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일거에 잡혀 들어온 노아와 붉은 바람의 동지들은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수감 되었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그저 헛된 꿈이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붉은 바람의 세력이 커지기 전에 소탕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아렌달에서는 커질 수 없는 세력이었으니까."
아렌달의 고등 교육을 받았기에 생겨난 사상이었지만, 아렌달에서는 뜻을 펼칠 수 없는 사상이었다.
"저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시 밖으로 나오면 아렌달의 근간을 흔들려 할지도 모르는 녀석들 아닙니까?"
"그렇다고 모두 죽일 수는 없잖아?"
붉은 바람이 불온한 사상을 가진 세력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그들이 아렌달에서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우습게도 붉은 바람은 무언가 이루기도 전에 소탕되었으니 말이다.
"명분이 너무 빈약해. 뭐라도 했던 녀석들이라면 그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데, 정말 아무것도 못 한 녀석들이라 그에 따른 처벌을 내리기에도 이상한 상황이잖아?"
그저 나와 다른 생각을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을 시킨다면 저들에게 명분을 만들어 주게 될지도 몰랐다.
어쨌든 나 역시 귀족이었으니 말이다.
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의 벽을 부숴야 한다는 세력을 귀족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사형을 시킨다? 붉은 바람의 사상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대학에 들어간 인재들이잖아? 일단은 교화를 시키는 방향으로 생각해 보자고.
물론, 교화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겠지만…"
아직도 다른 왕국과 비교하면 인구가 부족한 아렌달이었다.
한 명의 인재라도 소중한 만큼 노아나 그의 동지들이 붉은 바람의 사상을 접고 아렌달을 위해 일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직 어린 친구들인 만큼 변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고."
노아와 붉은 바람의 동지들이 교도소에 수감되었다는 이야기에 아렌달의 귀족들은 당연하다는 의견이었다.
아무리 귀족법으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해도 귀족은 귀족. 아직까지 신분의 벽으로 평민과 구분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붉은 바람을 잡아넣는 결단에 지지를 보내 주었다.
"근데 귀족들을 위해서 이렇게 한 건 아닌데?"
"외견상으로는 귀족들을 위해 위협을 제거한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평민들의 반응은 어때?"
"평민들이야 그러려니 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부터 귀족과 평민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데우스님과 아렌달에 대한 충성도가 엄청나지 않습니까?
오히려 데우스님께서 귀족들로부터 평민들을 지키기 위해 썩어가는 것을 잘라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평민들도 많습니다."
리오의 보고에 웃음이 나왔다.
"리오는 어때? 괜찮나?"
"반역의 죄를 저지르려 했던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의 목숨을 살려 주셨을 뿐 아니라 저와 가족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묻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저와 가족들은 데우스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 물음에 리오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의 말대로 노아가 진짜 반역을 일으켰다면, 리오를 비롯해 리오의 가족들 역시 노아의 죄를 같이 뒤집어써야 했을지도 몰랐다.
솔직히 아렌달의 귀족 중에는 붉은 바람의 사상가들과 그 가족들에게 반역의 죄를 물어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는 대학 졸업생이 반 토막이 나 버렸으니 아렌달의 새로 들어오는 관리의 숫자가 확 줄어들겠네.
귀족 학생 녀석들은 아렌달의 관리보다는 가문의 사업을 이어받을 테니 말이야."
"제가 더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 나이에 어떻게 더 열심히 일해 보겠다는 거야?"
"제 아들 녀석 때문에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 자식을 잘 못 기른 책임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마탑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내게 자하가 말했다.
"굳이 커피를 마시겠다고 마탑에 오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왠지 모르게 자하가 타 주는 커피가 더 맛있단 말이지. 무슨 마법을 부린 것처럼 말이야."
"마법사라 자기도 모르게 커피에 마력을 흘러 넣는 것 아닐까요?"
"흠- 일리가 있네."
"그럼 볼튼이 커피를 타고 맛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가지고 있는 마나는 소드마스터가 더 많을 테니 더 맛있을 겁니다."
자하의 말에 나와 볼튼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그냥 커피만 드시려고 오신 겁니까?"
"마법 아이템들의 개발 상태도 확인할 겸 온 거지."
"다른 일을 시키시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시죠? 또 말도 안 되는 걸 만들라던지…"
"내가 언제 말도 안 되는 걸 만들라고 했다는 거야?
전부 다 가능한 것만 지시했잖아?"
내 말에 자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들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것 아닙니까?
동력기관이나 인공 마나석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도대체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영상을 기록하는 것이나 배를 하늘에 띄운다는 생각도 보통 사람은 절대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나는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데우스님께서는 보통 사람이 아니시지요.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실 뿐 아니라 그 생각들을 실현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죠.
데우스님 덕분에 이 세계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데우스님께서는 천재라는 말로 부족한 게 당연합니다.
저도 데우스님을 모시게 되어서 이렇게 소드마스터가…"
"그, 그만!"
오랜만에 발동하는 볼튼의 찬양에 나와 자하는 질린 얼굴로 그의 입을 막았다.
