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아렌달에 남아 있던 병사들이 무장을 갖춘 채 침입자들을 추적했다.
아무리 마법 무기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다수의 소드마스터가 잠입을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잡기 위해 나선 병사들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자칫 소드마스터에게 접근을 허용하면 소드마스터의 마나 소드에 병사들이 당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조심해야 했다.
실시간으로 실베르 백작의 움직임을 쫓고 있는 드론과 거점 카메라 덕분에 그들의 움직임은 놓치지 않고 추적하고 있었다.
나르비크의 국경을 넘어온 실베르 백작은 남쪽에 있는 코아스탈과 귀족 마을들을 무시하고 사람을 피한 채 뉴렌달을 향해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이 이상 뉴렌달에 접근하게 할 필요는 없겠지. 괜히 아렌달 안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백성들이 불안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본격적인 소드마스터 사냥이 시작되었다.
뉴렌달까지 달렸다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만한 거리까지 다가왔지만, 미리 기다리고 있던 아렌달 군의 공격에 실베르 후작과 일행들은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콰콰쾅
등 뒤에서 울리는 폭음에 실베르 후작이 소리쳤다.
"이대로 있다가는 계속 추적을 당할 것이오. 국왕 폐하의 명령을 이행하기에는 흩어져서 각자 데우스 아렌달의 목숨을 노리는 것이 나을 듯하오."
"제기랄. 소드마스터가 되어서 몰이를 당할 줄은 몰랐군."
"차라리 힘을 합쳐 돌파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다면 저 귀찮은 것들을 전부 베어 버릴 수 있을 텐데…"
"우리의 발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자동차의 기동력을 앞서기에는 무리가 있소."
만약 발이 묶이는 순간 아렌달의 병사들이 계속해서 들러붙을 게 분명하오. 어차피 데우스 아렌달의 목숨만 끊으면 다 되는 일.
우리 중 누구라도 그의 목숨만 끊을 수 있다면 아렌달도 끝장이니, 여기서 흩어져 각자의 방법으로 데우스 아렌달을 노립시다."
실베르 백작의 말에 네퍼 백작과 게이튼 백작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콰콰쾅
그리고 다시 한번 쏟아지기 시작하는 공격에 이를 갈며 세 방향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갈라져 주면 우리로서야 고맙지."
세 방향으로 흩어지는 소드마스터들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만약의 경우지만 저들이 힘을 합쳐서 우리 병사들을 공격해서 돌파했다면 병사들의 피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결국 흩어지는 방법을 선택했고, 이제부터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혼자가 되었어도 소드마스터는 소드마스터다. 괜히 무리했다가는 위험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해.
공을 세우겠다고 병사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지휘관이 있다면 내가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병사들의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면서 추적해라."
내 명령이 빠르게 아렌달 군으로 전해졌다.
세 갈래로 흩어지는 소드마스터들에 아렌달 군의 움직임도 세 방향으로 갈라졌다.
절대로 그들의 뒤를 놓치지 않겠다는 움직임에 소드마스터들의 움직임이 점점 거칠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숨어도 쫓아오는 거지?"
실베르 백작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의 움직임에 고개를 저었다.
직선으로 달려가기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어서 살짝 방향을 틀면 곧바로 아렌달 군이 그 앞을 막고 공격해 왔다.
그리고 조금만 물러나면 곧바로 추적해 오며 자신을 압박했다.
아렌달 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숨어들어도 어떻게 알았는지 곧장 자신의 머리 위로 아렌달 군의 공격이 날아왔다.
조금의 휴식도 취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을 괴롭히는 아렌달 군의 움직임에 빅터 국왕의 명령을 포기하고 아스타나 왕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기사로서 주군의 명령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반드시 죽인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데우스 아렌달 만큼은 같이 데리고 갈 것이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네퍼 백작과 게이튼 백작이라도 뉴렌달에 다가가길 바라며 실베르 백작은 검을 들었다.
마나 소드를 만들어 낸 네퍼 백작이 소리쳤다.
"감히 소드마스터를 모욕하는 것이냐!"
아렌달 군의 몰이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길 장소가 없는 넓은 장소로 나온 것이 실수였다.
제대로 몰이를 당했다는 생각에 어이없음과 함께 자신을 사냥감 취급하는 아렌달 군에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더 이상 뉴렌달로 다가갈 수도 아스타나 왕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마지막까지 저항하기 위해 마나 소드를 만든 것이다.
"기사로서 암살자 행세를 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덤벼라! 차라리 나는 기사로서 죽겠다!"
네퍼 백작의 마음가짐에 아렌달의 병사들은 마법 무기를 들었다.
사방에서 자신을 겨누는 아렌달 병사들에 네퍼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결코,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아렌달 군의 모습에 허탈함까지 느껴졌다.
"하아-"
그리고 네퍼 백작의 한숨과 함께 아렌달 병사들의 손이 움직였다.
게이튼 백작은 자신의 뒤를 놓치지 않는 아렌달 병사들의 움직임에 고개를 갸웃했다.
실베르 백작이나 네퍼 백작과 다르게 앞으로 나가지 않은 자신의 움직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는 아렌달의 추적 기술에 의아함이 생긴 것이다.
