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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59화 (159/169)

159화

아스타나 왕국에서 일어나는 전투들은 아렌달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아스타나 왕국으로 들어온 중앙대륙의 병력도 각자가 개발한 마법 무기로 아렌달 군에 대항하려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보력과 기동력에서 너무 차이가 났기 때문에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은 아렌달에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물론 일부 전투에서 조금씩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피해라고 해 봐야 바로 메울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정도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렌달 군이 작은 피해라도 보게 되면 그 부분을 교묘하게 편집해 아렌달을 약자로 보여 주어 민심을 호도하는 방식으로 이용했다.

물론 보통의 전투는 아렌달이 기적적인 승리를 하는 모양으로 영상을 송출하며 아렌달의 병사들이 대단한 싸움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여 줬다.

전투가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피해를 보는 왕국에서는 그 영상에 열불이 터지겠지만, 미디어를 쥐고 흔들고 있는 아렌달의 수에 빠르게 대응하기는 어려웠다.

"저 빌어먹을 영상은 어떻게 못 하는 것이냐!

어째서 수만의 병력이 죽은 왕국이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냐!"

"아렌달에서는 영상을 교묘하게 편집해 자신들의 정당성과 명분을 만들고 있습니다.

왕국을 뒤져 텔레비전을 수거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텔레비전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전장에서 어떻게 이런 영상들을 촬영하고 있는 것인지 밝혀 내지도 못하고 있으니 저희로서는 아렌달의 계략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렌달에서 틀어 주는 영상이 모두 전장의 그림만은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처럼 똑같이 음악 방송을 틀어 주고, 스포츠를 중계했으며, 아렌달의 사소한 일상도 보여 주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아렌달의 모습을 보여 주며 다른 왕국의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먹을 것도 재산도 다 빼앗겼는데 아렌달은 아무렇지도 않군. 아렌달에서 전쟁은 남의 이야기 같아."

"아렌달의 모습을 보면 부러워 죽겠어. 나도 저렇게 살아 보고 싶어서 말이야."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아렌달도 마냥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산업에 투자해야 했을 마나석으로 군사용으로 사용하면서 산업의 효율이 떨어졌고, 전쟁에 투입되는 자원과 식량을 인근 왕국들로부터 수급하느라 많은 돈을 쓰게 되었다.

아렌달은 기본적으로 내수 시장이 작은 곳이었기에 왕국들이 아렌달 상품을 수입하지 않으면서 자금이 점점 고갈되는 것도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렇다고 아렌달의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모아 놓은 재산도 제법 되었고, 아렌달에 살고 있는 귀족들도 적극적으로 자금을 밀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로서도 자금의 한계는 있었기에 전쟁이 길어져서 좋을 건 없었다.

"일단 아스타나 왕국은 거의 끝난 상태 아닙니까?

이미 왕족들도 왕도를 비우고 도망쳤고, 일부 영주들은 저항을 포기하고 아렌달 군을 돕기 시작했으니까요."

"빅터 국왕을 붙잡기 전까지는 계속 저항할 거야.

중앙대륙에서 지원 병력도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 말이야.

저들의 목표는 아렌달을 말려 죽이는 거잖아. 소모전을 계속해서 아렌달의 자원을 고갈시키려는 거니까. 평민인 병사들이야 얼마든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사람들이라고."

"…정말 뭣 같은 일이군요."

리오의 대답에 나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헤돈이 빅터 국왕을 잡기 위해 추적하고 있다고 하니까 금방 그를 붙잡겠지. 빅터 국왕만 잡아도 한시름 놓을 수 있다."

"그래도 전장이 점점 넓어지는 모양이라 헤돈경도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병력의 절대 숫자에서는 우리가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최대한 기동력을 이용해서 막아야지. 우리 군이 아스타나 왕국에서 활약하면서 카르툰 왕국도 점점 소극적으로 변하고 있으니까.

아렌달이 확실한 승기를 보여 주면 카르툰 왕국에서도 중앙대륙과 연결된 항구를 막아 주지 않겠어?

카르툰은 아스타나 왕국과는 다른 노선으로 움직이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카르툰 왕국으로 들어오는 중앙대륙의 병력을 줄일 수 있다면 상황은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었다.

"헤돈경께서 하루라도 빨리 빅터 국왕을 잡았으면 좋겠군요."

* * *

빅터 국왕은 지금 자신이 이렇게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차라리 왕도에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굴욕적인 일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물론, 폭격 마법으로 왕궁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왕도를 떠난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굴욕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국왕 폐하. 브란 공작께서 중앙대륙으로 다시 가셨으니 금방 새로운 병력을 데리고 돌아올 것입니다."

"왕국의 항구 도시는 진작에 다 날아가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카르툰 왕국을 거쳐서 중앙대륙을 갔다 돌아오면 적어도 두세 달은 걸릴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렌달 군의 추적을 피할 수 있을까?

차라리 잠시 중앙대륙으로 몸을 피신하는 게…"

"국왕 폐하. 아직 영주들과 귀족들이 왕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렌달 군이 추적해 온다고 해도 영주들이 있는 한 국왕 폐하께 위협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대신들의 목소리에 빅터 국왕은 한숨만 내쉬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좁고 어두운 이곳에서는 좋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조금만 기다리시면 실베르 백작이 좋은 결과를 가지고 돌아올 것입니다.

