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대면 (14/72)



〈 14화 〉대면

세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니. 오늘 어떻게 할까 고민이랄까?’


이제는 비행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할 정도가 되었다.


-마스터. 오늘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몰라요.


물론 루이제는 평소처럼 경고하고 있었다.


“알아. 하지만 그건 협회장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지.”


세하는 그렇게 말하고  없는 구름이 펼쳐진 하늘에서 목적지가 표시된 디스플레이를 응시했다.

“다 왔다. 얼른 가자고.”


세하의 몸이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했다. 처음 연습했을 때에는 죽을 둥   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이제는 마크2 슈트, 느와르레이드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쿠웅!

대한민국 헌터 협회.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서울국제금융센터와 맞먹는 높이를 지닌 마천루. 하지만 세하는 슈트 채로  앞에 당도했다.


“흠.”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놀라며 시선이 집중됐지만 세하는 개의치 않았다. 마크2 슈트인 느와르레이드는 아무래도 전체적인 외형이 샤프하고 메탈릭한 검은색이 잘 어우러지는지라 그 모습에 감탄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어서 세하로서는 하등 눌릴 것도 없었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슈트 상태로 로비로 들어가자 다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아무래도 헌터 등급 시험장도 겸하고 있었고 여러 행정적인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기에 많은 헌터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했다.


“블랙메탈이다!”
“맞아. 그런데 슈트가 뭔가  변한 거 같은데.......”


그래서 주변의 관심이 쏟아졌지만 세하는 시선도  주고 그대로 로비 데스크로 향했다.

“헌터 협회 본부에 어서오십시오.”
“블랙메탈 POA-14137897."

단정한 제복차림인 여성이 공손하게 인사하자 세하는 류한호가 알려준 코드를 말했다.

“민세하 헌터님이시군요. 협회장님께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주운찬을 만났을 때처럼 전용 엘리베이터를 안내받았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도 세하는 슈트를 해제하지 않고 있었다.
50층이 넘어가는 고층이지만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상당했다. 그리고 가벼운 알람음과 함께 최상층인 57층에 도착했음을  수 있었다.

‘흐음.’

소위 잘사는 이들은 고층 빌딩의  위층에 펜트하우스를 꾸미고 산다고 들었다.
지금 눈앞의 광경이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화려하기 보다는  넓게 터놓은 공간을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한 모습이 역력해 보이는 것이 다른 점이었다.

“오. 민세하 헌터인가?”


 넓은 공간이 끄트머리에 위치한 고풍스러워 보이는 책상에서 류한호가 몸을 일으켰다. 처음 봤던 대로 흐트러짐 없는 정장차림이지만  당당한 풍채가 어딜 가지 않아서 세하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다시 뵙는 군요.”

세하는 일단 슈트를 해체했다. 그래도 대한민국 헌터 중 최고위직이라는 협회장을 만나는 자리인자라 정장에 가까운 단정한 차림새였다.

“일단 앉게.”

류한호는 근처의 소파를 권했다. 세하가  사이 둘러보니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서 훤한 하늘이 보였고 그 밑에 드넓게 펼쳐진 도시의 풍경이 보이는 한 층이 통째로 구성된 드넓은 사무실이라는 게 옳은 공간이었다.
그런 속에서 앉자 있자니 세하는 기분이 이상했다. 물론 전생인 지오 그라함 때는 엑펠트를 상대하기 위해 진공의 우주공간을 전장 삼아 활보했으니 이런 광경에 눌린다는 건 아니었다.


“어찌 보면 비효율의 극치군요.”
“허허허. 그런가? 하지만 사람의 자리라는 것은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것이 많은 법이지.”


그렇게 말하는 류한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럼 지난 번 못했던 이야기를 해도 되겠나?”
“그 전에 이걸 봐주시죠.”

세하는 잠시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작은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났다.

“아공간 인벤토리?”
“사실 각성하기 전에는 근근이 살아가는 일반인이었는지라 이거 마련하는데 쌩돈이 깨졌죠.”


세하는 그렇게 강조하며 그 안에서 뭔가를 툭툭 던졌다.
B급 던전에서 나왔던 왕의 투구, 매스커 웜의 이빨이 붙은 머리의 일부 그리고 드바크로브의 부리였다.

