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그게 말이 되는가? 공작은 아렌달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나?"
"아렌달에는 신비로운 물건들이 많지 않습니까? 실생활에 필요한 마법 아이템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아렌달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마법 무기를 만든 것도 아렌달이지 않습니까?
지금 왕국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는 게 아렌달일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말로 미친 상상이군. 지금 동대륙에서도 가장 동쪽에 붙어 있는 아렌달에서 왕국을 향해 마법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아렌달은 대륙 어디에 있더라도 마법으로 타격이 가능하다는 소리군?"
국왕의 말에 대신들의 눈동자가 떨렸다.
"마, 말도 안 됩니다! 맥그리거 공작님. 아렌달이 왕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줄 아십니까?
왕국에서 아렌달까지 가는 것만 해도 수십 일이 걸릴 겁니다."
"대륙을 넘어 마법 공격이 가능하다니… 아무리 마법이 대단하다고 해도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대신들의 목소리에 맥그리거 공작이 루이 국왕에게 말했다.
"마탑주에게 확인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폐하."
"공작은 그게 가능하다고 믿고 있나 보군."
"저 역시 불가능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맥그리거 공작의 말에 루이 국왕의 입꼬리가 떨렸다.
실제로 아렌달에서 메이더스 왕국까지 공격이 가능하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이야기였다.
"폐하. 먼 거리라도 좌표만 있다면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
"허업!"
마탑주의 대답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사라졌다.
상상하기도 싫었던 가정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혼란까지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
"그 거리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당장 설명해라!"
국왕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마탑주의 입으로 모였다.
"마법을 먼 거리까지 보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양의 마력이 필요합니다.
그 마력의 필요치는 거리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렇다는 말은…"
"아렌달에서 여기 메이더스 왕국까지 마법 공격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아마 한번 공격하기 위해서는 마력석이 수백 개, 아니- 수천 개는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력석이 수천 개라면 그 값이…
마법 공격 한번 하는데 영지의 1년 예산에 필적할, 어쩌면 그 이상의 돈이 쓰인다는 말인가?"
"아무리 아렌달이 부유한 나라라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렇다면 지금 유령소동이나 왕국의 병사들을 공격하는 것이 아렌달일 확률은 거의 없는 것 아닌가?"
"마법 한 번에 수백, 수천 개의 마력석을 사용하다니, 그걸 마법 연구에 쓰면 얼마나 많은 연구를 할 수 있는데… 수천 셀링 이상의 돈을 땅에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마법사인 마탑주의 현실적인 설명에 사람들의 얼굴에서 표정이 다시 나타났다.
루이 국왕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왕국의 주인으로서 생각해 보면, 겨우 마법 한 번에 마력석 수천 개를 태우는 미련한 짓을 절대로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순간적으로 등골에 소름이 돋는 루이 국왕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누구의 짓이라는 말인가?'
* * *
메이더스 왕국과 에나플 왕국이 유령소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동안 아렌달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한 미디어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었다.
스톨 가문의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렸고, 영화 채널에 작품을 올리기 위해 체스터 가문에는 매일같이 제작자들이 줄을 섰다.
스포츠 팀의 구단주들도 리암이 가지고 있는 스포츠 채널에 자신의 팀 경기를 중계하기 위해 팀을 응원하는 서포터들까지 동원하며 리암을 쫓아다닐 정도였다.
그리고 가장 영향력이 큰 메인 채널에서 하는 아렌달 뉴스는 아렌달 뿐 아니라 주변 왕국들도 도둑 시청을 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었다.
"참 쓸데없는 뉴스거리가 많이도 모였군."
아렌달 뉴스에 한 꼭지라도 자기네들 이야기를 싣고 싶어서 귀족 가문이나 상단이나 알아서 뉴스거리를 가지고 오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취재를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따로 돈을 쓰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정보기관을 운영하는 느낌도 들었고, 약간의 편집을 거치면 아렌달에 도움이 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이 뉴스는 조금만 손보면 제법 뉴스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쓸 만한 게 있어?"
"베르겐 왕국의 철도 공사가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에 비해서 브레튼의 철도는 잘 다니고 있고요.
이 뉴스를 역시 철도 공사는 아렌달에 맡겨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면 관심 있는 왕국들, 특히 아렌달의 제안을 거부했던 북부 3왕국이 철도 사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도 분명 뉴스를 볼 테니까요."
"음- 그건 좀 괜찮은 것 같네."
"이것과 함께 아렌달의 건설 사업 능력을 대대적으로 광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람 왕국에서 진행하던 공사가 막혀 있어서 인력이 조금 놀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렌달의 기술력을 광고하기 위해 베르겐 왕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건 조금 미안했지만, 그래도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감을 만들어 주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번에 중앙대륙의 모습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거의 편집이 마무리되었을 겁니다.
