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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53화 (153/169)

153화

동대륙 회의의 협약에 따라 아렌달에서는 동대륙에 소속된 왕국들에 인공 마나석의 물량을 늘려 주기로 했다.

연구에 쓰이거나 새로운 마법 아이템을 개발하는데 사용할 마나석이 늘어났으니, 중앙대륙의 추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처럼 돈을 쏟아부으면서 연구할 여유는 안 될 것 같았지만, 두 왕국이야 중앙대륙에서도 한가운데 위치한 왕국이었으니 동대륙과는 크게 트러블을 일으킬 일은 없어 보였다.

"마나석을 제공하면서 받게 될 돈이 들어오면 다시 중앙대륙으로 진출하는 게 좋겠지?"

"그람 왕국에 벌여 놓은 사업이라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게 좋을 테니까요.

다른 왕국으로 진출은 어렵겠지만, 그람 왕국이라도 확실하게 아렌달의 영향력 아래 두면 충분히 중앙대륙의 시장을 지배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리 그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해서 발전 속도를 올린다고 해도 아렌달의 수준을 따라오려면 못해도 수년, 어쩌면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니까요."

"아렌달도 놀고 있을 것은 아니니까. 평생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달려 나가야지."

"그렇습니다. 적어도 데우스님께서 계시는 동안은 아렌달이 기술을 선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리오의 대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아렌달을 위해서 일해 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리오가 아렌달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그러는데 기술을 선도할 인재들을 더 키워야 하지 않겠어?"

"인재들이요?"

"그래. 인재들."

인재들이라는 말에 리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지만, 그 역시 인재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내 이야기를 기다렸다.

"아렌달의 인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나게 되겠지. 그럼 늘어나는 사람들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의 숫자가 더 필요하지 않겠어?"

"학교를 저 지으시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리고 대학의 규모도 더 크게 만들어서 아렌달의 인재들이나 유학생들이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정원을 늘리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아."

"대학 수준까지 공부를 한 녀석들이라면 불온한 사상을 키울지도 모릅니다."

노아와 붉은 바람의 동지들 같은 상황이 또 다시 만들어질까 봐 리오는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꼭 대학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어떤 귀족이 지금의 아렌달의 체제가 귀족들에게 부당하다고 일어날 수도 있었고, 어딘가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처우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이 지적하는 문제들이 아렌달에 필요한 일이라면, 그들 덕분에 조금 더 나은 아렌달이 될 수도 있었다.

"아렌달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게 실보다 득이 훨씬 크다는 건 리오도 알고 있잖아?"

"……"

"그런 사소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발전해 왔다면 지금의 아렌달도 없었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새로운 학교의 건설과 함께 대학의 정원을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새로운 인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일이니까."

"아스타나 왕국에서만 다 지불하지 않은 건가?"

"빅터 국왕의 메세지로는 이번에 추가 세금을 걷어 남은 대금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근래에 사람이 많이 죽어서 세금이 적어진 점을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 자기 손으로 죽여 놓고 우리에게 이해해 달라니…"

혁명 세력을 소탕하면서 세금이 줄어들 것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아닐 텐데, 이걸 핑계 삼아 주머니를 열지 않는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어쩔 수 없지. 그람 왕국도 대답을 피하고 있는 건가?"

"아무래도 아렌달의 병력이 함께 그람 왕국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는 것 같습니다.

주둔군이 철수하기 전에 전투로 그람 왕국의 병사들이 제법 사상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왕국 안에 우리 병사들이 주둔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겠죠."

"그것도 그람 왕국에서 먼저 공격했다면서?"

"그람의 국왕은 아렌달에서 먼저 공격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주둔군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워서 명분을 만든 것이다.

"어차피 협약에 따라 우리 기술자들이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으니, 같이 들어올 군사들의 숫자라도 줄이겠다는 명목이겠지."

"일단 기술자들이라도 먼저 보낼까요?

남은 도로 공사와 도시재건이라도 마무리하는 게 나중을 위해서 좋을 것 같은데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일단은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그람에서도 기껏 얻은 명분을 잃기 싫다면, 우리 기술자들의 보호만큼은 철저하게 하겠지."

주둔군이야 그람 왕국에서 빈틈을 보이는 순간 보내면 되는 일이었다.

확실히 아렌달에서 인공 마나석을 제공 받기 시작하자 동대륙의 왕국들도 점점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베르겐 왕국에서는 삐걱거리기는 해도 철도를 본격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이었고, 브레튼의 도시들은 건물의 높이가 더욱 높아졌을 뿐 아니라 본격적인 산업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북부 3왕국에서도 베르겐 왕국과 브레튼의 성장을 보며 새로운 도로의 건설과 철도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었고, 나르비크 왕국은 지방 영주들이 힘을 잃어 가며 중앙으로 힘이 집중되는 모습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이야 빅터 국왕의 성향에 맞춰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로나 기반 시설 등에 투자보다는 마법 무기나 아이템의 개발에 더 힘을 들이는 모습이었다.

"아이템 개발에 열을 올리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왜 주기로 한 마나석 값을 주지 않느냐는 거지."

"아스타나 왕국에 계속해서 메세지를 보내고는 있습니다만… 붉은 바람에 의해서 피해를 본 게 커서 그 피해를 복구하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하네요."

