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시험의 시간 2 (8/72)



〈 8화 〉시험의 시간 2

-퀸 스컬사이즈로군요.

막 게이트에서 나타난 몬스터를 보고서 루이제가 내린 감정은 간단했다.


-스컬사이즈의 모체 격입니다. 그냥 덩치가  편입니다. 그만치 물리력은 상당하겠지만요.
“알았어. 그럼 간다.”

세하도 판단을 내리고 움직였다. 퀸 스컬사이즈가 커다란 낫 같은 앞발을 치켜들어 내리찍었지만 세하는 재빠르게 옆으로 피할 뿐이었다.

“사격!”

콰콰쾅!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헌터들의 공격도 가세했다. 각종 총탄과 원소력이 퀸 스컬사이즈를 강타했고 거기에  스컬사이즈가 비틀거렸다.

서걱!


 순간 세하의 사이킥 블레이드가 빛을 발했다. 퀸 스컬사이즈의 커다란 양 앞발을 모조리 베어버린 것이었다.


키에에에!

절단면에서 진녹색 체액을 흩뿌리며 괴로워하는 목표를 보고서 헬멧 속 세하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그대로  개의 사이킥 블레이드를 위로 쳐올렸다. 해골을 담은 몬스터의 머리가 순식간에 베어졌고 다시 하강하는 기세를 타고서 그 몸통까지 완전히 갈라버렸다.

와아아아!


그렇게  스컬사이즈가 쓰러지자 사방에서 환호가 들려왔다. 세하는 잠시 헬멧을 해제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대상 완전 침묵했습니다. 하지만 엑펠트의 반응은 없습니다.
‘그래? 혹시나 했는데 별 거 없었네.’

그냥 평의한 몬스터 게이트라는데에 세하는 맥이 빠졌다. 하지만  정도로 평이하다는 생각을 하는 자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아 세하는 저절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엑펠트나 혼합체의 반응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세하는 최근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면 자신의 원룸에서 루이제와 의논하는 것이 거의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주운찬의 말에 따르면 뭔가 있었지.”
-네. 그래서 협회장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헌터계의 최상위 존재를 끌어낼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협회 지부에 다녀오면서 한바탕 했으니 더 알려지겠군.”

세하는 그렇게 말하고서 눈앞에 떠오른 슈트의 영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스터의 사이킥 에너지 총량이 늘어날수록 슈트의 능력치도 상승합니다. 그리고 그 단계가 넘어서면  상위의 슈트가 개방됩니다. 그리고.......

갑자기 루이제가 말끝을 흐렸다.

“왜 그래?”
-지금 미리 말씀드리면 마스터께서 철없이 마음이 들뜰 것 같아서 걱정 되서 그럽니다.
“저번에 엘렉티오 이야기는 왜  거야?”

세하가 맹점을 찌르자 루이제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만으로도 그 감정이 여실히 전해질 정도인지라 세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마크2 계열 슈트는 최대한 빨리 개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비행 기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마스터의 앞으로 활동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니까요.
“알았어.”


세하도 슈트의 능력치 화면을 보며 턱에 손을 괴었다.

“루이제.”
-네. 마스터.
“너는 지금 내 전력이 헌터 등급으로 봤을 때 어느 정도라고 봐?”
-냉정히 말하면 A급은 됩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만족하실 생각은 아니겠죠? 엑펠트와 관련된 혼합체가 이 세계에 나타난 이상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제 루이제의 음성에는 무거울 정도로 진지함이 자리 잡았다.

“그렇네. 네가 나타난 이후로 나도 빠를 정도로 감정이 잡히는 게 이상할 정도야. 지오 그라함이 내 전생이라는 게 별 거부감도 없어.”
-그 정도로 저와 마스터의 존재는 특별한 것입니다. 혹시 후회하시나요?
“아니. 타고난  심정이 방법이 있는데 가만히  놓고 있는 걸 싫어하니 말이야. 생각해보면 전생에 전쟁이 한창일 때는 평범한 삶을 꿈꿨던  같아.”

세하는 그렇게 과거를 떠올리더니 다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아무튼 좋아. 주운찬도 일의 경중 때문에 협회장에게 보고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 그 동안은 나타나는 게이트들을 처리하면서 정보를 모으는 게 좋겠지?”
-마스터께서 하드 트레이닝보다는 실전이 더 몸에 맞으시는 것 같으니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아. 헌터 협회에서 메일이 왔군요.

