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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시험의 시간 3 (9/72)



〈 9화 〉시험의 시간 3

파파팟!

오른팔의 펄스 라이플이 빛을 뿜으면서 유령들이 속절없이 박살났다.


키이이이!

물론 접근에 성공한 유령들도 있었지만 세하의 사이킥 블레이드는 그런 유령들을 망설임 없이 베었다.
그 덕분에 아무런 부산물도 남기지 않고 주변을 둘러싼 유령들은 사라지고 말았다.


“진짜 유령이네.”
-아무튼 마스터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게 증명됐군요. 언데드 몬스터가 주로 나올 던전이라는 걸 생각하면 다행입니다.
“음?”


하지만 아무 것도 안 나왔다는 말은 취소해야 했다. 유령들이 사라진 자리에 뭔가 반짝이는 보석 같은 것들이 보였다.


“이런 것들인데도 코어 같은 게 나오네.”
-이런 걸 보면 게이트와 몬스터 등등은 어떤 특정 법칙을 따르는 걸로 보입니다.
“그 법칙대로면 헌터는 목숨을 담보삼아 몬스터의 것을 빼앗아 살아가는 걸 텐데 말이야.”
-아무튼 챙겨두겠습니다.

루이제의 말과 동시에 세하의 근처에 그의 머리통만한 공간의 일그러짐이 일어났다.

“아공간 인벤토리가 이럴 때 좋긴 하구나.  비싸서 문제지.”
-아무래도 마법 쪽에 걸친 물건이니까요. 사실 마스터는 장비나 능력 쪽은  서포트를 받고 있어서 달리 비용이 들게 없으니 이런 쪽에는 돈을 쓰셔야 합니다.


루이제는 저번에 아공간 인벤토리를 구입해서 돈이 꽤나간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아쉬워하던 세하를 떠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아무튼 아공간 인벤토리가 진공청소기마냥 바닥에 흩어진 몬스터들의 코어를 집어삼키고 사라졌다. 세하는 비싼 값을 한다고 생각하며 다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일반적인 시야처럼 눈앞이 보이는 가운데 각종 디스플레이가 떠오르며 주변의 위험요소를 탐지하고 있었다. 그때 루이제가 물었다.


-마스터. 괜찮으신가요?
“왜?”
-뭔가 태연하시니까요. 비록 전생하셨다하나 지금 너무 익숙해 보이시니까요.

어찌 보면 루이제의 물음은 타당했다. 그 점에 세하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그렇겠네. 나는 나름 현 상황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다보니 그런 건데 말이지.
-사실 일반적인 헌터라면 언데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죠.
“뭐랄까. 나는 지금 이곳을 얼른 클리어 해버리고 증거품을 들고 가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야.”


세하가 어느새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러자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럼 협회 놈들이 내는 시험에 합격하는 거겠지.”
-역시 마스터도 지금 상황이 일종의 시험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최근 협회의 움직을 보고서 곰곰이 생각해봤어. 협회가 생각보다 무능하진 않다는 거고 게이트 캐스터가 이런 던전 게이트를 예보하지 못했을까? 협회 이것들이 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제법 정보 통제를 한 것 같아. 한번 이렇게 해보라고 말이지.
-제가 좀 안일했던 것 같습니다.
“괜찮아. 어차피 협회를 납득시키려면 실력행사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럼 계속 가보자고.”

세하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차가운 지하공간에서 거의 악령이라 할 만 한 것들이 자꾸만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사전에 준비하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위에 긴 포신이 나타났고 그대로 빛을 뿜었다. 사이킥 에너지의 격류가 사방을 휩쓸리며 악령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앞서 사라진 유령들처럼 코어만을 떨어뜨릴 뿐이었다.


“담자. 담어.”


다시 아공간 인벤토리가 나타나서 코어들을 빨아 당기자 세하는 왠지 신이 났다.


-마스터. 왠지 목적보단 이쪽이 우선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인벤토리 비싸잖아. 이렇게 코어들을 죄다 주워서 수입을 올려야지.”
-틀린 말은 아니군요. 다만 좀 좀스러워 보여서 말이죠.


루이제의 말이 제법 치명적인 일격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세하는 아무  않고 코어들을 담을 뿐이었다.

-사실 코어를 가지고 수입 외에 다른 쪽으로도 쓸 수 있으니 모을 수 있으면 모으는 것도 좋겠죠.

뒤이은 루이제의 말에 세하는 어딘가 섬뜩한 기분마저 느꼈다.

