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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진실의 파문 (23/72)



〈 23화 〉진실의 파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이린은 꽤나 당황한  같았다.


“네가 말한 회귀의 원인이 나라고.”


세하는 다시 강조해서 말했다. 그러자 레이린은 어딘가 멍해진 얼굴이 돼서 천장에 시선을 두었다.


“굉장히 강력했어요. 그건 가히 신적인 존재가 개입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미안하게 됐군. 나의 전생은 지오 그라함. 당시 지구연방군의 PLB 기어 파일럿이자 사이킥커였지.”

세하가 이렇게 전생의 신분까지 밝히자 레이린은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지오 그라함이라고요? 당시 연방군 최고의 사이킥커이자 PLB 기어 파일럿. 그리고 엑펠트 학살자군요.”


자신도 모르는 호칭에 세하는 머쓱함마저 느꼈다.


“그 정도였어?”
“네. 동족들은 상당히 경계하는 분위기였어요. 당신과 PLB 기어 엘렉티오는 상당히 유명했어요. 그러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도 하네요.”


레이린은 빠르게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하긴 한 거야?”


이번에는 세하가 물을 차례였다. 그러자 레이린은 잠시 생각하는지 물끄러미 세하를 바라보았다.


“제가 숨어 지내느라 자세한 파악은 못했지만 당시 동족들의 네트워크에서는 지구로의 문을 열기 위해 전체 전력의 7할 이상을 집중했다고 들었어요. 융합체와 이를 제어하기 위한 단말 그리고 지휘하기 위한 동족 개체들을 생각하면 엑펠트로서도 사활을  일전이었죠.”

레이린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듣자 세하는 그 아득함에 질릴 지경이었다.


“어쩐지 그날 전함들이 힘을 못 쓴다 했더니.”
“그 정도로 중요한 싸움이었죠. 하지만 민세하 헌터님이 그 당시 굉장한 힘을 쓰셨던 모양이군요.”


레이린도 세하와 비슷한 심정인  같았다. 표정에서 확연히 드러나는지라 세하는 민망함마저 느끼며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마스터가 한 일에 대단하긴 하네요.
‘지금 놀리는 거냐?’
-아니오. 적어도 엑펠트를 상당히 저지시켰잖아요? 여러 왜곡이 일어나서 게이트가 나타나는 등의 부작용은 있지만요.
“........”


지금 상황의 원흉이라는  같아서 세하는 더 이상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아무튼 감사해요.”


레이린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 어이?”
“당신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소중한 시간을 번 셈이에요. 이러니 감사를 안 드릴 수 없어요.”
“거참. 일단 알았어.”


아직 진정이 되지 않아 세하는 제대로 답을   없었다.


“일단 좌표마커의 정보를 얻었으니 이어질 상황에 대비가 가능해졌어요. 일단 엑펠트로서 현재 시간대에 제대로 존재하는  저 밖에 없으니 믿으셔도 되요.”
“그래?”

세하는 현실로 돌아와 물었다.

“네. 엑펠트는 동족의식이 확고해요. 물론 저처럼 인간의 육체를 지니고 동화해버린 존재는 이레귤러로 낙인찍히지만요.”


레이린이 미소 지었지만 그 미소는 제법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하지 않아요.”



*
세하는 이제 류한호를 만나고 있었다. 세하가 처음 와서 난리친 사무실이지만 지금은 다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만나보니 어떻던가?”


류한호가 먼저 물었다. 세하는 머리가 아픈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실 생각도 못했어요.”
“나도 처음에 레이린을 만났을 때 그랬네. 하지만 자네라는 존재가  놀랍네. 지금 상황을 만들어냈다고 하니.”


꼭 자신을 힐난하는  같아서 세하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하지만 류한호는 오히려 웃었다.


“진실을 아는 이들이라면 자네를 비난 못하지. 엑펠트의 위험에 비하면 게이트나 몬스터들은 대처 가능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그 끔찍한 것들이 섞여서 화학적 시너지를 내면 생지옥이 펼쳐질 겁니다.”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류한호를 노려보았다.

