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33화 (133/169)

133화

브레튼의 의원들이 도착했을 때 베르겐 왕국의 귀족들도 아렌달로 들어오고 있었다.

철도가 없었기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오는 모습에 브레튼의 의원들은 앞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렌달 왕국에서는 언제 철도를 도입할 생각일까요?

이러다가 나르비크 왕국보다 늦어지는 게 아닌지 걱정됩니다."

"나르비크 왕국도 철도부설권을 아렌달에 넘겨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건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리즈 의원님께서는 아직도 베르겐 왕국을 걱정을 해 주시는 겁니까?"

"나는 이래 봬도 베르겐 왕국의 방계 왕족이지 않습니까?

비록 이제는 독립해서 브레튼의 사람이 되었지만, 그래도 혈연으로 이어진 왕국이 저렇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편치는 않아서 그럽니다."

왕이 없는 브레튼에서 왕족의 혈통을 따지는 리즈 의원의 모습에 몇몇 의원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 모습에 리즈 의원도 눈치껏 베르겐 왕국을 걱정하는 모습을 지우며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왕국에서 독립한 두 나라가 왕국보다 기술력이 뛰어나게 되었군요."

"그것 때문에 독립하게 된 것 아닐까요?

왕국이 발전을 멈췄기에 발전을 택한 두 나라가 독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닙니까."

"생각해 보니 그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왠지 모를 우월감에 심취한 브레튼의 의원들에 아렌달의 행정관들은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부분을 아렌달에 의존하고 있는 브레튼에서 다른 왕국을 상대로 기술을 논하는 모습이 우스울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 맺은 아렌달-베르겐-브레튼의 협약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었다.

이번에 베르겐 왕국의 귀족들과 브레튼의 의원들이 대거 아렌달을 찾아온 이유 역시 이 협약을 지속 갱신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렌달의 요청은 아렌달의 평민들이 우리 브레튼이나 베르겐 왕국에서 아렌달과 동등한 대우를 받도록 해 달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아렌달의 평민 기술자들은 공사를 위해서 파견을 많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베르겐 왕국와 브레튼은 우리 기술자들이 많이 나가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아렌달에서는 평민 기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와 같은 내용을 함께 넣고 싶습니다."

내 말에 브레튼의 의원들이 베르겐 왕국의 귀족들을 바라봤다.

어째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인지 그들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선에 보리스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덴버 가문에는 마땅한 처벌을 내렸습니다."

"처벌이라고 해 봐야 그저 벌금에 그치지 않았습니까? 작위도 귀족이라는 신분도, 심지어 그들의 재산에 대한 몰수도 없이 그저 자숙하라 한 것이 처벌입니까?"

"그, 그건…"

"아렌달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귀족이라도 그 책임을 물어 교도소에 구금되거나, 연방에서 추방되는 벌을 받게 됩니다.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는 벌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보리스는 그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기술자들뿐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아렌달에서 건설 인력을 파견 보낼 때도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기에 이렇게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라 간의 교류가 더 많아지게 된다면 아렌달의 백성들이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으로 관광을 가게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어서 부랴부랴 백성들을 보호할 법을 만드는 것보다 지금 기회가 있을 때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평민들이 관광을 온다고요?"

내 말에 베르겐 왕국의 일부 귀족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미 아렌달에서는 평민들이 관광을 다닙니다."

"허! 어찌 평민 주제에 관광을…"

"능력과 여유가 된다면 못 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관광을 다니면서 그들이 소비하는 돈이 얼마나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실 겁니다."

"……"

"부유한 아렌달의 평민들이 도시나 영지에서 돈을 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겨우 한두 푼으로 끝날 돈일까요?"

내 말에 아렌달의 귀족들이 눈동자와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자신들이 관광을 다니면서 돈을 쓴 것과 비교하며, 작은 돈이 아님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귀족들을 뒤로하고 보리스가 말했다.

"그렇다면 아렌달에서는 앞으로 평민들이 우리 왕국이나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인가요?"

"그러한 여건만 된다면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내 말에 보리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노동력과 비례하는 백성을 다른 왕국으로 마음껏 이동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에서 아렌달의 자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렌달의 백성들은 절대 아렌달을 떠나지 않는다.

"평민들의 관광은 차치하고 보더라고, 아렌달에서 파견하는 기술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말에 브레튼에서는 별문제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도 아렌달과 기술적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겠지요.

좋습니다. 우리 브레튼에서는 아렌달의 평민들을 아렌달에서와 동등한 대우를 해 주겠습니다."

브레튼에서 이렇게 나오고 나니 베르겐에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이 불편한 기색을 잔뜩 보이고 있었지만, 베르겐 왕국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아렌달의 기술자들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베르겐 왕국에서도 아렌달의 평민 기술자들을 보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덴버 사건과 같이 귀족이 아렌달의 평민 기술자를 죽이는 일이 발생하면, 그 귀족의 처벌은 아렌달에서 할 수 있게 해 주시겠습니까?"