‘에이... 설마.......’

세하는 불안한 기분을 느끼며 다시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
세하가 던전으로 들어가 버린 후 1시간 정도가 지났다. 다행히 도심에 나타났던 B급 게이트는 무사히 격퇴 돼서 지금 헌터 협회와  병력들이 한창 정리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주 지부장.”
“아! 오셨습니까?”

경기도 북구 지부장인 주운찬은 간이막사에서 군 지휘관과 오늘 동원된 헌터들에게 설명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인물을 보고서 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모두 고생이 많으십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들어온 이는 주운찬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줄 것을 요청했다.
정중하고 예의 바른 태도여서 군 지휘관과 헌터들은 선선히 자리를 비켜줬다. 그러자 주운찬은 근처의 의자에 앉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협회장님이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주 당돌한 녀석이 주 지부장을 괴롭히기에 나도 시험과제를 던져줬지.”

주운찬의 맞은편에 앉은 이는 그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정장 너머로도 단단한 체구를 자랑하는 남자였다.
하지만  얼굴은 역전의 경험과 시간의 흔적이 가득 남은 노장의 것이었다. 게다가 흰 수염이 그 유명한 관운장처럼 가슴께까지 드리운 것이 인상적인 인물이었다.

“협회장님이 직접 시험을 내리셨습니까?”
“뭐 일단 초정밀측정이 가능한 드론 3기 정도로 녀석의 행방을 살폈지. 던전이 생성된 게이트로 들어가는 것을 충분히 살펴봤네.”


협회장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주운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다가 죽기라도 한다면 큰 손실이 될 겁니다.”
“흐음. 자네를 놀라게  정도라면 그 정도 던전이라면 클리어할 걸세. 그리고 내 앞에 나타나서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를 늘어놓겠지. 보아하니 꽤나 우리 협회의 정보를 캐내는 거 같던데 이번에는 피할 수 없을 걸세. 그 자신도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함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일세.”

협회장은 잠시 자신의 긴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가 최근에 게이트 사태에 대해 얼마나 알지 모르겠군.”
“지난번에 진하연 헌터가 보고한 내용에 따르면 기존의 몬스터들과 다른 점이 제법 보였습니다. 그리고 민세하. 그 만이 유효한 타격을 입혔고 마무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길 기다려야겠군.”


협회장은 사뭇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과연 나 무성(武星) 류한호의 기대를 끌어낼지 궁금하군.”


*
“에취!”

갑자기 세하가 재채기를 했다.


“누가 내 욕을 하나?”
-보통은 귀가 간지럽다고 하지 않나요?
“그런가? 뭔가 이상하네.”


막 세하의 눈앞에는 얼어붙은 시체 같은 것들이 질펀하게 뻗어있었다.
하나 같이 세하의 사이킥 블레이드에 목이 베이고 몸통까지 토막 나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만 보였지만 세하는 방금 전까지 그것들이 날카로운 창칼과 손톱을 들이대며 달려들던 순간을 기억했다.


“나를 이딴 곳에 처박고서 얼마나 잘난 면상을 하고 있는 지 말이지.”

세하는 협회의 누군가를 떠올리며 사나운 웃음을 지었다.

-점점 전생의 마스터로 돌아가는 느낌이군요.
“그 정도로 표정이 비슷했어?
-전생  마스터는 그야말로 싸움은 피하질 않았으니까요.
“듣기에 따라서 칭찬이기도 욕이기도 하겠네. 그나저나 저 끝이 보스 룸? 뭐 이런 식으로 말하니 무슨 게임 같은데 헌터들이 그런 식으로 불러대니 맞겠지?”

세하가 가리킨 방향에는 차디찬 암석들로 이루어진 넓은 석실이 보였다.
말이 석실이지. 그 넓이는 지금 밖에서 봐도 커다란 농구 코트를 떠올릴 정도였다.

-네. 아마 들어가시면 이번 던전의 보스가 마스터를 아주 성대히 맞이해줄 겁니다.
“지금 나자빠진 것들이 해골 병사 비슷한 것들이니 지금 안에 있는 놈도 비슷할 거 같군. 가볼까?”


세하는 거침없이 석실의 문으로 향했다.


서걱!


전력을 다한 사이킥 블레이드로 석실의 문을 쪼개버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간 세하는 자연스럽게 두 눈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네 놈이 나의 묘실을 침범한 것이냐?’


