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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질주 (26/72)



〈 26화 〉질주

세하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잠시  말을 잃었다.

-마스터. 어떠세요?


그리고 루이제가 묻자 세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거 상상 이상인데?”


원래 슈트 상태에서도 시야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더 했다. 확연히 넓어진 디스플레이에 상당한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구도가 되니 전장의 현황이 확연히 보일 지경이었다.

-PLB 아머. 엘리미네이터입니다. 슈트 상태보다 얼마나 강한지는 달리 설명 안 드려도 되겠죠?
“그래. 그래도 뭔가 입고 있다는 느낌이긴 한데.”
-그건 장착하고 있는 슈트 위에 장비가 더해지는 식으로 강화되니 그런 것이지요. 하지만 그 위력은 확연히 다릅니다. 우선 주변에 얼쩡대는 잔챙이들부터 처리하시죠.
“좋아.”

세하가 마음을 정하자. 디스플레이에 무수할 정도로 락온이 뜨기 시작했다.

-일단 필드 쇼크웨이브 정도로도 통할 겁니다.
“좋아!”


이미 세하의 머릿속에는 사이킥 에너지를 통해 엘리미네이터 아머의 모든 화기 제어법이 들어와 있었다.

파치치칙!


세하의 주변으로 강렬한 충격파가 번져나갔다.  덕에 주변에 늘어서 있었던 봉황참마단의 기갑 병기들이 폭풍에라도 휘말린  마냥 날아가고 부셔지기를 반복했다.


“우아아앗!”


그건 파워드 슈트를 착용한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속절없이 날아가고 어딘가 부딪쳐서 널부러지는 등등 말 그대로 쓸려나가는 지경인지라 홀로 남은 유주리는 황당해서 멍해진  눈으로 세하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세하의 아머는 이미 장대한 거인처럼 유주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기에 유주리는 이를 악물더니 외쳤다.

“이 괴물!”


유주리의 주변에 처음처럼 어둠의 야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뭇 위협적인 모습들이었지만 아머 상태의 세하로서는 제법 내려다보이는 구도인지라 그리 겁나지 않았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과 대형견 정도의 구도랄까?


“죽어!”

유주리가 발악하듯 재차 외치다 어둠의 야수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세하의 주변에 부딪치기 무섭게 터져나갔고  지점에는 몇몇 파문이 일어날 뿐이었다.

-제법 강하지만 이 정도군요.

루이제의 말대로 디스플레이에는 리버스 필드로 게이지만 상승하는 게 보이고 있었다.

“그럼 처리하고 가자고.”

다시 세하의 주변에 충격파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제법 범위를 좁혀서 유주리에게 집중한 것인지라 그녀는 급히 어둠의 낫을 들어 막았지만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커헉!”

유주리는 어둠의 낫이 부셔지고 강렬한 충격이 전신을 강타해서 숨마저 막히는 걸 느꼈다.
그렇게 쓰러진 그녀를 세하가 손을 뻗어 잡아 올렸다.

“루이제. 이 녀석 누군지 알 수 있어?”
-유주리. 봉황 길드의 S급 헌터입니다. 광기의 사신, 순결한 야성 등등 이명으로 불리는 존재이죠.
“뭐? 그런데 이렇게 쉽게 잡혔어?”


세하는 세삼 엘리미네이터 아머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지금 아머 상태면 준 기어 급으로도 취급되니까요. 아무튼 시간이 그리 많진 않습니다. 빠르게 돌파해서 적의 본진을 치죠.

루이제의 말대로 지금 아머 상태에서는 시간제한이 있었다. 세하가 눈앞의 디스플레이를 보니 좌측 상단에 30분 정도 남은 시간이 표시되고 있었다.


“충분해. 그럼 가자.”

세하가 전진하자 지면을 울리는 굉음이 계속해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스파이더 R유닛 전 기 소실!”
“A팀 전멸! B팀의 지원 지점도 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봉황참마단의 야전사령부는 비관적인 정보들로 인해 침통한 분위기였다. 안 그래도 막사 바깥에서부터 폭발음이 이어지고 지면을 울리는 굉음이 크게 들리고 있는지라 김진후는 어느새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네요.”

라설연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믿을 수 없군. 이 정도로 강하다니.”

김진후도 영상으로 세하가 아머 상태를 각성하고 충격파를 날리는 광경을 봤다.
가히 질주하는 거인과도 같은 양상인지라 이대로 가다가는 희생만 늘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김진후는 결단을 내렸다.

