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40화 (140/169)

140화

그람 왕국에서의 폭동은 거의 실시간으로 아렌달에 전해졌다.

어째서인지 아렌달의 인력이나 재물에는 손을 대지 않는 모습에 의아함마저 들 정도였다.

"우리 기술자들이나 주둔군이 그람 왕국의 백성들에게 잘 대해 줬기 때문에 저러는 건가?"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귀족들까지 건드리는 폭동에서 아렌달의 것만 골라서 피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람 왕국의 백성들도 아렌달을 두려워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렌달의 군사력이나 경제력이 엄청나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 왕국에서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폭동을 일으킨 주동자가 아렌달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끼고 아렌달과 척을 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저들이 우리의 눈치를 볼 만큼 여유가 있을까요?

항구로 들어오는 것들은 잡곡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 간 폭도들인데요?"

조직적인 형태를 띄고 있는 그람 왕국의 폭동이었기에 어떠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폭동이 오래 가지는 않을 거야."

"그럴까요?"

"아무리 그들이 세력을 일으킨다고 해도 왕국의 군사력에 대항할 수는 없을 테니까.

힘의 차이를 깨닫게 되면 알아서 사그라들겠지."

아무리 아렌달에 못 미친다고 해도 왕국들은 예전과 다르다.

겨우 농기구나 조잡한 무기 따위로 권력자들에게 대항할 수는 없는 시대가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아렌달에 유학을 오는 학생들의 숫자가 제법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먼저 들어온 유학생들이 아렌달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며 더 많은 유학생을 보내라고 자국에 어필한 것이다.

물론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간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은 아렌달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고향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도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향을 보인 학생들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에 들어가 아렌달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유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아렌달의 인재가 될 수도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렌달의 학생들 중에는 자신의 자리를 유학생들에게 빼앗기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마치 자신들은 당연히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유학생들은 왕국의 지원을 받고 있으니 공부에 집중하기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평민 학생들보다는 공부하기에 더 나은 형편이지 않습니까?"

분명 평민 학생들과 비교하면 귀족 학생들이나 유학생들이 공부에 집중하기는 더 좋은 상황이기는 할 것이다. 지원을 받고 있는 배경이 다를 테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유학생들이 아렌달에서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아렌달에 이득인 부분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

"유학생들이 자기네 왕국으로 돌아갔을 때, 아렌달에 돌아올 이득도 생각해야지.

다들 왕국에서는 한가닥 하는 신분들이잖아? 그런 녀석들이 아렌달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 아렌달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아렌달의 인재가 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아렌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

"물론입니다."

"그리고 아렌달에 들어온 유학생들끼리 만든 커뮤니티도 있다면서?

아렌달에서 만들어진 커뮤니티인 만큼 그들이 왕국의 권력자가 되었을 때 아렌달을 중심으로 모여 주겠지. 미래를 위해서도 유학생들에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어쩌면 왕국 간의 협약이나 회의가 있을 때마다 아렌달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지도 몰랐다.

협약의 중심지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아렌달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조금 더 안전해 질 수도 있었다.

리오는 내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데우스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유학생들이 아렌달에 계속해서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필요하지요.

하지만 아렌달의 평민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기회를 박탈 당했다고 생각하는 평민 학생들이 다시 붉은 바람과 같은 조직을 만들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흠- 그럴수도 있겠네."

노아와 같은 아이들을 더 이상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리오였기에 평민 학생들에게 더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 평민 학생들도 귀족 학생들이나 유학생들 처럼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되는 건가?"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기회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귀족 학생들과 공정한 경쟁을 했음에도 밀려난 것일 테니까요."

"좋아. 그럼 평민 학생들이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게."

너무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에 리오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방법이 있으십니까?"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생활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 아니야?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돈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니겠어?"

"설마 평민 학생들에게 돈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돈을 쥐어 주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쉽게 돈을 얻을 수 있어서 공부를 등한시할 수도 있습니다."

"누가 그냥 돈을 준다고 했나?"

평민 학생들에게 그냥 돈을 주는 것은 귀족 학생들이 차별을 느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리 귀족 학생들이 여유가 있어도 그들도 손해를 보고 싶은 생각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냥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빌려줄 거야."

"빌려준다고요?"

"그래."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이 받는 제도가 있지 않은가.

나 역시 그 제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학생들에 한해서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줄 거야.

이른바 학자금 대출이라는 것이지."