“지금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일단 나하고 경기도 북구 지부장 주운찬. 그리고 협회 소속 S급 헌터 3명일세.”
“제너럴 마이트나 봉황 길드. 그리고 그 외의 대형길드들은 괜찮겠습니까?”
“기존의 게이트 사태와 다른 위험임을 알고 조사 중이긴 하지. 하지만 우리처럼 엑펠트라는 명확한 존재를 아는 건 아니네. 하지만 우리와 협력하기 보다는 아직 고집을 피우며 자체 조사를 하는 중이지.”

세하가 생각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았다. 이어진 류한호의 말이 이를 뒷받침했다.

“레이린이 말한 대로 지금 그 오염의 단계는 초기에 불과하다네. 게다가 동족인 엑펠트는 적어도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네.”
“그래도 가능성을 생각해봐야겠죠.”
“의심하는 건 좋네. 아무튼 앞으로 하던 대로 해주게. 꾸준히 헌터로서 자유롭게 활동하며 힘을 키우게.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다시 영웅이 되는 걸세. 있었던 미래와는 다른 존재로 말일세.”
“.........”


세하는  이상 들을 말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알려진 것이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저도 알아낸 게 있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네. 고생많았네.”





*
세하는 그 뒤로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
물론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일을 안 한다는 하에 루이제가 내린 판단이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출력이 굉장히 늘었어요.


루이제는 하루의 마무리를 하며 세하의 전체적인 전력을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자신이 대학생이던 시절 머물던 원룸에 그대로 있었고  가운데서 가상화면들이 떠오르며 슈트의 전력을 파악하는 것이 좀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돈 좀 들어왔으니 거처를 옮길까 싶다.”
-갑자기 사치하고 싶어지셨나요? 목숨이 언제 달아날지 몰라서?
“아예 안전가옥에 가까운 곳을 찾아볼 수도 있잖냐.”
-그건 협회에 문의해보시죠. 협회는 이제 마스터를 최중요 인사로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레이린의 태도만 봐도 알만하지.”


루이제의 말대로 협회의 배려가 상당한 편이었다. 게다가 엑펠트 조사관인 레이린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전할 때도 세하에게 굉장히 예의를 갖추고 있어서 세하는 메일을 받기도 부담스러웠다.

-인간의 마음을 얻은 엑펠트라선지 더 조심스러운 거 같네요.


레이린에 대한 루이제의 평가가 이런지라 세하는 다른 말은 안하기로 했다.

“더 이상 말해서 뭐하겠어. 그날 이후로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으니 믿어봐야지.”

세하는 레이린이 스스로의 정체를 밝힌 이후로 더 이상 의심은 하지 않기로 했다.

-말하기 무섭게 연락이 오네요. 그녀도 양반은  되나 봅니다.

루이제의 말과 함께 통신대기 화면이 떠올랐다. 거기에 세하는 다른 고민하지 않고 그걸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민세하 헌터님.”


레이린이 화사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세하는 문득 슬픈 기분이 들었다.


‘매일 협회 본부의 지하에만 있고 저번처럼 엑펠트 관련  때만 급하게 게이트로 오간다고 했었지.’


물론 웃고 있는 그녀를 두고 자신이 우거지상을 쓰는 건 아니다 싶어서 세하도 웃었다.


“응. 뭔가 알아낸 게 있어?”


레이린은 뭔가 긴히 할 말이 있을 때는 직접 통신을 걸어오곤 했다. 그래서 세하가 물었지만 레이린은 평소와 다른 말을 했다.


“협회를 통해서 온 연락이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했어요. 봉황 길드. 아니 거기에 속한 흑천녀 라설연 헌터가 민세하 헌터님과 만나길 원하고 있어요.”
“라설연?”

세하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최대한 일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 후다닥 움직였는지라 봉황길드나 제너럴 마이트에 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다.


“네. 제가 이렇게 알려드리는  아무래도 전 민세하 헌터님의 담당 비슷한 위치니까요.”
“으... 그 여자가 왜  보자고 하지?”

세하는 잠시 고민했다.


“후훗. 개인적인 호감이에요? 이렇게 날 무시한 남자는 처음이야. 이런 식으로요?”

레이린이 그녀답지 않게 농을 던졌다. 하지만 세하는 심각했다.


“협회장님은 뭐라고 하시지?”
“만나서 탈은 없을 거라고 하시네요. 혹시라도 수틀리면 민세하 헌터님이 와장창 해버릴 거고 자신은  뒤처리만 생각하고 계신데요.”
“너무 프리 패스인데.”

