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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66화 (166/169)

166화

혁명군을 몰살시키고 기세등등하던 에나플 왕국의 병사들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 마법사! 비행선을 떨어트려라!"

"보, 보호 마법… 아니- 땅굴로 숨어라!"

한동안 개입하지 않고 있던 아렌달이 개입하는 순간 전투의 양상이 바뀌는 모습에 에나플 왕국의 귀족들은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비행선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아렌달의 일방적인 폭력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쟁이었다."

"왕국이, 아니-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뒤집어씌워야 하는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빅터 국왕과 메이더스 왕국의 루이 국왕과 함께 전쟁을 시작한 장본인.

"죄송합니다. 국왕 폐하."

"이… 이놈들!"

"모두가 죽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에나플 왕국의 명맥은 이어 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

에나플 국왕은 귀족들의 반역으로 포박되었고, 에나플의 귀족들은 국왕의 목숨을 대가로 아렌달에 왕국의 존속을 요구했다.

굳이 불필요한 희생을 계속해서 만들 필요는 없었기에 에나플 귀족들의 결정에 아렌달은 응답했고, 아렌달의 전쟁은 끝이 났다.

"내가 손을 놓았다고 전쟁이 끝나는 건 아니네."

메이더스 왕국 위에 세워진 혁명 국가 레드로는 남은 귀족세력을 모두 정리하겠다는 일념으로 여전히 붉은 깃발을 세우고 있었고, 에나플 왕국은 반역을 일으킨 신흥 귀족파와 반역자들을 처단하겠다는 구왕파가 내전으로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내전이 일어났다.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을 따르던 주변 왕국들도 두 패자의 몰락에 왕국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자원에 대한 권리와 개발권을 제대로 행사하려면 몇 년은 걸리겠군."

"그렇게까지 걸리겠습니까? 저들도 눈치가 있다면 아렌달의 행사에 방해하는 짓은 못 할 겁니다. 만약 눈치 없이 아렌달에 시비를 걸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주면 되는 일 아니겠습니까?"

리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 말대로 만약 아렌달에 방해가 된다면 비행선 몇 대 띄워 주면 그만이니까.

중앙대륙에서 매일같이 들어오는 풍부한 자원과 노동력은 아렌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새 시대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요?"

"그런가? 너무 어려운 개념인가?"

"어려운 개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아니 데우스님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이지 이해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시키겠다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리오의 물음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니까 이야기를 꺼낸 것 아니겠어?"

내 대답에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컴퓨터도 없는 세상에서 데이터를 논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법의 도움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어 왔는지 생각해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아렌달에서 생산하는 상품들은 모두 숫자로 기록되고 있다.

아렌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주민등록으로 기록되어 있지.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보면 마냥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을까?"

"진심이십니까?"

"당연히."

내 대답에 사람들은 고개를 한 번씩 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되는 것이겠지요. 데우스님은 언제나 상상 이상의 것들을 해 오셨으니 말입니다.

아렌달이 이루어 온 것들을 보십시오.

변방의 작은 영지에서 바깥의 땅을 확장하고, 마법 무기와 수많은 마법 아이템들을 비롯해서 동력선과 자동차, 기차 그리고 비행선까지… 그 누구도 지금의 아렌달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겁니다.

데우스님의 상상은 언제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아렌달에서 시작된 문화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떠올려 보면 앞으로 이 세계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아렌달에서 시작된 문화들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것들이 되었다.

동대륙은 물론이고, 남대륙과 중앙대륙 어디를 가도 아렌달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축구를 즐기며 다양한 문학과 예술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면 더 쉽고 빠르게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만큼 이 세계의 발전도 쉽고 빠르게 일어나겠지. 다양한 기술들이 섞이며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질 것이고,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더욱 풍성한 문화로 발전하겠지.

정보화 시대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내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같이 고개를 끄덕이던 자하가 내게 말했다.

"근데 모든 것을 데이터화시킨다면 그것을 기록하고 저장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글자로 남기기에는 너무 방대한 양 아닙니까?"

"당연히 글자로 남기기에는 양이 너무 많지.

그런 걸 일일이 손으로 쓰다가는 평생이 걸려도 안 될 거야."

"그럼 어떻게 합니까?"

자하의 물음에 사람들이 자하를 바라봤다. 자하를 바라보는 모두의 표정에 자하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진 것은 따로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서, 설마…"

"지금까지 아렌달이 발전해 오는 데 마탑과 마법사들의 공을 빼놓을 수는 없지.

그래서 이번에도 자하와 마법사들에게 나는 아주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중앙대륙에서 영입한 마법사도 많으니 누군가는 해답을 내놓지 않겠어. 하하-"

"……"

"연구비는 얼마든지 내줄 테니 아렌달을 또 한 번 도약시켜 봐."

