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더해지다 (6/72)



〈 6화 〉더해지다

-괜찮습니다.

루이제의 음성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마스터의 수준이라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계속 접근하세요.
“알았어.”

세하는 그렇게 뿌연 물속을 해쳐나갔다. 그러자 어느새 그의 눈앞에 그의 주먹크기의 물체가 보였다.

“이건 뭐지?”
-일종의 사이킥 에너지 덩어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덩어리라는 표현에 세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뒤이은 루이제의 말에 순간 손이 멈칫하고 말았다.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엑펠트가 가공한 사념체입니다.
“그런데 괜찮다고?”

세하는 여전히 바직거리는 전기 구체 같은 것을 보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엑펠트 자체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마스터가 입수하면 사이킥 에너지를 늘릴 수 있고 운이 좋다면 엑펠트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죠.
“으음......”


세하는 고민했다. 지금 몸이야 든든한 강화 슈트에 감싸여 있었지만 그래도 전생의 기억에 남은 엑펠트의 존재가 두려웠다.


‘에라이!’


하지만 세하는 곧장 문제의 물건을 집었다. 그러자 고민한 것을 비웃듯이 그대로 세하의 몸속에 녹아드는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어?”
-문제없이 흡수됐습니다. 제대로 분석하고 흡수하는 건 돌아가고 나서 하죠.


루이제는 세하가 놀라는 것과 다르게 가볍게 답할 뿐이었다.



*
헌터 협회와  병력이 난장판이  호수공원 일대를 살피고 있었다. 세하는 적당히 답만 해주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연 씨가  생각했군.’

하연이 나서서 증언을 해줬기에 세하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다만 협회로 가서 확실히 측정을 받아야 할 일이군요.

루이제는 그 점을 확실히 말하고 있었다.

“그렇네. 그나저나 이거 굉장한데?”

세하는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탄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중강현실이라고 하지요. 아직 이 세계에 상용화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같군요.


세하의 눈앞에 일단 혼합체와의 전투에 썼었던 슈트의 전체 모습이 투명한 입체화면으로 떠올라 있었고 그 옆에는 여전히 바직거리는 구형의 물체도 보였다.

-마스터의 몸속에 있는 엑펠트의 사념체입니다.
“이게 내 몸속에 있는 거라고?”

세하는 괜한 마음에 자신의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마스터가 거처로 돌아오시기 전에 내부적으로도 계속 조사해봤지만 별 다른 것은 없었다. 공원에서 보였던 수룡 같은 혼합체가 기능할  있도록 촉매 역할만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루이제의 설명으로는 별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다만  안에 있는 사념을 읽을 수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리고 루이제의 제안에 세하는 고민했다.

“좋아. 재생해봐.”


하지만 그 고민은 짧았고 허락이 떨어지자 갑자기 구체의 사념체가 넓게 퍼지더니 마치 전파처럼 지직 거리는 형상을 만들어냈다.

‘결합하라... 방해하는 것은 처리하라... 환경에 적응........’


들리는 음성은 거의 무감정하다 못해 기계로 억지로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환경에 적응하라... 결합.......’

하지만 들리는 말은 몇 개 없었다. 그걸 들은 세하는 잔뜩 구겨진 얼굴로 말했다.


“별거 없네.”
-네. 별거 없습니다. 하지만 저런 짧은 말만으로 오늘 봤던 역겨운 것들을 만들  있죠. 그 정도로 엑펠트는 위험합니다.


AI라지만 지금 루이제의 음성에는 어딘가 분노의 기색이 느껴지고 있었다.

“루이제. 너 괜찮아?”
-괜찮습니다.
“사이킥 생명체라며? 그럼 AI처럼 감정이 없다는 건 진즉에 사라진 거잖아?
-.........

갑자기 찌르듯 들어온 세하의 질문에 루이제가 입을 다물었다.


“나쁘지 않아. 루이제도 감정이 있다는 게 말이지. 그러니 내가 죽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거잖아?”


세하는 그런 상태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여전히 입체영상으로 슈트의 전체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였다.


“그러니 나로서는 엑펠트도 감사할 면이 있는 것 같아.”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제야 루이제가 다시 물었다.


“그럼. 사이킥 에너지, 루이제 그리고 엑펠트의 영향이 없었다면 이런 전생은 안 이뤄졌겠지. 너도 이렇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변하지 않을 테고 말이야.”
-이렇게 들으니 마스터가 전생하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어리버리 발암 일으키는 풋내 나는 애송이가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이번 말은 꽤나 진심 같아서 세하는 머쓱해졌다.


