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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64화 (164/169)

164화

아스타나 왕국이 멸망하고, 중앙대륙의 병사들이 고립되면서 버려진 물자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아렌달에 필요 없는 물건들은 다시 중앙대륙에서 팔거나 사용하기 위해 가지고 왔다.

그 안에는 당연히 마법 무기도 존재했고, 전투에 필요한 장비들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아렌달 군에는 필요 없는 물건들이었기 때문에 그람 왕국이나 주변 약소국에 강제로 떠넘길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뀐 것이다.

"지하로 숨어든 기사단을 잡기 위해서는 똑같이 지하로 숨은 이들을 이용하는 게 좋겠어."

왕국들의 마법 무기 시험에 이용당한 혁명가들, 그들 중 일부가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노아 역시 숨을 죽이고 있다는 것도.

"정확하지는 않아도 대충 어디에 숨어 있는지는 알고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혁명가들을 이용하고, 가장 잔인하게 혁명가들을 몰아세운 왕국. 바로 메이더스 왕국 지하에 혁명가들이 숨어 있었다.

"그들에게 노획한 물자들을 넘겨주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맞아. 대륙회의 이후 중앙대륙 백성들의 삶은 정말 최악으로 치닫고 있잖아.

처음 붉은 혁명의 파도가 일어났을 때와 비교해도 지금이 더 최악이지.

그런 만큼 권력자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도 엄청나겠지. 그 분노를 발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줄 생각이다."

"……"

내 말에 헤돈이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의외라는 얼굴이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작정하고 왕국의 권력자들만 색출해 내는 것이 희생자가 가장 적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쟁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지금 적대적인 왕국의 국왕과 영주들, 귀족들을 처리한다고 해도 새로운 권력자들에 의해 아렌달은 견제를 받고, 백성들은 또다시 희생될 것 같았다.

'아렌달을 위해서는 왕국들이 아렌달을 신경 쓰지 못하게 만드는 게 좋겠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을 만들어 서로 싸우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훨씬 많은 희생자가 나오더라도 그게 아렌달의 희생은 아니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시 떨어져서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는 게 아렌달의 피해를 가장 줄이는 방법이다."

내 말에 헤돈과 지휘관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아렌달의 군인이었으니 병사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 것이다.

* * *

"선생님. 잠시만 나와 보세요."

노아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뭡니까?"

"저.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마을 옆 동산 아래에서 발견한 물건들입니다."

젊은 동지의 말에 노아는 의심의 눈빛으로 그들이 가지고 온 상자들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쟁 물자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군사들이 잃어버린 물자들 아닙니까?

이런 걸 함부로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자칫하다가 잃어버린 물자를 찾으러 온 군대에 마을이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노아의 다그침에 젊은이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선생님. 맨 아래쪽에 깔려 있는 상자를 확인해 보십시오. 절대로 잃어버린 물자들이 아닙니다."

"?"

그 말에 노아가 위쪽에 쌓여 있던 상자를 치우고 맨 아래 깔려 있던 상자를 열었다.

"이, 이건…"

"혹시 몰라서 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장 아래 깔고 왔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디서 이것들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희에게 보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노아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나 같이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을 보며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을 보자 허망하게 동지들을 잃었던 것이 생각났다. 압도적인 군사력에 짓밟혀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잔인하게 버려졌던 동지들이.

"도대체 누가 이 마법 무기를…"

"선생님. 어떻게 합니까?"

노아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흩어진 동지들을 소집 해야겠습니다."

노아의 부름에 흩어져 있던 혁명의 동지들이 모여들었다.

다들 어딘가 지친 모습 속에서도 노아의 부름에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 여기로 오면서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마법 무기를 구하셨다고요?"

"네. 마을 인근 숲에서 발견했는데, 의도적으로 저희에게 마법 무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의도적이라니… 그렇다면 우리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 말에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여기 남아 있는 이들은 모두 동지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동지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는 만큼 그 두려움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점점 도착하는 동지들로 인해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선생님. 이걸 봐 주십시오.

혹시 몰라서 가지고 온 것인데… 저희 마을에서도 마법 무기가 발견되었습니다."

"선생님! 저희 마을에서도 마법 무기를 구했습니다. 지하 시장에서 구한 물건입니다."

"마법 무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정말 마법 무기가 맞는지 확인을 위해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무슨…"

점점 불어나는 마법 무기와 전쟁 물자들을 보며 노아와 동지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 마법 무기들이 어디서 왔는지 아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동대륙에서 전쟁으로 유실된 물건들이 아닐까요? 아스타나 왕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법 무기가 소실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다 동대륙에서 흘러들어 온 물건이라는 말입니까?"

