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실전 같은 단련 1 (11/72)



〈 11화 〉실전 같은 단련 1
세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좋았지.’

푸르른 창공을 세차게 가르며 날아가는 감각이 좋았다. 그 비행의 첫 순간을 세하는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전생에는 지겹도록 경험하셨던 겁니다.

루이제의 차가운 음성이 그런 세하의 상념을 깨웠다.

“하지만 현생은 아니잖아?”
-슈트의 내구력 자체가 이런 고속비행을 상정하고 있긴 하지만 적잖은 적응이 필요하신  알 겁니다.

지금은 말 그대로 초음속으로 날고 있었다. 구름이던 하늘의 아름다운 광경이던 모든 것이 뒤로 휙휙 지나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토하시면 고문에 가까운 체벌이 있을 겁니다.
“알았다고!”
-곧 착륙지점입니다. 급격하게 강하할 것이니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경고였지만 그 순간이 너무 빠르게 찾아왔다. 급격하게 수직으로 하강하는 압력에 세하는 정말 속이 넘어올 지경이었지만 꾹 참았다.

콰콰쾅!


“........”

속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슈트가 아니었으면 그대로 고공낙하해서 육편이 되지 않았을까 싶은 광경이 세하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건 무슨 크레이터도 아니고.......”
-그만치 슈트의 내구도를 알려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세하는 깊게 파여진 구덩이를 힘겹게 기어 올라왔다. 아니 슈트의 등 부위에 있는 부스터를 이용해서 상승해 올라올 수 있었다.


-목표지점인 연천 E-19구역에 도착했습니다.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은 가히 황무지였다.   포기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엉망이 된 땅만이 보이고 있었다.


‘여기가 예전에 포병훈련장이 있었다고 했었지?’

 그래도 대한민국 포병들이 주로 훈련을 하는 곳이어서 제법 엉망이 된 구역이긴 했지만 지금의 광경은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크르르르!

그걸 증명하는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코모도 도마뱀도 아니고........’


세하는 그 모습에 슈트 안에 있으면서도 맨몸으로 선 기분이 들었다.


-디아볼 리자드 군요. 물리적인 공격에 유의하십시오.


루이제의 경고가 들리기 무섭게 달려오던 거대 도마뱀, 디아볼 리자드가 채찍 같은 꼬리를 휘둘러왔다.

퍼억!


‘어?’


세하는 전신에 가해지는 날카로운 타격감에 순간 머리 위에 물음표를 떠올리고 말았다.

‘죽도록... 아프다.......’


평소 같으면 슈트 자체의 강도에다가 사이킥 필드가 펼쳐져서 물리적인 타격을 흡수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뼈아픈 타격과 함께 지면에 나뒹굴었다.

-죄송합니다. 사이킥 필드와 지상전 셋팅이 늦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귓가에 루이제가 죄송해하는 음성으로 말했다.


“너... 일부로 그러는 거냐?”
-네.


그리고 루이제는 양심이 없었다.


-아무래도 슈트 자체의 성능이 다르니 제대로 단련하시는 편이 좋으니까요. 제가 오늘  균열 지대를 선정한 것은  탓이 큽니다.
“젠장!”


쿵쿵쿵!

그 사이 디아볼 리자드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몸길이만 5미터가 넘었고 마치 악마의 뿔이라도 난 것처럼 우뚝 솟은 뿔은 그것만으로도 여러 사람을 찔러 죽일 예리함이 돋보였다.

퓨화화확!


게다가 디아볼 리자드는 어느 정도 거리가 되자 입을  벌려 화염부터 내뿜었다. 세하가 엉겁결에 양팔을 들어 막았고 다행히 이번에는 사이킥 필드가 발동되어 투명한 파장이 일어나며 화염을 밀어내고 있었다.


-디아볼 리자드의 화염은 현존하는 고레벨의 방어구로도 정면에서는 녹아내릴 정도입니다. 아무리 마크2 슈트의 성능이 좋아졌다고 해도 이 상태로 시간을 끄는 건 무리입니다.
“안다고!”

세하는 얄밉게 말하는 루이제에게 고함을 치고는 오른팔을 내렸다. 그 손끝에서 사이킥 블레이드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이 평소처럼 곧게 나가는 것과는 달랐다. 마치 채찍처럼 얇아지더니 그 길이를 늘려 그대로 사이킥 필드를 통과, 한창 화염을 뿜고 있는 디아볼 리자드의 앞 다리를 휘감아버렸다.

크워!


그대로 디아볼 리자드가 쓰러졌다. 휘감겼던 앞 다리 둘도 피를 뿌리며  상처가 난 것이 제법 유효한 타격을 입힌  같았다.

파치치칙!

“이대로 죽어라!”


세하의 어깨 위에 순식간에 4개의 포문이 생겨났다. 그 포신 끝에서 바직거리는 흰빛의 전격이 어렸고 그대로 쓰러진 디아볼 리자드를 직격했다.