“아... 아무튼 이제 사념체는 괜찮은 거지?”
-지금 마스터와 융합 작업 중입니다. 완전히 사이킥 에너지로 분해해서 적용 중이니 잠시만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제 바직거리는 사념체는 빛의 파편으로 화하더니 그대로 슈트의 영상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네 존재나 사이킥 에너지 자체가 사기 같아.”


이제 슈트의 표면에 진행 중이라는 문자와 함께 퍼센트 게이지가 올라가서 그걸 보며 세하가 말했다.

-사기라면 사기입니다. 이 세계에도 초능력자가 없진 않겠지만 마스터 정도 수준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저 같은 전뇌... 아니 사이킥... 하아... 아무튼 그냥 저 같이 유능한 비서도 없을 겁니다.
“맞아.”
-그렇다고 숱하게 읽은 픽션처럼 뭔가 로맨스를 바라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딘가 앞서 나가는 루이제에 세하는 다시 멍해지고 말았다.

-아무튼 진하연이 제대로 보고를 올린 모양입니다. 헌터 협회의 네트워크입니다.

루이제는 세하가 그렇게  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슈트의 영상 옆에 바로 다른 화면을 띄워보였다.
얼핏 봐도 어려 문자와 텍스트들이 줄을 잇고 있었는데 루이제가 정리한 덕분인지 하연이 세하에 대해 자세한 보고를 올린 것을 확인할  있었고 상급자가 이를 접수한 것도 알 수 있었다.


“원래 이런 짓하면 잡혀갈 텐데.”
-마스터만 입 다무시면 됩니다. 저는 실체가 없는 생명체니까요.
“그건 맞네. 아무튼 이렇게 공적을 세우게 만드는 이유가 뭐지?”


세하는 어느 정도 짐작은 갔지만 다시 루이제에게 물어보았다.

-마스터의 능력이 알려지면 제법 많은 헌터 길드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올 겁니다. 원래 계약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아프게 글자는 많고 작아서 그 내용을 알  없고 길드들의 생리상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것이 크기 때문에 마스터에게 피곤할 겁니다.
“음. 생각해보니 그렇네.”
-전생의 마스터께서도 그런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연방군 내에서 다툼이 있으면 직접 나서서 사이킥 에너지로 무력시위까지 하셨습니다.


루이제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소리가 리얼하게 들려서 세하가 놀랄 정도였다.

-차라리 헌터 협회에 직접적으로 담판을 나서서 개인 헌터로서 인가를 두시는 게 낫습니다. 협회가 공인하는 헌터로서 헌팅 참여가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거죠. 그러려면 뚜렷한 공적인 필요한 일이니까요.
“결국엔 혼자서 발품 뛰어야 한다는 거군.”

세하는 헌터로서의 삶이 순탄치 않을  같아서 표정이 흐려졌다.


-제 보조가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아무튼 방해 받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힘을 키우는 것이죠. 아, 다 됐습니다.


루이제의 말과 동시에 슈트의 영상에서 완료라는 메시지가 떴다.

-현재 슈트의 전체적 능력이 10퍼센트 정도 향상됐습니다. 그냥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일단.


루이제의 말에 따라 슈트의 영상 옆에 갖가지 수치화된 데이터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기존과 현재를 비교하는 수치였는데 확실히 모든 수치가 올라가 있었다.


“음. 게임 같은 데서 보면 상태창이라고 수치화된 것이 있는데 그걸 떠올리게 하는 군.”
-하지만 그런 수치에 너무 눈이 팔리면 오히려 위험해질 겁니다. 슈트를 착용해보시죠.
“좋아.”


세하가 결정을 내리자 순식간에 영상들이 사라지고 세하의 전신을 슈트가 감쌌다.


“어?”


일단 수룡과 싸울 때보다 몸이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시야가 확연히 넓어졌다. 그전에는 헬멧이 감싸면서 실질적인 시야는 바이저 파츠를 통한 제한된 범위였는데 지금은 헬멧이 머리를 감싸기 무섭게 마치 안 쓴 것처럼 시야가 넓어진 것이었다.

-실제 시야처럼 헬멧이 기능하는 겁니다. 좀 더 편하게 전황을 보실 수 있겠죠?
“으와... 이거 꿈만 꾸던 게 현실로 가능해진 것 같은데.”
-나중에 슈트가 업그레이드 돼서 비행까지 하게 되시면 더 놀라실 겁니다. 물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서 지독할 정도의 하드 트레이닝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뒤이은 엄포에 세하는 주눅이 들 법도 하지만 계속 감탄만 터뜨리고 있었다.

