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증명의 순간 (25/72)



〈 25화 〉증명의 순간

세하는 밤하늘을 보면서 생각했다.


‘참 느긋하다.’

오늘 봉황 길드와 한판 붙는 것만 아니라면 느긋하게 루이제와 농담 따먹기나 하며 몬스터들 코어를 용돈삼아 수집하면 좋을 밤 같았다.

-마스터. 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가로이 있던 시간이 끝났다. 이미 루이제의 감지반경에 걸린 존재들이 헬멧의 디스플레이에 가득히 나타나고 있었다.

“역시 드론이나 무인병기로 공격할 모양이네?”
-일단 가장 안전한 방법을 쓰는 거겠죠. 물론 이걸로 될 거라고는 생각 안할 겁니다. 오히려 강습할 시간을 버는 것이 클 겁니다.

루이제의 판단이 옳았다. 기존의 몬스터들이라면 효과적인 타격법이 되겠지만 세하는 S급 헌터. 그것도 강력한 사이킥 에너지에다가 그걸 영향으로 성능을 발휘하는 고성능 슈트의 소유자였다.

“일단 어울려주자고.”

세하가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하늘에서 수많은 광원들이 보였다.
그 하나하나가 미사일인 것을 세하는 알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팔에서 사이킥 라이플의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명중률 80퍼센트. 나쁘지 않습니다.

제법 괜찮은 명중률이었다. 하지만 사격을 피한 미사일들이 그대로 날아오는지라 세하의 어깨 위에는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기관총 형태의 무기들이 나타났다.

-근접대공방어 체인건으로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물론 사이킥 에너지를 쓰는 것이니 실탄이 소모될 위험은 없습니다.


파앙!


루이제의 설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이킥 체인건 2문이 자동적으로 빛을 토하기 시작했다. 비교적 근접해 접근하던 미사일들이 그 덕에 모조리 격추 당해 떨어졌고 세하는 그런 루이제의 보조 덕분에 편하게 먼 곳의 미사일들을 요격할 수 있었다.


콰앙!

그러는 사이 갑자기 세하를 향해 강렬한 섬광이 뻗어 나왔다.

“히유!”


세하는 급히 공중에서 선회하며 이를 피해냈다.

-레일건으로 보입니다.
“맞으면 골로 가겠지?”
-사이킥 필드를 전력으로 펼치면 방어 가능합니다. 하지만 손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러는 사이 문제의 포격이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세하는 마치 공중에서 춤을 추는  마냥 슈트의 기동성을 활용해서 피해낼 수 있었다.

투타타타!


그리고 그 사이에 근접한 전투용 드론들이 죄다 실탄 병기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세하는 일부는 사이킥 필드로 막아내고 일부는 피했지만 적어도 섬광처럼 날아드는 레일건 포격은 반드시 피해냈다.


-강력한 화력으로 가장 근접한 적들부터 처리하는 걸 추천합니다.
“그렇겠지?”


공중에서 상당한 기동으로 피로할 법도 하지만 세하는 제법 즐기는 것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블릿츠 캐논. 기동합니다.


루이제가 일단 먼저 움직였다. 사이킥 체인건이 사라지고 블릿츠 캐논의 각진 포문이 나타났다.

“준비되는 대로 쏴버려.”
-알겠습니다. 발사합니다.


순식간에 강렬한 뇌전의 에너지가 쏟아져나갔다. 거기에 휩쓸린 드론들은 일제히 폭발해버렸고 더 이상 공중에서 공격을 가하는 적은 보이지 않았다.


콰앙!


물론 레일건의 위협은 남아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집중할 것이 줄어들어서 세하는 여유 있게 피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드론 부대 전멸입니다. 스파이더 R유닛 3기는 건재합니다.”


이미 봉황참마단은 모두 지상에 내려온 상태였다. 세하가 드론과 무인병기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행동한 것인데 이미 순식간에 야전사령부가 설치되며 거기에 각종 가상화면으로 표시되는 영상을 보며 단장 김진후는 명을 내렸다.

“스파이더 R유닛은 가용 가능할 때까지 견제를 계속한다. 스파이더 B유닛 6기를 앞세우고 A팀이 기갑전력으로 쇄도한다. B팀은 장거리 병기로 화력지원하고 C팀은.......”


라설연은 그렇게 일목요연하게 지휘하는 김진후를 보면서 아직도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뭐가 문제지?’