"어떻게 뒤로 물러나는 내 움직임까지 놓치지 않고 쫓아오는 것이냐?"
생각해 보면 뉴렌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렌달에서는 자신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아렌달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장의 모습도 보여 주었던 아렌달이 아니었던가.
그때 케이튼 백작의 눈에 공중에 떠 있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옅은 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마치 별 같은 모습이었지만, 분명 별은 아니었다.
"마나석인가?"
마법 아이템을 사용할 때의 빛과 닮은 그 무언가를 보며 게이튼 백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것 때문에 도망도 칠 수 없었던 것이군."
발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마나석의 빛이 하나 둘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커헉!"
땅바닥의 차가운 감각에 실베르 백작이 눈을 떴다.
굳이 확인해 보지 않더라도 자신의 몸이 다시는 검을 들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다는 게 느껴졌다.
"소드마스터도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건가."
기사의 시대가 끝장이 났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소드마스터인 자신도 아무것도 못 한 채 이렇게 붙잡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렌달 군의 마법 무기에 마나 소드가 산산 조각 나는 것을 보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대에는 소드마스터도 구시대의 잔재일 뿐이라고.
그런 실베르 백작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차라지 전장에서 죽었더라면 이렇게 굴욕적이지는 않았을 것을…"
"게이튼 백작?"
실베르 백작보다는 양호한 모습이었지만, 게이튼 백작도 검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네퍼 백작은?"
"그 역시 우리와 다르지는 않겠지."
"……"
침묵하는 실베르 백작에 게이튼 백작이 허탈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거 아는가? 아렌달은 우리가 처음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우리의 움직임을 다 보고 있었네. 하늘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지."
"……"
"처음부터 우리는 데우스 아렌달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는 말이네."
케이튼 백작의 말에 실베르 백작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한 사람이 다가왔다.
실베르 백작은 그의 모습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실베르 백작."
"볼튼경…"
여유로운 볼튼의 모습에 게이튼 백작이 물었다.
"네파 백작은 이곳으로 오지 않는 건가?"
"다른 한 명의 소드마스터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는 죽었습니다.
병사들이 붙잡으려 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요."
"…그렇군. 네파 백작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으니."
게이튼 백작의 말에 실베르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같은 소드마스터 손에 죽을 수 있는 건가?"
"내가 여기 온 것은 당신들의 목숨을 거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럼?"
"당신들에게 어떤 영상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영상?"
실베르 백작의 물음에 볼튼은 실베르 백작과 게이튼 백작이 볼 수 있게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그리고 기록석에 담겨 있는 영상을 재생했다.
무너지는 성벽과 도망치는 병사들, 그리고 그들을 버리고 가장 앞서 달리는 귀족들이 보였다.
아렌달 군의 공격에 허둥지둥 대며 도망치는 귀족들을 보며 실베르 백작이 이를 갈았다.
"국왕 폐하!"
"이, 이게 무슨…"
자신을 노려보는 두 소드마스터에 볼튼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해 주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쿠드 요새에서의 전투입니다."
전투라는 말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일방적인 아렌달의 공격이었다.
"빅터 국왕이 쿠드 요새에 있었더군요."
"구, 국왕 폐하께서는 어떻게…"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빠, 빨리 말하게!!"
망가진 몸으로 인해 각혈하면서 소리치는 실베르 백작에 볼튼이 안타까운 듯 고개를 저었다.
"곧 만나게 될 겁니다."
빅터 국왕을 포함한 아스타나 왕국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아렌달로 들어오고 있었다.
군 수송차량에 포박되어 끌려오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헛된 욕심의 말로인가?"
베르겐이나 브레튼처럼 분명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었던 아스타나 왕국이었다. 빅터 국왕이 헛된 생각을 품고 중앙대륙과 손을 잡지만 않았어도 아스타나 왕국이 전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굴욕적인 모습으로 아렌달에 끌려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데우스 아렌달! 나는 아스타나 왕국의 국왕이다.
귀족법에 따라 이렇게 포박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당장 나를 풀어 주도록 하라!"
나를 보며 소리치는 빅터 국왕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목소리를 보니 아직도 반성하지 않았군."
"당장 이걸 풀지 못하겠느냐!"
목소리를 높이는 빅터 국왕에 다른 왕족들과 귀족들이 눈치를 보는 모습은 정말 우습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전범의 이야기를 들어 줄 필요는 없지.
그리고 잊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렌달에서는 귀족법이라는 게 없어. 빅터 국왕 당신은 전쟁을 일으킨 죄로 아렌달에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데우스 아렌달!"
빅터 국왕이 발악하는 모습에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스타나 왕국은 이제 정리가 되겠군."
"빅터 국왕과 왕족들, 대영주들과 소드마스터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구금했습니다.
아스타나 왕국은 이제 멸망의 길을 걷게 되겠군요."
"최소한 아스타나라는 이름은 지워지겠지. 남은 영주들에 의해 수십 개로 쪼개지거나 다른 왕국들에 먹히겠지."
'보리스에게 빨리 아스타나 왕국을 삼키라고 말해야겠군.'
한때는 동대륙의 패자였던 아스타나 왕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게 되었다. 국왕 한 사람의 헛된 욕심 때문에 이렇게 멸망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럼 다음은 중앙대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