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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55화 (155/169)

155화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륙 간 폭격 마법으로 아렌달의 마법 기술과 전투력을 보여 주면 중앙대륙 왕국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전쟁에 대한 억제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앙대륙에서 들려오는 정보는 전혀 아니었다.

"대륙회의라는 이름으로 중앙대륙의 왕국들이 모임을 가졌습니다.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을 주축으로 아렌달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대륙의 왕국들이 연합할 것 같습니다."

아렌달에서 왕국의 도시를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대응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이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어.

이세계의 권력자란 사람들은 도시가 날아가거나 백성들이 죽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왕도가 아닌 대부분 도시의 주인은 왕이 아닌 영주들이기 때문에 왕국의 도시 몇 개쯤 날린다고 해도 권력자들은 겁먹지 않는다. 도시나 영지가 날아가도 영토를 잃는 것은 아니니까, 도시나 백성들은 다시 만들고 채우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겠지.

오히려 영주들과 귀족들을 선동하기 좋은 도구로 이용하면 이용했지 도시 하나하나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아니야.'

"지금까지는 아렌달 상단이나 아렌달과 관계를 맺고 있던 이들이 피해를 본 것은 없지만, 대륙회의의 결과에 따라 어떤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에나플 왕국이야 루안 요새가 날아갔다는 명분이 있지만, 다른 왕국들은 무슨 명분으로 그딴 회의에 참석하는 거지?"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중앙대륙의 왕국들로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아렌달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해도 중앙대륙의 패자는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이니까요."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아렌달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아 오면서 아렌달과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왕국들이 많았다. 몇몇 왕국에서는 아렌달로 유력 가문의 자제들을 유학 보내기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아렌달에서 중앙대륙까지 공격이 가능하다고 해도 도시나 마을이 하나 날아갈 뿐, 결국, 그 땅을 점령하기 위해 아렌달의 병력이 진출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두 왕국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과의 전쟁은 왕국이 없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아렌달을 공격할 명분이 없다면 섣불리 왕국들을 선동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봐야 왕국들도 시큰둥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다행이지."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은 중앙대륙에서도 중심에 위치한 왕국들이었으니 다른 왕국들의 협조가 없다면 동대륙으로 진출하기에도 어려울 것이다.

다른 왕국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만 않아 줘도 아렌달이 두 왕국에 위협을 받는 일은 훨씬 줄어들 수 있었다.

"그람 왕국이나 동대륙과 연결되는 항구를 가진 왕국들이 아렌달에 협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아렌달 상단이나 다른 상단을 이용해서 여론몰이라도 해야겠네."

"아렌달의 기술을 나눠 준다고만 해도 아렌달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 줄 겁니다."

물론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에서 먼 거리를 돌아 와 아렌달을 공격할 수도 있었지만, 웬만해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렌달까지 배를 타고 돌아 온다고 해도 아렌달 인근 바다에서 동력선에 의해 수몰될 것이라는 걸 그들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동대륙의 왕국들만 나에게 협조적으로 움직여 줘도 아렌달은 보호를 받을 수 있겠네.

동대륙에서도 가장 동쪽, 이세계의 끝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 * *

대륙회의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모였지만, 사실 대부분의 왕국은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가 돌아갈 계획이었다.

왕국들도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해 봤을 때 아렌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중앙대륙에서 있었기에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의 눈치를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사정으로 회의에 참석했을 뿐, 대륙회의에 대표로 참석하게 된 왕국의 인물들은 그저 두 왕국의 땡깡이 조용하게 넘어가길 바라고 있었다.

"이번에 아렌달에서 자동차를 한 대 사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카르툰 왕국에서 한번 타 봤는데 마차보다 훨씬 편하고 안정감이 느껴지는 게 아주 좋더군요."

"중앙대륙에서 자동차를 구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하던데 어떻게 자동차를 사신 겁니까?"

"저와 오래전부터 교류하던 상단이 있어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상단이요? 아렌달 상단은 아닐 테고…"

"울드 상단이라고 중앙대륙과 동대륙을 오가는 상단이 있습니다. 바로 아렌달 특산품인 초콜릿과 커피의 원재료를 운송하는 상단이지요."

"울드 상단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저도 울드 상단과 인연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하- 기회가 된다면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렌달의 상품을 더 구할 수 있는지, 아렌달의 기술을 왕국에 도입할 수 있을지, 아렌달의 문화가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서로 자신들의 경험이나 바람을 담아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맥그리거 공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렌달은 언제 이렇게 중앙대륙을 침략한 거지?'

그 한숨에 맥그리거 공작 곁에 있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중앙대륙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군요."

"언제 이렇게까지 아렌달이라는 이름이 스며들었는지 모르겠군. 이제 아렌달 없이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느낌이오."

