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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69화 (완결) (169/169)

169화

"어이! 그 설치물들은 이쪽으로 끌고 와! 이쪽에 설치해야 사람들의 주목을 모을 수 있으니까."

"여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베르겐 왕국관이고, 저쪽부터는 나르비크 왕국관, 그리고 저쪽이 브레튼…이 아니라 그람 왕국관이다."

뉴렌달이 오랜만에 즐거운 소란을 겪고 있었다.

짧은 아렌달의 역사였지만, 그 짧은 역사 속에서도 가장 큰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니- 이번 축제는 아렌달의 역사뿐 아니라 동대륙을 넘어 이세계의 역사에서도 가장 축제가 될 것이기에 아렌달인들은 하나 된 마음으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렌달 전체가 소란스러워진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군."

"음- 한 10년은 되지 않았습니까? 아렌달 공항이 완공되고 비행선을 처음 대중에 공개했을 때 이후로 뉴렌달에 사람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

"그렇게 오래되었나?"

내 말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 데우스님의 명령으로 숲을 개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군요."

"그러게 말이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긴 이야기가 아닐 수 없군.

나는 도대체 기사를 뭐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어떻게 기사들에게 도끼를 들게 해 개간을 시켰던 것일까?"

"하하- 저도 그 지시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었는지. 순간적으로 동료 기사들을 이끌고 영지를 떠날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그날 그렇게 아렌달 영지를 떠났다면 소드마스터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좋은 시대를 살지도 못했겠지요."

옛날 일을 추억하는 볼튼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때도 제법 재밌지 않았나?

아무것도 없던 영지에 숲을 개간해서 화전을 만들고, 왕도에서 돈을 빌려 와 저수지를 만들었지. 그리고 몬스터의 침략에 대비해서 자경단도 훈련시키고 말이야.

정말 맨땅에서부터 시작하는 느낌이었지."

"정말 힘든 시기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영지민 모두가 참 열심히 일하던 시절이군요."

맨땅에서부터 하나하나 일궈 나가던 아렌달 영지였으니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빠! 여기 계셨어요?"

"잠깐 볼튼과 아렌달 영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

내 말에 볼튼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맨날 저보고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라고 하셔 놓으시고, 아빠는 옛날이야기만 하시는 것 같네요."

"아리아 아가씨. 그만큼 데우스님께서 많은 일을 하셨기에 옛날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데우스님께서 지금의 아렌달을 만들기까지 해 오신 이야기를 다 들으시려면 겨우 며칠로는 부족할 정도죠. 지금부터라도 제가 아가씨께…"

"네~ 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들을게요. 아쉽게도 오늘은 제가 해야 할 일이 많네요."

아리아의 대답에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해야 할 일이 많지.

아렌달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데 여기서 옛날 일이나 추억하고 있을 수는 없지."

"이렇게 직접 아렌달을 방문해 주다니. 행사의 격을 올려 주어 고맙습니다. 보리스 국왕 폐하."

"의회에 권리를 많이 넘겨서 여유가 조금 생겼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번 행사를 기대하고 있어서 직접 아렌달을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기대 가득한 보리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펠릭스 왕자에게 많은 권한을 넘겨주고 계신다고 하던데,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이미 선왕보다 오랜 시간 왕위에 앉아 있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아렌달에서 선진 교육을 받아 온 펠릭스의 능력이 더 뛰어나니 더 나은 베르겐 왕국을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믿고 맡겨 볼 생각입니다."

"역시 보리스 국왕이시군요."

베르겐 왕국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나에게도 왕위를 넘겨주려고 했던 보리스였다.

"아렌달과 베르겐 왕국의 관계는 앞으로도 문제가 없겠군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보리스를 보내자 브레튼의 의원들이 찾아왔다.

"오랜만이군. 체스터 대의원."

"데우스님의 환영을 받다니. 브레튼의 대표로 아렌달을 찾기를 잘한 것 같군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은 노엘은 소란스러운 뉴렌달을 보며 눈동자를 돌렸다.

"처음 데우스님께서 엑스포를 개최하겠다고 말씀해 주셨을 때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벤트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엑스포가 개최된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하군요.

마치 뉴렌달에 전 대륙의 문화와 산업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보고 있는 것보다 실제로 회장을 돌아다녀 보면 더 대단하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라네. 한번 구경을 시작하면 하루, 이틀은 금방 사라지지."

"하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노엘은 함께 온 의원들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문화와 산업을 소개하면서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다니… 다음에는 우리 브레튼에서도 엑스포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렌달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 주게."

"도움을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데우스님."

브레튼의 의원들을 대회장으로 보내고 나자 새로운 손님들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우스님."

"이렇게 직접 찾아와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뉴렌달에 우리의 체제를 선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직접 찾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아무튼, 환영하네. 노아 위원장."

내 환영 인사에 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 뉴렌달도 많이 변한 것 같군요."

