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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67화 (167/169)

167화

중앙대륙에서 의외의 손님이 아렌달을 찾아왔다.

"저희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붉은 두건을 두르고 말하는 노아의 모습이 못마땅한지 리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렌달에서 추방당한 녀석이 뻔뻔하게 돌아왔구나."

"……"

리오의 질책에 동지들이 나서려 하자 노아가 그들을 막으며 말했다.

"저는 지금 아렌달에서 추방당했던 학생이 아닌 혁명 국가 레드로의 혁명 동지 대표로서 아렌달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를 학생 노아가 아닌 한 나라의 대표로서 인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당하게 말하는 노아의 모습에 리오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더 이상 그를 질책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노아는 리오를 잠시 바라보고는 나에게 말했다.

"저희가 이렇게 아렌달을 방문한 것은 아렌달이 혁명 국가 레드로를 하나의 나라로서 인정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미 혁명 국가라고 말을 해 놓고 아렌달의 인정이 필요한가?

그것도 동대륙도 아닌 중앙대륙에 있으면서?"

내 물음에 노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혁명 국가는 귀족이 아닌 평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귀족들이 지배하는 왕국들이 혁명 국가 레드로를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데우스님께서도 모르시지는 않을 겁니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 주인인 나라를 귀족들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레드로는 주변 왕국과 귀족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받고 있었다.

"만약 아렌달에서 레드로를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주신다면 주변의 왕국들도 레드로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앙대륙에 있는 대부분 왕국은 아렌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으니 아렌달의 인정을 받는 것이 레드로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레드로가 아렌달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또 한 가지 있었다.

"그리고 아렌달이 가지고 간 레드로의 자원의 소유권과 개발권을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메이더스 왕국이 멸망하면서 그 안에 있던 자원들과 개발에 대한 권리를 아렌달이 차지했었다.

기껏 나라를 세웠는데 영토 안에 있는 자원도 사용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개발도 못 하게 되면 국가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메이더스 왕국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으로 아렌달이 얻어 낸 것인데 그걸 왜 다시 돌려줘야 하지?

아니- 돌려준다는 말조차 맞지 않아. 원래부터 레드로의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야."

내 물음에 노아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저희가 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아렌달에서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들 아닙니까?

아렌달이 얻어 낸 것들을 모두 돌려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자원과 개발권을 돌려주신다면 다른 왕국들과 같이 아렌달에 대가를 지불하겠습니다.

혁명 국가 안에 있는 자원과 개발권만큼은 저희들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노아의 말에 동지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아렌달에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솔직히 내 허락 없이 마음대로 뒤집어엎을 줄 알았는데…"

"만약 그랬다가는 그 책임을 혁명 국가에 지우셨겠죠."

"그거야 당연하지. 아렌달의 것을 함부로 다루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 말과 함께 혁명 동지들을 보며 씨익 웃어 주자 그들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좋아. 대가를 지불한다면 자원에 대한 사용권과 개발권의 일부를 허락해 주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혁명 국가를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 역시 들어주지."

내 말에 노아와 혁명 동지들의 표정이 조금씩 펴졌다. 자신들이 아렌달을 찾은 목적을 모두 달성한 것이니 긴장이 풀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대신 다른 왕국들과 마찬가지로 협약을 맺는다."

"무, 물론입니다."

"아렌달과 협약을 맺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대답하는 것이겠지?"

내 말에 노아가 입술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만족한 얼굴로 일어나는 노아와 동지들의 모습에 나는 생각했다.

'백성들의 힘으로 만든 나라라…

과연 혁명 국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역사적인 의의는 있겠지.

근데 그러면 민주주의보다 사회주의 체제가 먼저 생기는 건가? 그것도 재밌네.'

1년이 지났지만, 중앙대륙은 여전히 조용할 날이 없었다.

에나플의 내전은 여전했고, 새로운 왕국이 만들어지거나 사라지는 일이 소식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혁명 국가 레드로 역시 계속해서 삐걱대는 모습이었다.

"레드로는 또 한 번 갈라지는 건가?"

"권력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으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평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사상에서 출발했던 레드로는 단 1년 만에 3개의 나라로 갈라졌다.

아렌달과 협약을 맺고 하나의 나라로서 달려 나가려 했던 레드로였지만, 내 예상대로 잘 굴러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어렵게 아렌달의 인정을 받아 놓고도 나라의 운영이 되지 않는 그림이었다.