콰콰콰쾅!


디아볼 리자드가 그 전격의 포격에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루이제는  소리부터 했다.

-그렇게 몬스터 하나에 화력을 집중하라고 했나요?
“윽!”

세하가 민망함에 굳어버렸고 뒤이은 루이제의 보고에 현실을 깨달아야 했다.


-방금의 폭격음 때문에 인근의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상대하면 불리하다는  부족한 지식으로도 알겠죠?
“후우... 그렇네.”

의외로 세하는 빠르게 인정하고 평정을 되찾았다.  그래도 방금 쓰러뜨렸던 디아볼 리자드를 위시해서 사마귀 형태에 해골의 머리를 지닌 스컬 사이즈, 사슴과도 머리를 날카롭게 뒤틀린 상태에 인간과도 같은 장신의 신체를 검은 털로 휘감은 디어펠 등등 온갖 대형 몬스터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고 있었다.


“후읍!”

일단 세하는 부스터를 가동해 수직으로 상승했다. 적어도 몬스터들의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손이나 앞발에 채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인지라 세하는 안심할 수 있었다.


-고도가 낮은 편입니다. 지금 보이는 몬스터들이 대공 공격이 전무한 편이긴 하지만 안일한 생각입니다.
“알았어.”

세하는 애써 참으며 좀 더 고도를 높였다. 자신의 발밑에서 난리를 쳐대는 몬스터들이 무슨 락스타를 올려다보며 열광하는 팬들 같은지라 세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멀티플 락온 시스템을 적용합니다. 하지만 사이킥 에너지 기반인지라 마스터의 판단이 중요합니다.

뒤이은 루이제의 설명에 세하의 눈앞에 온갖 조준선과 가상 과녁 등이 몬스터들에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가  백에 가까운지라 세하는 눈앞이 어지러웠다.

‘젠장.......’


머릿속에 과부하가 이는 것 같았다. 몬스터들의 괴성과 눈앞의 디스플레이에 들리는 경고음 등에 세하는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슬러그 버스터를 발사합니다.


세하가 그 때문에 결정을 못 내리자 이번에는 루이제가 제어에 들어갔다. 처음에 디아볼 리자드를 처리했을 때와는 달리 세하의  어깨 위에 미사일 런처가 예상되는 커다란 컨테이너가 나타났다.
그것들은 일제히 개방되더니 그 안에서 무수한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얇은 바늘처럼 보이는 빛들은 몬스터들의 지근에 이르자 갑자기 폭발했고 분열하듯이 더 많은 빛의 화살을 만들어내어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파콰콰쾅!

“.......”

세하는 자신의 발밑에서 벌어지는 더 없는 파괴의 현장을 숨죽이고 바라보게 되었다.

-마스터의 사이킥 에너지 총량이 30퍼센트 남았습니다. 오늘은 이만 귀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세하가 피로하다고 판단한 루이제가 슈트를 움직였다. 세하는 거기에 이끌려서 그대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
“푸하!”


세하는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마스터. 괜찮으신가요?
“후우... 예전의 하드 트레이닝은 저리 가라군.”

세하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의 소파에 풀썩 몸을 던졌다.


-가장 근처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피로에는 휴식이 최고죠.


루이제의 말대로 지금 세하가 몸담고 있는 곳은 연천의 균열 지대에서 가장 근처에 있는 호텔이었다. 물론 상대적인 거리는 세하가 슈트로 30분 정도 초고속비행을 해야 당도할 수 있었으니 상당히 멀리 떨어졌다고  수 있었다.


‘생각 외로 괜찮은데?’

루이제가 그냥 호텔이라고 했지만 실내 디자인이나 기타 서비스 등등이 흠 잡을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훌륭했다. 그래서 세하는 체크인 된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피로가 확 풀릴 지경이었다.

-대체적으로 일반 헌터들은 근처에서 야영하거나 값싼 숙박지를 정하기 마련이죠. 마스터는 기동력이 갖춰졌기에 누릴 수 있는 호사입니다.
“그래. 하지만 그 덕에 이렇게 구를 수밖에 없다는  분하군.”


세하는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다시 눈을 부릅뜨더니 입을 열었다.

“느와르레이드. 전체영상.”

세하가 말하기 무섭게 오늘 세하가 장착했던 마트2 슈트. 느와르레이드의 전신 정보가 입체화면으로 세하의 눈앞에 나타났다.
기존의 슈트보다 더욱 날렵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였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몸에 붙이고 초고속으로 비행할 때는 마치 최신예 전투기가 떠오를 정도로 유선형의 실루엣을 만들어낼 정도이기도 했다.


-아직 부족합니다. 그냥 지상에서 싸우는 것과 비행 기능과 더 업그레이드 된 무기로 싸우는 것은 상당한 적응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여기 오기 전에도 난리였잖냐.”