“.......”

그것들을 바라보는 류한호의 표정이 희한했다. 입가는 웃고 있었지만 두 눈은 믿기지 못해 크게 떠져 있었으니 세하로서는 절로 웃음이 나올 만 했다.


“제가 지금까지 세운 공적의 증거들입니다.”
“연천 균열 지대에서 벌어진 일들이 자네의 작품이었군.”

류한호는 계속 그 이상한 표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매스커 웜 그리고 드바크로브는 AA급 몬스터로 알고 있습니다. 전 그걸 단독으로 잡았습니다. 혹시 증거를 더 대라고 말씀하신다면 균열 지대에 썩어가고 있는 시신들을 보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하하! 아닐세. 이 만큼 확실한 증거가 어디에 있겠나? 자네가 아주  공을 세웠어. 당분간 그쪽 균열 지대는 수비하기 수월하겠군.”


류한호는  이상 의심하지 않고 세하의 공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공을 세우는 이유가 뭔가?”
“아무래도 원하는 게 있으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공적이 없다면  요구를 허무맹랑하게만 보실 테니 그런 것이죠.”

세하는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제 헌터 등급을 S급으로 등록해주시죠.”
“그건 당연한 걸세. AA급 몬스터 둘을 단독으로 잡았으니 말일세. 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온 것은 아닐 테니 더 말해보게.”

류한호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놈이 뭘 말하는지 들어 주마라는 느낌이 강해서 세하는 살짝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소속은 이곳 협회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자율행동권을 부여해주십시오. 대한민국에 초유의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협회장님의 소집에도 불응할 권리 말입니다.”
“크흠.”

류한호가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것만해도 꽤 무리한 요구긴 하겠지.’

류한호가 제법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깨닫고 세하는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현 게이트 사태에 대한 모든 정보의 공유를 원합니다. 특히 최근 파주 지역에 나타난 사건들 말이죠.”

이제 세하는 원하는 것들을  말했다.

“S급으로 등록은 당연한 일일세. 그리고 자율행동권도 좀 무리긴 하지만 자네 정도라면 못 내줄 것도 없네.”

류한호는 일단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두 눈에는 제법 노기가 서려있었다.

“하지만 세 번제는  힘들  같군.”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 일들 때문에 제가 각성했고 나름 대처를 잘했다고 봅니다만. 아무래도 공개를 못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세하가 한층 날카로운 기세로 물었다.


“세상의 일들은 모두가 알 수 없는 법일세.”
“진실의 무게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저도 협회장님이 협조하지 않으신다면 생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길드인 봉황 길드로 갈 수도 있고 미국의 최고 길드인 제너럴 마이트로 갈 수 있습니다. 그 두 길드라면 굳이 이곳 협회가 아니더라도 제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만?”


세하의 공세가 한층 강화됐다. 거기까지 나오자 류한호는 아예 얼굴이 화강암처럼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곳은  되네.......”
“흐음. 저는 저의 처신을 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혹시 협회장님은 대한민국의 모든 헌터들이 모두 협회장만을 따라야 한다는 망상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하하하! 이거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군. 하지만 말일세.”


류한호가 몸을 일으켰다.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세하도 마주 일어나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일세.”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 저도 협회장님을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사람은 그런 점에서 서로 통하고 말했다. 그래서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것 참. 이제 약관을 넘었을까 말까한 자네한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네.”
“저도 협회장님처럼 권위 있는 분한테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군요.”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서히 거리를 벌렸다.


“여기서 싸움을 벌이면 엉망이  텐데요?”
“상관없네. 요즘 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사나흘이면 충분히 복구된다네.”


세하는 아직 슈트를 장착하지 않았다. 단지 손끝에 흰빛의 바직거리는 기운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상당히 강맹한 기운을 내뿜고 있어서 류한호의 시선이 와 닿았다.

“자네. 초능력자인가?”
“일단 의지만으로 힘을 쓰는 거니 그게 맞겠죠. 사실 각성자이니 뭐니 구분을 짓는 것도 우스운 거긴 합니다.”
“전력을 다하는 것이 좋을 것일세.”
“압니다. 오로지 육체의 무술만으로 정점에 오르신 무성(武星)을 제가 몰라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세하는 손에 어린 흰 기운을 그대로 류한호에게 던졌다.