세하의 강력함은 익히 보았다. 하지만 봉황참마단의 실력 또한 잘 알았다.


“아하하핫! 설연 언니 한숨으로 땅이  꺼지겠네.”

그리고 그녀의 곁에서 살랑거리는 몸짓을 보이는 소녀가 한 명. S급 헌터 유주리가 라설연의 신경을 긁고 있었다.

“좀 걱정이 되긴 해.”
“정 안되면 나랑 언니만 나서도  걸? 설마 진후 오빠까지 나서기야 하겠어?”


두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상당힌 생기 있고 귀여웠지만 라설연은 애써 외면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


라설연은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김진후가 제법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콰앙! 콰앙!


계속해서 섬광과도 같은 공격이 이어졌다. 세하는 전진할수록 뭔가 그 수가 늘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루이제.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
-아직 마스터가 가진 무기로는 장거리에서 타격하기가 힘듭니다.


루이제는 사뭇 냉정하게 말했지만 헬멧을 통한 디스플레이에는 온갖 정보가 빼곡히 나오고 있고 그에 따른 움직임을 제어하며 세하가 비행하며 회피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날아가도 좀 접근해야 한다는 거군.”
-마스터. 지금입니다.


순간 디스플레이에 한 지점이 화살표처럼 찍혔다.


콰앙!

세하의 왼손에서 발사된 사이킥 라이플에 한 지점이 폭발을 일으켰다.

-레일건을 발사했던 존재로 보입니다.
“그럼 이제 좀 편해......”


콰앙!

순간 섬광이 바로 눈앞에서 터졌다. 그 때문에 세하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사이킥 필드 전체로 충격파를 흡수합니다.


루이제의 빠른 대처 덕분에 세하는 별 충격 없이 착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빈틈을 보였다고 생각한 건지. 계속 섬광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미사일도 날아들기 시작했다.

“젠장! 어디서 날아드는 거야?”

세하는 급히 회피하거나 사이킥 필드로 막아내며 낭패감을 표했다.


-봉황참마단이 상당한 거리에서 화력지원팀을 운영하는 걸로 보입니다. 지금 상태로는 계속 접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놓게 날아가다간 또 얻어맞을 거 같은데.”


세하는 일단 눈앞에 마치 참호처럼 움푹 파인 곳이 보여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예전에 헌터들이 정말로 참호처럼  곳인지 상당히 깊게 들어가며 안정적으로 착지할 수 있었다.

-잠깐 시간은 벌 수 있겠군요.
“좀 지나면 털리겠지.”


쿠르르릉!

세하와 루이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이 궤도차량의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다수의 기갑전력이 포착됩니다. 장갑차는 물론이며 전차도 보입니다.
“허이구.  하나 잡으려고 정말 전력을 쏟는 구나.”

세하는 일단 근처에 있을 육상전력을 잡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 그때 루이제가 말했다.

-마스터. 잊고 계셨나요?
“응?”

세하는 당장 라인버스터 슈트로 전환해서 리버스 필드로 육상전력을 쓸어버릴 참이었지만 뒤이은 루이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 확실한 방법이 있잖아요. 이제 슬슬 꺼내죠.




*
“스파이더 R유닛 1기 소실! 그 외에 전력들은 문제없습니다.”
“A팀! 목표와 유효사격거리까지 진출. B팀의 화력지원도 문제없습니다.”

봉황참마단의 야전사령부에서는 쉴 새 없이 정보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김진후는 석상처럼 버티고 서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모르겠군.”

김진후의 말은 당연해보였다. 헌터라기보다는 제대로  전투 부대였고 이는 봉황 길드의 자랑이기도 했다.
초반에 드론 부대가 전멸하긴 했지만 그 외의 전력들은 대부분 온전했고 곧 제대로 제압 전투가 벌어질 판이었다.

“그런데 설연. 너는 계속 불안해 보이는 구나.”

김진후가 라설연을 불렀다. 거기에 라설연은 눈을 떴다.


“단장님. 민세하는 묘한 구석이 있어요.”


라설연은 말해놓고서 그걸 묘하다고 표현해야  지 고민했다.

“아하하핫! 언니. 혹시 저 사람 좋아해?”


유주리가 쾌활한 웃음을 터뜨리며 끼어들었지만 라설연의 표정을 바꿀 순 없었다.


“주리야. 내가 그런 감정으로 여기에 있겠니?”

라설연이 일견 서늘한 표정으로 말하자 유주리는 갑자기 고개를 수그렸다.


