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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58화 (158/169)

158화

귀족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때는 명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이미 텔레비전을 통해 전쟁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에 아렌달이 점점 명분을 얻어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왕국들은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중앙대륙에서 움직이고 있는 병력을 보자면 아렌달을 끝장내기 전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빌어먹을. 아스타나 왕국 때문에 대륙을 넘어오는 것을 막지도 못하겠네."

"그람 왕국의 위스타드 항구는 주둔군이 후퇴하면서 파괴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왕국들이 가지고 있는 항구를 통해서 아스타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중앙대륙과 연결되어 있는 아스타나 왕국의 항구를 모두 파괴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항구 도시를 전부 파괴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남아 있는 마나석을 다 쓰면 가능할 거야."

멀어질수록 폭격 마법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같은 동대륙이니 루안 요새를 날려 버렸을 때보다는 훨씬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아스타나 왕국의 항구를 모두 파괴한다면 중앙대륙의 진격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는 있을 것이다.

"카르툰 왕국이나 나르비크 왕국을 통해서도 넘어올 수 있습니다."

"아… 그렇지."

헤돈의 지적에 입술을 깨물었다.

나르비크 왕국이나 카르툰 왕국은 아직 아스타나 왕국처럼 아렌달에 적대적인 움직임을 취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보다는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은 처음부터 유학생들의 안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나서지 않았던가. 두 왕국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중앙대륙의 진출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게 좋겠지?"

"그거야 당연히… 시간을 끌면 끌수록 왕국들의 공격에 대비하기는 좋을 겁니다."

"일단 아스타나 왕국의 항구부터 무력화시킨다."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알비레오를 부럽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지금까지 알비레오가 쓴 마나석이 몇 개인 줄 알아? 적어도 만 개는 넘을 거야."

"나도 저렇게 마법을 써 보고 싶다. 이럴 줄 알았으면 화염 마법이나 폭발 마법을 전문으로 했어야 했는데…"

"근데 저렇게 많은 마나석을 사용하면서도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는 건가?"

"알비레오가 마나석을 쓰는 건 마법 연구를 위한 게 아니잖아요. 저 마나의 폭풍 속에서 무언가 깨닫는다면 모를까, 저렇게 마나석을 쓰는 건 진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요."

마법사들의 잡담을 잠시 듣고 있으니 알비레오가 주문을 완성했고 곧이어 강한 바람이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력이 출발한다."

나는 느끼지 못하는 마나의 폭풍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하지만 알비레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준비된 마나석을 다 태울 때까지 멈추지 않는 알비레오의 주문에 결국 마법사들도 질린다는 얼굴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항구 도시 5개가 알비레오의 폭격으로 초토화되었다.

아스타나 왕국으로 들어오던 에나플 왕국의 병력이 그 폭격에 휘말려 피해를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곳, 아스타나 왕국의 왕궁 역시 폭격 마법을 맞고 빅터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이 왕도를 비웠다.

"왕궁이 날아갔는데도 전쟁을 계속할 생각인가?"

"빅터 국왕이 왕도를 떠나면서 아렌달의 기술과 재물만 얻을 수 있다면 도시쯤은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빅터 국왕 본인만 살아 있다면 왕도는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폭격에 휘말려 죽은 백성들은?"

"빅터 국왕이 백성들을 생각할 인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친…"

평민들의 목숨은 별로 중요치 않다는 듯한 빅터 국왕의 행동에 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이세계의 왕과 귀족들에게는 당연한 생각일 것이다.

"왕도를 포함해 도시 몇 개쯤은 날아가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도시 몇 개쯤은 아무렇지 않게 내줄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아렌달 군이 그곳으로 들어가 점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언제라도 도시를 복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소모전을 하겠다는 거냐."

도시를 포기하는 왕국들을 보면서 깨달았다. 저들은 아렌달을 끝장낼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종군 기자들이 보내오는 영상을 보며 아렌달의 백성들은 조금씩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아렌달을 노리고 움직이는 적들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아렌달의 인구보다 많은 병력들이 아렌달을 끝장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달의 백성들은 아렌달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왕국에 가도 아렌달에서처럼 살 수는 없어. 나는 죽으면 죽었지, 왕국에서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지금 일어난 전쟁을 보라고. 결국, 다른 왕국으로 도망을 친다면 전쟁에 끌려 나온 병사들처럼 되겠지. 내 의지는 없고 왕과 귀족들의 명령에 전장으로 끌려 나오게 될 거야."

"전장에 끌려나가게 된다면 나는 아렌달을 위해서 싸우겠어!

죽어도 아렌달을 위해서 죽을 거야!"

아렌달을 위해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내는 백성들도 점점 늘어났다.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족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아렌달이 무너진다면 지금까지 해 온 사업들이 다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렌달이 무너진다면 우리 가문 역시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차피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일꾼들도 제대로 일하지 못할 겁니다. 벌써 우리 생산시설의 작업자 중 상당수는 병사로 지원한다고 나갔다는 걸 생각하면 전쟁이 최대한 빨리 끝나는 게 우리 가문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일 겁니다."