어느새 세하의 메일계정에 접속한 루이제가 눈앞의 중강현실화면 중 상단에 메일의 내용을 띄웠다.

-헌터 라이센스를 발급한다는 군요. 일단은 B급 헌터입니다.
“B급? 네 판단이 틀린 거 같은데?
-아무래도 지부장 권한은 그 정도가 최선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날 난리가 난 건 비공식적인 일이니 말이죠.


아무튼 정식으로 헌터 라이센스가 등록된 만큼 세하가 헌터로 활동하는 데에 누군가 제지할 가능성은 없어졌다.


“게이트 감지는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일단 마스터가 있는 지역에서 반경 1km 정도는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헌터 협회나 각 공공기관의 통신을 해킹해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꽤나 사기적이네.”
-아직 마스터의 사이킥 에너지가 부족해서 이 정도입니다. 제가 사이킥 생명체이자 정보AI로서 상당한 용량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만 일단 마스터와 붙어 있어야 하니 마스터의 능력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노력하세요.

마지막에 항상 세하에게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루이제 다웠다.

*
그 뒤로 세하는 자신의 주거지가 있는 파주를 중심으로 경기도 북쪽 지역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세하의 활동이 적용이 됐는지 헌터 협회로부터 상당한 보수가 입금되고 있었다. 여기까지만 봐도 협회가 세하를 꽤나 주목하고 있음을 알  있었다.

‘그동안 내가 다른 헌터들을  돕긴 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아직 헌터 협회장으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북구 지부장 주운찬은 잊을 만하면 메일을 보내와 안부를 묻고 있었기에 세하는 일단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있었다.


‘반복합니다. B급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해당구역에 계신 민간인 여러분은 속히 가까운 대피소로 대피해주시기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오늘도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게이트 경보가 울리고 있었다. 세하는 그냥 바람이나  겸 나온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자 묘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요란하구나.”
-시민들의 경각심을 깨워야 하니까요. 생각보다 게이트 관련 대피시설이 많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고. 사실 도시 안쪽에 게이트가 나타나는 건 최근의 현상이라서 걱정했어.”

세하가 스무 살이 넘도록 도시 안쪽에 게이트를 본적이 없었으니 최근 일이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튼 세하는 항시 하던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이제는  몸이 된 것처럼 순식간에 마크1 슈트가 전신을 감쌌고 세하는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오! 블랙메탈이다!”


도시의 숲에서 질주하고 도약하는 세하를 보고서 누군가 외쳤다.

-제법 괜찮은 닉입니다.
‘하긴 원래 전생에도 슈트나 기어의 도색을 검은색으로 했으니까.’

세하는 납득하며 계속 움직였다. 머지않아 게이트 발생 현장이  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빌딩의 옥상 위에 내려섰다.

투타타타!

군 병력의 사격과 헌터들의 무기들이 빛을 발하며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제는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같아 세하는 마음이 편했다.

-마스터. 너무 넋 놓고 계신  아닙니까?

생각 외로 헌터들과 군 병력이 선전하고 있어서 세하가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만 있자 루이제가 말했다.

“사실 지금 상태에 끼어들기도 그렇잖아? 헌터스넷에서도 보면 내가 나타나서 헌터들 공을 가로챈다고 하는 말도 많아.”
-SNS는 인생의 낭비입니다. 웹 활동도 마찬가지지요. 하긴 최근에 협회에서 뭔가 찔리는  마스터에게 공적수당이라며 입금을 해오고 있지요.  덕에 마스터의 생활도 곤궁에서 벗어났고 말이죠.
“그만치 나한테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아시면 됐습니다. 아무튼 오늘은 지켜보는 수준으로 끝내겠습니다. 엑펠트의 반응도 없으니 말입니다. 어?

루이제가 말하다 말고 놀랐는지 헛숨을 들이 삼키는 소리를 냈다.

“사이킥 생명체라지만  너무 감정표현이 능한  아니냐?”
-마스터. 주의해주십시오!

루이제가 어느 때보다 경고성을 발했다. 그 순간 세하의 뒤편에서 커다란 게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게이트?”
-잠시 만요. 이건 조금 다릅니다.