"그런가? 하긴 그동안 빌딩도 많이 지어졌고, 다양한 시설들이 생겼으니 자네가 공부하던 시절과는 다른 모습이겠지."

조금은 부럽다는 듯 뉴렌달을 보는 노아와 레드로의 혁명 동지들을 보고 있자니, 레드로의 어려운 현실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때? 아렌달의 발전에 대해 들어 보고 싶지 않나?

노아 위원장이 바란다면 아렌달의 발전을 주도해 준 사람을 소개해 줄 수도 있네.

오랜 시간 아렌달의 수석 행정관으로 일해 준 대단한 사람이 있거든."

"……"

"아렌달의 행정에 대해 배우고 싶다면 언제든지 말만 하게.

노아 위원장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줄 거야."

내 말에 노아는 조금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레드로는 사정이 나았지만, 다른 혁명 국가들에서는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점들을 하나둘 보여 주고 있었으니 발전된 아렌달을 보고 있기가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다음에 또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언제든지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연락하게."

"……"

노아와 레드로의 혁명 동지들의 인사를 받은 이후에도 나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아렌달과 연결된 항구를 가지게 되면서 중앙대륙 최대의 상업 국가가 된 그람 왕국이나, 메이더스 왕국과 다르게 이름은 지킬 수 있었던 에나플 왕국, 에나플 왕국이 끌어들였던 구왕파의 기사들이 만든 크래프트 군정, 그리고 제로스 국왕이 왕국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남대륙 최대부국으로 부상한 타자트 왕국까지.

사실상 이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아렌달을 찾아온 것이다.

'이렇게 모든 나라의 대표들을 만나고 나니 정말 이세계도 많이 바뀌었다는 게 느껴지네.'

왕국이라는 이름 아래 봉건 영주들이 지배하던 이세계는 이제 다양한 체제를 지닌 나라들이 발생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성을 가진 나라들로 인해 서로 영향을 받아 가며 이세계가 변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데우스님. 이제 대회장으로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슬슬 개막식이 열릴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빨리 가야겠군."

뉴렌달 외곽에 건설한 아렌달 주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옛날 영지민 시절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정말 이세계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들을 구경하다 대회장으로 들어가니 아리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시간을 빼앗겼단다."

웃으며 말하는 내게 아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맨날 보는 사람들이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엄마가 한참 전부터 아빠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셨다고요."

"이런! 샤를로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깜빡했구나."

"아리스와 아리엘도 아빠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빨리 가요."

"아리엘도?"

"당연하죠. 아빠가 봐 주기 전에는 시작하지 않을 거라고 입술이 이만큼이나 나왔다고요."

아리엘을 따라 하는 아리아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리엘이 삐치면 피곤해지니 빨리 가야겠구나."

아리아의 말대로 입술이 나와 있던 아리엘은 나를 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미소를 그리며 다가왔다.

"아빠. 이것 보세요. 예쁘죠? 아리스 언니가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의상이에요."

"아주 예쁘구나. 개막식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어."

"아빠한테 칭찬도 들었겠다, 이제 개막식을 준비하러 내려가야겠네요. 언니. 나 어디 흐트러진 곳 없지?"

"잠깐만. 음- 됐어. 이제 내려가."

아리스에게 마지막까지 확인받은 아리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개막식을 위해 내려가겠습니다.

잘 보고 계셔야 해요."

손까지 흔들며 인사하는 아리엘의 모습에 샤를로트가 말했다.

"조금만 빨리 오지. 조금 전까지 아버지도 계셨는데."

"어디 가셨나?"

"여기보다 잘 보이는 곳에서 보고 싶다고 가셨어요. 오라버니가 말리셔도 기어코 현장에서 보신다고 하셔서…"

"아- 여전히 열정적이시네."

아렌달의 미래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던 장인이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모든 경기를 챙겨 보시겠다는데… 그러다가 쓰러지는 것 아닐까 모르겠네요."

걱정하는 샤를로트였지만, 장인이라면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순간 아렌달 주 경기장이 환하게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와

환한 빛과 함께 아렌달 주 경기장을 채운 사람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흔들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대형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아렌달의 전경과 다양한 문화에 홀린 듯 눈을 빼았기고, 주 경기장 한가운데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공연에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리고 각국의 순서대로 입장하는 선수들에 귀빈들이 박수를 보내는 모습을 보니 기대했던 세계인의 축제에 부족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저기 봐요. 아리엘이에요."

샤를로트의 작품을 연기하는 아리엘의 모습과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정말 이세계가 맞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아직도 이세계라니… 내게는 지금 이곳이 현실이지.'

그동안 해 왔던 수 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처음 내가 이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이세계의 유일한 현대인이었다.

'나혼자 현대인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도 내가 아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나혼자가 아닌 모두가 현대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내가 이세계에 오게 된 이유를 찾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빠?"

"당신 왜 그래요?"

내 눈물에 가족들이 당황하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그 걱정이 미안하게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나혼자 현대인이 아니라 모두가 현대인.]

"그래. 모두가 현대인이다!"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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