내 말에 베르겐 왕국의 귀족들이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아렌달에서 처벌을 받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왕국에서 벌어진 일을 왜 아렌달에서 간섭을 하려는 것이오! 이건 내정간섭이 아닙니까!"

"국왕 폐하. 이건 말도 안 되는 조건입니다. 절대로 들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아렌달에서 처벌을 받는다는 말은 귀족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었으니, 귀족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귀족들의 모습을 보며 브레튼의 의원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명백하게 자신들을 비웃는 사람들에도 베르겐의 귀족들은 보리스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귀족들의 힘이 약해질수록 왕권이 강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보리스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렌달의 조건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우리 베르겐 왕국에서 아렌달의 평민이 피해를 입는 경우, 그 처벌은 베르겐 왕국이 아닌 아렌달에서 내릴 수 있도록 범죄자의 신병을 양도하겠습니다."

"국왕 폐하!!!"

"보리스 국왕 폐하의 결단.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보호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베르겐 왕국으로 더 많은 기술자를 파견해도 괜찮겠군요."

회담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눈에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베르겐 왕국이나 브레튼에서 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었다.

"허허- 이게 누구인가! 데이비드 아니냐!"

"할아버지.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유학생들이나 그들과 인연이 있던 학생들이 회담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체스터 후작은 자신에게 인사하는 손자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있다 들었다."

"체스터라는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래. 체스터의 아들이라면 그래야지."

데이비드의 자신감에 체스터 후작이 웃자 요크 후작도 신이 나서 다가왔다.

"데이비드. 오랜만이구나."

"외할아버지께서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네 소식은 이블린을 통해 들었단다. 이번에 수석을 차지했다고?

요크의 아들이 대학에서 수석을 차지했다니. 네가 자랑스럽구나."

"어허! 요크의 아들이라니! 어째서 데이비드가 요크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당연히 체스터의 아들이지."

"체스터 혼자서 낳았다는 말이오? 절반은 우리 요크의 피를 이었으니 요크의 아들이지."

"체스터의 아들이자, 요크의 아들로 하면 안 되겠습니까?"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차피 가문을 이을 후계자도 아니었으니 두 사람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 역시 흥미를 느꼈다.

"데이비드가 이번에 수석이었나?"

"아! 데우스님. 부끄럽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부끄럽다니? 자랑스러워할 이야기지.

리오의 아들도 대학에서 성적이 손에 꼽힌다고 하던데, 리암의 아들 역시 뛰어난 성적이라니…

내 주변 사람들은 자식 농사를 아주 잘 지은 것 같네."

내 말에 데이비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리오님의 아들이라면… 노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있어?"

"좋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서로 라이벌이 되어 준다면 좋은 거겠지.

아렌달에 이렇게 뛰어난 인재들이 계속 나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

데이비드가 아렌달을 위해 일하는 날을 기대하지."

기대한다는 내 말에 데이비드의 눈이 번쩍 떠졌다.

"감사합니다. 데우스님.

아렌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브레튼의 대의원인 두 할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데이비드에 살짝 놀랐지만, 이런 인재가 뼛속까지 아렌달인이라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크흠- 아렌달에는 인재가 끊이질 않는 모양이군."

"아렌달에서 공부를 시키기 위해 왕국들도 유학을 보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렌달 대학을 나온 인재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고요."

"흠- 우리도 인재를 교육하는 시스템을 한번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아렌달에 뒤지지 않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 같은 교육 기관을 꼭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렌달과 그람 왕국으로 오가는 선단을 통해 중앙대륙의 정보가 계속해서 아렌달에 들어왔다.

특히 중앙대륙의 패권을 겨루고 있는 에나플 왕국과 메이더스 왕국의 정보는 내 관심을 붙잡을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확실히 이 두 나라는 절대 왕권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네.

지방 영주들이 거의 몰락한 상태에서 중앙에 힘이 밀집되어 있어."

"이렇게 큰 나라에서 이렇게 강력하게 왕권이 유지되다니…

만약 두 왕국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지 않았다면 중앙대륙에는 큰 피바람이 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에나플이나 메이더스나 마법 무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동대륙 전체에 필적할 만큼 강대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던 왕국들이었다.

중앙대륙의 소왕국들이 두 왕국에 먹히지 않기 위해 연합을 하고 있던 사실만 해도 두 왕국의 힘이 얼마나 컸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마법 무기의 발전으로 군사력의 기준이 바뀌면서 예전만 못한 위세를 가지는 두 왕국이었지만, 지금도 아렌달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왕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병력이 중앙대륙에 진출했다고 두 왕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일은 없겠지?"

"두 왕국과 그람 왕국 간의 거리도 있고 하니 당장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두 왕국이 아렌달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면 관계가 좋아질 수도 있는 거겠죠.

어쩌면 에나플과 메이더스라는 거대한 시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앙대륙의 시장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두 왕국의 시장에 끼어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실.

"상단이나 스파이를 이용해서 두 왕국에 아렌달 문화가 잘 스며들 수 있게 계속 손을 써봐.

기회가 되면 대화를 통해 우리 기술자들을 파견하는 것도 좋을 거 같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