“이래서 슈트니 기갑이 로망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같아.”
-그러니 마스터가 얼른 강해지셔야 합니다. 나중에 '엘렉티오‘를 탑승하시려면 말이죠.


루이제가 말한 엘렉티오라는 단어에 갑자기 세하는 한  가슴이 아려오는 기분이 들었다.

“엘렉티오라........”
-네. 마스터가 최후이자 최강의 사이킥 에너지를 발휘하셨던 그 기체죠.


세하에게는 그 이름이 천천히 머릿속에 각인되고 있었다.





*
이틀 뒤. 이른 아침부터 세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고 있었다.

‘이러니 무슨 취업하러 가는 기분인데.’

아무래도 헌터 협회의 지부를 방문하는 것이라서 나름 옷차림에 신경을 쓴 티가 났다. 그래서 세하가 어색해하자 루이제가 반응했다.

-일단 사람을 만나는데 단정한 모습은 호감을 줍니다.
‘알아, 알아. 그런데 대단한 강화 슈트가 있는데도 이렇게 대중교통수단을 타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서 말이야.’
-적어도 비행이 가능한 마크2 계열 슈트를 사이킥 에너지로 개방하시면 그리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마크1은 비행 기능이 없어서 여러 SNS에 도배될 각오를 하셔야 할 겁니다.
“........”

루이제의 엄포 아닌 엄포에 세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역은 헌터 협회 북구 지부 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그러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세하의 눈앞에 홀로그램으로 역의 이름이 표시되고 있었다.


‘루이제.’
-마스터. 왠지 그 입 다무셨으면 좋겠는데요.


주변의 사람들 때문에 육성을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말했음에도 루이제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아니. 뭔가 평온하게 흐르면 이상할 거 같아서 말이지.’
-여기서 일이 터지길 바라시는 겁니까? 우리가 걸어 다니는 게이트 유발범이라도 되어야 속이 풀리시나요?

어딘가 극단적인 표현까지 들어서 세하는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지하철을 내려서 역의 지상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세하는  때부터 뭔가 신경을 건드리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루이제. 느껴져?’
-네. 마스터의 주변을 포위하는 반응이 셋 정도 파악됩니다.


이상할 정도로 역에 드나드는 사람도 적었다.
아무래도 최근 가장 각광받는 헌터 협회의 지부와 연결 돼있는 덕분에 무척 깔끔하고 편의시설 등도  갖춰져 있었지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알려고 하면 알 수 있겠지?’
-제가 해킹한 수준만큼은 아니겠지만 우리의 경로를 파악 못할 건 없겠죠. 가겠다고 통보까지 한 마당에 말이죠.

이제 역에서 바로 협회 지부로 연결되는 통로에 발을 딛을 때였다. 세하의 뒤를 따라가는 3명의 남녀가 논에 보여서 루이제가 다시 말했다.


-협회의 대처가 고리타분하다고 보여 집니다.
‘최대한 알고 싶겠지. 그러니 지금은 당해주자고.’

그렇게 세하가  따르는 이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협회 지부로 통하는 문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방화벽이 세차게 내려와 세하의 앞을 막았다.


‘루이제. 혹시 하연 씨가 쓴 보고서가 문제 있었어?’
-그날 마스터가 활약했던 것을 상세히 보고 했을 뿐입니다. 가감이 없다는 거죠.
‘그럼 윗사람이 과하게 받아들인 거라고 봐야겠네.’

세하는 등을 돌리지 않고 목에서 뚜둑 소리가 나도록 몸을 풀었다.


“협회 분들이시죠?”

세하는 그렇게 자신의 뒤에 있는 이들을 보지 않고서 말을 이었다.

“제가 오늘 이곳 협회 지부에 볼일이 있는데 이렇게 의도적으로 앞이 막히고 따라오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그럼 사양하지 않고 움직이겠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슈트가 순식간에 나타나 세하의 전신을 뒤덮었다.


-블레이드와 펄스 라이플의 출력을 최저로 조정합니다.
‘그래야지!’


세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달렸다. 눈앞에 있는 세 명의 남녀는 세하가 순식간에 태세를 갖출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해보였다. 세하는 그들 중 가장 앞에 있는 2미터가 넘는 거한에게 먼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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