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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35화 (135/169)

135화

그람 왕국에 파견을 온 아렌달 대학생들은 조금의 적응기간을 가진 뒤 본격적으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본격적으로 그들이 현장지원을 시작하자 먼저 파견 나왔던 기술자들도 한결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과연 대학생들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건가? 일을 배우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른 것 같은데?"

"겨우 3달밖에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게 벌써부터 아쉬울 정도입니다.

저 학생들이 돌아가면 다시 이전처럼 바빠지겠죠? 조금 더 대학생들이 그람 왕국에 남을 수 있게 아렌달에 요청해 보면 안 될까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아렌달에서 우리를 생각해 주고 있으니 저렇게 대학생들이라도 지원해 주는 거 아니겠어?

대학생들이 돌아가면 그때는 또 다른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대학생들의 도움을 받은 기술자들은 잠깐의 시간이라도 더 편해지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잘 대해줄 수밖에 없었다.

상단이나 주둔군에서도 대학생들의 편의를 봐주며 조금씩 도움을 받았기에 오히려 아렌달에 있을 때보다 더 편안한 생활을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들은 정해진 일과를 마치고 나면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남는 시간을 활용했다.

"노아. 오늘 작업 끝나면 같이 한잔하는 게 어때?"

"죄송합니다. 오늘은 친구들과 피리스 마을의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쳐 주기로 해서요."

"그람 왕국의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쳐 준다고? 왜 그런 일을 하는 거지?"

"아렌달과 다르게 기초 교육 수준도 못 받는 그람 왕국이잖아요.

아렌달에서 온 사람에게 공부를 배우게 된다면 아렌달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커지지 않겠어요?"

"이미 그람 왕국은 아렌달에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데, 평민들의 교육까지 해 주겠다고?"

"아렌달의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그람 왕국의 중요 인사가 된다면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노아의 말에 선임 기술자는 고개를 저었다.

"평민 아이들을 가르쳐 봐야 왕국의 중요 인사는 될 수 없을 텐데…

여기는 아렌달이 아니라고. 왕족과 귀족들이 지배하는 왕국에서 평민에게 기회가 있을까?"

"……"

"그래도 네 생각은 잘 알겠어.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니 응원하마. 열심히 해 봐."

"감사합니다."

"술은 다른 녀석들과 해야겠군."

자신을 응원하며 돌아서는 선임 기술자에 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노아와 동지들은 그람 왕국의 마을을 돌아다니며 평민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을 계속했다.

처음에는 교육이라는 것에 무심하던 평민들도 학생들의 성의에 감동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생님. 이렇게 공부를 하면 평민들도 굶주리지 않고 살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죠."

"어떻게요? 귀족이 아닌데 어떻게 굶주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평민이 배고픈 이유가 무엇입니까?

귀족들이 전부 빼앗아 가기 때문 아닙니까?"

노아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귀족들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면 평민도 굶주리지 않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저희는 평민이지 않습니까? 평민은 귀족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니 빼앗기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

"어째서 귀족이 평민을 수탈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까?"

"그거야 그들이 귀족이니까…"

"귀족도 사람이고, 평민도 사람입니다."

"허업!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요. 저는 아렌달에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귀족도 평민도 결국 칼에 찔리면 죽습니다. 똑같이 붉은 피를 흘리고 죽는다는 말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아와 동지들의 말에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동안 당연했던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느낌이었다.

아렌달 군이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은 아렌달에서도 손에 꼽히는 정예 중에 정예 부대였다.

지휘관들은 아렌달 영지 시절부터 군인 생활을 하던 베테랑들이었다. 거기에 병사들 역시 바깥을 순찰하면 몬스터를 상대로 무수한 실전 경험을 쌓은 만큼 중앙대륙에 파견을 나오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람 왕국의 병사들은 아직도 초기 A2 수준의 마법 무기를 사용하는 것 같더라고."

"그걸로 오우거나 잡을 수 있겠어?"

"그래도 칼이나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하긴… A2 정도의 마법 무기가 있다면 기사들보다 오우거는 잘 잡겠네. 하하-"

"아직도 기사가 있어? 나는 다 멸종한 줄 알았는데? 하하-"

그런 병사들의 목소리에 플로렌스 백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멸종?"

"플로렌스 백작님. 왜 그러십니까?"

"자네는 못 들었는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하는 부하 기사들에 플로렌스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못 들었다니 차라리 다행이군."

"……"

점점 멀어지는 아렌달 병사들의 목소리에 플로렌스 백작은 기사에게 말했다.

"자네도 우리의, 기사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하나?"

"……아닙니다."

그 대답에 플로렌스 백작의 일그러졌던 얼굴이 다시 펴졌다.

"그럼 준비해라. 오가스 백작과 기사단이 도착하면 바로 칠 것이다."

플로렌스 백작과 오가스 백작.

그들은 메이더스 왕국의 떠오르는 젊은 소드마스터들이었다.