루이제가 어느새 게이트를 분석했는지 다시 침착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일반적인 게이트가 아니군요. 이 패턴으로 봤을  던전입니다.
“던전이라......”

세하도 게이트의 모습을 보고서 진중한 자세가 됐다.


-닫힌 상태로 존재하지만 손을 쓰지 않으면 그 안에 있는 많은 몬스터들을 한꺼번에 풀어 넣는 현상입니다.
“나도 알아. 보통은 시간을 들여서 헌터들을 돌입시켜 처리하는  일반적인 반응이지만 말이야.”


세하는 마치 커다란 문처럼 존재하는 공간의 일그러짐을 보고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우리가 처리해도 되지 않을까?”
-으음... 지금 밑에 벌어진 게이트가 B급 게이트이니 등급 수는 같겠지만 던전은 보통 급수보다  등급 낮춰서 공략하는 게 안전권입니다.

루이제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마스터의 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부터가 수상합니다.
“누군가의 개입이 있다고 보는 거야?”
-보통 일의 인과를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맞죠.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니까요.

루이제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침묵을 지켰다.

“루이제.”


루이제가 고민하다고 있다는 건  세하가 먼저 말했다.

“혹시 지금 지근거리에 감지되는 존재가 있어? 각성자라던가 말이야.”
-가끔 마스터에게 허를 찔릴 때가 있군요. 상당히 애매한 존재가 있습니다.

세하의 물음이 뜻밖이었는지 루이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애매해?”
-저의 반경감지거리에 희미할 정도로 걸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성자나 몬스터 같은 건 아닙니다.
“지극히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를 존재로군. 그럼 그것이 지금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어.”
-이른바 우리가 던전에 들어가길 바란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렇겠지. 루이제. 혹시 완전 AI가 조종하는 기계류를 감지할 수도 있어?
-사이킥 에너지가 실린 것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탑승물이라면  안에 있을 사람의 기척을 눈치 챌 순 있지만... 아!

갑자기 루이제가 감탄성을 울렸다.

-드론 같은 것에 감지 능력을 실은 것이라면 이해가 됩니다. 사이킥 에너지나 마법 같은 능력으로 동물을 조종해 탐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동물의 기척은 없으니까요.
“드론이라... 협회 던 다른 곳이던 우리를 지켜본다고 봐야겠네.”


세하는 그렇게 말하더니 손뼉을  쳤다.


“들어가자.”
-어쩔 수 없군요.

루이제도 더 이상 만류할 생각이 없는지 선선히 답했다.


-마스터도 좀 고생해봐야 사이킥 에너지가 늘겠죠.
“한번 죽어봐라 라는 심정 같은데?”
-아무래도 정신적인 경험에 따라 상승폭이 커지는 힘이다 보니 그런 마음이 없지 않게 있습니다. 정 안되면 저의... 아닙니다.

루이제가 뭔가 말하려다가 말았지만 세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좋아. 들어가자.”


세하는 이제 망설임 없이 게이트를 통과했다.
던전이라 판명된 것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세하는 마치 유경험자처럼 여유있게 들어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이질적인 광경이네.”


마치 커다란 천연동굴 안이 연상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천장이 더 없이 높았고 커다랗고 뾰족한 종유석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보여서 세하는 신경이 좀 쓰였다.

-지금까지 보여주신 회피력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다만 이곳의 몬스터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가 걱정입니다.

이미 게이트는 세하가 입장을 완료하자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그래서 세하는 평소대로 오른쪽은 펄스 라이플. 왼쪽에는 사이킥 블레이드라는 기본적인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키이이이!


돌연 세하의 주변에 냉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일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귀청을 울리는 목소리들이 어딘가 사람의 혼을 어지럽히는 기분이 들었다.

“루이제.  공포영화 좋아해?”
-뜬금없는 소리네요.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 지금 기분이 막 악령이나 귀신같은 것들이 나오기 전 같아. 사실 사이킥 에너지라는 거 자체가 정신적인 것에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영향이 없진 않겠지.”

세하가 그렇게 말을 늘어놓는 사이에 주변이 일어난 냉기들이 서서히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흔히 유령이라 말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흐릿한 형체를 갖춘 존재들이 서서히 세하의 주변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아니 포위망이 형성되려하기 전 세하의 펄스 라이플이 먼저 빛을 내뿜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