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드러나는 의도 (18/72)



〈 18화 〉드러나는 의도

“뭐냐? 갑자기.”

세하는 자신의 텐트 안으로 들어온 하워드와 김준혁을 보고서 물었다.
둘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다가 총대를 맨 건 하워드였다.

“우선 우리 둘이서 대화를 해봤다.”
“그래? 영 딱딱해 보이더니 참 잘했어요.”

세하는 무슨 도장이라도 찍어주는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하워드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사실대로 말하겠다. 그러니 화내지 마라.”
“말하는  봐서. 혹시 두 길드에서 날 죽이라고 보낸 건 아니지?”

세하는 장난삼아 말했지만 하워드의 표정이 풀리지 않아서 다시 물어야 했다.


“뭐야? 진짜야?”
“농담이라면 좀 저급했다고 말하고 싶군.”

하워드는 그렇게 말하고 김준혁을 바라보았다. 착실한 베테랑의 얼굴을 한 김준혁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대형 길드 두 곳에서 이런 중대한 사항을 S급 헌터. 그것도 협회에 소속된 분에게 숨기는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준혁은 어딘가 세하를 어려워했다. 세하야 이제 24살이 되었는데 일단 서른은 넘어 보이는 그가 이러는 것이 꽤나 답답해 보일 지경이었다.

“미스터 김. 너무 돌려 말하지 맙시다.”


그 모습에는 하워드도 답답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나타난 지 얼마 안 된 던전이 있다. 제너럴 마이트에서는  팀이 그걸 처리하라고 임무를 내렸다.”


*
다음날도 그 전날처럼 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세하는 전날 밤 하워드와 김준혁이 한 말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마스터. 많이 신경 쓰이시나요?
“아무래도 던전이라니 걱정되는 건 사실이지.”

세하는 그러면서도 레이더도 주시하고 있었다. 루이제가 보조하는 덕분에 슈트의 비행이나 기타 여러 가지를 도움 받을 수 있어서 그리 신경이 분산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제너럴 마이트의 위성영상으로 알려진 바로는 지룡 아다만테르가 던전 게이트 근처에 둥지를 틀고 있다고 하니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아다만테르라.......”


세하로서는 협회의 데이터베이스로나 알고 있는 존재였다.


-연천 균열 지대의 깊숙한 지하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몬스터죠. 지룡이라는 별칭대로 땅을 파고들고 습격하는데 능하고 그만치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사실 마스터가 처리한 매스커 웜이나 드바크로브보다 한 수의 존재입니다.
“AAA급이라 봐야하나?”
-그렇죠. 그리고 전 한 가지가 더 걱정됩니다. 바로 트리아람이라는 몬스터죠.


세하는 루이제의 말에서 연천 균열 지대에 존재한다는 4대 필드 보스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워드나 김준혁이 그 놈 언급은 안했는데. 사실 균열 지대에 가장 위험한 몬스터잖아?’


세하는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에 잠시 집중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마스터.
“아!”

루이제의 알림에 그제야 세하는 몬스터의 접근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홧김에 양 손에 펄스 라이플의 빛을 내뿜어 버렸다.




*
“슬슬 위험지대군.”


어디까지나 싶었더니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하워드는 전진을 멈췄다. 같이 장갑차를 타고 가는 김준혁을 비롯한 봉황 길드도 여기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땅이 제법 질퍽한데.’


세하는 지면에 발을 딛자마자 여태까지 말라있던 황무지에서 지금은 진창이 시작되려는 초입에 왔음을 깨달았다.

“슬슬 지룡의 영역이라는 거지.”

하워드의 말에는 어딘가 불길한 느낌마저 서려있었다.

“그놈은 땅속을 헤엄쳐 다니다 보니 주로 다니는 구역이 물러지거든.”


계속되는 하워드의 말에 세하가  찌르듯 말했다.

“경험자처럼 말하네?”
“아.  전임 팀장이 상대했었거든. 그리고 남은 게 오른 팔목 하나였어.”
“미안.......”

세하는 솔직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하워드는 시원하게 웃을 뿐이었다.


“헌터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목숨 걸고 돈 버는 일이잖아? 그러니 각오하고 사는 거지. 게다가 이번에는 너 같은 S급 헌터도 있으니 해볼만하다고 생각해.”

자신을 믿어주는 하워드에 세하는 쓴 웃음만 지었다.