세하는 연천으로 오기 전에도 적응 훈련이랍시고 가혹했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성층권을 뚫을 기세로 상승했다가 그대로 하강할 때는 무슨 전원이 꺼진  알았다고.”
-저는 단순히 AI나 기계가 아니니 전원이 꺼질 일은 없죠. 솔직히 마스터가 애써 죽음을 각오할 때는 조금 웃었습니다.
“........”

루이제는 조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세하는 그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확실히 이전 슈트와는 다른 적응이 필요해.  수 있는 무기의 화력도 올라갔고 말이야.”
-네. 그렇기 때문에 확실한 단련이 필요합니다. 균열 지대 같은 곳이라면 더 없이 위험하기도 하고 안성만춤입니다.
“균열 지대라........”


세하는 1시간 전 만에도 자리하고 있었던 황무지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도시의 외각 지역에 나오는 게이트까지 억누르긴 무리라서 그렇겠지?”
-네. 마스터는 비행해서 들어와 못 보셨겠지만 보통 균열 지대 외각에는 상당한 방비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실 헌터 협회에서 발급하는 통행서가 아니고는 일반 헌터들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 독단으로... 아니 네 독단으로 무단 침입한 거군.”


세하는 루이제가 벌인 일이 꽤나  것을 깨닫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마스터는 강해져야 하니까요.
“이해해. 협회장... 류한호는 적당히 상대할 인물이 아니니까.”


안 그래도 느와르레이드를 개방하고 나서 류한호에게서 메일이  것을 확인했었다.


“언제든지 오라는 식으로 협회 본부에 내 코드를 등록 했지.”
-다른 헌터들이 안다면 엄청난 특혜겠지만  자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겠지. 엑펠트에 대해 얼마나 알지도 모르고 그걸 가지고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그러니 적어도 류한호를 일 대 일로 제압할 정도로 실력이 돼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앞으로 죽었다 이 거구나.”

세하는 앞으로의 시간이 험난함을 예감하며 쓴 웃음을 짓는 수밖에 없었다.



*
그 다음 날에도, 뒤이은 날들에도 세하는 연천의 균열 지대에 출석도장을 찍고 있었다.


콰콰콰쾅!

이제 균열 지대에 온  1주일 정도가 지났다. 세하는 제법 냉정하게 상황을 보며 눈앞에 떠오른 입체 디스플레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눈앞이 어지러워 머리회전도   지경으로 디스플레이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세하는 침착했고 눈앞이 녹색 물결이 될 정도로 변하자 그대로 움직였다.

퓨파파팍!


세하의 양 어깨 위에 나타난 런쳐 컨테이너에서 바늘과도 같이 얇은 빛줄기들이 튀어나갔다. 이내 그것들은 폭발하고 그 범위를 확산하며 지면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렸다.

“음.”

첫날과 달리 세하는 그 정도 폭발을 일으켰음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곧이어 아공간 인벤토리가 세하의 옆에서 문을 열고 나타나 진공청소기처럼 지면에 흩어진 몬스터들의 코어를 빨아 당겼다.


-많이 익숙해지셨네요.
“첫날처럼 에너지 낭비했다간 네가 가만히 있을까?”

세하는 이제 한층 여유롭게 상공을 비행하며 눈앞에 보이는 몬스터가 보일 때마다 살상하고 코어를 챙겼다.
단일 개체면 출력을 높인 라이플로 일격사 시켰고 다수면 앞서처럼 범위를 잘 조정한 폭격으로 쓸어버리니 가히 몬스터들에게 있어서 날아다니는 재해나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초입 지역은 됐네요. 더 들어가 보세요.


뒤이어 루이제가 한 말에 세하의 자신감이 팍 꺾였다.


“이게 초입이야?”
-이제 단순히 비행에 익숙해져서 공격하는 수준이세요. 그리고... 어?

평소처럼 세하와 말하던 루이제가 갑자기 헛숨을 들이 삼키는 소리를 냈다.


“뭐야?”

일주일 내내 보았던, 이제는 정이 들 정도의 몬스터들이 도망치고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주변에서 학살을 일으키는 세하 때문이라고 할  있겠지만 지대의 내부에서부터 외각으로 대이동을 하듯 도망치는 광경이 세하로서는 이채롭다 못해 어딘가 불길한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던전에는 보스 몬스터가 있어서 처리해야 클리어가 됩니다. 하지만.


이어 들리는 루이제의 목소리에는 제법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균열 지대는 수많은 게이트들이 중첩되고 몬스터들이 돌아다니지만  중 특히나 강한 개체들이 존재하지요. 이른바 필드 보스급 몬스터입니다.

쿵!

그리고 제법 세찬 굉음이 세하의 귓가를 때렸다. 높은 상공에서 비행하고 있는 세하였지만 헬멧의 디스플레이에 표시되는 반응을 보고서 그도 한껏 긴장의 끈을 조일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