"더 이상 말한다면 비행선에 태워서 하늘로 날려 버릴 테다."
"헙! 아, 알겠습니다."
볼튼의 입을 막는 나는 한숨을 쉬며 자하에게 말했다.
"말이 나와서 그러는데 비행선의 연구는 얼마나 됐어?"
"비행선의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날씨나 주위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물건이라 외부의 환경에도 이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긴… 자칫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가 될 테니까.
역시 마법사들 답게 알아서 잘 하고 있네."
항상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마법사들 아니었던가.
오히려 지구의 과학으로 만들어진 것보다 대단한 물건도 만들어 낸 마법사들이었다.
아렌달에 마법사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린 마법사들은 잘 하고 있지?"
"얼마나 마법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성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나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나은 환경이지 않습니까?
부족한 지원을 받으며 공부하던 저희보다는 훨씬 잘 성장할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어린 마법사들에게는 아끼지 말고 지원해 주라고. 그 아이들이 잘 성장하는 것이 자하도 편해지는 방법 아니야?"
"그 아이들이 성장하더라도 제가 편해질 것 같지는 않은데요?
오히려 마법사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탑주로서 할 일이 늘어나는 것 아닙니까?"
"그럴지도 모르겠네."
내 대답에 자하가 조심스레 나에게 말했다.
"편해지는 방법이라… 그럼 혹시 다른 마법사에게 마탑주 자리를 넘겨줘도 될까요?"
"누구에게?"
"흠-"
미간을 좁히며 마탑주에 어울릴 만한 마법사를 찾는 자하를 보며 말했다.
"방랑벽으로 돌아다니기에 바쁜 달리아는 아닐테고, 에일렌은 마탑주라는 직책을 맡기에는 마음이 여려서 안되고, 알비레오는 생각할 가치도 없는데?"
"……"
"다른 마법사들 중에 마탑주를 시킬 만한 사람이 있나?
자하도 내가 은퇴할 때 같이 은퇴하는 게 좋겠는데?"
"헤돈경과 리오님도 데우스님께서 물러나실 때 같이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먼저 도망칠 생각하지 마시죠. 자하님."
"내가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도망친다니?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볼튼의 말에 자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가 죽을 때까지 데우스님께 부려질지도 모르겠는데…"
마탑에서 내려온 나는 곧장 방송국을 찾았다.
그동안 아렌달 상단이나 아렌달 건설을 이용해서 다른 왕국에 몰래몰래 구멍을 낸 결과물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람 왕국까지 연결이 된 건 확실하지?"
"흐릿하기는 하지만, 그람 왕국에서 보낸 영상이 방송국에 잡히기는 했습니다.
아렌달과 같은 수준의 영상을 잡으려면 조금 더 많은 중계소가 필요하겠지만, 지금도 그람 왕국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좋아. 한 번 연결해 보자."
내 지시에 마법사는 실시간 영상을 잡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그람 왕국에 통신을 보냈다.
반대쪽에서 넘어오는 통신에 마력을 연결하자 방송국에 준비된 커다란 텔레비젼을 통해 흐릿한 이미지가 넘어오기 시작했다.
아렌달을 찍을 때와 달리 색이나 선명도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사람과 건물 등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을 만한 이미지였다.
"그람 왕국의 항구 도시인 위스타드입니다."
아렌달의 도시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낙후된 모습이었지만, 생각해 보면 베르겐 왕국 시절 도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전쟁으로 도시가 망가진 것을 생각했을 때, 망가지기 전에는 훨씬 괜찮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동안 기록석으로 녹화된 그람 왕국의 모습은 봤지만,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는 느낌은 조금 달랐다.
"앞으로 그람 왕국이나 다른 왕국에 중계소를 더 만들게 되면 조금 더 좋은 영상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리암과 랄프에게 빨리빨리 땅을 파내라고 지시를 내려야 겠네."
그 때, 그람 왕국에서 보내지는 영상에 특이한 모습이 들어왔다.
"저건 뭐지?"
"네?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흐릿한 색감의 영상이었지만,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붉은색 두건을 뒤집어쓰고 위스타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었다.
왠지 모르게 기시감이 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그람 왕국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한 번 확인해 봐."
그리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쫓던 영상이 갑자기 끊어지면서 통신 마나석을 통해 그람 왕국의 상황이 들려왔다.
-폭동입니다. 그람 왕국의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쪽에 피해는 없는 건가?"
"폭동을 일으킨 백성들이 어째서인지 아렌달의 물건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견을 나간 기술자들이나 병사들에게도 아무런 피해를 입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일부러 우리 쪽은 건드리지 않는 것 같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렌달의 것은 철저하게 구분을 지어 가면서 폭동을 일으킨 그람 왕국의 백성들이었다.
대충 영상을 통해 확인했지만,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결코 충동적으로 발생한 폭동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라도 우리 기술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라고 해.
필요하다면 그람 왕국의 국왕에게 메세지를 보내서라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