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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29화 (129/169)

129화

아렌달에서는 연극과 공연 문화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상황이 달랐지만, 아직도 왕국에서 음유시인이나 배우라는 직업은 천민이나 다름없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니 아리엘을 연예인으로 만들겠다는 내 말에 샤를로트도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다.

아무리 연기와 연극을 좋아하는 샤를로트라도 신분이 가지고 있는 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아리엘의 외모는 정말로 위험할 정도였으니까.

‘소문이 만들어 내는 환상은 권력자들의 욕심을 불러일으키지.’

차라리 연예인으로서 대중들의 시선 속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리엘의 성격도 연예인으로서 어울리는 성격이었다.

장인을 닮아서 그런지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역시 즐겼다.

남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기보다는 보여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항상 새로운 선물을 받을 때마다 나에게 자랑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여 주었던가.

분명 아리엘은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연예인은 사람들에게 동경심을 심어 주는 존재잖아?’

귀족, 그것도 아렌달 가문이라는 고위 귀족 가문의 아이가 대중들 앞에 서면 얼마나 큰 동경을 받을 수 있을까?

심지어 귀부인들 사이에서 스타 중에 스타인 샤를로트의 아이이기도 하니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관심과 동경을 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차라리 지금부터 아리엘의 영상을 찍어 볼까? 사랑스러운 아이는 예능에서도 빠지지 않는 성공비결이잖아.’

아이와 동물, 미인은 방송계에서 성공 법칙 중 하나가 아닌가.

‘아리엘은 아이이면서 예쁘기까지 하니까 여기에 동물과 노는 영상을 만들면 실패할 수가 없다!’

아리엘의 영상 안에 아렌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담아 퍼트리면 다시 한번 아렌달에 대한 동경심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리엘 아가씨. 여기 좀 보실래요?”

달리아의 목소리에 아리엘이 고개를 돌렸다.

고급스러운 명품을 입고, 반짝이는 악세사리들을 착용한 아리엘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아리엘 아가씨. 이번에는 저기까지 걸어가 보시겠어요?”

아렌달의 바다를 배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아리엘의 모습은 마치 그림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아리아의 손이 아리엘의 모습을 빠르게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니 아리아도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아빠. 다음에는 이거요. 이것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아리스가 골라 주는 새 의상을 아리엘에게 입히고, 이번에는 해안가 별장들을 배경으로 아리엘의 모습을 담았다.

고급스러운 귀족들의 별장과 꼬마 아가씨의 모습은 누구라도 미소를 그리지 않을 수 없는 그림이었다.

“아리아를 통해서 아렌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줄 수 있는 것 같네.”

“근데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아리엘 아가씨의 모습을 보여 주면 아렌달에 적대적인 세력에게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리엘 아가씨의 얼굴을 알게 되었으니 아가씨를 노리고 위협을 가해 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볼튼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아리엘만 공개가 되지 않았을 뿐 아리아와 아리스는 학교에 다니면서 얼굴이 노출된 상태였다.

따지고 보면 아리엘보다 먼저 태어난 아이들이 더 후계자에 가깝기도 했고, 당장 노리기에도 훨씬 좋은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위협이 될 만한 상황은 없었다.

“그런 걱정을 했으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어.”

“그, 그렇군요.”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아렌달 가문의 사람들은 항상 몇 가지 마법 아이템들을 지니고 있었다.

아무런 보험도 없이 아이들을 내놓을 정도로 나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영상들은 텔레비전을 사는 사람들에게 패키지로 같이 끼워서 주면 되겠지? 그럼 처음 텔레비전을 시험하기 위해 가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렌달의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그런데 아리엘 아가씨를 이렇게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샤를로트님은 아무 반대도 하지 않으셨습니까?”

“샤를로트는 오히려 영상을 만들면 자기한테도 보여 달라고 하던데? 샤를로트도 은근히 아리엘의 자랑을 많이 하거든.”

“그, 그렇습니까?”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다.

장인은 샤를로트보다 더 아리엘의 자랑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아마 장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아리엘의 이야기를 한두 번씩은 들었을 것이다.

“아― 스톨 가문에도 하나 보내 줘야겠군. 아리엘의 영상이라고 하면 장인이 좋아하겠지.

어쩌면 영상 마법에 투자해 줄지도 모르겠어. 요즘 마탑에서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리오가 투덜댔는데 말이야. 좋은 돈줄이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역시 예상대로 아리엘의 영상은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 냈다.

아렌달의 아름다운 바다와 화려한 건물들을 보며 아렌달을 찾아오는 귀족들도 있었고, 아리엘이 걸치고 있던 명품을 보고 구매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 귀부인들도 있었다.

텔레비전을 판매할수록 명품의 매출이 점점 오르는 것을 보면 분명 아리엘이 모델로서 역할을 다 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렌달 가문을 향한 메세지도 끊이지 않았다.

샤를로트의 아이라는 것만으로도 귀부인들의 관심을 받던 아이가 외모까지 빼어나니 그 관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가문에는 아리엘을 향한 팬레터가 수백 통이 도착하고, 그중에는 아리엘을 자기네 가문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약혼서도 섞여 있었다.

“아직 글자도 다 읽지 못하는 아이에게 약혼을 제안하는 건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귀족 가문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약혼을 맺기도 하지 않습니까?”