계속해서 혁명 세력을 물고 늘어지는 아스타나 왕국에 리오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핑계는 좋네. 그래도 더 이상은 안 된다고 해.

그리고 또 다시 그 핑계를 대면 그때는 아스타나 왕국으로 가는 물자들은 다 끊어 버리고, 당장 남은 대금부터 내놓으라고 해."

내 메세지에 빅터 국왕은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혁명 세력 붉은 바람이 아렌달에서 시작되었으니 그 책임이 아렌달에 있다고?

그래서 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아렌달이 감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내 해석이 맞아?"

내 물음에 리오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아렌달에서 붉은 바람을 만들어 혁명을 일으킨 것도 아닌데 왜 그 책임을 아렌달에 물겠다는 거야?

빅터 국왕이 벌써 정신을 놓은 건가?"

"아스타나 왕국의 메세지로는 아렌달에서 추방당한 사상가들이 붉은 바람을 이끌었으니, 그들을 교육한 아렌달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참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 빅터 국왕이었다.

사상가들이 아렌달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아렌달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텐데 그걸 핑계로 땡깡을 부린다니.

"그리고…"

"그리고?"

"아직 붉은 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다 복구하지 못했으니 그 책임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리오도 말을 하면서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었다.

"빅터 국왕이 벌써 노망이 든 건가?"

"아직 노망까지는 아니고 헛된 욕심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아스타나 왕국으로 가는 모든 상품을 다 끊어 버려. 그럼 아렌달의 상품 없이는 못 사는 귀족들이 빅터 국왕을 대신 괴롭혀 주겠지."

빅터 국왕이 땡깡을 부린 다면 나도 똑같이 땡깡을 부려 주면 되는 일. 아렌달의 문화를 받아들인 아스타나의 귀족들과 백성들이 나를 대신해서 빅터 국왕을 압박해 주면 결국 손을 드는 것은 내가 아닌 빅터 국왕일 것이다.

"아스타나 왕국의 민심이 어떻게 흘러갈지 한 번 지켜보자고."

* * *

맥그리거 공작이 다급하게 왕궁으로 들어왔다.

"국왕 폐하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당장 국왕 폐하를 뵈어야 한다."

맥그리거 공작의 호들갑에 왕궁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자 사냥대회를 나갔던 루이 국왕과 귀족들이 왕궁으로 돌아왔다.

"맥그리거 공작. 무슨 일이길래 그리 급하게 나를 찾은 것인가?"

"폐하. 동대륙에서 한 가지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정보? 무슨 정보."

"아렌달에서 인공 마나석을 만들어 동대륙 왕국들에게 풀고 있다고 합니다."

맥그리거 공작의 말에 루이 국왕의 표정이 짜증으로 물들었다.

"그거야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게 아니면 공작은 나를 아렌달에서 인공 마나석을 만든다는 것도 모르는 멍청이라고 생각했던 것인가?"

"아닙니다. 폐하.

제가 확인한 정보대로라면 아렌달의 인공 마나석 생산능력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동안 아렌달에서는 인공 마나석의 수량을 조절하며 마나석 시장을 가지고 놀고 있었던 것입니다."

"……"

심각한 얼굴로 열변을 토하는 맥그리거 공작에 루이 국왕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마탑주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수백, 수천 개의 마나석을 이용하면 아렌달에서 왕국까지 마법 공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아렌달에서는 그 정도의 마나석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마나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확실한가?"

"그동안 아렌달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확실합니다."

맥그리거 공작의 대답에 루이 국왕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아렌달을 주목하며 알아낸 사실이 또 있습니다."

맥그리거 공작의 말에 루이 국왕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또 무슨 이야기인가?"

"아렌달에서는 실시간으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신할 수 있는 통신 마나석만 있다면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왜?"

"실시간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면 아렌달에서 왕국까지 목소리를 보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원하는 타이밍에 목소리를 내보내고 바로 끊어서 추적을 못 하도록 말입니다."

"유령!"

한 귀족의 목소리에 맥그리거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 소동 역시 아렌달의 장난일 수 있습니다."

"데우스 아렌달… 정말 미친놈이었군.

유령 소동과 마법 공격이 정말 아렌달의 장난이었다면, 지금 나와 에나플 국왕을 동시에 엿 먹이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동대륙의 조그마한 소국에서 중앙대륙의 패자인 메이더스와 에나플을 무시하고 있는 것인가."

루이 국왕의 말에 귀족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을 동시에 건드리는 미친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또? 아직도 할 말이 있는 것인가?"

"이것은 아스타나 왕국에서 들어온 정보인데, 대륙을 흔들었던 혁명 세력의 배후에 아렌달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

맥그리거 공작의 발언에 루이 국왕과 대신들이 침묵했다.

그동안 붙잡은 혁명 세력의 지도자들을 통해 혁명의 물결이 그람 왕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혁명 세력의 배후에 아렌달이 있다는 말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혁명 세력이었던 붉은 바람의 지도자들 중에 아렌달에서 추방당한 사상가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추방당한 대학생들은 모두 아렌달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이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그람 왕국에 파견을 나온 경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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