물론 평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만들어진 나라였던 만큼 새로운 왕을 세우거나 기존의 귀족주의로 돌아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몰랐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고, 나라의 운영을 해 본 적 없는 사상가들이 자기네들 사상대로 나라를 운영해 보려다 삐걱대는 거겠지요."

"혁명 국가들은 안정을 찾으려면 몇 년은 더 걸리겠네."

"안정을 찾기 전에 다른 왕국들에 무너지지나 않으면 다행 아니겠습니까?"

리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오히려 외부의 공격을 받게 되어 안정을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래 외부의 공격이 있으면 내부에서는 더 똘똘 뭉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중앙대륙이 시끄럽든 말든 아렌달에 피해만 없으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정 안 되겠으면 비행선으로 순회공연 한번 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비행선만 보내도 아렌달의 눈치를 보느라 조용해질 테니 말이다.

중앙대륙만큼은 아니라도 동대륙 역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한때는 동대륙의 패자라고 일컬어지던 아스타나 왕국이 멸망한 후 그 땅을 주변 왕국들이 가만히 놔둘 일은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서로 더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열을 냈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영주들이 영지를 독립시키는 등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 안에서 가장 많은 재미를 본 것은 베르겐 왕국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동부를 그대로 집어삼키면서 아렌달과 브레튼이 독립하기 이전보다 더 큰 영토를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영토의 크기만 보면 베르겐 왕국이 동대륙의 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것도 데우스님 덕분 아닙니까? 나르비크 왕국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지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나르비크 왕국에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했을 겁니다."

"아무리 내가 도와줬다고는 해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베르겐 왕국이 그 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거지.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면 아무리 도와준다고 해도 그렇게 넓은 영토를 차지할 수 있었겠어?

베르겐 왕국은 대국이 될 준비가 되어 있던 거지."

물론 영토를 빼고 보면 각종 이권에 깃발을 꽂아 놓은 아렌달도 큰 이득을 봤지만, 베르겐 왕국은 이제 대국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이 되었다.

거기에 보리스가 기술과 문화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으니 베르겐 왕국의 미래는 밝은 정도가 아니라 빛을 내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만 왕국을 운영한다면, 보리스는 베르겐 왕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았다.

"베르겐 왕국의 역사에서 아렌달은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네.

그래도 아렌달 가문 역시 왕가의 혈통이니까 나쁘게는 기록하지 않겠지?"

"베르겐 왕국에서 어떻게 기록하던지 이 세계 역사에서 아렌달과 데우스님의 업적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리오님의 말이 맞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위업을 달성한 것은 데우스님 아닙니까?

그리고 데우스님의 업적은 아직 끝나지 않았죠."

리오의 말에 급발진하는 볼튼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렌달의 미래는 어떨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렌달은 분명 이세계의 그 어떤 나라보다 강력한 대국이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부족하고 영토만 조금 작을 뿐, 기술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다른 왕국들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나라였으니까.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이제는 아렌달 문화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아렌달의 발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렌달과 다른 왕국들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우스울 정도로 앞서 달려가고 있는 아렌달이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왕국들은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무얼 해 온 것인지 모르겠네요."

"왕국들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해 오기는 했겠지. 그러니 이세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말이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그 이전에 아무것도 없었다면 아렌달도 없었을 테니까."

만약 내가 눈을 뜬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구석기 시대였다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돌도끼를 조금 더 날카롭게 만들고, 흙을 빚어 토기를 만드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그나마 왕국이라는 체계가 있고, 농업 사회에서 최소한의 기반이라도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주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변경에 위치한 빈약한 영지라도 내가 주도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위치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만약 귀족 영주가 아닌 농가의 자식이나 노예의 신분이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신분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는 자신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법이라는 치트키 역시 지금의 아렌달이 있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현대 지식과 개념들을 이세계에 사용하기 위해서 마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이세계가 마법이 없는 세계였다면 다양한 매커니즘으로 움직이는 기술들을 발현시킬 수 있었을까? 비행선은 차치하고서도 자동차나 냉장고를 만들 수나 있었을까?

우스울 정도로 모든 것이 잘 들어맞았기에 나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을 따라와 줄 수 있는 인재들이 없었다면, 나 혼자 힘으로 뭘 할 수 있었겠어.'

언젠가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세계에서는 현대인이 천재라고 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웃음만 나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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