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불편한 연합
주변 지형에 맞게 황색으로 도색된 장갑차는 순식간에 세하의 앞에 도달했다.
장갑차의 옆면에 루이제의 말대로 커다란 주먹에 그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장식된 표식이 보였다.
북미 최대 헌터 길드인 제너럴 마이트의 표식이었다.
‘일 참 꼬이네.’
되도록 마주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에 모두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세하가 체념의 한숨을 내쉬는 사이 장갑차의 사이드 해치가 열리면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렸다.
“오! 블랙메탈!”
그들도 세하를 알아보고 외쳤다. 거기에 세하는 지금 헬멧을 쓰고 있음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스터 표정이 무슨 대박 썩은 벌레라도 씹은 것 같네요.
‘너 표현이 끝내준다?’
세하가 그렇게 루이제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제너럴 마이트의 헌터 중 리더로 보이는 흑인 남성이 세하의 앞에 와 섰다.
“나는 하워드 그린이라고 한다. 소문이 자자한 블랙메탈을 만나니 반가워.”
2미터가 훌쩍 넘는 라인버스터 슈트임에도 하워드가 앞에 서자 그리 밀리지 않는 체구였다. 그래서 세하는 내심 감탄했다.
-팀원들 대부분이 파워드 슈트로 무장했군요.
루이제가 본 대로였다. 하워드와 함께 내린 제너럴 마이트의 헌터들은 전부다 로봇이 연상될 정도로 중장갑을 갖춘 파워드 슈트 차림들이었다.
“흐음. 봉황 길드인가? 너희들은 너무 준비를 안 하고 온 거 아닌가?”
“뭐라고?”
봉황 길드에서 리더 격인 헌터가 거기에 발끈했다.
“그렇지 않나? 보아하니 쓸데없이 발목이 잡혀서 헤매는 거 같은데 내 말이 틀렸나?”
“크윽.......”
봉황 길드 쪽에서는 사실인지라 달리 말을 못하고 있었다.
“북미 쪽 길드라면서 우리말을 잘 하네.”
세하는 그 순간에 끼어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지부다 보니 말을 안 익힐 순 없지.”
하워드는 그런 세하를 보고서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고마운 일이긴 한데 너희들은 왜 여기 온 거냐?”
“뭐?”
“그렇게 너희들은 발목 잡힐 일이 없는데 왜 온 거냐고? 날 알아보고 온 거냐?”
세하는 여전히 라인버스터 슈트를 착용하고 있어서 헬멧 채 머리를 들이미니 꽤나 위압적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여기 봉황 길드 친구들은 실력이 괜찮았어. 동료가 위험해져서 지키느라 그랬을 뿐. 내가 틈을 만들기 무섭게 여기 킬러웜들을 쓸어버렸다고.”
세하가 이렇게 봉황 길드를 두둔하자 하워드를 비롯한 제너럴 마이트의 헌터들은 어딘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루이제. 저 장갑차 내부에 누가 있어?’
그러는 사이 세하는 루이제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눴다.
-부상자로 보이는 이와 그를 돕는 사람이 있군요. 아무튼 일단 찌르고 보세요.
루이제 또한 강경하게 나갈 것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하는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하워드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쪽에서도 부상자가 있는 모양인데?”
“큭.”
하워드는 정곡을 찔렸는지 신음성을 냈다.
“블랙메탈이니 뭐니 하며 이렇게 슈트를 쓰지만 내 본질은 초능력자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아무래도 너희들도 곤란해지니까 이쪽을 보고 온 거 아니야?”
세하가 계속 날카롭게 말하자 하워드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거 쪽 팔릴 일이라서 말하기 어려웠는데 잔인할 정도로 쑤셔버리는 군.”
하워드는 이내 체념하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보니 제너럴 마이트나 봉황 길드도 상황이 같았다.
“디텍터 역할 하는 헌터가 갑자기 쓰러져서 죽어가니 방법이 없었지.”
하워드가 말하는 상황은 봉황 길드와 비슷했다. 세하는 참 솔직하지 못한 것들이라고 속으로 욕했지만 그렇다고 두 길드 사이에 끼여서 고생할 생각도 없었다.
‘루이제. 너 탐지할 수 있지?’
-탐지는 항상 해왔습니다.
‘그런데 엑펠트로 추정되는 것들 때문에 정신오염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
-저는 격이 다릅니다. 마스터도 마찬가지고요. 아무튼 탐지반응감도를 올릴 필요가 있겠군요.
