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어때? 괜찮아?"
"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충격이 컸는지 깨어나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후우-"
에일렌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나는 아리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었다.
나도 그렇지만, 샤를로트와 아이들은 만약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몇 가지 마법 아이템을 가지고 다니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최후에 사용하는 것이 지금 아리아가 사용한 공간 이동 아이템이다. 사실상 긴급탈출용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아리아가 위협을 받았다면, 샤를로트와 아이들도 똑같이 위협을 받았을 수도 있다.
아니- 아렌달 가문뿐 아니라 리오나 헤돈 등 아렌달의 주요 인물들이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어.'
아리아가 쓰러지는 모습에 흥분됐던 것이 한순간에 가라앉으면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하. 나는 먼저 도시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아리아를 부탁한다."
"혹시 모르니 마법사들을 데리고 가십시오."
"그러는 게 좋겠네. 고맙다."
자하의 지시에 달리아와 몇 명의 마법사들이 나와 함께 도시로 돌아왔다.
"마탑으로 가기 전과 분위기가 다릅니다."
볼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지나가는 뉴렌달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뉴렌달은 분명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수선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관청에 도착하는 순간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데, 데우스님!"
"여기도 공격받은 건가?"
마법 무기를 사용한 것인지 여기저기 그을음이 남은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리오는?"
"지, 지금 건물 안에서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겠어?"
관청으로 들어오자 행정관들도 어정쩡하게 무장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설명을 들으니 시간이 조금 안 맞는데?"
"네?"
"관청이 공격받은 건 얼마 안 됐다며?"
"그렇습니다."
"아리아가 공격받은 시간이랑 차이가… 아니야. 계속 설명해 줘."
경비병에게 대충 설명을 들으니 암살자들은 아렌달 사람으로 위장하고 관청에 들어와 나를 찾았던 것 같다.
"CCTV에 수상한 행동이 걸렸다는 말이지?"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은 가지 않을 장소를 기웃거리는 것이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몸놀림도 일반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벼웠습니다."
지난번 그람 왕국에서 있었던 테러 사태 이후에 설치한 CCTV가 모처럼 제 역할을 한 것 같았다.
암살자들은 나를 찾다가 내가 관청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 목표로 리오를 잡았을 것이다. 리오를 찾아 그를 공격했지만, 리오 역시 마법 아이템을 두르고 있었기에 한 번에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리오에게 공격을 받아 도주한 것이다.
"붙잡은 암살자들은?"
"전부 붙잡기 전에 자살했습니다."
'배후를 숨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랬겠지.'
건물 안에서 지휘하던 리오가 나를 발견하고 몸을 일으켰다.
"데우스님! 마탑에 연락을 했지만, 도시로 돌아갔다고 들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꼴이 말이 아니군."
"마법 아이템으로 보호를 받아서 큰 문제는 아닙니다."
"리오 정도의 나이라면 넘어지는 것도 큰일 아니야?"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리오의 말에 나는 마법사들에게 리오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보다 빨리 가문으로 돌아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렌달 가문에서도 핫라인으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다행히 샤를로트님이나 아가씨들께는 안전하시다고 합니다. 그래도 언제 다시 암살자들이… 아! 아리아 아가씨께서 다니시던 학교에서도 핫라인으로 연락이 왔었습니다. 아리아 아가씨께서 없어지셨다고요."
"아리아는 지금 마탑에 있으니까 괜찮아."
아리아가 마탑에 있다는 말에 리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암살자들이 아리아 아가씨도 노린 겁니까?"
"아무래도 시간상 가장 먼저 아리아를 노렸던 것 같아. 아리아가 마탑으로 공간 이동한 게 가장 빨랐으니까."
"빌어먹을 놈들! 감히 아가씨를!"
화를 참지 못하는 리오에 나는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를 다 끌어모아. 배후에 누가 있는지 확실하게 특정해라."
"알겠습니다."
"헤돈에게도 준비하라고 해야겠군."
점점 밝혀지는 정황들을 보니, 암살자들이 노린 것은 나와 아리아뿐이 아니었다.
샤를로트와 아리스, 아리엘은 당연했고, 리오와 헤돈, 마무, 발더, 그리고 리암까지 아렌달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노려진 것이다.
이번 사태로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현대인으로서 불필요한 죽음이나 전쟁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큰 손해가 발생하는 일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전투나 전쟁을 피하려 했고, 피를 보기보다는 대화나 협약으로서 관계를 만들어 가기를 바랐다.
'아무리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불필요한 피를 볼 필요는 없지.
내가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이세계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인 세계였다.
솔직히 대화나 협약을 하는 것보다 피를 보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기도 했고, 권력자들이 누리는 힘은 현대 지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절대적이었기에 나는 이세계에서 이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선을 지나치게 넘었어."
아리아가 빛 속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부터 내 안에 있는 벽이 흐릿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분을 언제 느꼈을까 떠올려 보면 이자르 후작과 함께 아렌달 성을 날려 버렸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그만큼 나는 열이 받았다는 말이다.
"암살자들의 배후를 특정했습니다."
"어디지?"
"그게… 한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암살자들의 공격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분명 아리아를 공격했던 암살자들과 관청을 습격한 암살자들, 그리고 아렌달 가문이나 주요 인물들을 습격했던 암살자들이 시간이 통일되지 않는 모습이 있기는 했다.
