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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63화 (163/169)

163화

그람 왕국을 출발한 비행선들이 중앙대륙을 활보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렌달에 저항하기로 마음을 먹은 왕국들이 다시 한번 연합군을 만들어 대응했지만, 비행선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받게 되는 공격에 계속해서 병력을 잃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비행선은 운용하는 것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비행선을 띄우는 것에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고, 땅굴까지 파 가면서 비행선의 시야에서 벗어나려는 왕국 연합군에 마구잡이식 폭격을 가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이 길어지며 길어질수록 아렌달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아무리 텔레비전 방송으로 여론을 선동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날아간 요새만 10개가 넘고, 제 기능을 잃은 도시도 6개나 되는데 저항을 멈추지 않을 생각인가?"

이렇게 일방적인 전쟁을 질질 끌고 가려고 하는 왕국들에 나는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데우스님. 왕국 연합군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우리 군의 진격 속도도 느려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달리기에도 좋은 지형이 아니라 기동력도 떨어지고, 작정하고 함정을 만들어 대고 있어서 자칫 병사들의 피해가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비행선으로 우선 폭격을 해도 숨을 죽이고 있다가 우리 병사들이 나타나면 모습을 보인다는 건 그냥 작정하고 시간을 끌겠다는 거지.

이대로 시간을 끌어서 전쟁을 끝내거나 아렌달에 대항할 기술을 완성하고자 하는 게 뻔해."

"차라리 머리를 숙이고 들어온 왕국들에게 군사를 준비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절대적인 병사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면 빈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헤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부로 왕국을 지킬 최소한의 무장만 남겨 놓고 군사력을 통제했는데, 다시 군사를 무장시키라는 것은 자칫하다가 우리 군의 뒤통수를 칠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될 수도 있었다.

'아렌달을 무너트리고, 아렌달의 재물과 기술력을 탐내서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이다.

아무리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다시 새로운 위험인자를 만들 필요는 없지.'

거기다가 이미 많은 백성을 잃은 왕국들이었다. 피해를 보았던 것들이 정상적으로 복구가 되지 않는다면 아렌달로서도 곤란했다. 이들 역시 아렌달의 상품을 구매해 주던 시장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스타나 왕국과의 전쟁과 다르게 중앙대륙에서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해서 병사들의 사기도 점점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사실 요새와 도시를 날리면서 이룬 성과만 해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그건 비행선으로 폭격을 해서 이룬 성과였기에 병사들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땅굴을 파고 숨어든 적군에 아군 병사들이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다.

"기사단, 그리고 소드 마스터라는 것들이 땅굴까지 파고 들어가서 습격을 하다니…"

내 말에 볼튼이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제 그 방법 말고는 자신들을 증명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소드마스터의 강인한 육체와 마나 소드도 마법 무기의 화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시대니까요."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기사나 소드마스터가 마법 무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접근할 수 있어야 뭐라도 해 볼 수 있는 그림이 나온다.

그러니 수풀로 위장을 하고, 몸에 먼지를 두르면서까지 땅굴에 몸을 숨기고 습격을 나오는 것이다. 과거의 존재들이 전장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잘 먹혀들어 가고 있으니 문제지."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 접근을 허용하는 순간 아군 병사들의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기사들을 땅굴에서 꺼낼 수만 있어도 사실상 아렌달 군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런 상황이라니…"

거기에 땅굴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까지. 마치 역사 시간에 배웠던 어떤 전쟁이 떠오르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시간문제입니다. 저들은 비행선을 막을 능력이 없으니까요.

이미 방송을 통해 전쟁의 명분은 아렌달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까?

꾸준히 여론을 만들면 백성들이 알아서 권력자들을 붙잡아 바칠지도 모릅니다."

왕국의 백성들이 직접 자신들의 왕을 끌어내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겠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저들이 이렇게 시간을 끌며 저항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명분이 아렌달에 있다고 해도, 결국 왕국의 백성들을 죽이는 것은 아렌달 군이라는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었다.

아렌달의 평판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아렌달 군에 원한을 가진 백성들이 늘어나게 되면 차후 아렌달의 중앙대륙 진출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었다.

* * *

맥그리거 공작은 연합군이 아렌달군의 진격을 막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남아 있는 소드마스터와 기사단을 이용해 아렌달 군을 기습하자는 계획이 제대로 적중했다. 아렌달 군을 괴롭히며 시간을 벌어 주는 기사단에 조금은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비행선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없었기에 요새를 비우고, 도시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아렌달 군이 하늘길을 통해 왕도를 공격한다면 언제라도 왕도를 떠날 수 있게 루이 국왕과 왕족들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어차피 루이 국왕만 붙잡히지 않는다면 되는 일이다. 백성들을 방패막이 삼아서 시간만 벌 수 있다면 분명 아렌달에 저항할 수 있는, 최소한 불평등한 협약을 맺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왕국이 아렌달에 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백성들의 머릿수뿐이다. 이들의 원한이 아렌달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데우스 아렌달이라면 다른 왕국의 백성이라도 절대로 쉽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이들만 잘 이용한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맥그리거 공작의 생각에 에나플 왕국 역시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백성들을 무장시켰다.

어차피 죽는 것은 백성들이지 지배자들이 아니었으니, 조금의 문제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소드마스터나 기사단이 아렌달 군을 기습할 수 있는 조건만 만들 수 있다면 평민 병사들이야 얼마든지 아깝지 않았다.

