츠 캐논을 사출해서 전격의 폭풍을 날렸다. 마침 일라이저도 전격의 능력을 사용해서 그 아래는 세차게 작열하는 뇌전의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와아아아!


두 S급 헌터의 강렬한 공격에 헌터와 미군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한 번의 공격으로 몬스터들의 수가 눈에 띨 정도로 줄어서 사기가 충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로 끝날 리가 없지.’


하지만 세하는 불길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은 확연히 줄었지만 계속 산맥의 초입부에서 상당수의 몬스터들이 몰려드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밤새도록 싸워도 에너지가 고갈될 일은 없습니다.


세하의 걱정을 읽은 루이제가 말했다. 하지만 세하는 여전히 비관적으로 말했다.

“지금 예감이 더럽도록 안 좋아.”
-토마스 하퍼의 말을 너무 신경 쓰시는 거 아닙니까?

루이제의 이어진 일침에 세하는 바로 인정했다.


“맞아. 뭔가 오늘밤 큰일이 날 것 같아.”


세하는 그렇게 루이제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몸은  새 없이 블릿츠 캐논으로 전격을 내뿜고 양 손에는 사이킥 라이플로 연사를 가하며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키에에에!


이번에는 허공에서 날카로운 괴성이 들렸다. 세하가 고개를 들어보니 마치 익룡이 연상되는 비행형 몬스터들이 보이고 있었다.

파파파팟!


이번에는 루이제의 보조로 세하의  뒤에서 원형의 드론 같은 형체들이 튀어나왔고 일제히 사이킥 체인건을 발동하며 비행형 몬스터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일라이저도 허공으로 벼락을 퍼부으며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과 군인들은 비행형 몬스터들에게 위를 침범 당해 희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파치치칙!


그러자 헌터들  각성자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세하처럼 비행해서 화염이나 전격을 날리는 존재도 보였고 아예 지면에 소환수 같은 것들을 불러내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일단 전세는 나쁘지 않네.’

비행형 몬스터들의 출현 때문에 흔들린 감은 없었지만 각성자들이 투입되면서 다시 방어 측이 우세해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세하는 좀  여유를 가지고 현황을 보기로 했다. 막 눈앞에서 커다란 몬스터가 나타났지만 천천히 대처했다.

키에에에!


소위 와이번이라 불리는 몬스터였다. 커다란 파충류가 날개와 손이 합쳐진 꼴이 돼서 날아다니며 B급 이하 헌터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세하는 양손에 사이킥 블레이드를 일으키며 전방으로 쇄도하는 와이번의 양 날개를 베어버렸다.
그렇게 떨어져 내리는 와이번에게 다시 한 번  손을 사이킥 라이플로 변환해서 사격했고 그 충격을 받은 와이번은 큰 폭발을 일으키며 지상으로 떨어져 그 밑에 있는 몬스터들마저 휘말리게 만들었다.

“음?”

하지만 세하는 뇌리를 자극하는 느낌을 받고서 방금 와이번이 떨어진 지점을 보았다.

“루이제.”
-네. 마스터. 심상치 않군요.


삽시간에 전신이 타올라 사라진 와이번이었지만 조금이나마 남은 시신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물론 계속 몰려드는 몬스터들에게 가려서 사라졌지만 세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저거 융합체의 징조 같은데.”
-지켜봐야겠네요.

불길함의 징조가 현실로 드러나자 세하의 기분은 한층 어두워졌다.


“헤이. 브로. 괜찮아?”

그때 일라이저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거기에 세하는 차갑게 답했다.

“그럭저럭.”
“그럼 다행이네. 괜히 무리하게 첫날부터 나서나 했지. 어?”


갑자기 일라이저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Fxxx! 이게 뭐야?”


쿠르르릉!

지진이라도 난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하는 마크2 슈트의 비행능력으로 떠올라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뒤이어 루이제가 반응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스터. 융합체입니다.
“ㅈ 됐네!”


세하는 불길함이 맞아 떨어져서 욕지기부터 날렸다. 세하의 시야에 들어온 방벽의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커다란 몬스터가 땅속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촉수 같은 것을 사방에 뻗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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