왕국의 귀족들과는 생각부터가 달라진 아렌달의 귀족들은 전쟁에 사용하라고 가문의 재산을 밀어주기까지 했다.

"그래도 내가 잘해 오기는 한 것 같네."

"이게 다 데우스님께서 훌륭히 아렌달을 이끌어 오셨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제 아렌달인들은 아렌달을 떠나서 살 수는 없을 겁니다."

리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렌달인들의 아렌달을 위한 행동에 그동안 열심히 살아 온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세계에서 눈을 뜨고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정이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만족감을 느낀다는 게 우습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 온 보람이 있네.'

"아렌달인 모두 결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데우스님께서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다들 호미라도 들고 전쟁에 나갈 기세입니다."

"좋은 무기들 놔두고 왜 호미를 들게 해?"

"그만큼 아렌달인들이 아렌달을 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리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중앙대륙의 병력들은 계속 동대륙으로 넘어오고 있지?"

"아스타나 왕국을 통해서 진격할 것 같습니다."

"항구를 전부 날려 버렸는데도 꾸역꾸역 넘어오는구나."

"카르툰 왕국에서도 항구를 열어 주지 않았습니까?"

"뭐- 카르툰 왕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겠지. 자칫 우리 편을 들다가는 아렌달보다 먼저 왕국이 날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정말이십니까?"

"이해는 해 준다는 말이야. 그 책임은 나중에 물어야지."

내 말에 리오가 살짝 몸을 떨었다.

"역시…"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을 보라고. 먼저 나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있잖아?

카르툰에서도 생각이 있었다면 먼저 나에게 메세지를 보냈겠지."

베르겐 왕국과 브레튼은 지금까지도 의리를 보여 주고 있었다.

특히 베르겐 왕국은 아렌달로 진격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와야 하는 왕국이었기에 아렌달보다 먼저 결전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보여 줬다.

물론 지금은 내 메세지를 받고 군사를 물린 상태였지만, 아렌달을 위해 함께 싸워 주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베르겐 왕국에 은혜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아군의 영토를 전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

"그럼?"

리오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장은 아스타나 왕국이다."

그동안 폭격 마법으로 동대륙으로 넘어오는 군대를 견제하던 아렌달에서 본격적으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장한 병사들이 군용차에 올라타 도로를 달리는 모습에 아렌달인들이 목소리를 높여 응원했다.

"적들을 무찌르고 돌아와라! 아렌달의 영웅들이여!"

"반드시 살아 돌아와라! 아렌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그 응원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각자의 개인 화기를 흔들면서 화답했다.

"발트!"

"옛! 데우스님!"

"백의종군의 기회를 주겠다. 아스타나 왕국으로 가라.

최전방에서 아렌달을 위해서 싸워라."

"감사합니다!"

내 명령에 발트가 함께했던 지휘관들을 이끌고 차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며 헤돈을 비롯한 발트의 오랜 전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돈. 아무도 죽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병사들 모두 아렌달의 사람들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렌달의 병사들입니다.

그 어느 왕국의 병사들보다 뛰어난 군대가 아닙니까."

"그래. 그러니 믿고 기다리겠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와라."

내 명령에 헤돈과 지휘관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들에 아렌달인들은 끊임없는 목소리로 응원을 해 주었다.

* * *

"차 소리다!"

지면을 흔드는 굉음에 아스타나 왕국의 병사들이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미 드론을 통해 병사들의 움직임을 확인한 아렌달 군은 망설이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콰콰콰쾅

"도망쳐!"

"후, 후퇴하라! 아렌달의 정예부대다!"

아렌달 군을 상대로는 도망치는 게 의미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스타나 왕국의 병사들은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를 쫓아오는 자동차 소리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저, 저는 무기를 버렸습니다!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무기를 버리고 땅바닥에 머리를 숙인 병사들은 자신들을 지나치는 자동차에 두려움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보았다. 무기를 버리지 않고 도주하는 병사들이 마법 무기의 화력에 쓸려 나가는 것을…

압도적인 화력 차이에 무기를 버린 병사들은 부들부들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후퇴하는 병력을 추격해라!"

엄청난 기동력을 자랑하는 아렌달 군의 기세에 연합군에서는 숫자로 대항하려 해 봐도 쉽지 않았다.

대항하기 위해 병력의 규모를 키우면 하늘에서 그 대가가 내려오기 때문이었다.

"응? 하늘에서 뭔가가… 마법사!!!"

"포, 폭격 마법이다! 마법사! 보호 마법을 사용해!"

-쾅!!!

"끄아악!"

일정 숫자 이상의 군단이 모이면 그 위로 떨어지는 폭격 마법에 군단이 찢겨 진다.

소수의 병력으로 진격을 하면 아렌달의 기동대가 빠르게 타격을 한다.

함정을 만들어 아렌달의 병사들을 끌어들이려고 해도 드론으로 먼저 확인해 함정의 위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일방적인 전투에 아스타나 왕국으로 들어온 중앙대륙의 병사들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전쟁의 모습에 수십 개의 전장을 지나온 베테랑 병사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이런 전쟁은 들어 본 적도 없다."

그런 그의 머리 위로 붉은 파동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베테랑 병사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허- 이게 정말 전쟁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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