“모두 방벽 밖으로 퇴각하라.”
“네? 그랬다간.......”


오퍼레이터  명이 놀라 물었지만 김진후는 재차 말했다.

“승산이 없다. 모두 퇴각하라.”

김진후가 그렇게 명을 내리자 다시 막사 내가 분주해졌다. 라설연은 그런 김진후의 곁을 지나치며 말했다.


“경험으로 아는 것은 참 아픈 거 같아요.”
“정말 그런 것 같군.”


김진후는  이상 낭패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막사 밖으로 나섰다.



*
“이건 무슨.......”

세하는 계속 전진하면서 모든 감각이 다른 세상의 것처럼 느껴졌다.
발길에 차여서 날아가는 전차며. 레일건의 포격이나 미사일의 쇄도도 이미 그의 주변에 펼쳐진 필드에 막혀서 무력화 된지 오래였다.

-아무래도 퇴각을 지시한 것 같습니다.


루이제의 보고가 세하를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그래? 굳이 다 쫓아갈 필요는 없겠지?”
-아무래도 방벽 수비대는 협회의 헌터들이니 그렇죠. 역시나 봉황 길드에 보낸 메일이 무척 도발적으로 보였나 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깨지고 나니 아무 생각도   겁니다.


세하는 루이제가 보낸 메일 내용이 궁금했다. 하지만 눈앞의 디스플레이에 제법 큰 반응이 포착되고 있어서 긴장해야 했다.

-S급 헌터 김진후로군요. 봉황참마단의 단장입니다.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었기에 루이제가 확대된 영상으로 김진후의 모습을 디스플레이에 띄웠다.


“단장이 저렇게 나와 있어?”
-마스터의 전력이 상상을 초월하니 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퇴각시킨 것입니다. 하지만 저렇게 나선 걸 보면 아무래도 S급 헌터의 자존심이 남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어진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잠시 스산함을 느꼈다.

-그 알량한 자존심도 부셔버리죠.

쿵!

어느새 황폐해진 막사들이 있는 지점에 세하가 도착했다.
이미 봉황참마단의 대다수는 김진후의 지시대로 퇴각해서 저항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래서 세하는 일단 오른손을 지면에 내렸다.
거기에는 혼절해 버린 유주리가 있었다. 그렇게 세하가 유주리를 내려놓자 김진후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고맙군.”
“내가 지극히 이성적인 것에 감사하라고.”

세하는 그렇게 공치사를 하고는 다시 몸을 펴서 섰다. 그러자 무슨 신화속의 거인과 용사를 보는  같은 구도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패했다. 그러니 네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나는 물러날 수 없다.”


김진후는 침통한  말했다. 그런 그의 뒤에 라설연이 갑자기 나타나더니 유주리를 부축해서 뒤로 물러났다.

“한꺼번에 덤비는 게 좋을 텐데?”

세하는 라설연을 확인하고 물었다. 하지만 김진후는 고개를 저었다.

“설연은 내키지 않았는데 끌려왔다. 그러니 내가 책임을 져야지. 간다!”

김진후가 지면을 내리쳤다. 그러자 갑자기 그의 뒤에서 시커먼 형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

세하는 그걸 보는 순간 잠시 멍해졌다.


-골렘이군요.

루이제의 분석은 금세 끝났다.


“골렘?”
-네. S급 헌터인 이상 저 골렘만으로도 앞서 잡았던 아다만테르나 트리아람 정도는 상대할  있겠죠.


루이제의 분석대로 김진후의 뒤에 나타난 골렘은 제법 위협적인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높이는 5미터 정도로 아머 상태의 세하보다는 작았다.


-검붉은 상태를 보니 무슨 용암 골렘 같기도 하네요.
“그렇네.”

세하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김진후의 골렘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하의 오른 주먹이 마치 로켓처럼 뻗어나갔다.


콰지직!

골렘의 머리통을 강타하자마자 거기서부터 금이 그어지더니 그대로 산산이 무너지고 말았다.  광경을 본 김진후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하하하.......”


그리고 그런 그의 머리 위에 세하의 커다란 주먹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봉황 길드의 본부는 어지간한 고층 빌딩 이상의 높이를 자랑하는 마천루였다.
그리고 여명을 지나 아침이 밝아오는 상태에서는 빛나는 유리 같은 외장재가 제법 환한 광경을 연출할 정도였다.