“괜히 부담주기는.”
“아무튼 약속대로, 아니지 갱신인가 아다만테르의 코어는 너 줄게.”
“안 그랬으면 안 도와준다. A급 이상 코어도 다  꺼야.”


세하는 그렇게 조건을 다시 상기하며 앞으로 나섰다.

“일단 내가 정찰하고 오지.”
“아니야. 브로.”


하워드는 손을 내저었다.

“다른 녀석들은 여기 두고 지금부터는 너와  그리고 미스터 김. 이렇게 셋만  거다.”

세하는 그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김준혁이 무장을 제대로 갖추고 다가오고 있었고 뒤에 남은 헌터들은 장갑차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구성하고 있었다.

“그럼 다들  따라오라고.”

세하는 마크2 슈트이기에 비행능력을 묵혀 둘 생각이 없어서 다시 날아올랐다. 하워드는 손을 흔들며 자신은 김준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다.

-소수정예로군요.
“그게 좋겠지. 일단 각기 팀을 이끌 정도고. 김준혁도 보기보다 실력이 좋을 거야. 사람은  딱딱하지만 말이지.”

세하는 잠시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하워드가 무슨 농이라도 던졌는지 김준혁의 표정이 꽤나 곤란해 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냥 저런 쪽에 내성이 없는 거로군.”
-객관적으로 봐도 지금 전력이면 아다만테르를 잡을 수 있습니다.

 사이 이어지는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놀랐다.

“그래?”
-마스터만 해도 S급입니다. 하워드 그린과 김준혁도 A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의 존재들입니다. 이렇게 파티인데  잡는 것이 우습죠.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

아무튼 세하가 먼저 비행해서 다가오는 몬스터나 위험이 없는 지 파악하고 하워드와 김준혁이 그 뒤를 따르며 체크하는 시간이 계속됐다.


“하워드 녀석 말대로 아다만테르의 영역이라서 그런가? 다른 몬스터가 안 보이네.”

세하는 점점 진흙처럼 변해가는 땅을 보며 말했다.


-지극히 자신만을 위한 환경을 만들 뿐입니다. 다른 몬스터의 생태 따위는 관심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위험한 놈이군. 그런데 던전 게이트 마저 막고 있다니 문제군.”


시간이 지나면 폭발을 일으켜 그 안의 몬스터들을 쏟아내는 던전 게이트의 특성상 시간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 그리고 아다만테르 한 개체뿐이라면 라인버스터 슈트는 안 쓰는 편이 나을 겁니다. 기동력을 살리고 화력을 집중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래. 땅속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놈이라니 그 편이 낫겠지.”


세하는 계속 다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저기 보이는 군.”


그렇게 나아간 지 30분 정도 됐을 때였다. 마치 언덕처럼 크게 내려가는 구간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서 마치  뱀 같은 것이 똬리를 틀고 앉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세하도 경험한 바가 있던 던전 게이트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아다만테르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


세하는 일단 하워드와 김준혁에게 통신을 넣고 그 상공에서 대기했다.


“확 그냥 먼저 갈겨버릴까?”
-그것도 좋겠지만 마스터가 혼자가 아닌 걸 생각하세요.

루이제가 일단 세하를 말렸다. 그러는 사이 세하는 아다만테르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같다고는 했지만 그 몸통의 굵기는 1미터는 되어보였고 몸길이는 이미 20미터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게다가 그 비늘의 표면부터가 비범했다. 상당히 날카롭고 단단한 묵빛의 금속질을 띠고 있었는데 마치 동양의 용처럼 몸통의 상단부와 하단부에 땅을 파기 좋을 정도로 튼튼한 발이 4개 달려 있었다.

“머리는 무슨 핏 볼 테리어에 악어가 뒤섞인 꼬라지군.”

투견의 사나운 인상에 파충류 특유의 섬뜩함이 섞인 평에 루이제가 긍정했다.

-이 세계 몬스터들의 유전자는 어떻게 되어먹은 건지 궁금하네요.
“나도 궁금해. 온갖 잡탕에 환상종들은 죄다 튀어나온다니까.”


아무튼 세하는 하워드와 김준혁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도착했다.”


하워드의 통신이 들어오자 세하는 일단 저속으로 비행해 언덕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워드와 김준혁과 합류했다.

“아다만테르가 맞군.”


하워드 또한 세하의 전신슈트와 비슷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헬멧이 둔탁하고 각진 로봇 같은 느낌이라는 것이 달랐다.
아무튼 제법 기능이 많은 탓인지 하워드가 설명을 이어갔다.


