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시험의 시간 1
퍼억!
세하의 오른 주먹이 거한의 면상에 그대로 박혔다.
“크악!”
거구의 사내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지는 광경은 꽤나 장쾌하기까지 했지만 세하는 방심하지 않았다.
퓨파팍!
그대로 오른팔에 부착된 펄스 라이플을 발사했다. 물론 위력을 최저로 줄여놓은 건지라 보통의 사람이 맞으면 온몸에 마비가 오는 수준에 불과했다.
‘어?’
순간 세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왜소해 보이는 여성이 앞으로 나서더니 손을 내저었고 세하가 쏜 광탄들이 여지없이 막히며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초능력자군요.
‘그래? 어느 정도 출력을 높여도 되겠군.’
루이제의 판별에 세하는 좀 더 출력을 높이려고 했다.
그 순간 보통 키의 남성이 그대로 여성을 지나쳐서 세하에게 달려들었다. 양 손에 세차게 진동하는 나이프 둘을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휘두르자마자 강렬한 진동파가 세하에게 날아들었다.
파치칙!
-물론 사이킥 필드 정도는 우리도 쉬운 일이지요.
기세 좋게 내뿜은 공격이 세하의 앞에서 순식간에 증발했다. 거기에 나이프를 든 남성이 당황했다.
세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팔을 휘둘러 사이킥 블레이드로 남성의 머리통을 후려쳐 버렸다. 출력을 낮췄고 거의 면으로 후려쳐서 둔기나 마찬가지였기에 나이프의 남성은 납작포가 된 것 마냥 지면에 붙어 기절하고 말았다.
크아아아!
처음에 가격 당했던 거구의 남성이 달려왔다. 처음과 다른 점이라면 전신이 마치 바위처럼 변해 있다는 건데 그 강도가 사뭇 강해보여서 세하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경화능력자 같습니다. 출력을 30퍼센트만 올리세요.
"Yes Sir."
세하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며 오른팔의 펄스 라이플의 출력을 좀 높여 발사했다.
순식간에 세하의 머리통만한 광탄이 발사됐고 그건 바위 같은 남성의 가슴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크윽!”
남성은 거기에 주춤거렸다. 한방에 쓰러지진 않았지만 제법 타격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세하가 한 방 더 날리려는데 이번에는 앞서 사격을 막은 여성이 남성의 머리 위를 뛰어넘어 세하에게 먼가를 집어던졌다.
파치치칙!
-사이킥 에너지를 응집해 던진 것입니다. 이 정도 할 줄 아는 걸 보니 제법 수준이 높군요.
루이제는 칭찬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여성이 던진 것은 세하의 바로 앞에서 전기처럼 지직 거리더니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투확!
그러는 사이 세하의 오른팔이 다시 빛을 내뿜었다. 거기에 바위의 남성과 초능력의 여성은 순식간에 휩쓸리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쉽네.”
-나름 강한 헌터들입니다. 하지만 상성이 나빴습니다.
루이제의 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하는 천천히 걸어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서 비틀거리는 바위의 남성에게 다가갔다.
“이 중에서 제일 단단하신 거 같으니 물어보겠습니다. 지부장이 시키셨습니까?”
“무... 물론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죄송하게도 이런 식으로 테스트를 받는 건 사양입니다. 측정을 하겠다면 받았을 텐데 이렇게 위협을 하시다니 말이죠.”
바위의 남성이 순순히 말하자 세하는 헬멧 속에서 혀를 찼다.
-아무튼 이쪽의 행적을 다 본 것 같군요.
루이제의 말이 들리기 무섭게 처음에 내려갔던 방화벽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통로가 열리자 세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
“민세하 씨. 잠시만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협회 지부의 로비까지 갔을 때는 아무 일 없었다. 물론 세하는 로비에 들어와서는 슈트를 해제한 상태였다. 아무튼 로비의 데스크에서는 세하의 신분을 확인하더니 잠시 기다릴 것을 요청했다.
‘이래놓고서 사방에서 헌터들이 총구를 겨누는 건 아니겠지?’
-마스터. 적당히 하시죠.
세하가 기다리며 품은 생각에 루이제의 일침이 이어졌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부장님께서 직접 뵙고자 하십니다. 전용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로비의 안내원에게 안내를 받은 세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보아하니 정말 지부장 전용인지 아무런 층수 표시가 되지 않았다.