연구비라는 말에 자하의 표정이 변했다.

"정말 연구비는 얼마든지 써도 괜찮은 겁니까?"

"리오. 연구비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은 거지?"

"앞으로 수십 년은 전쟁 분담금으로 들어오는 게 있어서…"

"들었지?"

"그, 그럼 한번 해 보겠습니다."

연구비가 충분하다는 말에 자하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자면 컴퓨터를 먼저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데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분명 필요한 것이겠죠."

"아- 컴퓨터를 만들고 나면 그다음에는 인터넷도 만들어 줘.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이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겠어."

"…인터넷은 또 뭡니까?"

아렌달이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할 일을 하는 동안 중앙대륙은 여전히 시끄러운 모습이었다.

혁명 국가 레드로의 이념 아래 평등을 배운 사람들은 모두가 동등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힘을 합쳤고, 귀족주의와 신분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왕국들은 레드로의 이념이 왕국으로 흘러들어 오지 못하도록 싸웠다.

'어차피 사상의 차이로 발생하는 이야기는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지.

저들이 어떤 사상으로 어떤 짓을 한다고 해도 아렌달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그저 밖에서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저 아렌달은 남들이 뭘 하건 아렌달의 일을 하면 될 뿐이다.

물론 그 안에서도 이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늘려 나가기 위해 하는 일도 있었다.

아렌달 밖에서 들어오는 유학생들을 꾸준히 늘려서 아렌달의 생각을 가르치기도 했고, 아렌달의 기술력을 토대로 여러 가지 대형 사업들을 일으켜 기술력을 전파하기도 했다.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아렌달의 장점들을 계속해서 보여 주었고, 영화나 드라마 등의 유흥거리와 스포츠를 교류하면서 아렌달 문화에 대한 전파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이제 이 세계에 아렌달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렌달의 영향력은 이 세계 전반에 미치고 있었다.

"중앙대륙에서 난민이 너무 들어와서 인구가 너무 많이 늘었다."

아렌달의 인구가 어느새 100만 명을 넘겨 버렸다.

겨우 2천 명의 인구가 모여 있던 아렌달 영지를 떠올려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도시 개발은 어떻게 되고 있지?"

"아렌달 건설에서 신도시를 3개 더 만들고 있습니다만, 그걸로는 부족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족하면 더 만들어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도시를 한 10개쯤 더 만드는 건 어때?"

"그만한 자원도 인력도 없는데요?"

"자원이야 중앙대륙에서 가지고 오면 되는 일이고, 인력이야 처음 뉴렌달 공사를 했던 것처럼 하면 되는 일이지."

내 말에 리오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뉴렌달 공사를 떠올려 보라고. 도시로 이주할 영지민들이 자기네들 손으로 직접 공사를 해서 만든 게 뉴렌달이잖아.

그것처럼 난민들보고 자신들이 살게 될 도시를 만들게 해. 그럼 더 열심히, 잘 만들지 않겠어.

자기네들이 평생 살아야 할 도시니까 말이야. 그리고 아렌달의 가장 핵심 산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건설업, 공사판이잖아. 난민들 일자리도 해결될 테니 딱이네."

내 말에 리오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데우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렌달인이 되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살 도시 공사에 참여해 봐야 하는 법이죠."

"앞으로 주변 왕국이나 중앙대륙에 대규모 사업을 벌이려면 공사 기술자가 많아야 하니 공사판의 경험을 쌓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거야."

아렌달이 얻어 낸 개발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공사들을 다 해치우려면 최대한 많은 공사 기술자들을 양성해야 했다.

거기에 손도 대지 않고 있는 구스강 너머의 바깥의 땅과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다른 대륙들까지 생각해 보면 이세계에서 건설업은 절대 끝나지 않을 블루 오션이 틀림없었다.

아렌달의 인구가 늘어나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며 귀족 마을이라는 이름도 점점 사라졌다.

귀족 가문에서도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땅에 연연하지 않았고, 도시 안에서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것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이라는 신분을 자랑하며 내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혈통으로 얻은 귀족이라는 신분보다는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자본과 사업을 더 내세우며 아렌달 인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노아와 사상가들이 없애기 위해 노력했던 신분의 벽은 귀족들 스스로가 내버리게 되면서 아렌달은 더 이상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자본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분의 벽이 만들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지만 차차 법을 개정하면서 그들을 제어한다면 내가 기억하는 대한민국과 같은 모습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진 것이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고, 그들이 누리는 권리만큼 책임을 부과하면 아렌달은 분명 현대 사회와 다른, 최소한 그것보다는 나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

그것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이세계도 좋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세계에 온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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