"만약 메이더스 왕국에서 잃어버린 물건이라면 당장 이것들을 찾기 위해 소란이 일어나야 하지 않습니까? 아렌달과의 전쟁으로 마법 무기 하나하나가 소중할 테니까요.

그런데 왕국의 움직임을 보십시오. 도저히 물자를 잃어버린 모습이 아닙니다."

동지들의 의견에 노아는 생각했다.

'정말 동대륙에서 온 물건이라면…

동대륙에서 여기까지 이 물자들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이라면 딱 한 사람뿐이다.

데우스님.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침묵하는 노아에 혁명의 동지들이 말했다.

"선생님. 이것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실패는 왕국의 힘을 파악하지 못해서, 부족한 무기와 전투력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이 마법 무기들이 있다면 다시 혁명의 깃발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이라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 백성들도 많을 겁니다.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힘들어졌습니다. 왕국이 전쟁을 계속하는 한 결코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나서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이끌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때를 기다리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선생님께서 기다리시던 때입니다."

동지들의 목소리에 노아가 고개를 들었다.

'설마, 제게 말씀하시던 때가 지금이라는 말입니까?'

지금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혁명의 깃발 아래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전의 물결보다 더 큰 물결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동지들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야말로 기다리고 있던 때라고.

그럼에도 노아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쩌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습니다."

이전의 혁명은 일방적인 전투력의 차이로 인해 맞서 싸우기보다는 도망쳐야만 했기 때문에 오히려 희생된 동지들이 적은 것일 수도 있었다.

"혁명을 위해서라면 이까짓 목숨, 아깝지 않습니다."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입니다. 동지들과 함께 죽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결연한 의지에 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가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꾸민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렌달에서 혁명 세력을 이용하기 위해 마법 무기를 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이라면 그만큼 우리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까짓것 당해 주죠. 혁명이 성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이용당해도 괜찮습니다!"

점점 목소리를 높이는 동지들에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역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모른다.

혁명의 물결을 일으키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노아는 다시 한번 동지들을 둘러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두려움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보며 노아는 품속에 가지고 있었던 붉은 두건을 다시 꺼냈다.

노아의 붉은 두건에 동지들 역시 감추고 있던 붉은 두건을 꺼내 들었다.

"혁명의 깃발을 들어라!

혁명의 붉은 물결 아래 이 세상은 평등해질 것이다!"

노아의 목소리에 동지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지들의 뜨거운 눈물을 보며 노아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 * *

"저희가 풀었던 물건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비행선을 이용해 혁명군이 숨어든 마을 인근에 전쟁 물자들을 풀어 두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하 시장에도 아렌달에 필요 없는 무기와 물자들을 팔기 시작했다.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하는 물건들에 나는 혁명의 물결이 다시 일어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를 대신해 왕국을 무너트려 줄 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 정도는 괜찮겠지."

혁명의 물결이 아렌달을 대신해서 숨어 있는 권력자들과 귀찮은 구시대의 잔재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작은 선물을 해 줄 생각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마법의 빛에 메이더스 왕국의 왕도가 불타기 시작했다.

폭격에 무너지는 왕궁과 허물어져 가는 성벽에 조금은 시원한 마음도 들었다. 물론 그 안에서 고통받는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씁쓸한 마음도 생길 수밖에 없었다.

"저걸 복구하려면 몇십 년은 걸릴지도 모르겠네."

"진작에 머리를 숙였다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

이번 폭격으로 왕국들은 다시 한번 아렌달에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아렌달에 집중하는 만큼 자신들의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아렌달은 저들의 변화를 주시하고 평판만 챙길 것이다. 그리고 싸움이 끝났을 때 마무리 정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렌달이 관여하지 않은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땅굴을 파고 전선을 이루고 있던 연합군은 안에서부터 일어나는 소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붉은 깃발은?!"

"혁명의 붉은 물결이 다시 일어난 것인가?"

이전과 다르게 무장한 혁명군에 왕국의 권력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혁명 세력이 마법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냐!"

"언제 저렇게 세력을 키운 것이냐!"

혁명 세력이 몸집을 키우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만큼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속도 역시 빠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전의 실패로 동지들을 잃은 복수심까지 가지고 있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거친 파도에 왕국의 권력자들은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진작에 아렌달에 머리를 숙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아니- 처음부터 대륙회의 따위를 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일입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을 수밖에 없는 법.

그렇게 왕국들은 빠르게 분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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