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65화 (165/169)

165화

혁명세력에 의해 안에서부터 붕괴되어 가는 메이더스 왕국, 혁명세력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귀족들이 왕국을 버리기 시작한 에나플 왕국, 두 왕국과 같은 노선을 타고 있다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린 왕국들까지.

혁명의 붉은 물결은 내가 의도적으로 풀었던 물자들을 이용해 왕국의 체제를 무너트렸다. 그리고 나는 아렌달에서 방관자의 입장으로 새로운 세력의 발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메이더스 왕국의 루이 국왕은 이제 나를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것 같군."

"혁명군의 총칼을 피하기 위해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메이더스 왕국은 이제 더 이상 중앙대륙의 패자가 아닙니다."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앙대륙을 넘어 이 세계에서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없던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은 과거의 영광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약해져 갔다.

아렌달은 그들이 분열되어 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챙겼다. 지원을 받지 못하는 마법사들을 아렌달로 받아들였고, 버려진 광산에 아렌달의 깃발을 꽂았을 뿐 아니라, 귀족들이 버리고 간 보물들까지 싹 수거하며 아렌달에 필요한 자원들을 끌어모았다.

그것만으로도 전쟁에 들였던 자금과 물자들을 회복했다고 말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양이었다.

"혁명군의 움직임을 보면 지금 판을 짜고 있는 게 아렌달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네.

초기에 머리를 숙인 왕국들에는 자신들의 사상을 퍼트리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지난 혁명 때는 그람 왕국과 그 주변 왕국에서 더 활발히 활동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

그리고 괜히 안정을 찾아가는 왕국을 건드리는 것보다는 혼란에 빠져 있는 왕국의 백성들을 선동하는 것이 더 세력을 확장하기에는 좋을 것이다.

"뭐- 메이더스 왕국 안에 일부분이라도 자신들의 영역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혁명은 성공이나 마찬가지지. 거기서 더 나아가 왕국까지 무너트리면 대박이고.

물론 지나치게 선을 넘는다면 그 책임은 알아서 하는 거고 말이야."

"한번 실패를 겪은 혁명세력이 다시 한번 선을 넘는 실수를 할까요?"

리오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고 말았다.

저들은 반드시 실수할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아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권력을 맛보고 있을 테니까. 그 권력에 취해 더 큰 것을 취하려다가 선을 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 안에서 선을 지키는 자가 있다면 작은 영역이라도 남기는 것이고, 아니라면 혁명은 또다시 실패하겠지.

그래도 그 안에서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지 않겠어? 모두가 멍청이는 아닐 테니까."

내 말에 리오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따위 사상을 품은 것부터가 멍청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겁니다."

* * *

메이더스 왕국에서는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끌려가 목이 매달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귀족들 특히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군을 이용해 혁명군을 막아 보려 했지만, 계속해서 불어나는 혁명군에 붙잡혀 목이 매달리거나 영지를 버리고 도망쳤다.

하나의 영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혁명군의 기세는 뜨겁게 타올랐고, 왕도를 점령하고 저항하던 맥그리거 공작의 목을 매달았을 때 절정에 이르렀다.

"맥그리거 공작이 죽었다! 루이 국왕과 도망친 왕족들만 잡으면 우리의 혁명은 성공이다!

붉은 깃발의 아래 평등의 시대가 올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메이더스 왕국을 지탱하던 맥그리거 공작의 죽음은 루이 국왕과 메이더스 왕족뿐 아니라 주변 왕국들에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국왕 폐하. 더러운 역도들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맥그리거 공작은 어디 있는가! 나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은, 왕국군은 어디에 있냐는 말이다!"

"…국왕 폐하. 미래를 위해 도망치셔야 합니다.

국왕 폐하만 살아 계신다면 메이더스 왕국은 부활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이냐!"

"그, 그것이… 바깥으로…"

"바깥…"

몬스터의 땅밖에 갈 곳이 없다는 말에 루이 국왕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지만 루이 국왕은 바깥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다.

"왕족이다! 도망친 왕족이 여기 있다!"

귀족들이 혁명군에게 루이 국왕과 왕족을 팔아 목숨과 재산을 건지려 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여기까지!"

"국왕 폐하 도망치십시오!"

루이 국왕을 피신시키려던 호위 기사들이 혁명군의 총칼에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며 루이 국왕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새하얗게 머리가 새어 버린 루이 국왕과 왕족들이 왕도로 다시 끌려오는 모습은 메이더스 왕국의 백성들에게는 무언가 메세지를 주는 듯했다.

"저 더러운 인간이 아렌달과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겠지."

"저놈이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내 친구들이 모두 죽었어!"

"아렌달의 말만 잘 들었다면 폭격도 없었을 것이고, 왕도가 불타는 일도 없었겠지."

왕족을 최대한 이용하려던 혁명세력은 백성들의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광장으로 끌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백성들의 눈빛에 루이 국왕은 새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를 들었다.

그 강렬한 인상에 백성들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숙이자 루이 국왕이 소리쳤다.

"나는 메이더스 왕국의 왕이다!

왕국의 백성이라면 나를 위해, 왕국을 위해 움직여라!"

루이 국왕의 목소리에 백성들이 움찔거리며 떨었지만, 아쉽게도 혁명군이 모두 메이더스 왕국의 사람은 아니었다.

