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진정한 사냥
끄아아아!
세하의 전신이 거의 코앞까지 다가오고 나서야 드바크로브의 한 쪽 머리가 세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세하의 담력은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태였다. 온통 흰자위 밖에 안 보이는 살벌한 눈을 향해 세하는 사이킥 블레이드를 그어버렸다.
키아아아!
처음과 달리 제법 날카로운 괴성이 터져 나왔다.
“큭!”
세하는 전신에 가해지는 막대한 중력에 괴로웠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슈트를 다시 상승시켰다.
그 덕에 드바크로브의 왼쪽 머리는 큰 자상이 그어지며 검붉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치이익!
키에에에!
그리고 그 검붉은 피가 매스커 웜에게 닫자 마치 산성액이 닿은 것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르기 시작했다.
“서로 독인가?”
-말할 사이에 더 공격해요.
루이제의 채근이 이어지자 다시 세하는 드바크로브에게 달려들었다.
드바크로브는 세하가 계속 달려들자 어떻게든 대비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몸에 붙어 있는 매스커 웜이 가만있지 않았다.
3쌍의 앞발이 맞닿는 드바크로브의 몸을 찍었고 지네 같은 하체가 그대로 드바크로브의 다리부터 휘감기 시작했다.
‘찬스!’
세하는 거기에 더욱 힘을 얻었다. 과격하고 빠른 비행 때문에 전신의 뼈가 후들 거릴 지경이었지만 드바크로브를 중점적으로 베었다.
가히 거대한 칼날 자체가 날아들어 베는 격인지라 드바크로브의 전신에 상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드바크로브의 피가 흘러 매스커 웜에게 타격을 줬고 매스커 웜의 발악에 말려들어 드바크로브도 데미지를 입고 있었다.
“헉... 헉........”
세하는 다시 공중으로 올라서서 숨을 골랐다.
-현재 사이킥 에너지 총량은 18퍼센트입니다.
왠지 숫자에 힘을 주어 말하는 것 같은 루이제였다.
“지금이라도 호텔로 날아가면 될까?”
-그것보다는 지금 무리해서 저 불쌍한 생명들을 거둬주시는 건 어떨까요?
루이제의 제안에 세하는 피로에 조금은 흐려진 눈으로 두 몬스터의 모습을 보았다.
이미 서로가 뒤엉킨 가운데 이제는 괴성을 지를 힘도 없어서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또 다른 몬스터가 오진 않겠지?’
루이제가 침묵하고 있어서 세하는 그런 점에서는 안심하고 있었다.
-마스터.
세하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루이제가 어딘가 비장한 느낌으로 말했다.
“왜?”
-마치 전생의 마지막 순간 같은 느낌입니다.
순간 세하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항상 꿈꿔서 기억이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네.”
-지금은 다릅니다. 저 두 몬스터의 코어가 있다면 마스터가 살아나갈 방법이 있으니까요.
“?!”
세하는 그 순간 전류가 온 몸을 휩쓰는 느낌이 들었다.
“젠장! 살려면 어쩔 수 없군.”
세하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매스커 웜과 드바크로브가 잘 내려다보이는 위치에서 디스플레이 상의 과녁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키이잉!
블릿츠 캐논은 지금 에너지가 부족해서 2개 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세하의 양팔에서 굵은 총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블릿츠 캐논 2문. 거기에 출력을 최대로 높인 펄스 라이플 2정. 거의 모든 사이킥 에너지를 날리는 각오로 가십시오.
“알았어!”
세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금 뇌전의 기둥과 자신의 상반신을 뒤덮을 정도의 광탄 2발이 세차게 격발되었다.
파콰콰쾅!
폭발에 휘말린 몬스터 둘은 그대로 갈가리 찢겨나갔다.
세하로서도 뜻밖의 광경인지라 놀랐지만 이내 사방으로 밀어닥치는 폭풍과 충격파에 이리저리 휘날려야 했다.
“으윽.......”
그렇게 휘날리다가 그대로 지면에 떨어졌다. 그나마 사이킥 필드와 슈트의 내구력이 있어서 세하는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크윽... 어떻게든.......”
세하는 어느새 슈트의 무게가 전신을 누르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에너지 총량이 어때?”
-3퍼센트 미만입니다.
안 그래도 헬멧의 디스플레이도 지직거렸다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코어는 보여?”
