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그람 왕국으로 파병을 간 아렌달 군이 쉽게 자리를 잡는 모습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다른 왕국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기에 이렇게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람의 국왕이 적극적으로 아렌달 군을 맞아 준 것 같습니다.
다른 왕국으로부터 그람 왕국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 군을 이용하려는 속셈인 듯 합니다."
"우리로서도 나쁘지 않지. 그람의 국왕이 우리 군을 이용하는 만큼 우리도 그람 왕국을 이용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
누가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는지는 두고 보자고."
"그거야 당연히 우리 아니겠습니까?"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람 왕국이 얻어 낼 것이라고는 왕조를 유지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이미 그람 왕국에서 채굴이 끝난 마나석 광산 3개를 저희 쪽에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거기서 뽑아 올릴 마나 스팟과 토양만 해도 얼마인데요.
거기에 각종 개발권까지 더하면 벌써 이득을 보고도 남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술자들과 병사들이 그람 왕국의 민심을 가져오기 위해 손을 쓰고 있기에 앞으로 그람 왕국에 줄 수 있는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다.
"파견을 나간 기술자들과 병사들이 힘낼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줘야겠어."
"랄프에게 말해서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지원이야 당연한 것이고, 아렌달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나 배우들이 위문 공연을 가는 것도 괜찮겠어.
텔레비전으로 녹화된 영상만 보는 것보다 실제 배우들이나 가수들을 보면 더 힘이 나지 않겠어?"
"위문 공연이라… 좋은 생각입니다."
이렇게 위문 공연을 보내면 향수병을 이겨 내기에도 좋고, 아렌달이 자신들을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더욱 열심히 일해 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마탑에 가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깜빡했다."
마탑에 가기 위해 관청을 나서는 나를 리오가 따라 나왔다.
"마탑에 볼일 있어?"
"마탑은 아니지만, 같은 방향입니다."
"그럼 같이 가지."
리오와 볼튼이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동하는 내 눈에 노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번에 만났던 리오의 막내아들인 것 같은데?"
"네? 어디요?"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아가 맞네요.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그냥 눈에 띄잖아."
내 말에 리오는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아들이 내게 관심을 받는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런데 내 눈에 노아가 들어온 이유는 사실 관심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그가 속한 무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빨간색이 유행인가?"
"유행이요?"
"쟤네들 전부 빨간색의 장식을 가지고 있잖아?
요즘 아이들, 특히 대학생들 중에 빨간색으로 된 장식을 가지고 다니는 녀석들이 자주 보이더라고."
"그렇습니까? 음- 생각해 보니 제 아들 녀석도 그랬던 것 같네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라… 그럼 나도 가지고 다녀 볼까?"
"데우스님께서요?"
"왜? 나 정도면 동안 아닌가?"
"……"
내 말에 리오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동안이라고 불리려면 샤를로트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샤를로트는 관리를 받으니까… 그리고 동안은 스톨 가문의 특징 중 하나잖아."
"가끔 샤를로트님과 같이 서 계시는 데우스님을 보면 혼자만 나이를 드시는 것 같아서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리오부터 걱정하는 게… 이제 완전 할아버지가 다 되었잖아?"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저는 이미 손자가 있는 할아버지니까요. 하하하-"
"……"
리오의 웃음소리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볼튼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한마디 거들었다.
"리암님을 생각해 보면 데우스님은 양호한 것 아닙니까?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는데…"
공사판을 구르고 있는 리암과 비교를 한다면 당연히 더 젊어 보여야 정상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리암이 나보다 연장자였다.
"그래도 데우스님께서는 지금 나이대로는 보이시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 그래. 그건 다행이네."
"물론 샤를로트님과 같이 서 계시는 건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
리오를 보내 준 나는 곧장 마탑으로 들어왔다.
이미 약속 시간보다 늦었던 탓인지 자하를 비롯한 마법사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하하- 좋은 아침이야."
"아침이라니요? 벌써 점심도 지난 상태입니다."
"그, 그렇지."
내 인사에 자하는 피식 웃으며 마법사들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나는 마법사들의 분주한 모습에 조금 흥분하고 있었다.
"정말 사람을 태울 수 있는 거지?"
내 물음에 자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자동차와 기차를 실험하던 마탑의 넓은 공터에 작은 배 한 척이 있었다.
'진짜 비행선이다.'
아렌달 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드론을 넘어서 진짜 사람이 조작하는 비행선이었다.
자하의 신호에 비행선에 탑승한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주문과 함께 비행선에서부터 강한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 바람에 볼튼이 내 앞을 지키고 섰다.
그리고 점점 바람이 약해지면서 비행선이 뜨기 시작했다.
"뜬다!"
한껏 들뜬 내 목소리에 마법사들도 자신들의 성과에 감격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와 다르게 활주 없이 수직 상승하는 비행선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아주 좋아. 조작하는 방법은 진짜 배와 똑같은 거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을 겁니다.
아론 선장이나 다른 항해사들에게 도움을 받아서 만든 물건이니까요."
"비행 시간은?"
"동력기관의 마나석만 계속해서 교체해 준다면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자하의 말에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마나석이야 비행선 안에 얼마든지 실을 수 있는 물건이지 않은가.
