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51화 (151/169)

151화

뉴렌달 항구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숫자가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귀족도 상인도 아닌, 그렇다고 난민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다만 왕국이나 귀족 영지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민이라 그런지 뉴렌달의 발전된 모습에 놀라면서도 도전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렌달에서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지?"

"들어 보니까 천민이나 다름없는 극단의 배우들이나 음유시인, 거리의 화가들도 제법 많은 돈을 쥘 수 있다고 했어.

만약 특별한 기술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왕국의 관리들 못지 않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더군."

자유민들은 이미 중앙대륙에 풀린 영상 기록석을 통해 뉴렌달의 모습은 여러 번 봐 왔다. 아렌달로 오기 위해 탄 선단의 배에서도 작은 화면을 통해 아렌달의 뉴스나 문화생활을 엿보았기에 도시의 모습이 조금은 익숙한 느낌도 들 정도였다.

"오! 저걸 봐! 영상에서 보던 해안가 호텔인가 봐."

"정말로 하늘에 닿을 정도로 높군. 그런데 저것보다 더 높은 건물도 있다고?"

신기한 듯 도시에 시선을 빼앗기는 자유민들의 모습에 뉴렌달 시민들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두리번거리는 게 완전 촌놈들 같네."

"다른 왕국 어디를 가 보더라도 뉴렌달만한 도시가 없잖아. 가장 발전된 도시에 사는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않겠어."

"그래. 우리가 이해해 줘야지. 저 사람들도 다 아렌달을 위해 일해 줄 일꾼들이 될 테니까. 하하-"

"앞으로 사람이 계속 늘어나면 도시도 더 많아지겠지?"

"그렇지 않겠어? 뉴렌달에 사람이 넘친다고 코아스탈과 인터리아를 만든 거잖아?

거기에 스톨 같이 원래는 베르겐의 영지였던 도시들도 있고, 체스터도 곧 도시급으로 성장할 것 같고 말이야. 귀족님들이 마을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으니까 사람만 늘어나면 어떤 마을이든 도시급으로 성장하고 말걸?"

"도시가 많아진다는 건 일자리도 더 많아진다는 거겠지?"

물론 새로 유입되는 사람들로 인해 사소한 사건 사고나 불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이주민을 환영해 주었다.

"이주민들의 적응은 어때?"

"그동안 이주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한 것들이 통했는지 금방 적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렌달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일자리도 만들어서 주고 있으니 큰 문제가 없다면 금방 아렌달인으로 거듭날 겁니다."

리오의 보고대로 이주해 온 자유민들은 하루하루 지나며 아렌달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른 아렌달인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일하고, 문화생활과 스포츠를 즐길 뿐 아니라 자유민들답게 아렌달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관광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들로 인해 중앙대륙만의 문화도 아렌달에 전달되면서 더 많은 다양성이 만들어지는 모습이었다.

아렌달에 없던 새로운 요리법이나,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놀이 등은 아렌달 백성들에게 받아들여지며 평민들의 문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렌달 만큼이나 이주민을 받는데 적극적인 왕국이 있었다.

두 번의 중앙대륙 원정과 붉은 혁명의 물결을 가라앉히느라고 평민의 숫자가 엄청나게 줄어든 아스타나 왕국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귀족들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지금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서 중앙대륙에서 노예까지 사들인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왕국이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스타나 왕국도 대단하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스타나 왕국은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모습이었다.

오랜시간 강력했던 왕권 덕분인지 아니면 강력한 귀족 계급의 권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스타나 왕국은 아직까지 건재한 모습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전에 돈을 빌려 달라고 찾아왔을 때 빚을 만들어 둘 걸 그랬나?"

"아스타나 왕국에 빚을 만들어 두었어도 크게 도움은 안 됐을 겁니다.

그리고 빅터 국왕은 성격상 빚을 빨리 갚을 인물도 아니지 않습니까?"

"빅터 국왕은 돈이 생기면 빚을 갚기보다는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기는 하지. 어쩌면 빚을 갚기 싫다고 우리에게 선전포고할 가능성도 있는 인물이니까."

아스타나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아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인물이 왕으로 있는 곳의 삶은 어떨지 참으로 궁금했다.

"빅터 국왕이 제안한 동대륙 회의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차피 또 전쟁이나 일으키자고 할 거면 참가할 필요를 못 느끼겠는데."

"그래도 당장 전쟁을 하자고는 못 하지 않겠습니까?

일손이 없어서 귀족들이 주머니를 털어 중앙대륙에서 사람을 데리고 오고 있는데, 또 전쟁을 일으키자고 하면 아무리 아스타나 왕국의 귀족들이라고 해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가?"

"아스타나 왕국의 시장에 계속 우리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그래도 조금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대륙에 거점을 다시 만들기 전까지는 동대륙 시장에 영향력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빅터 국왕에서 메세지를 전하도록 해.

회의는 이번에도 아렌달에서 열자고 말이야."