"이해합니다. 우리 왕국도 마찬가지의 상황이니까요. 이것이 바로 아렌달이 바란 상황이겠지요."

그 말에 맥그리거 공작은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 모든 게 아렌달에서 설계한 상황이라면 데우스 아렌달은 정말 무서운 인물이다.

더 이상 아렌달이 성장하도록 놔두면 그 끝은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도 힘들구나.'

"아렌달이 위험하다는 것은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의 주장 아니오?"

"메이더스나 에나플이 이렇게 나오는 걸 보면 아렌달의 기술이 대단하긴 한가 보군. 하하-"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왕국들의 목소리에 맥그리거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아렌달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다들 모르고 있는 것 같군.

그리고 아렌달의 기술이 뛰어나다고 우리 메이더스 왕국이 약해진 것은 아닐 텐데 말들이 거칠군."

"……"

맥그리거 공작의 발언에 싱글벙글 목소리를 높이던 인물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더 이상 맥그리거 공작을 긁어 봐야 손해만 볼 게 뻔했으니 조용히 입 다물고 듣는 척이나 하는 게 나은 상황이었다.

"맥그리거 공작님의 말씀대로입니다.

아렌달의 기술이 뛰어나 봐야 동대륙의, 그것도 가장 동쪽에 위치한 소국일 뿐이지요.

설령 아렌달과 아무리 깊은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중앙대륙의 이웃인 우리와 같을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맥그리거 공작에 이어 에나플의 대표로 참석한 자이로 후작까지 한마디 더 하자 다른 왕국의 대표들은 눈치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래나저래나 아직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은 중앙대륙의 패자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 에나플은 이번에 아렌달의 공격을 받아 루안 요새를 잃었습니다."

자이로 후작의 말에 정보가 부족했던 일부 왕국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렌달에서는 얼마든지 대륙을 넘어 공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에는 에나플이 맞았지만, 다음에는 메이더스 왕국이나 다른 왕국의 왕도가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라는 말입니다."

"아렌달에서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런 공격을…"

"명분이요? 겨우 평민 몇 명 죽었다고 왕국의 요새를 날려 버린 아렌달입니다. 지금 그게 요새를 날려 버릴 만한 명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루안 요새가 공격받았다는 정보를 알고 있던 사람들도 그 이유가 평민 몇 명의 목숨 때문이라는 사실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래 봬도 대륙회의의 참석자들은 모두 귀족이었기에 평민 몇 명의 목숨이 요새를 날려 버릴 만큼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침묵하는 사람들에 맥그리거 공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렌달에서는 귀족법도 없다고 하오.

귀족이라고 해도 벌을 받고, 교도소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심한 경우 추방이나 사형을 당할 수도 있지.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소?"

맥그리거 공작의 질문에 서로 눈치만 볼뿐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둘러보며 맥그리거 공작이 미소를 지었다.

"아렌달이 왕국들, 아니 우리들에게 위협이 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소."

"그게 무엇입니까?"

"붉은 혁명의 진원지가 아렌달이라는 사실이오."

붉은 혁명이라는 말에 일부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로 얼마 전에 중앙대륙을 흔든 붉은 혁명이 아니었던가. 붉은 혁명으로 인해 피해를 본 귀족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해 보면 결코 좋은 감정이 생길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아스타나 왕국에서 얻은 정보지."

그 말에 그람 왕국의 오마 백작이 말했다.

"아스타나 왕국이라면 동대륙이 아닙니까? 동대륙의 패권을 가져가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그람 왕국은 아렌달의 변호를 해 주고 있는 것이오? 그동안 아렌달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던데, 이제는 아예 아렌달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건가?"

"식민지라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우리 그람으로서는 아스타나 왕국을 믿을 수 없기에 하는 말입니다!"

아스타나 왕국으로부터 두 번이나 공격을 받은 그람 왕국이었으니 오마 백작으로서는 아스타나의 정보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맥그리거 공작 옆에 있던 인물이 앞으로 나섰다.

"그람 왕국에서 우리 아스타나 왕국을 믿지 않는다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오."

"우리 아스타나 왕국?"

"중앙대륙 회의에 왜 동대륙에 있는 아스타나 왕국의 사람이 있는 것이오?"

"나는 아스타나 왕국의 브란 공작이오. 빅터 국왕 폐하가 바로 내 형님이시지."

브란 공작의 소개에 사람들은 그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브란 공작이라면 아스타나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권력자. 그런 인물이 맥그리거 공작 옆에 있었는데도 다들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은 모르는 동대륙의 사정에 밝은 인물이었기에 브란 공작의 발언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했다.

"아렌달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아렌달의 문화가 동대륙을 넘어 중앙대륙까지 잠식해 나가는 모습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물었습니까? 아렌달을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지금보다 더 위험해진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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