"그럼 범인이 누구라는 말이야?"
"지금 확실하게 배후를 파악한 것은 아스타나 왕국입니다."
헤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아스타나 왕국은 아렌달에 빚을 졌으면 졌지 원한을 가질 만한 왕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배후에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다른 배후에 두 왕국이 있을 확률은 매우 높았지만, 그래도 아스타나 왕국의 이름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스타나 왕국이 왜?"
"깊이 파 보니 중앙대륙에서 있었던 대륙회의에 아스타나 왕국의 브란 공작의 모습이 보였다고 합니다."
"중앙대륙의 회의에 브란 공작이 있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스타나 왕국에서 군사들의 움직임이 잡혔습니다."
"……"
"모두 계획된 움직임이었습니다."
헤돈의 말과 함께 통신 마나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메세지. 어디서 온 핫라인이지?"
-그람 왕국의 주둔군입니다. 중앙대륙에서 군사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메이더스 왕국을 비롯해 에나플 왕국과 주변 왕국들이 일제히 군사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나석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륙회의가 열린 이유는 단순히 아렌달을 견제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보네."
방송국으로 들어오는 실시간 영상을 보면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이렇게 많은 병력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움직이는 모습은 분명 현실이었다.
대륙 곳곳에 뿌려 놓은 정보원들이 직접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찍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드론이나 설치된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군사를 움직이고 있는 왕국들은 다 아렌달의 적이라고 판단해도 되는 건가?"
"…그럴 겁니다."
"조금 많네."
그동안 아렌달과 여러 방면으로 관계를 가졌던 왕국들까지 군사를 움직이는 모습에 조금 허탈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들로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밖에서 보기에 아렌달은 소국이었지만, 가진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아렌달의 기술이나 마법 아이템들, 다양한 상품들이나 보유하고 있는 재산까지. 모두가 나누어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것들이 아렌달이라는 작은 곳에 모여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혼자 빠지기에는 아까웠겠네.'
"그렇지만 착각도 유분수지. 아렌달의 기술력을 너무 얕본 거 아닌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적들의 규모는 얼추 보기에도 100만은 될 겁니다."
100만 대군의 움직임에도 나는 웃음이 나왔다.
"군사를 움직이면서도 선전포고도 안 하는군.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해 줘야지 않겠어. 선은 넘은 대가는 치러야지."
이제는 나도 멈추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이미 내 안에 벽이 만들고 있던 경계도 사라졌다.
"채널 열어."
내 지시에 자하가 방송국의 채널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방송국 화면 가득 내 얼굴만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방송국의 채널만 조정한 것이 아니다. 아렌달을 넘어 이세계에 뿌려져 있는 모든 텔레비전에 동시에 내 모습이 송출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화면 가득한 내 모습을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한판 붙어 보자. 이 새끼들아."
선전포고에 가장 먼저 응답한 것은 에나플 왕국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람 왕국에 주둔군을 향해 공격을 시작한 에나플 왕국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람 왕국에 있던 주둔군을 후퇴시켰다.
주둔군을 지휘하던 카잔은 후퇴와 함께 주둔군을 공격한 에나플 왕국에 큰 선물을 남겨 주었다.
주둔지를 점령하기 위해 들어온 에나플의 병사들을 모두 폭사시켜버린 것이다.
겨우 500여 명의 주둔군을 상대하면서 죽은 에나플 왕국의 병사들은 만 단위가 넘어갔고, 에나플 왕국의 피해에 다른 왕국들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저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거지?"
"끄, 끔찍하군. 어째서 저런 전쟁을 일으키는 거지?"
"다 왕이라는 놈들의 욕심 때문이지! 이런 전쟁에서 피해를 보는 건 우리 같은 일반 백성들이라고! 왕족과 귀족이라는 놈들은 누구 하나 죽지 않고 빠져나가기 마련이잖아. 빌어먹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영상들을 보며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대륙에 뿌려져 있는 아렌달의 정보원들은 어느새 종군 기자들이 되어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물론 아렌달 방송국에서는 그들이 보내 주는 영상을 편집해 왕국들의 잔혹함을 위주로 보내 주었기에 피해가 적은 아렌달보다 훨씬 큰 피해를 받은 왕국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채널을 조작하면 다른 채널으로 돌릴 수도 없었기에 백성들은 보기 싫어도 전쟁의 참혹함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렌달을 공격하는 왕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빌어먹을 영상은 도대체 누가 찍고 있는 것이냐! 영상을 찍고 있는 스파이를 붙잡아 찍지 못하게 막아라!"
"그, 그것이 영상이 촬영하고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사람의 손으로 촬영할 수 있는 영상이 아닙니다."
"아렌달에서 찍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백성들이 저 영상을 보지 못하게라도 막아야 하지 않는가!"
"텔레비전을 켜기만 해도 영상이 나오는 것이라 아예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미 아렌달에서 뿌려 놓은 텔레비전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동안 아렌달의 문화를 전파한다고 이세계 곳곳에 뿌려 놓은 텔레비전이 이렇게 아렌달에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이게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는 힘이다.'
그렇게 아렌달에서 전쟁 영상을 송출하면 송출할수록 명분은 아렌달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