여기까지 대화가 이어지나 세하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양 길드 부상자들을 옮기자.”
“뭐?”
하워드부터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세하는 제너럴 마이트 측의 장갑차를 가리켰다.
“저거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타겠구만. 좀 빌리자고.”
“크흠.......”
봉황 길드의 부상자까지 옮기는 문제 때문에 하워드가 고민했다. 하지만 세하는 명쾌할 정도로 말했다.
“내가 책임지지. 나는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의 S급 헌터니까.”
이렇게 자신의 권위까지 내세우자 하워드는 못내 수긍했다. 봉황 길드 측도 동의했다.
-마스터. 어떻게 하실 참이죠?
‘내가 좀 힘 좀 쓰고 이득이나 뜯어내야지.’
세하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세하가 공중에서 호위하고 장갑차로 부상자들을 균열 지대 방어선으로 옮겼다.
방어선에는 당연히 유사시에 대비해서 대한민국 헌터 협회가 상당한 전력과 시설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그 덕에 부상자들을 빠르게 후송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내가 탐지 역할을 할 테니 너희들이 몬스터를 잡아. 그리고 나오는 코어 중 A급 이상 것은 내가 전부 가지도록 하지. 동의하나?”
부상자들을 보내고 장갑차와 함께 돌아온 세하가 선언했다.
제너럴 마이트와 봉황 길드 양측은 처음에는 반발했다.
“그럼 알아서들 하시던가. 나는 혼자서 움직여도 상관없는데?”
세하가 이렇게 배짱으로 나오자 양 길드는 서로를 불편한 기색으로 바라보더니 끝내 수긍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양 측 전력이 상당한 편이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이곳에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이 명분이 안 서기 때문으로 보였다.
-마스터. 갑자기 장사꾼이 다 되신 거 같아요.
“그래? 하지만 이거 나름 힘든 일이야. 물리적인 현상이나 힘으로만 싸우는 이들은 몰라도 이거 정신적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은 영향을 제대로 받는 거 같아.”
세하가 마트2 슈트로 공중에 떠올랐고 양 길드의 헌터들은 제너럴 마이트의 장갑차에 모두 승차에서 따라가는 구도가 되고 말았다. 그런 속에서 세하가 투덜거렸다.
“벌써부터 머릿속이 지끈거리는 기분이야.”
-마스터가 그럴 정도라면 이곳이 위험하다는 증거군요.
“안 그래도 벌써 뭔가 오는 거 같은데?”
세하가 전면 카메라를 확대해보니 일단의 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에 처리했던 드바크로브가 떠오를 정도로 뭔가 살벌하고 커다란 모습들이었다.
“상공에서 몬스터 접근 중.”
세하가 공용 주파수로 전달하자 지상의 장갑차가 멈춰서더니 헌터들이 우르르 나왔다.
순식간에 대공포 진지가 연상될 정도로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세하가 손을 쓰기도 전에 공중에 나타난 몬스터들을 대공포화로 모조리 지상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이거 진짜 빠르네요.
루이제 조차도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하는 자신이 사이킥 에너지를 별로 쓰지 않고도 몬스터들을 처리한 덕분에 휘파람만 나올 지경이었다.
“예민해지긴 했어. 뭐 계속 이렇게 가보자고.”
*
세하의 사전 감지 덕분인지 헌터들은 별 다른 사고 없이 나아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물론 각자의 GPS나 통신기기들이 문제없었고 세하가 루이제를 이용한 넓은 탐지 범위 때문에 돌아갈 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에서 야영하겠다.”
날이 제법 어둑해진 상황에서 제너럴 마이트 측의 리더. 하워드가 그리 말하자 봉황 길드 측은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만치 보수가 비싸질 거야.”
세하가 간만에 지상으로 내려와 말했다.
“그건 감당할 수 있다.”
하워드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긴장한 기색이 보였지만 그만치 과감해진 모습도 보였다.
“흐음. 제너럴 마이트 측에서 뭔가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군.”
“블랙메탈 앞에서 숨기긴 어렵겠군. 저번에 AA급 몬스터를 둘이나 잡지 않았나? 그 덕에 우리 상층부에서 나머지 둘도 잡아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하는 거 보니 어렵진 않겠네. 내가 사전에 탐지하긴 했지만 몬스터가 나오기 무섭게 벌집을 냈잖아?”