솔직히 아렌달로 오라는 내 메세지를 거부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빅터 국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긍정의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스타나 왕국에서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는 말에 다른 왕국들도 하나둘 회의의 참석을 알렸고, 결국 두 번째로 열린 동대륙 회의에서도 동대륙의 모든 나라가 참석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번 회의는 이전 회의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빅터 국왕이 직접 아렌달을 찾는다는 소식에 다른 왕국에서도 국왕들이 직접 오겠다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국왕으로서는 보리스만 참석했던 이전 동대륙 회의와는 다르게 이번 회의는 모든 왕국의 지도자들이 아렌달을 향하고 있었다.

아렌달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나르비크의 국왕이었다.

이전에 참석했던 아서 대공과는 다르게 조금은 유들유들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이번에 개통한 철도를 타고 들어와서인지 여행에 피로가 적었는지 백화점이나 해안가 호텔 등을 관광하는 모습까지 보여 주며 여유를 뽐내는 나르비크 국왕이었다.

나르비크 국왕이 한창 관광을 즐기는 동안 브레튼에서도 속속들이 사람들이 도착했다.

뉴렌달 역에서 내린 브레튼의 의원들은 이미 여러 번 왔던 경험이 있었기에 한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뉴렌달로 들어왔고, 처음 아렌달에 들어온 북부 3왕국의 국왕들은 뉴렌달의 발전된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보리스는 이번에도 역시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회의에 참석했다. 베르겐 왕국에서는 철도 공사에 난항을 겪고 있어서 아직 아렌달과 철도를 연결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거리도 멀지 않았고, 도로도 잘 깔려 있었기 때문에 보리스 역시 별다른 문제 없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의외였던 것은 빅터 국왕이었다. 당연히 배를 이용해서 돌아올 줄 알았던 인물이 베르겐 왕국을 관통해서 달려온 것이다.

베르겐 왕국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음에도 베르겐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는 담대한 모습에 그가 어떻게 아스타나 왕국을 휘어잡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저번에 봤을 때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왕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었던 건가?'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뉴렌달은 또 이만큼이나 발전한 것인가?"

"아스타나 왕국도 다른 곳에 열을 올리지 않았다면 더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내 말에 빅터 국왕은 피식 웃었다.

"만약 아렌달에서 그때 내 요청을 들어주었다면, 훨씬 더 발전할 수도 있지 않겠소?"

빅터 국왕의 대답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 동대륙 회의였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았다.

혁명세력으로 인해 일어났던 왕국의 혼란을 정리하고, 서로 협력해서 발전을 도모하자는 이야기가 주된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아스타나 왕국만큼 강력하게 혁명세력을 탄압한 왕국은 없었기에 다른 왕국은 혼란이랄 것도 없었다. 다만 아직 기득권을 평민들에게 나누어 줄 수는 없었기에 혁명세력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귀족의 권리를 강화하자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아렌달은 여전히 귀족법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오?"

"그렇습니다. 아렌달의 귀족들은 그런 식으로 권리를 만들어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자신들의 권리를 챙기고 있어서 말입니다.

타국의 귀족들을 위해서 아렌달의 평민들을 탄압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칫- 여전히 잘난 소리만 하는군."

내 말에 빅터 국왕이 혀를 찼고, 보리스와 브레튼의 대의원들은 피식 웃고 말았다.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도 점점 귀족들의 권리가 약해지고 있는 나라들이었기에 그저 다른 왕국의 의견에 동조만 하는 느낌이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점점 더 빠르게 발전해 오고 있소.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법 무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고 있으며, 실생활에 필요한 마법 아이템들도 속속들이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그동안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던 동대륙이 중앙대륙에 따라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지도 모르지."

"그거야 중앙대륙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다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에서는 마법 연구를 위해 수백만 셀링씩 투입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은 연구에 투자해 주는 만큼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여기 계신 국왕들께서도 그에 못지않은 투자를 하셔야 할 겁니다."

그 말에 참석한 인물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중앙대륙의 왕국들이 그렇게 큰 투자를 하고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황하는 국왕들 사이에서 보리스가 나에게 말했다.

"아렌달에서는 마법 연구에 얼마나 투자를 하고 계시는지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메이더스 왕국이나 에나플 왕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는 투자하고 있습니다."

내 대답에 다시 한번 참석자들이 놀랐다.

"하- 이렇게 조그만 아렌달이 중앙대륙의 패자들 못지않은 투자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아렌달이 판매하고 있는 상품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이상하지도 않겠지요.

동대륙이나 중앙대륙이나 엄청나게 상품을 내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아렌달을 찬양하는 듯한 참석자들의 목소리에 빅터 국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같은 동대륙의 왕국들이 중앙대륙에 따라잡히는 것을 아렌달에서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이오?"

"……"

"그동안 아렌달의 발전은 모두 동대륙의 왕국들이 아렌달의 상품을 사 주었기 때문 아니오?

그렇다면 아렌달에서도 동대륙의 이웃을 위해 노력을 해 주어야 하지 않겠소?"

'어이구?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은 건가?'

지난 동대륙 회의 때와 같이 개소리를 하는 빅터 국왕에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브레튼의 대의원들도 빅터 국왕을 비웃었지만, 사람들은 작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이웃이라… 좋습니다. 아렌달도 동대륙을 위해 노력을 해 주겠습니다."

내 대답에 참석자들이 기대하는 얼굴로 내 목소리에 집중했다.

"만약 다른 여기 계신 지도자들께서 투자만 해 주신다면 아렌달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마나석을 풀겠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