강제로 자신의 머리를 단두대 아래로 누르는 혁명군 간부에 루이 국왕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왕은 머리를 숙이지 않는다!"

하지만 혁명군 간부는 아무렇지 않은 듯 루이 국왕을 단두대에 고정시키고 기다리고 있던 노아에게 신호를 주었다.

"우리는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귀족, 그중에서도 가장 고귀하다고 일컬어지던 왕 역시 평민과 똑같이 피를 흘리고 죽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혁명의 붉은 깃발 아래 사람을 귀족과 평민으로 나누던 신분제도는 사라질 것이고, 모든 사람은 동등한 가치를 가진 평등한 존재로서 존중받을 것이다!"

노아의 연설에 사상가들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광장에 있던 백성들도 하나둘 붉은 두건과 장식을 손에 들고 흔들었다.

혁명이라는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에 노아가 손을 들어 단두대에 묶여 있는 루이 국왕을 가리켰다.

"구시대와는 작별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가겠다!"

"더 나은 세상으로!"

백성들의 외침과 함께 혁명군 간부의 손도 움직였다.

-스릉!

금속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금속이 닿는 느낌에 루이 국왕이 머리를 돌렸다.

"나는 메이더스 왕국의 왕…"

-툭

* * *

메이더스 왕국에 들어가 있던 종군기자들이 보내오는 영상으로 메이더스 왕국의 멸망을 지켜보았다.

기분 같아서는 아렌달의 손으로 루이 국왕에서 벌을 내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백성들 앞에서 죽는 모습을 보니 차라리 이렇게 죽는 것이 루이 국왕으로서는 더한 굴욕이 아닐까 생각됐다.

'문제는 혁명의 물결이 너무 빨라졌다는 거지.'

무려 한 왕국의 왕을, 그것도 중앙대륙의 패자라 불리던 왕을 붙잡아 죽였다. 혁명군의 기세는 더할 나위 없이 강하게 중앙대륙에 퍼져 가고 있었다.

아렌달 쪽에 섰던 왕국들도 혁명세력의 위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무장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혁명군에 의해 다음 희생양으로 삼아질 수도 있었기에 왕국의 이름을 달고 있는 나라들은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에나플 왕국에서 왕도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군사를 모았다는군. 메이더스 왕국과 같은 길을 걷지 않으려는지 끌어안을 수 있는 모든 기사와 마법사, 용병들까지 집결시키고 있어.

그 안에는 왕국에서 버림받은 소드마스터들도 있다. 혁명군에서 지금 기세를 믿고 섣불리 움직이다가는 함정에 빠져 일을 그르칠지도 모른다."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진격하던 아렌달의 기세도 막았던 구시대의 불꽃이었다.

아렌달과 비교하면 훨씬 떨어지는 혁명군과의 싸움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하물며 소드마스터들이 작정하고 혁명세력의 요인들을 암살하기 시작하면 지금 일어난 물결 역시 다시 가라앉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미 힘에 취한 것 같던데? 일단은 한 번쯤은 데이겠지.

그저 데이는 정도에서 멈출지, 데이는 것을 넘어 크게 화상을 입고 끝장이 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말이야.

눈치가 있다면 적당히 만족하고 물러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두 번째 물결 역시 첫 번째 물결과 같은 끝을 맞이하겠지."

"결국 분열하는 건가?"

이번에 분열하기 시작한 곳은 왕국들이 아니었다.

바로 혁명세력이었다. 루이 국왕과 메이더스 왕국의 왕족들을 참수하면서 목적을 달했다며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을 자제하자고 하던 온건파와 기세를 몰아 에나플과 주변 왕국까지 메이더스 왕국과 같은 결과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강경파가 서로의 주장을 떠들어 대다가 나뉜 것이다.

아직 메이더스 왕국에서도 백성들의 지지가 약하다고 생각한 온건파는 지속된 전쟁으로 힘든 백성들에게 물자를 풀어 지지를 이끌어 냈지만, 강경파는 오히려 무기와 물자를 집중하며 다른 왕국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주도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강경파의 움직임에 온건파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외치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고 더 큰 권력을 위해 무기를 든 혁명군에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갈 때 가더라도 지금의 에나플 왕국은 피하는 게 좋을 텐데…"

하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강경파는 에나플 왕국을 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메이더스 왕국과 중앙대륙의 패자를 겨루던 에나플 왕국인 만큼, 에나플 왕국만 무너트리면 중앙대륙도 같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아렌달의 지원 없이 겨우 혁명 세력만으로 구시대의 불꽃을 모두 품은 에나플 왕국을 무너트릴 수는 없는 것이다.

테이블 위에 놓은 통신 마나석이 빛을 뿜었다.

"핫라인… 메신저. 데우스 아렌달이다."

-데우스님. 헤돈입니다.

"선을 넘은 거지?"

-그렇습니다. 에나플 왕국과의 전투에서 혁명군 병력 7만 명이 몰살되었습니다.

에나플 왕국이 준비한 함정에 빠져 기사단과 마법사들에 의해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칫-"

구시대의 전쟁도 아니고 한 번의 전투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죽다니. 나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아직 아렌달도 에나플 왕국과 결판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 혁명군이 에나플의 기세만 올려 준 것이다.

"정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군.

비행선을 띄워. 에나플 왕국의 기세를 꺾어 놔야 한다.

안 그러면 주변 왕국들이 다시 에나플 왕국을 중심으로 모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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