아스타나 왕국의 첫 번째 대륙 원정 이후 중앙대륙에서도 마법 무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기사들의 가치가 땅바닥으로 처박히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권력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이름을 떨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마법 무기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다.

"국왕 폐하께 보여 드릴 몇 개만 남기고 전부 파괴할 것이다."

"아렌달의 마법 무기가 특별하다면 전부 파괴할 필요는 없지 않나?"

"저 마법 무기들 때문에 기사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가?

병사들이 떠들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거야."

"흠- 내가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오가스 백작의 말에 플로렌스 백작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아렌달의 병사들이 했던 멸종이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하지 말게.

아렌달의 마법 무기가 정말 위험한 물건이라면 우리 기사들이 희생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왕국을 위해 죽는다면 기사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지."

오가스 백작은 플로렌스 백작이 왠지 사고를 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 역시 마법 무기에 대해 좋은 감정은 없었기에 굳이 그를 말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너무 크게 일을 벌이지만 말게."

"어차피 다 죽이면 우리가 누구인지 모를 테니 상관없지 않은가?"

"훗- 그것도 그렇군."

주둔지의 경계를 서고 있는 아렌달 병사들은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응? 저 사람들은 뭐지?"

"주변 마을 사람들 같지는 않은데? 무슨 일이 있나?"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병사들은 다가오는 무리에 소리쳤다.

"멈춰라! 더 이상 다가오면 발포하겠다."

아렌달 병사들의 목소리에도 메이더스의 기사들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사들의 걸음이 빨라지며 이빨을 드러냈다.

두 명의 소드마스터를 선두로 달려드는 메이더스의 기사들에 병사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플로렌스 백작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소드마스터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쾅!

"정말 기사가 멸종했다고 생각하나?"

"그, 그게 뭔 개 소리야. 커헉!"

플로렌스 백작의 공격을 받은 병사들은 가슴에 꽂힌 검에 피를 토하면서도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 흐릿해지는 눈빛을 플로렌스 백작에게 보내며 씨익 웃었다.

"웃어?"

"너는… 디졌어… 커헉!"

뽑아낸 칼과 함께 뜨거운 피가 플로렌스 백작의 얼굴로 튀었다.

그리고 아렌달 군의 주둔지에 귀를 찢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잉

"뭐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울리는 경계 경보에 발트를 비롯한 아렌달 병사들이 전투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주둔지에서 일제히 움직이는 병사들의 소리에 두 소드마스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생각보다 대응이 빠르군."

"플로렌스 백작. 조금 더 날뛸 생각인가?"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성에 차지 않아서 말이야. 그리고 국왕 폐하께서 아렌달의 위험성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오라 하셨지 않나?"

"흠- 그랬지."

두 소드마스터는 국왕의 말을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점점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소란에 소드마스터들은 검에 마나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기사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주마."

그리고 다가오는 아렌달 군의 병사들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는 두 사람의 검에 발트는 놀라 병사들의 발을 멈추게 했다.

"소드마스터!"

두 소드마스터가 내뿜는 살기에 아렌달 병사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렌달의 정예 병사들. 발트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어디서 온 인사들인지 모르겠지만, 지옥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지."

"지옥?"

발트의 말에 플로렌스 백작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검을 뿌리려는 순간 발트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갈겨!"

-쾅쾅쾅쾅쾅

"크윽!"

생각보다 강력한 마법 무기의 위력에 플로렌스 백작의 돌진이 멈추고 말았다.

오가스 백작은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옆으로 피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

"어딜 도망치려고!"

오가스 백작은 점점 크게 느껴지는 마나의 파동에 도망치려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검을 세우고 막아 냈다.

"이런 개 같은…!"

-콰콰콰쾅

연발 사격이 시작된 기관총의 위력에 오가스 백작이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이미 플로렌스 백작은 도망치기에도 힘든 상황. 자신이라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쉬운 상황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이게 아렌달의 마법 무기인가! 소드마스터가 겨우 이런 무기에…'

"뒤에 더 있다! 저 새끼들도 다 잡아!"

두 소드마스터를 구원하려던 기사들은 자신들에게까지 공격이 시작되자 공포를 느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커헉!"

"도, 도망쳐라!"

"테러범들을 잡아라! 한 놈도 놓치지 마라!"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기사단을 보며 오가스 백작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플로렌스 백작의 생존은 장담하기 힘든 상태. 자신이라도 빠져나가 왕국에 위험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생각한 오가스 백작은 지면을 향해 마나 소드를 폭발시켰다.

"커헉!"

지면이 터져 나가는 충격에 오가스 백작이 피를 토했지만, 그래도 아렌달 병사들의 시야에서 순간적으로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제기랄!"

"테러범들 다 잡아! 한 놈이라도 놓치면 다 죽을 각오해!"

머리를 울리는 아렌달 병사들의 목소리에 오가스 백작은 신음을 숨기면서 땅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소드마스터가 되어서 땅바닥을 길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왕국으로 돌아가 아렌달의 위험성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왕 폐하께 알려야 한다.

아렌달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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