세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봉황 길드는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제너럴 마이트 측과 보조를 맞춰서 몬스터들을 격퇴했다. 그 덕에 세하는 별 다른 에너지 소모가 없었다.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왔군요. 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준혁이라고 이름을 밝힌 봉황 길드의 리더는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못내 수긍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제너럴 마이트 측에 신세를 지기도 했고 말이지.’
정신오염자의 호송 때문에 그럴 만도 했고 그들도 본래는 초입 부근의 정찰에서 그칠 수준이니 어쩌다 보니 깊게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튼 다들 실력이 확실해서 별 문제 없겠어. 이래서 프로들인가?’
각자의 불만은 있어도 공통의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대처하고 협력하고 있었다. 세하는 이런 점에서 양 길드가 한국과 미국에서 알아주는 헌터 집단임을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불편하긴 하네.’
세하가 아예 인명을 경시하는 성격이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다. 하지만 살다보면 하기 싫은 일이나 상황에 휘말리는 것도 일반인이던 시절에 아는 일이니 잘 참을 수 있었다.
아무튼 제법 높이가 있는 지대에 캠프가 차려졌다. 여러 상황을 상정하고 온 탓인지 양 길드는 야영 준비에도 별 어려움이 없었다.
세하도 텐트 하나를 제공받았다. 그 덕에 세하는 잠시 슈트를 해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스터로서는 불편하긴 하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지. 하지만 이용할 건 확실히 이용해야지.”
세하는 이미 결정을 내려서 더 이상 뒷말하진 않았다.
-그래도 마스터의 정신에 부하가 가해지는 것 같아서 저는 걱정입니다.
“괜찮아. 계속 내가 지오 그라함의 전생자라는 것만 깨닫게 되고 있어. 그 당시 지금보다 훨씬 지독하고 엿 같은 것들하고 매일 싸웠잖아?”
세하가 생각 이상으로 평정을 보이자 루이제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어이. 갑자기 조용해지면 불안하다고.”
-뭔가 놓친 건 없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진 루이제의 말은 세하로서도 그냥 넘겨짚을 수 없었다.
“그래?”
-네. 연천 균열 지대는 한동안 통제 할 수 없는 지대로 인해 외각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막아내거나 정기적으로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식으로 유지해왔습니다. 거기에 봉황 길드나 제너럴 마이트가 개입한 적은 없습니다.
루이제는 생각한 바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스터가 AA급 몬스터 둘을 처치하고 S급 헌터로서 활동을 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죠. 아무래도 두 길드는 앞으로 마스터를 귀찮게 만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엑펠트에 대해서 아는 바도 제법 있는 거 같고요.
“제너럴 마이트는 좀 아는 것 같은데 봉황 길드는 안 그런 눈치던데?”
-봉황 길드의 전력이 살짝 처지긴 합니다만 저 정도면 상당한 정예입니다. 저 정도 상위 헌터들을 그냥 던져 넣는 식으로 이곳에 보내진 않았을 겁니다. 사실 양 길드에서 탐지자이니 디텍터이니 하면서 초능력자나 그에 준하는 정신파 능력자가 배치된 것만 해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러니 마스터도 마음을 단단히 먹으셔야 합니다.
루이제가 말하는 내용을 깨달은 세하는 고개를 묵묵히 끄덕였다.
“알아. 그런데 지금 내 힘으로 저것들이 사고 칠 때 처리할 수 있겠어?”
-라인버스터 슈트라면 가능합니다. 사실 느와르레이드 슈트도 처음과는 다르게 파워업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주 최악의 상황일 때 상정하는 겁니다.
“그러지 않기를 빌어야지. 위험한 적이 눈앞에 있는데 역사적으로도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박살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세하는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하고 몸을 뉘였다. 하지만 그렇게 휴식을 취하는 걸 외부에서는 용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헤이. 브로. 시간 괜찮은가?”
텐트 밖에 제법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보니 제너랄 마이트의 하워드가 찾아온 것 같았다.
‘언제 봤다고 브로야.’
-그래도 친근한 모양이죠. 봉황 길드의 김준혁 헌터는 딱딱하게 경어를 쓰잖아요?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뒤이은 목소리에 세하는 생각을 달리해야 했다.
“김준혁입니다. 저도 왔습니다.”
아무래도 봉황 길드 쪽에서도 대화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거기에 세하는 표정이 살벌하게 변하고 말았다.
‘이것들 수작부리기만 해봐라.’
아무튼 세하는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