“히잉! 진후 오빠! 설연 언니가  겁줘!”

그리고 유주리는 김진후에게 매달려서 징징거렸다. 그 모습이야  없이 귀여운 소녀가 매달리는 모습이기에 경우에 따라 미소가 나올 법 했지만 라설연은 계속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헌터 한 명에게 이 정도 전력을 동원하는  과하단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으렴. 어떻게든 제압해서 끌고  거니까.”


김진후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라설연의 표정은 풀릴 길이 없었다.

“AA급 몬스터 둘에 AAA급도 둘. 이렇게 단독으로 잡을 실력자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사실 헌터 협회나 다른 길드들에서 이곳 균열 지대 토벌을 위해서 봉황참마단의 차출을 간곡히 청했었는데 이렇게 나설 정도인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네요.”
“설연. 우리를 못 믿는 거냐?”
“모르겠어요. 아무튼 저는 이곳의 일원으로서 여기에 왔어요. 싸우는 것에 망설임은 없어요.”

라설연은 그렇게 말해놓고 계속 현황을 토해놓는 화면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주리야.”
“응. 오빠.”


김진후가 부르자 유주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A팀에 합류하렴. 그리고 당장 민세하를 제압해서 데려오렴.”
“정말? 그래도 돼?”

유주리의 두 눈이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빛나보였다. 라설연은 왠지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시동이 걸린 유주리는 거침이 없었다.


“캬하하하! 진후 오빠 명령이 떨어졌으니 가야지! 당연히 가야지! 캬하하하하!”

유주리가 김진후에게 떨어지더니 갑자기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본래 검은 두 눈이 붉게 물들었고 그녀의 주변에 검은 기운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유주리를 보고 김진후가 다시 태연하게 물었다.

“지금 A팀이 있는 곳은 알겠지?”
“물론이야! 당장 갈게!”


유주리는 그렇게 외치더기 갑자기 양 손에 검은 낫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낫으로 주변의 공간을 그었다. 그러자 유주리의 모습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콰앙! 쾅!


세하가 숨어든 참호 주변에 포격이 쏟아졌다.
전차의 주포와 장갑차의 체인건이 계속 그 주변을 초토화시켰고 그런 기갑전력의 주변에는 파워드 슈트로 무장한 수십 명의 병사들이 각기 화기를 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사격 중지!”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외쳤고 기갑전력의 포화가 멈췄다. 그러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병사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하하하!”


하지만 갑자기 날카로운 웃음소리와 함께 허공이 갈라지며 유주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A팀의 지휘관은 그녀를 보고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유주리 헌터님. 안 오셔도 됩니다.”
“닥쳐! 진후 오빠가 시켜서 왔어!”

유주리는 지면에 착지하더니 마치 성난 사자처럼 지휘관에게 외쳤다.
그녀가 들고 있는 어둠의 낫은 작고 아담한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게 거대했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렸고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단장님께서요?”
“그래! 그러니 따지지 말고 물러서 있어. 저 쥐구멍에 숨은 쥐새끼는 내가 잡아올 테니까.”

유주리는 그렇게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주변에는 꿈틀거리는 어둠의 기류들이 마치 커다란 야수들처럼 형상을 만들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나오렴. 쥐새끼야.  때문에 곤히 잘 시간에 끌려 나왔단다. 내 피부가 상하기라도 하면 전부  네 책임이란다. 그러니 당장 나오렴. 안 그러면 이 아이들이 널 갈기갈기 찢어 먹어버릴 테니까.”

유주리는 가장 근처 있는 큰 늑대 형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야 포연이 걷혀가는 참호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안 나와? 그러면   없지.”


거기에 유주리가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으르렁 거리고 있던 어둠의 야수들이 일제히 참호로 달려들었다.

파파파팟!


갑자기 참호에서 세찬 빛무리가 일어났다.
거기에 휩쓸린 어둠의 야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뭔가 크기를 쑥쑥 키우며 참호 안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어?”

유주리는 놀란 표정으로 이를 올려다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높이만 10미터가 넘게 커져버린 그것은 세하의 마크3 슈트인 라인버스터와 유사해 보이는 형태였다.
하지만 그 크기가 남달랐고 몸의 중간 중간 보강된 장갑이나 그 뒤에 펼쳐지는 포문들을 보며 한층 강력한 존재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브이자 형 바이저가 부착된 머리에서 강렬한 안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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