“이거 뭔가 수상한 걸?”
-적어도 이곳 지부장은 마스터를 여러 가지로 보고 싶은 모양입니다.
세하와 루이제가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오. 민세하 씨시군요. 잘 오셨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드러난 광경은 도시의 풍경이 비쳐 보이는 커다란 창을 가진 집무실이었다.
“저는 헌터 협회 경기도 북구 지부장인 주운찬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훤칠한 인상의 사내가 세하에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세하는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만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죠?”
“지하철역과 지부 사이를 잇는 통로에서 일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해명부터 요구합니다.”
그러자 주운찬은 실소하며 손을 내렸다.
“아. 그랬었죠.”
마치 시켜 놓고서 잊어먹은 것 같은 광경인지라 세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말끔한 인상의 주운찬은 그 인상에 어울릴 정도로 시원스레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최근 파주 인근의 일들은 그냥 넘어가긴 모호한 구석이 많아서 말이죠. 진하연 헌터가 보고서를 상세히 올리긴 했지만 그럴수록 직접 보고 판단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바로 이렇게 말이죠.”
그리고 순식간에 주운찬의 전신이 차디찬 강철로 변하며 가히 철권이 세하의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성질 급하시군.”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슈트가 세하를 감쌌고 강력한 염동파가 주운찬을 덮쳤다.
“크윽!”
보이지 않는 파장이 번지며 주운찬이 밀려났다. 세하는 항시 하던 대로 오른팔에 펄스 라이플. 왼손에는 사이킥 블레이드를 꺼내며 말했다.
“이곳 지부 사람들은 죄다 무투파들인가? 뭘 알아보자면서 자꾸 덤비는 군. 그래.”
“하하하.... 이거 이런 식이라니 놀랍군요.”
주운찬은 쉽게 태세를 정비하며 허무한 듯이 웃었다. 온몸이 강철로 감싸인 상태에서 그렇게 웃으니 무슨 동상이 웃는 것 같아 희한한 기분이 들었지만 세하는 차갑게 말했다.
“자꾸 이런 식으로 구니 존대는 집어치우지. 내가 뭘 알아서 이런 식으로 구는 거지? 대답 여하에 따라서 아주 심한 꼴을 보게 될 거다.”
세하는 그렇게 엄포를 놓고 천천히 주운찬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주운찬은 손을 내저으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됐습니다. 이 정도로 말씀하시니 말씀드려야 겠군요.”
“.......”
세하는 여전히 펄스 라이플과 사이킥 블레이드를 끝을 겨눈 채였다. 그러자 주운찬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보고서나 그 당시 찍힌 영상을 보니 민세하 씨는 뭔가 아시는 것처럼 싸우시더군요. 우리는 최근 파주 내에 발생한 게이트들이 기존의 게이트들과 다른 것을 깨닫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나를 의심했군?”
세하는 무기들을 겨눈 상태로 물었다.
“네. 계속 나타났던 몬스터들과는 뭔가 다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각성자라던 세하 씨가 이토록 대처를 잘하니 우리로서는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운찬이 계속 항변하자 세하 또한 슈트를 해제하고 맞은편의 의자에 앉았다. 말투는 경어로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세상의 일 중에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이 있는 법입니다.”
세하는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면 세하 씨는 아시는 일인 겁니까?”
“저도 조사 중인 일입니다. 그러니 협회장님께 보고 드리시죠. 협회장님을 뵙고서 말씀드리겠습니다.”
“........”
순간 주운찬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그 정도로 큰일입니까?”
“적어도 저의 가치가 그 정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사실 오늘 지부장님이 이렇게 거칠게 나오지만 않으셨어도 협조적으로 나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너무 시험하려 드시더군요. 아시겠습니까?”
세하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몸을 일으켰다.
*
‘시키는 대로 말했는데 괜찮으려나?’
세하는 다시 지하철로 돌아가는 중에 루이제와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주운찬 지부장은 헌터 협회의 지부장들중 특히나 무투파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뭔가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죠. 하지만 그게 안 먹힌다는 걸 각인시켰으니 됐습니다.