사실상 영원히 날 수 있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고등급 마나석을 이용해서 동력 기관을 만든다면 저것보다 더 큰 비행선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실제 바다에 띄우는 함선과 비교하면 어때?"
"아무래도 함성보다 큰 비행선은 어렵지만… 그래도 한 번에 50명까지는 탈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것을 만드는 것도 1등급 마나석이 수십 개는 들겠지만요."
한 번에 50명이 탈 수 있는 비행선을 만드는 데 1등급 마나석이 대수인가.
마나석이야 인공 마나석으로 대체하면 얼마든지 생산해 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나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비행선을 보며 말했다.
"나도 타 볼 수 있지?"
"물론입니다."
"데우스님. 조금 위험하지 않습니까?"
걱정하는 볼튼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늘을 날 수 있는데 조금의 위험쯤이야 감수해도 괜찮지 않겠어?"
"그, 그렇다면 저도 데우스님과 함께 타겠습니다."
"엘레베이터도 못 타는 사람이?"
"엘레베이터랑은 다르지 않습니까? 자하님 저도 같이 타도 되는 것이죠?"
볼튼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자하는 완전히 내려선 비행선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저건 세 명이 타기에는 조금 좁지 않겠습니까?"
커다란 덩치의 볼튼 때문에 조금 불편하기는 했어도 나의 첫 비행선 체험은 성공적인 경험이었다.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는 비행기와는 다른 느낌에 신선함도 있었다.
'마법으로 띄우는 거라 그런지 흔들림도 적었다.'
오히려 비행기보다도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비행선이었다.
물론 비행기와 같은 높이까지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마탑보다 높은 위치까지 뜨는 것만 해도 이 세계에서는 충분했다.
조금 전까지 질린 표정이었던 볼튼은 땅이 주는 안정감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역시 저는 땅바닥을 딛고 있는 게 편하군요."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것도 기분이 좋지 않아?"
"높은 곳에서 보는 것은 해안가 호텔에서 봐도 충분합니다."
볼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자하에게 말했다.
"비행선은 앞으로 조금만 개선하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약속한 보너스는 은행에 말해 둘게."
보너스라는 말에 자하와 마법사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 정직하고도 순수한 미소에 나 역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비행선 체험을 마치고 자하의 연구실로 올라왔다.
마탑에서 확인해야 할 마법은 한 가지 더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영상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을 위해서는 지금의 텔레비전으로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가?"
"두 가지 영상을 동시에 보내면 서로 충돌해서 영상이 다 안 보이거나 겹쳐서 보이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지금의 마법으로는 어렵습니다."
"그럼 내가 말했던 채널 확장기-셋톱박스는 어때? 그건 만들 수 있어?"
내 물음에 자하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씨익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답을 찾았군."
"생각보다 단순했습니다. 그저 텔레비전이 받아들이는 마력을 차단하면 되더라고요."
"아-"
채널 확장기인 셋톱박스를 확장이 아닌 차단하는 기능으로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특정 마력만 거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마력을 차단하는 게 아니라 정해진 마력만 차단해야 하는 거라 마법이 어렵기도 하고요."
"그래도 방법은 찾은 거잖아? 그럼 금방 만들어 내겠네."
"그거야 뭐-"
자하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뭔가 지시만 하면 빠르게 결과물을 만드는 걸 보면 역시 과학보다 마법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과학만으로 이만큼 발전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적어도 이렇게 빠른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겨우 마차와 수레밖에 없던 시대에서 자동차와 기차, 그것을 넘어 비행선까지 만들어 내는 데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물론 내가 가진 현대 지식이 좋은 길잡이가 되었지만, 나는 겨우 개념만 제시했을 뿐이다.
자동차를 어떻게 만드는지,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구동되는 지는 세세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마법사들은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그럼 다음에는 뭘 만들어 달라고 하지?"
"아직도 만들어야 하는 게 더 있습니까?"
"기술의 발전은 끝이 없는 법 아니겠어?
그래! 로켓이나 인공 위성을 만들어 볼까?"
"로켓? 인공 위성? 그, 그건 또 뭡니까?"
자하는 내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기대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답게 새로운 지식과 개념에 반응하고 있었다.
'근데 신이 존재하는 세계에도 우주가 있는 걸까?'
아렌달로 들어온 기차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꽤나 고급스러운 의상과 점잖은 행태는 그들의 신분이 결코 낮지 않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아렌달에는 오랜만이군."
"저는 처음입니다. 그동안 말로만 들었던 아렌달을 이렇게 보니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군요."
"하하- 아렌달이 대단하기는 하지. 우리 브레튼이 많이 발전했다고는 해도 아직 아렌달과 비교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 말에 일행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바로 체스터 후작을 비롯한 브레튼의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기차역만큼은 우리 요크의 것도 부족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체스터의 기차역도 이것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하하-"
서로 가진 것을 자랑하는 대의원들에 일부 의원들도 자신들의 도시에 하루빨리 기차역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노엘 의원님. 다음에는 우리 도시에 기차역이 들어올 수 있도록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다 아렌달 건설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다음에는 노엘 의원님도 대의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크. 크흠- 그, 그거야…"
"잘 좀 부탁드립니다."
"동생에게 언질 정도는 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