-네. 매스커 웜과 드바크로브. 두 개체는 완전히 침묵했습니다. 아공간 인벤토리를 가동하겠습니다.
세하가 직접 움직이기 힘든 터라 루이제가 보조해서 활동을 개시했다. 흐릿해진 디스플레이에 아공간 인벤토리의 비틀린 흐름이 보였고 이내 뭔가 커다란 것을 빨아들이는 것도 세하는 볼 수 있었다.
“이... 이 게 뭐야?”
두 몬스터의 코어가 합쳐진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매스커 웜은 세하가 공격하기 전 몰려든 몬스터들 대다수를 잡아먹었었다.
세하의 눈앞에서 찬란한 빛을 발하고 있는 코어는 무슨 커다란 원반을 보는 것 같았다. 그 크기가 거의 상반신을 덮을 정도인지라 세하는 어안이 벙벙할 노릇이었다.
-마스터.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을 잘 들어주십시오.
“알아. 드레인라이징 할 거 잖아?”
세하는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사이킥 에너지를 보고 있었다.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잔량이 이제 깜빡이고 있을 지경이니 세하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 가해질 겁니다.
“사냥이랍시고 거의 꽁으로 두 놈 잡았잖아? 시행해!”
-네!
루이제의 대답이 무척 힘차게 들린 것은 세하의 착각이었을까? 그리고 세하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
“연천 균열 지대 말인가?”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 류한호는 지금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네. 최근 일주일 사이에 계속해서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가 고공에서 낙하했다가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류한호의 책상 앞에는 지금 홀로그램 영상이 하나 떠 있었다. 연천 균열 지역의 대략적인 지도였는데 대부분 외각 지역에 점멸되는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흐음.”
류한호는 특유의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설마. 그 놈인가?”
류한호는 뻔뻔하리만치 자신을 지나쳤던 청년을 떠올렸다.
“설마 그럴 리가........”
류한호는 자신의 생각을 금세 부정했다. 하지만 뒤이은 통신이 그를 자극했다.
“급보입니다! 필드 보스급 몬스터 둘이 소멸했습니다!”
“뭐라고?”
류한호는 아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어도 그것들은 AA급 몬스터들인데? 한꺼번에 둘이나 소멸했다고?”
류한호는 보고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A급 헌터 30명은 동원해야 잡을 수 있는 것들인데.........’
류한호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대체 누가... 정말 그 놈인가.......’
류한호의 마음속에는 점점 세하의 모습이 커지고 있었다.
*
지오 그라함은 사실 그리 교우 관계가 좋지 못했다.
지구연방군의 초에이스 파일럿이자 최강의 사이킥커. 워낙 연방군 내에서 독보적인 존재인지라 다들 그를 어려워했다.
-마스터.
물론 PLB 기어 엘렉티오의 AI인 루이제는 달랐다.
“왜? 뭐가 그리 궁금한데?”
-제작자들은 왜 저에게 이런 호기심을 심었을까요? 저는 마스터라는 존재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지금은 출격에 대비해서 지오는 엘렉티오의 콕핏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파일럿과 AI는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심고 싶었겠지.”
지오는 파일럿 시트에 몸을 깊숙이 기대고 말했다.
-공동운명체요?
“그래. 그래서 아마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하게 설계했겠지? 그런데 알고 나면 이런 재수 없는 놈도 없을 거라 생각할 걸?”
-아직 모르겠습니다.
루이제는 아직 지오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계속 관찰해봐. 그럼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 사이킥 링크 시스템이라는 건 아무래도 인간의 감정이 원동력이야. 그것에 연관된 너라면 참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될 거야. 특히 엑펠트라는 놈들과 마주치면 아주 더러운 꼴들을 보게 될 거야.”
-엑펠트.......
루이제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들을 상대할 때 마스터는 어떻게 하셨나요?
“사냥했지.”
-사냥이요?
“그래. 사냥. 혹시는 너는 그것들을 정면에서 당당하게 맞붙어 싸울 줄 알았어? 아니야. 그것들은 무슨 수를 써서든 없애야 해. 사냥이라는 건 그런 거야. 어떻게든 상대가 죽고 내가 살면 되는 거야.”
*
-마스터.
“우음......”
세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여긴 뭐야?”
세하는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슈트가 본래의 기능을 발휘해서 헬멧의 디스플레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매스커 웜의 몸 안이랄까요?