주운찬을 만나고서 한 말은 모두가 루이제가 시킨 대로 한 말이었다. 그 점에 세하는 머리가 아파왔지만 꾹 참아야 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전생에도 제가 마스터를 모시면서 그릇된 방향으로 이끈 적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합니다.
그렇게 세하와 루이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갑자기 지하철이 멈췄다.
“뭐야?”
“에이... 설마........”
세하 외에도 많은 이들이 지하철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설마가 사람을 잡듯이 안내 방송이 들리기 시작했다.
‘현재 정차역 부근에서 게이트가 발생했습니다. 인근 지역이 위험하기에 잠시 정차합니다.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열차 내에 대기하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들리기 무섭게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뭐야? 그럼 이곳에서도 몬스터가 나오는 거야?”
“세상에... 이 구역은 안전한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세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근처의 문으로 다가갔다.
‘루이제. 보통 지하철역이 방공호로도 쓰이잖아?’
-네. 그렇습니다. 상당 깊이의 지하에 노선이 깔렸으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건 최근의 게이트 사태에서도 적용되는 매뉴얼입니다.
‘그럼 나도 여기 박혀 있어도 되겠네.’
-하지만 마스터의 주가를 높이기 위해서라면 여기서 난입하셔야 합니다. 경기 북구 지부장 주운찬을 건드려놓은 이상 더 자극을 주는 것이 좋을 겁니다.
루이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하가 게이트 공략에 참여하길 권했다.
‘끌려 다니는 것 같아서 기분이 그렇지만 아무래도 최근의 일들이 있으니 살펴보고 싶어지네. 알았어.’
세하는 순식간에 슈트로 완전무장하고 그대로 지하철의 문을 열어젖혔다.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검은 금속질 슈트의 존재에 사람들이 놀랐지만 세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쾌속하게 달려 나가 버렸다.
*
“와. 가관이네.”
세하가 바람같이 지상으로 올라왔을 때 보여 지는 도심의 풍경은 무슨 전쟁터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그 쪽 막아! 뚫리면 바로 시내 중심부라고!”
막 세하의 눈앞에 한 헌터가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사마귀를 연상시키는 몸체에 얼굴은 해골을 연상시키는 몬스터들이 와르르 달려 나가며 그 헌터를 삽시간에 조각내고 말았다.
-C급 몬스터인 스컬사이즈로군요. 개체 하나하나는 그리 강하지 않지만 군집으로 돌아다닙니다. 어설픈 헌터들은 그냥 쓸려나갈 겁니다.
바로 몬스터의 정보를 갱신시키며 세하가 보는 시야 상단에 링크시켰다. 세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스컬사이즈들의 사이에 뛰어들었다.
키에에에!
이번에는 양 팔 다 사이킥 블레이드를 전개하고 사정없이 베어버리기 시작했다. 진녹색의 체액들이 마구 튀면서 세하의 슈트를 물들였지만 세하는 거침없이 달려드는 스컬사이즈들을 베어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 저건 뭐야?”
그제야 사방에 흩어져서 스컬사이즈들을 막던 헌터들은 세하를 볼 수 있었다. 게이트는 하나 밖에 없었지만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스컬사이즈들의 수가 수백인지라 헌터들과 군 병력은 저지선이 뚫리지 않도록 간신히 막는 수준이었지만 세하가 등장함으로서 어그로가 온통 향한 덕분이었다.
“일단 됐군.”
한 차례 웨이브를 정면으로 뚫어버린 세하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슈트의 표면에 묻은 체액들도 저절로 미끄러지며 흘러내려버려 마치 새것과도 같은 모습인지라 헌터들은 황당해하면서 그에게 다가왔다.
“헌터십니까? 일단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각성자이긴 한데 아직 라이센스를 발급 받지 못했습니다.”
“네? 미등록 각성자라고요?”
미등록된 각성자라는 말에 헌터들이 모두 놀랐다. 하지만 세하는 여전히 이글거리는 게이트를 가리켰다.
“아직 웨이브가 안 끝난 거 같은데요?”
보통 게이트는 몬스터들을 모두 내보내면 자연 소멸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게이트는 여전히 불타는 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키아아아!
그리고 그 안에서 일그러진 해골의 머리를 지닌 존재가 나타났다. 체고부터가 3미터를 훌쩍 넘는 그것은 앞서 떼로 나온 스컬사이즈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육중하고 강력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