아마 그걸 보고 나면 우리 백성들도 아렌달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주로 그람 왕국의 모습이었지만, 주둔군과 기술자들이 아렌달로 돌아오면서 가지고 온 기록 영상들을 방송으로 내보낼 계획이었다.
아렌달에 비해 발전이 떨어지는 중앙대륙의 모습을 보면서 아렌달의 백성들에게 아렌달에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아렌달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알려 주면 아렌달에 애국심과 자부심을 더 가지게 되겠지.'
아렌달의 백성들을 보라고 내보내는 영상들은 아렌달의 백성들보다 다른 왕국의 백성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미디어를 통해 아렌달의 백성들이 자부심을 가지는 만큼, 다른 왕국의 백성들도 아렌달과 자신의 왕국을 비교하며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왕국으로 영상들이 넘어가며 왕국의 체제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혁명의 붉은 물결이 사그라든지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당장 아렌달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차단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평민들의 텔레비전 시청을 금지하고, 아렌달의 문화 침공을 막아야 합니다."
"백성들 중에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요? 그게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아니 그럼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평민들이 도망치는 것을 보고 있으란 말입니까?"
왕국의 권력자들은 왕국에서 이탈하려는 백성을 붙잡으며 아렌달의 문화를 탄압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반발로 아렌달의 영상들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결국에는 자기들 힘으로 막기 어려웠는지 아렌달로 항의의 메세지를 보내는 왕국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니- 자기네들 보라고 만든 뉴스와 영상들도 아닌데 왜 이러는 거야?
아렌달의 발전된 모습을 보기 싫다면 왕국에서 관리하면 되는 일이잖아?"
"그 관리할 능력이 안 된다고 이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왕국들의 불평불만에 짜증보다는 웃음이 나왔다.
"근데 이렇게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텔레비전과 기록석은 엄청나게 팔려 나가고 있네."
"귀족들이 보는 것은 문제가 될 게 없으니까요. 권력자들은 평민들에게 아렌달이 얼마나 잘사는 곳인지 보여 주는 게 무서운 것뿐입니다."
왕국을 떠나지 않을 귀족들에게야 아렌달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저 즐거운 취미생활의 일환일 뿐이었다. 하지만 평민들에게 아렌달은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꿈꿀 수 있는 이상향일 것이다.
"그래도 붉은 혁명과 같은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으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아스타나 왕국을 비롯해 중앙대륙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백성들의 이탈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이미 많은 노동력을 손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한 마음에서는 아렌달로 들어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다 받아 주고 싶었다. 망명을 받아 주는 것은 아렌달의 노동력이 늘어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주변 왕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는 것이 나았다.
"근데 동대륙은 아니더라도 중앙대륙에서 흘러들어 오는 사람들까지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이미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아렌달의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에서부터 아렌달 상단의 진출까지 아렌달 문화를 조금씩 퍼트려 왔으니 말이다. 그런 이들에게 아렌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개하려는 것뿐이다.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 모를 영상 기록석들이 중앙대륙 곳곳에 뿌려졌다.
물론 텔레비전이 없다면 기록석 안에 들어 있는 영상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기록석이 뿌려진 만큼 텔레비전의 숫자도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왕국을 오가는 상단이나 왕국의 주요 도시의 규모가 있는 가게에는 모두 텔레비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갑자기 물량이 풀린 것이다.
아렌달에서 판매하는 것 같은 큰 화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의 작은 화면이었지만, 평민들도 쉽게 영상을 접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 보이는 곳이 아렌달이라더군."
"우와- 도시 전체가 엄청나지 않아?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저 굴러가는 철 상자가 자동차라는 거지? 말 없이도 달릴 수 있고, 그 속도도 마차보다 몇 배는 빠르다는 것 말이야."
그렇게 점점 중앙대륙에서도 아렌달의 첨단 기술을 눈으로 확인하며 아렌달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렌달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람 왕국에서는 아렌달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던데? 근데 그 배를 우리도 탈 수 있나?"
"우리는 자유민인데 어때? 영지에 발이 묶인 영지민들이나 이동을 걱정하는 거지, 우리 같은 자유민은 당장이라도 아렌달로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아렌달에서는 평민들도 귀족 못지않게 살 수 있다잖아?"
"맞아. 내일 당장 그람 왕국으로 넘어가야겠다."
이렇게 아렌달로 가려는 자유민들의 움직임에 위스타드 항구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위스타드 항구에 사람들이 몰려들 때마다 아렌달의 선단이 상품을 싣고 항구로 들어왔다.
중앙대륙에서 팔 상품을 내려 준 아렌단의 선단은 다른 물건들은 아무것도 싣지 않고 금세 다시 배를 띄웠다. 그리고 아렌달의 선단이 위스타드 항구를 떠날 때마다 항구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