“결국 실패한 건가.”

하지만 지금 봉황 길드의 회장은 혼자 있었다.
아직 오십이 되지 않은,  단체의 총수로서는  젊은 편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제법 갖은 고생으로 노회한 노인이 된 것 마냥 주눅이 들어 있었다.


“여기 계셨군요.”

분명 심야에 세하를 치기 위해 회의를 거쳤던 장소였다. 하지만 회장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한 남성이 들어왔다.

“왔군 그래.”


회장은 손님을 맞이하지 않았다.  손님이 턱하니 자신의 맞은 편 소파에 앉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사상자가 적었습니다. 김진후 단장이 적시에 퇴각 명령을 내렸으니 말이죠.”


그렇게 미소 짓는 청년은 바로 세하였다. 지금 그는 제법 말끔한 복색으로 봉황 길드의 회장을 앞에 두고 있었다. 회장은 그런 세하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전치 10주가 나도록 만들었더군.”
“일단은 덤비니 몸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실 김진후 단장도 알고 있을 걸요?  개인을 상대로 완전무장한 군대가 죽일 각오로 달려들었으니 정당방위로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걸요.”


세하는 여전히 미소를  채로 말했다.


“메일대로 제가 이겼으니 앞으로 봉황 길드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지시에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음........”


대형 헌터 길드로서 상당히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그래서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세하는 멈추지 않았다.

“혹시라도 소속 헌터가 저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저는 즉결 처형할 권리가 있습니다. 잔인하고 살벌하게 느껴지시겠지만 지난  있었던 일을 생각하신다면 이건 약과인  아시겠죠?”
“나도 포함인가?”

회장이 물었다. 거기에 세하는 더욱 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 아시면서 물어보십니까?”

제법 차가운 공기가 장내를 휘감았다.

“제가 불법적인 행동을 한 것도 아니고 S급 헌터로서 강력한 몬스터들을 손수 때려잡았을 뿐인데 회장님과 봉황 길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전히 회장이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자 세하의 표정에 점점 냉기가 감돌았다.


“어.......”

순간 회장이 놀랐다. 어느새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워졌다.

“저는 지금 숨  번 쉬는 동안에 회장님께 지옥행 편도 티켓을 끊어드릴 수 있는데 말이죠.”

라인버스터 슈트의 육중한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른팔은 아예 사이킥 캐논의 포구로 변해서 회장의 머리를 겨누고 있었다.
회장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다리 밑에는 어느새 뜨듯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앞으로 협회의 충실한 일원으로서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세하는 그런 상태의 회장을 놔두고 다시 슈트를 해제하고 걸음을 옮겼다. 뒤에 남은 회장은 꼴사납게 주저앉아서 멍하니 그 뒷모습을  뿐이었다.




*
“다 끝났어?”

세하가 로비로 나오자 라설연이 맞이했다. 그녀는 여전히 헌터 슈트 차림이긴 했지만 세하를 보는 눈은 제법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래. 아무튼  덕분에 피해를 줄일  있었어.”


세하는 라설연에게 그렇게 인사하고 지나치려고 했다.

“글쎄... 나는 길드의 배신자가 된 건 아닌가 싶은데.”


라설연이 짐짓 흐려진 표정으로 말하자 세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넌 현명한 거지. 그리고 뭐가 큰 건지 알고 행동한 거야.”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지만. 말이지.”
“정 그러면 아예 협회 소속으로 발령을 내주지.”

세하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막 입구로 들어서는 사람을 보고서 멈춰서야 했다.


“여어.”

깔끔한 정장에 화사한 금발과 청안이 눈에 띄는 청년이었다. 그는 세하를 무슨 죽마지우라도 보는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블랙메탈. 나 기억하지?”

세하는 당연히 그를 기억했다. 그리고 지금 타이밍에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에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뭐냐? 제너럴 마이트도 날 잡으라고 지령이라도 내렸나?”

 말에 눈앞의 청년, 제너럴 마이트 한국지부의 S급 헌터 일라이저 하퍼는 오히려 악수를 청했다.


“아니지. 어디 멍청한 길드와는 다르게 우리는 큰 걸 볼 줄 알거든.”

그 말에 뒤에서 듣던 라설연이 움찔했지만 일라이저는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헌터 협회에 정식으로 요청해야 할 일이지만 우선 내 입으로 말하고 싶군. 미국으로 출장 좀 와주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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