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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본질 (22/72)



〈 22화 〉본질

분명 세하가 본 적이 있는 레이린 리였다.
정장에  가운을 걸친 그녀는 다급하게 세하의 옆을 지나더니 비틀거리는 융합체에게 다가갔다.


-놔두실 겁니까?
“방법이 있냐?”


사실 레이린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놀랄 지경인지라 세하는 가만히 그녀가 행동하는 것을 지켜봤다.
레이린은 융합체의 앞에 무릎을 꿇더니 마치 아이를 감싸 안듯 융합체를 잡았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 수많은 입체 화면이 떠오르며 갖가지 데이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미안하게 됐네.”

그리고 다시 익숙한 음성이 세하에게 들려왔다. 거기에 세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답했다.

“협회장님. 오셨습니까?”


헌터 협회장 류한호. 그마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세하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오늘 설명을 잘하셔야  겁니다.”


레이린이 나타나면 류한호도 나타날 것을 예상을 했었다. 그들이 나타난 일종의 게이트를 보고서도 세하는 덤덤하게 반응할 뿐이었다.

“역시 조금 높은 등급의 단말일 뿐이에요.”

 사이 레이린은 융합체의 머리를 감싸 쥐고서 조금은 침통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그런가?”
“네. 협회장님. 하지만  거라면 제법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최근 게이트 사태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요.”


레이린은 융합체를 놓고서 몸을 일으켜 세하를 바라보았다. 세하는 여전히 라인버스터 슈트 상태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게 하실 말이 많을 겁니다. 레이린 씨.”
“네. 어떻게 협회장님과 제가 던전에 난입을   있는  말이죠.”

그녀의 에메랄드 빛 머리칼이 찰랑였다. 하지만 세하는 흔들리지 않고 그녀의 두 눈을 노려볼 뿐이었다.

“저는 엑펠트입니다.”
“.......”

순간 세하는 입에서 욕이 나올 뻔했다.

-잘 참으셨어요.

루이제가 칭찬할 정도였으니 세하의 인내심은 상당하다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류한호는 계속 헛기침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전생자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이번이 기회다 보니 급하게 나설 수밖에 없었어요. 근간에 계속 게이트만 기습적으로 발생하다가 던전은 처음인지라.......”
“그렇습니까?”


세하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뭐 저 혼자만 참으면   같군요.”


세하는 생각보다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감사해요. 민세하 헌터님.”

레이린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융합체 자체는 그대로 바닥에 놔둔 채인지라 세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저건 그냥 놔둬도 되는 겁니까?”
“이미 정신 정보를 흡수했어요. 일단 저건 방치해둬도 될  같군요.”
“사실 굉장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세하는 그래도 슈트를 해제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레이린의 본질 때문에 심정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가고 나중에 따로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건 당연해요. 아무튼 던전은 클리어 됐고 민세하 헌터님은 바로 협회 본부로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레이린은 그렇게 말하고 류한호와 함께 게이트로 다가갔다. 세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
던전이 클리어되자 세하는 바로 연천 균열 지대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러기 무섭게 마크2 슈트의 기능을 발휘해서 그대로 비행해서 좌표를 협회 본부로 맞췄다.


-제너럴 마이트와 봉황 길드는 마스터가 사라진 직후 철수한 걸로 보입니다.
“미리 가줘서 다행이군.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통수치면 어쩌나 했는데.”


세하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미 초고속 모드로 들어가서 팔다리가 몸통에 붙은  무슨 미사일처럼 날아가는 와중이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지 이제 동이 터오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루이제 지금 상태에서 드레인라이징 가능하겠어?”
-네? 그건.......

세하가 작정을 하고 하는 말에 루이제는 잠시 망설였다.


-상관없겠군요. 시간 절약이라는 차원에서 말이죠. 모든 제어는 제가 맡을 테니 고통만 잘 참으세요.