“뭐?!”
루이제가 나직하게 말하는 소리에 세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맞긴 하네.”
보랏빛의 갑각들이 눈앞에 보였다. 아무래도 세하가 기절한 사이 루이제가 슈트를 움직여서 이 안에 둔 것 같았다.
-드바크로브의 깃털도 상당한 강도더군요.
“윽.”
그리고 조금만 나오자 드바크로브의 머리 중 하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야말로 목일 뿐 그 밑의 부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스터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공격 덕분에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몬스터의 시신 덕분에 근처에 몬스터들이 다가오질 못하고 있습니다.
“찝찝해.”
슈트의 방호 기능이 완벽에 가까워서 악취나 더러운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세하는 표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사냥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거라면서요?
그때 들린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멈칫했다.
“하하하... 그때 꿈을 꾸긴 했어. 그때 너는 워낙 물어보는 게 많았는데.”
-그랬나요? 한 번씩 이렇게 충격을 받으실 필요가 있겠네요. 전생의 기억을 살릴수록 저에 대한 애정이 한껏 일어나지 않나요?
“아주 더럽도록 올라가더군. 어떻게 주인이 기절할 지경으로 시술을 하냐?”
세하는 그제야 루이제가 가한 시술을 떠올렸다.
-드레인라이징에 들어가라는 건 마스터의 지시였습니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 상태였다면 사이킥 에너지가 다 돼서 아마 슈트의 무게가 마스터를 짓눌렀고 마스터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사망하셨을 겁니다.
“윽!”
팩트였다. 묵직하다 못해 세하를 휘청이게 할 말에 세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할 말 없군.”
-하지만 그 덕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셨습니다. 보시겠어요?
세하의 눈앞에 각종 그래프가 떠올랐다.
“확실히 능력치가 올라갔네.”
-네. 그 덕에 마스터로서는 여러 가지로 이득이 있습니다. 사이킥 에너지의 총량이 대폭 올라갔고 신체적인 강화도 상당하답니다. 그리고 또........
루이제의 말이 길어지자 세하는 문득 불안함을 느꼈다.
“왜 그래? 뭔가 빼먹었어?”
-아, 마스터가 기절해 계신 시간을 생각했어요. 거의 하루였네요.
“.......”
세하는 뭔가 아득함을 느꼈다.
“그동안 별일이 없었던 게 용하군.”
-네. 협회 데이터베이스에서 AA급으로 정해진 몬스터 둘을 처리해버렸으니 이 정도는 싼 대가죠.
루이제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갑자기 핑거스냅을 했다.
“뭐야?”
물론 루이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소리만이 명확하게 전해졌다. 그럼에도 세하는 순식간에 눈앞의 영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마크3. 라인버스터 슈트가 개방되었습니다.
“뭐?”
세하는 보이고 있는 슈트의 영상에 잠시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기존의 슈트는 아무래도 세하의 체형이 딱 맞아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의 것은 마치 고릴라처럼 양팔이 길고 두터웠고 전체적인 모습도 2미터가 넘는 높이에 상당히 육중한 형태였다.
-이 슈트를 운영하려면 역시나 적응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마크2 때 보다는 수월할 걸로 예상되네요. 게다가 이름 그대로 라인을 붕괴시키기 위한 슈트이니 협회에 가서도 꽤나 유용하게 쓰일 겁니다.
“으음... 그 정도로 해야 하나?”
세하는 아무래도 기존의 슈트와 궤를 달리 하는 모습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맨몸으로 고위 헌터들을 상대하시던가요.
“류한호 협회장이 그 정도로 위험할까?”
-아무래도 기존의 권력을 쥔 자들은 욕심이 많기 마련이죠. 혹시나 마스터가 가진 정보를 듣고서 아무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모든지 대비하자는 마음이죠. 아무튼 저로서는 한 시름 놓았어요. 마스터의 힘이 생각보다 빨리 커졌으니까요.
세하는 라인버스터 슈트의 영상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앞으로 손을 내저어 영상을 지웠다.
쿠쿵!
날렵했던 마크2 슈트의 모습이 사라지고 확연히 단단하고 커다란 체구를 지닌 마크3 슈트가 세하의 몸을 감쌌다.
헬멧의 전면에 브이자 형의 바이저는 여전했다. 하지만 그 바이저에서 내뿜어지는 빛은 어느 때보다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