“흠― 그래도 아렌달 가문은 안 돼. 우리 아이들은 결혼도 늦게 시킬 생각이라고.”

“설마 샤를로트님보다도 늦게 결혼시킬 생각은 아니시죠?”

“샤를로트가 왜? 누가 들으면 샤를로트가 엄청 늦게 결혼한 줄 알겠네.”

“귀족 가문의 영애가 스무 살에 결혼한 건 아주, 매우, 많이 늦게 결혼한 겁니다.

그리고 아렌달에는 후계자도….”

“그놈의 후계자 얘기는 여기서 왜 나오는 거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후계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저야 아렌달의 수석 행정관으로서 아렌달을 위해서, 걱정되어서 하는 말 아니겠습니까?”

“…….”

리오의 말에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했다.

“그보다 스톨에서 마탑에 투자를 해 주기로 했어.”

“오! 그렇습니까?”

“이번에 만든 아리엘의 영상이 장인의 마음에 들었나 봐. 스톨은 라디오 방송을 할 때부터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잖아. 스톨에서는 영상 마법이 가진 힘을 이용하고 싶은 것 같더라고.”

장인이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영상 마법의 발전을 바라고 있는 것이지만, 현재 스톨 가문의 주인인 라인언은 처음부터 미디어에 관심을 보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아직 아렌달로 탈주하기 전부터 자비로 통신망을 만들고 라디오를 듣던 곳이 스톨이었다.

“그런데 영상 마법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기록석만 다룰 줄 알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 않습니까? 녹화한 영상을 보는 것이야 텔레비전만 있으면 되는 것이고요.”

“스톨은 예상하고 있더라고.”

“무엇을요?”

“영상 마법의 다음 단계는 녹화가 아닌 실시간으로 방송이라는 걸 말이야. 그때가 되면 스톨에서도 방송을 이용할 수 있게 방송국의 지분을 나누어 달라더라고.”

“역시 라이언님이시군요.”

“스톨이 적이었으면 꽤 골치 아팠을 것 같지 않아?”

내 물음에 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분은 나눠 주시기로 하신 겁니까?”

“나중에 채널 하나 만들어 주기로 했어.”

“채널이요? 그게 뭡니까?”

리오의 물음에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말았다.

아리엘이 아렌달의 모델로 영상을 촬영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우리 아리엘이 벌써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구나.”

“네! 이것 보세요. 할아버지. 엄마가 학교에 간다고 사주셨어요!”

“그래. 예쁘구나. 아주 잘 어울린단다.”

“히힛―”

장인의 칭찬에 아리엘이 장인에게 매달리며 활짝 웃었다.

어느덧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장인이었지만, 여전히 기력은 좋은지 자신에게 매달리는 아리엘이 힘들지는 않은 듯했다.

‘젊었을 때부터 좋은 걸 많이 먹은 덕분인가?’

“아리아는 공부를 잠깐 쉰다고?”

“네. 어차피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고등학교에 가도 배울 수 없으니까요. 아빠가 정말 공부가 하고 싶을 때 가도 괜찮다고 하셔서 잠깐 쉴 생각이에요.”

“그렇구나.”

“아리스도 공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

“그래도 저는 공부를 할 거예요. 사업을 하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해서요.”

“사업?”

“네! 저는 나중에 명품을 만드는 사업을 할 거라서요.”

“호오― 명품을 만든다니.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아이들의 대답에 장인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스톨 가문의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놓지 말라고 자주 말한다고 들었는데….’

스톨이 아닌 아렌달 가문의 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아들이 아닌 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장인에게 아렌달의 손녀들은 그저 이쁨받는 아이들인 것 같았다.

“아버지. 그럼 저는 데우스님과 이야기를 따로 나누고 오겠습니다.”

“아이들을 부탁드립니다.”

“걱정 말게. 허허허―”

라이언과 나는 따로 마련된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드디어 실시간으로 영상을 송출할 수 있는 영상 마법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나 역시. 라디오 방송도 있어서 금방 새로운 마법 기술이 만들어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자하가 그러기를 영상을 송출하기 위해서는 라디오 방송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마나가 필요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지.”

내 말에 라이언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스팟 하나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마나가 필요했기에 다른 방법을 강구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이번에도 해결책을 찾아냈다.

바로 시추 마법을 통해 지하 깊숙이 박혀 있던 마나 스팟을 강제로 열어서 부족한 마나를 끌어낸 것이다.

덕분에 인공 마나석의 원재료를 캐내는 것과 함께 영상 마법의 진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아렌달 전역에는 동시에 영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륙의 다른 지역까지는 어려운 겁니까?”

“아직까지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내기에는 한계가 있지.”

라디오를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계기 역할을 할 마나 스팟이 필요했다.

아렌달 건설에서 공사하며 시추 작업을 할 계획은 있지만, 아렌달 건설이 공사하는 것도 상대가 요청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법.

마음대로 남의 왕국의 땅에 구멍을 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어차피 다른 왕국에는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얼마 없는 게 사실이지.’

아렌달이야 어느새 평민들도 하나둘 텔레비전을 구매하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왕국에서는 귀족들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물건이 텔레비전이었다.

지금 당장 왕국까지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낼 능력이 있어도 귀족들밖에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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