어차피 세하에 관련된 모든 것은 루이제가 관리할 수 있었다. AAA급 몬스터인 아다만테르와 트리아람 2개체의 코어를 순식간에 세하의 몸속에 박아버렸고 그 고통에 세하는 이를 악물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 본부로 좌표를 고정 이동합니다. 드레인라이징 종료까지 앞으로 1분......

그러는 사이 루이제가 차가운 음성으로 상황을 알렸다.  덕에 세하는 통증을 참아내며 나아갈 수 있었다.





*
쿠웅!


세하는 헌터 협회 본부의 앞에 도착했다.
처음에 왔던 것처럼 마크2 슈트로 착지했다. 이제야 아침이 열리는 판국인지라 빌딩 주변을 돌던 세큐리티들이 꽤나 놀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S급 헌터 민세하다. 들어가겠다.”
“아직 개장 전입니다. 지금은.”


세큐리티 요원들이 당황해하는데 갑자기 무전이 들려왔다.

“협회장 류한호일세. 민세하 헌터를 들여보내게.”
“아... 알겠습니다.”

미리 도착해 있을 류한호의 무전에 세큐리티들은 바로 반응했다. 세하는 그들이 정문을 열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2 슈트는 제법 신체에 밀착한 편이라서 건물 안에서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몸 주변에 하얀 기운이 마치 아지랑이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 달랐다.

-마스터. 별 다른 요소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그냥 가보면 되겠군.”

세하는 레이린의 실험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알았다. 아직 로비의 직원들도 출근하기 훨씬 전이기에 세하는 바로 문제의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마스터. 어떻게 하실 참이세요?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그리고  후에 결정할 거야.”
-생각보다 이성적이시네요.
“그런가?”

세하는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이성적인지에 대해서였다.


“모르겠군. 대화가 어찌 들리느냐에 따라 정해질 거야.”

그러는 사이 알람음이 들리고 문제의 장소에 도착했다.


“어서오세요. 민세하 헌터님.”


레이린은 처음 봤을 때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아늑한 카페와도 같은 공간. 하지만 처음처럼 갖가지 가상화면이나 자료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레이린도 상당히 각오를 했는지 간간히 심호흡을 하는 기색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레이린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말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혼자인가?”
“네. 협회장님께서 동석하시려는 걸 제가 막았어요.”

세하가 처음과 달리 존대하지 않음에도 레이린은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러더니 세하에게 소파를 권했다.


“지금 이런 상태라서 어디 앉는 건 무리군. 그냥 서서 듣겠다.”


세하가 슈트 상태를 해제하지 않자 레이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 내렸는데 저 혼자 마셔야겠군요.”
“됐고. 엑펠트라고 했지?  증거가 뭐지?”

세하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레이린은 양 손을 앞으로 모으더니 잠시 눈을 감았다.


“오늘 제가 던전을 도중에 들어올  있었던 것만으로도 알  있죠.”
“하긴.”

세하는 다른 생각은 않기로 했다.

“내 전생 때는 이렇게 인류를 돕는 엑펠트는 없었어. 대화는 불가능하고 오로지 괴악한 융합체를 부리며 그 오염을 퍼뜨리며 죽음만을 선사했다. 그러니 널 믿을 수 없어.”
“이... 이해해요! 저도 제가 이렇게  줄은 몰랐어요. 사실 지금 모습도 제  모습이 아니에요.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굳어졌어요.”
“영향?”


세하는 레이린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네. 엑펠트는 기본적으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조작하죠. 하지만  사람은 달랐어요. 융합체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는 통에서도 자신을 희생했죠.  없이 고귀한 분이었어요.”
“.......”


세하로서는 생소하고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어찌 보면 성인급의 사람이었나?’

지금 레이린의 모습. 원래 그 주인은 생각 이상으로 사이킥 에너지도 대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좋아. 네가 엑펠트라고 치자. 네가 아는 것을  말해줄 수 있어.”
“.......”