"대출이라면 결국 돈을 갚아야 되겠군요."

"대신 대출의 상환을 시작하는 것은 학교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 이후.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 추가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대학을 마치고 일을 시작해 소득이 생긴 이후에 대출의 상환을 시작하게 한다면 평민 학생들도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지."

"그리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 더 열심히 일하겠군요."

"그렇지. 거기에 아렌달의 관리가 되었을 때 대출에 대한 혜택을 준다고 하면 더 많은 인재들이 아렌달의 관리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어?

그럼 귀족 가문에 인재를 빼앗기는 일도 줄어들겠지."

아렌달은 어느 나라와 다르게 취업이 어려운 나라도 아니었다.

사실상 고등학교만 나와도 모두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지금의 아렌달이었다.

대학까지 나오면 귀족 가문의 스카웃을 받아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는 곳 아니었던가.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진학에 욕심을 가지게 되겠지. 자연스럽게 아렌달의 인재 수준이 올라가게 될 거야."

리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대출 상환을 일을 시작한 이후로 잡는 것은 재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날 텐데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는 만큼 점점 학생들의 숫자가 늘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학자금 대출은 아렌달이 아니라 내 개인 자금으로 운영할 생각인데?"

"네?"

"아렌달 은행에 있는 내 개인 자금 말이야.

아- 리오는 아렌달 은행에 내 돈이 얼마나 잠들어 있는지 모르지?"

"……"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리오에게 말했다.

"은행장보고 들어오라고 해.

이제 아렌달의 인재들은 다 나한테 빚을 지게 될 거야. 하하-"

아렌달이 인재들을 키우는데 집중하며 평화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동안 다른 왕국들 역시 성장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물론 대부분 마법 무기나 군사적인 역량을 키우기 위해 집중했지만, 그 밖에도 아렌달의 기술을 모방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특히 베르겐 왕국의 경우 스스로 철도 공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브레튼이나 나르비크 왕국에 작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근데 철도만 깐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베르겐 왕국은 벌써 기차를 만들 역량이 되는 건가?"

"아직 아렌달의 것에는 한참 모자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베르겐 왕국의 마탑에서도 계속해서 뭔가를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베르겐 왕국의 발전 속도를 보면 곧 브레튼을 앞설지도 모른다는 예측입니다."

"브레튼의 의원들이 난리를 치겠네."

시간이 흐를수록 왕권이 강력해지면서 베르겐 왕국은 발전에 탄력을 받고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는 브레튼의 기술이 앞서고 있었지만, 이미 기술력에서 베르겐 왕국의 가시권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마법사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브레튼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은 아직도 마법 무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가?"

"빅터 국왕이 물러나지 않는 이상은 그러지 않을까요? 들어오는 정보대로라면 아직도 왕국 확장에 미련이 있는 것 같던데요."

"하긴… 그람 왕국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 병력이 언제 철수하는지 묻고 있는 걸 보면 전쟁을 포기할 인물은 아니지."

빅터 국왕의 대륙 정벌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아스타나 왕국은 어느새 동대륙에서 기술 발전이 가장 뒤쳐진 왕국이 되었다.

한때는 동대륙에서 최강국이었던 아스타나 왕국이었지만, 지금은 군사력 말고는 아무것도 볼 게 없는 그저 그런 왕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중앙대륙의 상황은 어때?"

그람 왕국에서 시작된 폭동은 중앙대륙의 다른 왕국들로 조금씩 번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그래 봐야 아직까지는 지방 영주들이나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기에 몇몇 왕국에서는 왕권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가라앉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도 보이기는 하지만, 어떤 결과물을 만들기에는 힘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중앙대륙의 시장이 위축되면 아렌달 상단에서도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잘 감시해야겠네."

"지금까지 폭동 세력이 아렌달 상단을 공격한 적은 없으니까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중앙대륙에 본격적으로 진출해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아렌달 상단인 만큼 지금 상황이 오래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정리될 수 있게 그람 왕국이나 다른 왕국들에게 메세지를 보내. 괜히 폭동 세력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붉은 바람들은 어때? 조금 변화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지금까지 저항하는 녀석들은 쉽게 교화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흠- 노아도 마찬가지 인가?"

내 물음에 리오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지금은 무언가에 사로잡혀서 그런 거지만 조금만 더 이야기를 나눠 보면 분명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아들을 변호하는 리오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솔직히 노아나 아직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녀석들이 교화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인재들이 아깝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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