“기록에 있는 놈이 맞아. 하지만 지금 상태를 보면 수면 중인  같은데?”
“그렇습니까? 그럼 지금 치면  되겠습니까?”


김준혁은 긴 라이플을 거치하며 물었다. 세하는 그것만으로도 김준혁이 저격계 능력을 갖췄음을 알았다.

“초장거리 저격이 가능하다는 건 알겠는데 화력이 되겠습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탱커에 가깝고 블랙메탈은 으음.......”

하워드가 세하의 슈트를 보고 말끝을 흐렸다.


“왜 그래?”
“아니다. 너는 단순한 파워드 슈트가 아니니 판단을 보류해야 겟군.”

그 말만으로도 하워드나 제너럴 마이트가 세하를 쉽게 보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잘 알고 있네.”
“아무튼 지금 셋만으로 저놈과 싸우는 건 반대야. 오늘은 정찰에 주력하고 베이스로 돌아가서 동료들과 의논해서 계획을 짜야 한다고 본다.”


하워드의 신중론에 김준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하도 반대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것에 거는 것보다야 낫지. 음?’

그때 날카로운 통증이 세하의 머릿속에 느껴졌다.

‘지켜야 한다.......’
‘아오. 하필이면.’

못 참을 것은 아니었지만 세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아다만테르가 말하는 문제가 아니야.’

세하는 매스커 웜에게도 비슷한 일을 겪었었다. 그리고 결과는 하늘에서 드바크로브가 날아와서 매스커 웜을 덮쳤고 세하로서도 제법 아찔한 일을 겪었었다.


-마스터. 불길한 생각 마세요.


루이제도 그런 세하의 마음을 읽었는지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워드 그린 말대로 일단은 여기서 후퇴하죠.
‘그래. 진짜 불안이 현실이 될까 걱정이다.’

세하는 계속 불안한 마음을 느끼며 일단 현장에서 물러났다.



*
다행히 세하가 염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트리아람.’

세하는 다시 구성된 야영지. 그 중에서 자신에게 지급된 텐트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이제. 트리아람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불안을 입 밖으로 꺼냈다.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드바크로브 보다는 머리가 좋은 것 같네요. 섣불리 튀어나왔다가 마스터한테 사냥당할 수 있을 테니까요.

농담인지 모를 소리에 세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아서라. 아직 제대로  데이터도 없는 놈이라며? AAA급 몬스터고.”

세하는 눈앞에서 가상화면을 만들어냈다. 현재 헌터 협회에 수집된 트리아람에 대한 정보였고 다른 해외에서 수집된 것들도 있었다.
어딘가 흐릿해서 제대로 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조류 형태라는 것은 짐작이 되었고 상당한 빛과 열기를 띠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루이제. 내가  대 일로 아다만테르를 상대하면 승산이 어떻게 될까?”


세하의 말에 루이제는 곧장 답을 내놓았다.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장거리에서 에너지를 잘 조절하며 싸운다면 60퍼센트는 승산이 있습니다.
“꽤 높네.”
-그리고 하워드 그린과 김준혁이 가세한다면 승률은 더 높아질 겁니다. 하지만 마스터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니겠죠?
“그래. 지난번처럼  데 없이 강한 몬스터가 난입할  걱정해야 하지. 그게 이 미지의 트리아람일 가능성이  거고.”

세하의 고민이 깊어졌다.
-아무튼 하워드 그린과 김준혁에게도 마스터가 경험했던 것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지금 야영지도 처음 베이스에서 10km 이상 물러나서 세운 걸로 압니다.

루이제의  대로였다. 지금의 헌터들은 생각 이상으로 잘 따라오고 있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세하는 자꾸만 불안함이 느껴졌다.


“안되겠어.”

세하는 몸을 일으켰고 곧장 텐트를 나섰다.


-마스터?
“당장 다 철수하라고 해야지. 기분이 안 좋아.”


세하는 하워드와 김준혁의 텐트를 찾아갔다. 아니 찾아가려고 했다.


“어?”


지금 한밤중이어야 정상일 하늘이 밝았다. 마치 해가 고속으로 뜨는  마냥 야영지를 비추고 있었다.
세하는 꿈인가 싶어서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그건 야영지에 있는 다른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스터. 급격한 열반응입니다!

그 때 루이제의 다급한 경고가 세하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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