전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화려해 보이는 왕좌가 있었고  주변에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보물과 금화가 보였다.
그 왕좌에 앉아 있는 존재가 세하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온통 단단한 풀 플레이트 아머로 몸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 틈새에서 차디찬 냉기가 세어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네 무덤이었나 보군. 미안하게 됐어.”


전혀 미안하지 않으면서도 세하는 입을 열었다. 눈앞의 디스플레이에는 지금 마주하고 있는 존재가 극히 위험한 것을 강조하듯 붉은 점멸 반응이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편안히 잠들려고 했다. 하지만  놈이 여기를 침범했고 뒤흔들어 놓았다. 삶의 미련을 저버린 나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그래. 내가 지금 그냥 나가면 보내줄 거냐?”

왕좌에 앉은, 왕으로 보이는 존재가 침통한 어조로 말을 이었지만 세하가 심드렁하게 말을 잘랐다.


‘뭐?’
“내가 지금 그냥 나갈 거면 보내줄 거냐고?”
‘그럴 순 없다. 네 놈이 이곳에 들어온 이상 나의 명예를 더럽힌 것이다!’

왕이 몸을 일으켰다. 키만 해도 3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런데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갑옷이 위화감 없이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본래 거인족의 인물인 것 같았다.

“무덤에 처박힌 것들이 다 그렇지.”
-마스터. 소설을 너무 많이 보셨군요.

참다못한 루이제가 입을 열자 세하는 피식 웃었다.


“원래 저런 식으로 무덤에 박혀 있는 것들은 생전에 몹쓸 짓을 많이 한 것들이야. 다들 저 놈보고 죽으라고 매일 노래를 불렀을 걸? 사람도 많이 죽이고 욕심도 더럽게 많고 말이야.”
-그런 거군요. 왕이긴 하지만 폭군이라던가 그런.......
“그래! 그래서 저렇게 망령처럼 남아있는 거겠지.  아이러니해. 현대에 나오는 게이트나 던전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저런 것들이랑 연결이 된다니까 말이지.”
‘용서할 수 없다!’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모욕당한 왕이 달려들었다. 그가 치켜든 커다란 그레이트 소드에는 말 그대로 짙은 한기가 실려 있어서 사정없이 베임과 동시에 그대로 얼어붙지나 않을까 싶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흠.”


하지만 세하도 순식간에  손에 사이킥 블레이드를 발출하더니 그대로 하나로 합쳐서 왕의 것처럼 커다란 대검을 만들어냈다.

카캉!

 검이 부딪쳤다. 어느 한 쪽도 밀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헬멧 속 세하의 입가에는 더욱 비릿한 웃음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키이잉!

어느새 세하의 어깨 위에 기다란 포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분명 사이킥 블레이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될 테지만 세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감행하고 있었다.

-마스터. 이건 좀......
“길게 끌어서 뭐하겠어? 영거리 포격이다!”

콰콰쾅!

그대로 사이킥 캐논이 발사됐다. 눈앞에서 세하의 사이킥 블레이드를 막고만 있던 왕은 그대로 직격당해서 산산이 부셔지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럴수가.......’

마치 비처럼 흩날리는 갑옷의 파편과 뼈 조각 등등이 그가 언데드라는 걸 잘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투구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지면에 떨어졌다. 세하는 캐논은 해제하고 대검형태의 사이킥 블레이드만 든 채 다가갔다.


“보나마자 해골바가지가 있을 테니 안 열어볼게.”
‘크... 크으윽......’

용케 왕의 풀페이스형 투구가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부위만 따로 떨어져서 움찔거리고만 있으니 이 이상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세하는 사이킥 블레이드를 역수로 치켜들었다.

“잘 가라.”
‘자... 잠깐!’

투구만 남은 왕이 외쳤다.


“별 같잖은 짓거리라도 하려고?”

세하는 왕을 쓰러뜨릴 때처럼 어깨 위에 캐논을 다시 생성해서 겨눴다. 하지만 왕은  말이 있는지 처절할 정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너 같은 존재를  적이 없다!’
“당연히  적 없겠지. 게이트니 던전이니 하는  죄다 어딘지 모를 이계에서 연결되는 거니까.”

세하는 더 들을  없다는 식으로 사이킥 블레이드를 그대로 내리찍으려고 했지만 뒤이은 왕의 말에 멈칫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실제로 죽기 전 분명히 보았다! 그 놈들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뒤섞으며 세계를 멸망시켰다! 너에게는 그놈들의 느낌이 난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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