세하는 류한호마저 자신에게 별 제지를 안 하자 도리어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튼 민세하 헌터님이 알아서 하시라는 거네요. 만나는 장소는 협회 북구 지부 쪽으로 하세요. 아무래도 지금 민세하 헌터님의 거처에서 가장 가까운 협회의 지부니까요.”
“알았어.”


세하는 일단 약속을 잡기로 하고 통신을 끊었다. 루이제는 그런 세하에게 의견을 전했다.

-협회에서 저런 식이라면 만나서 나쁠 건 없겠습니다.
“개인 자격으로 연락을 취했다는 게 신경 쓰이는 군,”
-모르는 일이죠. 레이린 리의 말대로 라설연이 마스터에게 빠져.......
“됐다. 됐어.”

세하는 루이제의 말을 끊어버리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
레이린에게 연락을 받은 지 3일 후. 세하는 협회 북구 지부로 향했다. 이목을 생각해선지 슈트를 이용하지 않고 처음에 갈 때처럼 지하철을 이용해서 루이제에게 제법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 이상 없습니다.
“알아. 주운찬 그 양반도 우리 쪽 사람이라니 나한테 수작부리면 큰일 나는 걸 알거야.”

지하철역과 협회 지부를 연결하는 통로에서 지난 번 시험을 떠올린 세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별일 없이 협회 지부 로비로 올라왔고 세하는 로비 데스크에 문의했다.

“헌터 민세하입니다. 코드는........”
“아. 안 그래도 지부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지부장실로 오시라는데요?”
“음.”

세하는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을 깨닫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역시 이목이 신경 쓰이는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아무튼 주운찬은 머리 좀 아프겠네. 하필이면 이런 일을 떠맡았을까 하고 말이야.”

세하가 루이제와 이렇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해당 층에 도착했다.

“음?”


북구 지부장 주운찬은 이후에도 가끔 돌발 게이트를 처리하는 문제로 몇  만났기에  집무실로 오는 것은 세하에게 있어서 친구 집에 오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 접객용 소파에 앉아 있는 존재는 그렇지 않았다.

“지부장님은 어디 계시지?”

세하는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그 존재의 맞은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그 존재, 라설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리를 비켜주셨어.”


오늘은 헌터 슈트가 아닌 단아해 보이는 정장차림인지라 분위기가 차분해보였지만 그녀 특유의 매혹적인 흐름은 그대로였다.
그 때문에 세하는 슈트를 장착해야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루이제가 별 다른 반응을 하지 않아서 세하는 어깨를 으슥하며 말했다.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지? 나는 봉황 길드에서 클레임이라도 걸려는  알았는데.”
“그럴 일은 없어. 아무리 대한민국 최대의 헌터 길드라고 해도 협회와 척질 생각은 없으니까.”

라설연은 느긋하게 말하더니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어?”

세하는 주변의 분위기가 변한 걸 깨닫고 표정이 안 좋아졌다.


-일종의 공간격리 같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의 대화가 다른 곳으로 세어나가는 걸 경계하는 것 같습니다.

루이제가 바로 알렸기에 세하는 바로 경계를 풀 수 있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일종의 오프 더 레코드야.”


라설연은 이제 제법 걱정스런 표정이 되며 입을 열었다.

“봉황 길드가 대대적인 정보 수집에 나섰어.”
“정보 수집?”


세하는 그 말이 어딘가 불길하게 들렸다.


“그래. 아무래도 최근에 게이트들이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것 하며 몇몇 몬스터들은 기존과 다른 움직임을 보였지. 그리고 특히 정신 계열의 각성자들이 쓰러지는 일이 길드 상부를 자극한 것 같아.”

라설연이 하는 말은 세하도 알고 있는 바였다.


‘사실 나나 레이린이 너무 강해서 문제인 건가?’

엑펠트를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헌터들이나 길드로서는 지금의 문제가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하는 더욱 집중해서 라설연의 말을 들었다.


“특히 지금 너를 주목하고 있어. 아무래도 대한민국에 속한 길드이고 헌터 협회를 무시할  없겠지만 봉황 길드는 너를 최대한 포섭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라설연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세하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말이라서 자신이 입을 열었다.

“나를 제거하겠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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