에나플 왕국 역시 메이더스 왕국과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다만, 에나플의 국왕과 대신의 머릿속이 조금 더 꽃밭에 가 있는 게 문제였지만.

"탈린 후작이 충성스러운 기사라 정말 다행이군."

"만약 탈린 후작께서 국왕 폐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면 아렌달 군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탈린 후작이야말로 에나플 왕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충신이지."

"탈린 후작이 돌아오면 그 공을 높이 여겨 공작위를 내리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옳은 생각이다. 탈린 후작이야말로 공작위에 어울리는 인물이지.

이번 전쟁이 끝난다면 탈린 후작에게 공작위와 함께 대영지를 내릴 것이다."

이미 아렌달과의 전쟁에서 승리라도 했다는 듯 이야기를 하는 에나플 국왕에 일부 대신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왕국이 유지되어야 자신들의 권력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따로 목소리를 내는 귀족은 없었다.

"아렌달만 정리된다면 중앙대륙은 다시 안정될 것이다. 그리고 대륙회의의 협약을 배신한 왕국들에게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병사들을 계속 준비해라.

아렌달이, 데우스 놈이 질려서 포기할 때까지 병사들을 투입시켜라."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다시 한번 자신들의 영지민을 빼앗길까 귀족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도 모른 채 에나플 국왕이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백성이야 시간만 흐른다면 다시 태어나는 법.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배신자들의 백성을 빼앗아 오면 되는 것이다."

"……"

"아렌달이 물러날 때까지 시간만 벌면 되는 것이다! 이 전쟁은 결국 중앙대륙의, 아니- 나의 승리가 될 것이다!"

에나플 국왕의 욕심에 생각 있는 일부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음날 일부 귀족들이 에나플의 왕도를 떠났다. 영지의, 아니- 자신의 재산인 영지민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왕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백성들은 사람이 아니라 재산인 법이었으니까.

* * *

"빌어먹을. 왠지 계속 말려들어 가는 것 같군."

헤돈의 말에 카잔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생각한 전략인지 몰라도 땅굴과 기사단, 소드마스터는 아렌달 군의 진격을 억제하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소드마스터의 마나 소드에 목숨을 잃은 아렌달 군이 늘어날수록 헤돈과 지휘관들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일은 아렌달 병사들과 비교했을 때, 죽은 연합군의 병사들은 수십, 수백 배가 넘었지만 저들의 생각이 너무 뻔하게 읽혔기에 손해를 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왕국에서는 병사들의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병사 10명이 죽더라도 우리 병사 1명을 죽일 수 있다면 좋아할 놈들입니다."

분명 몇십 년 전 자신이었다면 좋은 전략이라고 칭찬을 했을지도 모르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렌달 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계획이었다.

"데우스님께서 열이 많이 받으시겠군. 데우스님께서는 불필요한 죽음을 싫어하시니 말이야."

"그리고 데우스님께는 귀족이나 평민이나 다 똑같은 목숨이실 테니까요."

지휘관들의 목소리에 헤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전쟁을 계속해 봐야 얻는 것도 없겠군. 오히려 아렌달의 평판만 떨어질 것이다."

"헤돈 사령관님. 이럴 바에는 차라리 왕국의 주요 도시와 시설을 모두 날려 버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후 도시와 시설을 복구하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감시만 해도 왕국들은 발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비록 왕국 백성들의 피해는 있겠지만, 차라리 전쟁을 빨리 끝내주는 것이 백성들을 위한 일일 겁니다."

"흠- 괜찮은 의견이군. 당장 데우스님께 말씀을 드려야겠어."

"데우스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헤돈을 비롯한 지휘관들이 굳은 얼굴로 나를 방문했다.

"마침 헤돈에게 전할 말이 있었는데 잘 되었네."

"제게 전할 말씀이라면…"

"나는 이만 아렌달로 돌아가려고. 너무 오랫동안 아렌달을 비워 놓은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말에 헤돈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전쟁을 끝내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고."

아직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에 책임을 묻지 못했다. 두 왕국이 아스타나 왕국과 같은 선택을 한 만큼 그 책임을 거둘 생각은 없었다.

"데우스님. 이대로 소모전을 이어가 봐야 아렌달에 이득이 없습니다. 오히려 중앙대륙의 백성들을 죽였기 때문에 원한만 쌓일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땅굴에 숨어든 기사단과 소드 마스터들을 잡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백성들만 죽어 나갈 뿐입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 역시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차라리 왕도를 비롯한 도시와 왕국들의 핵심 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꾸준한 감시로 왕국이 발전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시를 파괴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이 많이 죽겠군."

"어쩔 수 없는 희생입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더 많은 백성이 죽을 겁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이래나저래나 아렌달로 인해 중앙대륙의 백성들이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조금의 책임도 아렌달이 묻지 않게 해야 한다.

"무슨 방법을 찾으신 겁니까?"

"헤돈이 그랬잖아? 백성들이 알아서 권력자를 붙잡아 받치는 게 좋다고.

그러려면 중앙대륙의 백성들을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지."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헤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만이 하늘에 닿았을 때야말로 혁명의 시간이지."

그때는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을 선동하기에 너무 빨랐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고통과 불만이 극에 이른 지금은 작은 선동으로도 그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미 아렌달에서 미디어를 통해 백성들이 권력자들에게 분노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제 그 분노의 감정을 권력자들을 향해 폭발시킬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구심점만 있으면 충분했다.

"헤돈. 아스타나 왕국에서 노획한 마법 무기와 물자들 있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그걸 조금씩 풀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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