파치치칙!

제법 강력한 뇌전의 덩어리였지만 류한호는 아주 쉽게 주먹 한 방에 그걸 부셔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세하의 눈앞에 쇄도해 들어갔다.

“젊은 친구가 제법 재능이 있었지만 만용이 지나쳤군. 일단 교육부터 들어 가갔네.”

그 말만 보면 당장 죽이지는 않겠다는 것 같았다. 물론  강력한 주먹에 얻어맞으면 일반인은 유명을 달리 할 수도 있었다.

-마크3. 라인버스터 슈트 기동.


그때 루이제의 차분한 음성이 세하의 귓가에 들려왔다.

“?!”


그 짧은 순간에 세하의 몸이 변화했다. 아니 순식간에 검은 금속질의 물질이 세하를 감쌌고 이내 그 육중하고 단단한 슈트로 변화해 바로 류한호의 앞에 나타났다.


콰쾅!

그리고 세하의 주먹과 류한호의 주먹이 충돌했다. 그 충격파만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주변의 모든 기기들이 박살나 휘날렸다.


“마... 말도  되는.......”

류한호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세하는 여전히 주먹을 뻗은 채 헬멧의 바이저에서 안광을 발하며 류한호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에 대한 최신 정보는 부족하셨나 봅니다. AA급 몬스터 둘을 단독으로 잡았다고  때부터 대비를 하셨어야죠.”


신장은 2미터 이상에 그 너비도 상당했다. 두 팔은 고릴라의 것 마냥 두텁고 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가히 금속으로 현실화된 야생의 폭력과도 같아 보였다.

“돌입!”


하지만 류한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가 외치기 무섭게 갑자기 사방의 유리벽이 변했다.
단순히 유리벽이라 생각했던 것이 온통 어두워지며 그 안에서 몇몇 존재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같이 고글에 마스크. 그리고 파워드 슈트가 연상되는 차림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일제히 세하에게 총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숨겨둔  수가 있었군.”

하지만 세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세하의 주변에 깔린 사이킥 필드가 계속 파장을 발하며 총탄들을 튕겨내고 있었다.


콰앙!

하지만 유효한 공격도 있었다. 포탄처럼 날아드는 강력한 공격에 세하의 슈트가 적중당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뿐이었다. 세하가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류한호가 주먹을 불끈 쥐고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부하들 뒤에서 숨지는 않으시겠다는 거군요.”
“나를 노리고  자다! 당장 제압하라!”

류한호가 다시 병사들에게 외쳤다. 하지만  병사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뇌전의 격류에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음?”

류한호가 놀라서 바라보니 어느새 세하의 양 손에서 바직거리는 기운이 어려 있었다.

“그래봐야 장비 좀 좋은 병사에 불과하군요.”
“크윽!”

류한호는 이를 악물었다. 양 손에 유형된 기운이 어리는  보니 기력을 집중하는 것 같았다.

‘권강(拳罡)인가?’

분명 저 정도면 세하의 슈트에도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세하는 그걸 그냥 맞아줄 생각도 없었다.

파치치칙!

세하의 양 주먹에도 류한호의 권강에 지지 않을 뇌전의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걸  류한호는 기세에 눌린 듯이 중얼거렸다.


“아니... 어떻게 그런.......”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법이지요.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면 허심탄회하게 말씀드리죠.”
“허허허... 여기 까지 왔는데 꼬리만 개처럼 물러날 순 없네.”
“무인의 자존심이라 이겁니까? 그럼 후회 마십시오.”


세하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내뻗으려는 때였다.

콰앙!

갑자기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문이 박살나 떨어져나갔고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거야 원.”


세하는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반응들이 제법 큰 것에 각성자들이 몰려온 것을  수 있었다. 그래서 혀를 차는데 루이제의 음성이 뭔가 뽐내는 것처럼 들려왔다.

-라인버스터 슈트의 성능을 한껏 발휘할 수 있겠네요.
“그래. 죽지만 않게 해줘라.”

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반응과 다르게 세하의 헬멧 바이저에 나오는 빛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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