어쩌면 아렌달과의 전쟁이 끝날 수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 그렇지! 실베르 백작이 있었지."

"실베르 백작과 소드마스터들이 잘만 해 준다면 아렌달은 끝장입니다.

그렇다면 아렌달의 기술과 재물은 당연히 국왕 폐하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중앙대륙의 왕국들과도 나누어야 하지 않겠나?"

"아렌달과 전쟁에서 가장 열심히 싸운 것은 우리 아스타나 왕국 아니겠습니까?

겨우 병력만 보낸 중앙대륙과 전장이 되어서 아렌달과 맞서 싸운 왕국의 보상이 같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중앙대륙보다 같은 동대륙인 우리 아스타나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다리시면 분명 실베르 백작과 소드마스터들이 결과를 만들어 올 겁니다.

조금만 힘내십시오. 국왕 폐하."

대신들의 목소리에 빅터 국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그려졌다.

실베르 백작을 포함해 아스타나 왕국의 소드마스터들이 마지막 남은 기사들을 이끌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대륙의 소드마스터들도 실베르 백작과 같은 이유로 아렌달을 향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다.

만약 실베르 백작이 실패하더라도 누군가 성공만 한다면 아렌달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실베르 백작이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

하지만 빅터 국왕의 미소는 금방 사라졌다.

-콰콰쾅!!

"무, 무슨 소리냐!"

"국왕 폐하. 아렌달의 추격대입니다. 빨리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이, 이런 빌어먹을! 벌써 여기까지."

"국왕 폐하. 병사들이 뒤를 막고 있는 동안 도망치셔야 합니다."

"이렇게 도망만 다닐 바에는 중앙대륙으로…"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당장 몸을 빼셔야…"

-콰콰쾅

또 한 번 울리는 폭음에 대신들이 빅터 국왕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아렌달 군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빅터 국왕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가 있다! 빅터 국왕을 찾아라!"

"빅터 국왕만 잡으면 아스타나 왕국은 끝이다!"

"이, 이런!"

"여기 아스타나의 왕족들이 있다! 빅터 국왕도 있을 것이다. 찾아라!"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빅터 국왕을 비롯한 대신들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빅터가 있다! 여기 빅터 국왕이 있다!"

"폐하! 도망치십시오!"

"도, 도망쳐라! 다들 도망쳐라!"

아렌달과 나르비크 왕국의 국경을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여유롭게 국경은 넘었지만, 아마 아렌달 군이 아스타나 왕국의 전장으로 빠져나가면서 국경에 빈틈이 없었다면 이렇게 아렌달로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드마스터가 암살자 행세라니… 실베르 백작.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국왕 폐하의 명령이오."

실베르 백작의 대답에 네퍼 백작의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국왕 폐하의 명령이라고 해도 암살을 하라는 것은 소드마스터의 명예를 짓밟는 일이오."

그런 네퍼 백작의 태도에 게이튼 백작이 입을 열었다.

"그대만 소드마스터가 아니오. 네퍼 백작.

그리고 우리 왕국의 기사들만 아렌달로 들어온 것이 아니지 않소?"

"칫-"

"중앙대륙의 소드마스터들도 지금쯤이면 나르비크 왕국을 지나오고 있을 것이오.

오직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 그걸 변명으로 삼다니. 게이튼 백작은 자존심도 없나 보군."

"……"

네퍼 백작의 비아냥에 게이튼 백작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런 네퍼 백작의 말에 실베르 백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네퍼 백작. 그대가 기사들이 전장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안다면 이렇게 자존심을 세우지도 못했겠지.

그리고 기사로서 국왕 폐하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할 일이오.

그대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왕명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겠소."

빅터 국왕의 최측근인 실베르 백작의 말에 네퍼 백작도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소드마스터 역시 기사지 않은가. 주군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은 기사로서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렌달에는 사람이 없는 빈 공간도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람은 실베르 백작이잖아? 빅터 국왕 옆에 항상 붙어 있는 줄 알았는데…"

"실베르 백작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인물들도 행동을 보면 소드마스터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나나 아렌달의 주요인물들을 암살하기 위해 들어왔겠군."

지난번 암살자들의 습격으로 마땅한 성과를 얻지 못한 왕국들이 이번에는 소드마스터를 암살자로 이용한 것이다.

전장에서 그들이 어떤 위용을 가진 사람들인지 생각해 봤을 때, 전장까지 비우면서 아렌달에 소드마스터를 잠입시켰다는 것은 작정하고 나를 죽이겠다는 메세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스타나 왕국의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암살자로 쓸 거면 조용히 몰래 들어와야지 저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게 암살자야?"

"저기에 카메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못 한 것 아닐까요?"

"아- 아직 쟤들은 전장에서 우리가 어떻게 영상을 촬영하는지도 모르지? 그러면 아렌달에 들어오면서부터 걸렸다는 걸 모르겠네?"

"저 여유로운 행동을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여유롭게 대화나 나누고 있는 아스타나 왕국의 소드마스터들에 나는 웃었다.

"저 사람들. 빅터 국왕에게 선물로 보내 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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