레이린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곧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면 절 쏘실 거 같네요. 말씀드려야죠. 저는 엑펠트 중에서도 상당히 젊은 편이었어요. 지구연방에서는 엑펠트에 대한 분석에 이런 말이 있었겠죠? 고에너지, 고파동에 차원까지 꿰뚫을 존재라고요. 사실 육체보다는 정신체로 존재하기에 붙여진 말들이에요.”


레이린은 거기까지 말하더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기에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 보통은 사이킥 에너지라 부르겠죠? 거기에 이끌리기도 하지만  없이 순수하게 강한 영혼에는 감화되기도 해요.  같은 존재들이 그래서 없지 않은 거죠.”
‘역시.’


세하는 이제야 이런 존재를 만난 것이 아쉬웠다.


‘그 전에 만났다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아무튼 지금은 지금인지라 세하는 정신을 차렸다.


“차원이라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퍼져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육체까지 얻고 난 뒤인지라 오히려 동족을 피해서 지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에 전 우주에 굉장한 정신파동이 덮치고 모든 것이 리셋되어 버렸어요. 우리 동족이 태양계를 침략했던 초기로 말이죠.”
“음?”

세하는 자신이 새롭게 전생한 걸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레이린의 말은 어딘가 핀트가 이상했다.

“시간이 돌려졌다고?”
“네. 원래대로면 태양계에 닿으려면 40년 이상은 걸려야 해요. 하지만 지구에 벌써부터 오염의 징조가 보이는 거죠. 바로 이 차원에서 발생하는 게이트를 통해서 말이죠.”
“........”

세하는 게이트와 엑펠트의 문제를 뭔가 잘 못 생각한 기분이 들었다.


‘원래 내가 지오 그라함이었던 당시에는 게이트가 없었는데? 그래서 아예 다른 차원으로 전생됐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상 회귀라는 건가?’

세하가 그렇게 생각에 빠진 사이 레이린은 급히 자신의 주변에 여러 화면을 띄웠다.

“그 강력한 정신파동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진 것 같아요. 시간이  차원의 균형이... 모든 것이 영향을 받은 거죠. 그래서 지금 지구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들이 나온 거예요. 그리고 엑펠트의 오염이 더해지면서 그 전조를 보이는 거죠.”


레이린이 처음의 어려움을 딛고 세하의 근처까지 와서 가상화면들을 통한 자료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직은 오염 초기 단계라 막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이번에 연천 균열 지대에서 확보한 융합체는 일종의 좌표마커 같은 거예요. 시간이 오래됐다면 주변의 게이트나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취합해서 굉장히 강력한 현상을 일으켰을 거예요. 민세하 헌터님이  막아주셔서 막을 수 있었어요.”


세하는 이어지는 레이린의 말을 어느새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결국 그도 한숨을 내쉬며 슈트를 해제했다.


“커피  잔 줘.”


그리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제야 레이린인 희미한 미소를 띠며 커피머신으로 다가갔다.

“다행이에요. 이렇게 대화가 통해서.”
“.......”


세하는 정신파동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마스터. 그 당시 그렇게 엑펠트들을 저주했습니까?

 때 루이제가 말을 걸었다.

‘말했잖아. 나 혼자 당하고는 못사는 심정이라고.’
-보통의 사람이라면 절망적인 상황에 그렇게 못 하죠. 아무튼 마스터의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  같군요. 하지만 엑펠트도 그렇고 게이트까지 불러온 셈입니다.


루이제의 힐난인지 모를 말에 세하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때 세하의 후각으로 향긋한 커피의 향기가 와 닿았다.


“여기요.”

루이제는 세하에게 찻잔을 건네며 맞은 편 소파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차라리 이렇게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하게 돼서 다행이에요. 협회장님께서 처음 민세하 헌터님을 소개하셨을  저는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레이린.”


세하는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레이린이 동그랗게  눈을 뜨며 세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안도하는 모습에 파문을 던지는  같아 세하는 망설였지만 잠시 질끈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너는 나를 믿어?”
“지금까지 이렇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니 믿어야죠. 누굴 믿겠어요.”

레이린이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가히 아침햇살처럼 눈부신지라 세하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정신파동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순간 레이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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