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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24화 (124/169)

124화

귀족 가문들에 이어 상단들까지 거래소에서 상단의 지분을 매매하기 시작하자 아렌달의 경제 구조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완전히 기업화가 되어 가는 귀족 가문과 상단들은 아렌달 경제에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달려들었다.

거기에 아렌달에 작은 영향력이라도 미치고자 외부의 세력들까지 거래소를 들락날락했다.

"비자금 도피처로 아렌달 거래소를 이용하는 왕국의 귀족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게 부정한 재산은 아니지?"

"어떠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도 귀족에게는 부정한 방법이 아니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

아무튼, 아렌달로 많은 돈이 모여들면서 하위 산업들도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체스터 가문에서 연극단을 만들었다며?"

"하아- 들으셨습니까?"

"샤를로트가 말해 주던데.

샤를로트의 작품 위주로 공연하는 극단을 만들었으니 언제라도 시간이 생긴다면 나와 함께 찾아와 달라고, 이야기를 남겼다고 말이야."

"그 극단 때문에 쓸데없는 돈이 얼마나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연기 연습을 위한 장소도 필요하고, 극에 필요한 소품들은 뭐가 그렇게 많은지… 그리고 의상이나 장신구 등도 최고의 물건이어야만 한다고 이블린이 얼마나 돈을 가져다가 쓰는지.

겨우 연극 따위에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는 몰랐습니다."

"체스터 가문에서는 리암이 자금 관리를 하는 건가? 아렌달 건설을 관리하기에도 바쁘지 않나?"

"아니요. 가문의 사업을 관리하는 가신들이 말해 줬습니다.

이블린이 끌어다가 쓰는 돈 때문에 맨체스터의 구단 운영비가 대폭 줄어들 것 같다고 말입니다."

"……"

남편은 스포츠, 부인은 연극.

각각 자신들의 취미에 돈을 때려 붙는 체스터 가문이었다.

"그보다 데우스님. 지난번에 말씀해 주셨던 그 기술은 언제 도입되는 겁니까?"

"시추 기술 말이야?

그건 마법사들이 개량을 조금 더 하면 그때…"

"아니요. 지금 철도 공사가 바빠서 시추 기술은 그다지 급하지 않습니다."

"그럼?"

"영상 기술인가 뭔가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사진보다 대단한 기술이라고, 지금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을 만들고 있다고요."

리암의 말에 지난번 영상 기술에 대해 말해 줬던 일이 떠올랐다.

토목 공사에 사진 기술을 도입한 이후 공사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영상 기술의 도입도 아렌달 건설에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과연 아렌달 건설의 관리자답군.

공사를 위해 신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다니.

리암에게 아렌달 건설을 맡기기를 잘한 것 같아."

내 칭찬에 리암은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건설에 필요해서 말한 것 아니었어?"

"다, 당연히 건설에도 필요해서 말씀드린 것이지요. 하하하-"

"건설이 아니면… 설마 축구 때문이야?"

"그, 그게… 직접 못 보는 경기는 영상으로 남겨 놓으면, 언제든 다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라디오 중계도 놓치지 않고 듣고 있다면서?"

"라디오 중계를 듣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 보면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라디오 중계도 모든 경기를 다 중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저희 팀의 경기를 결과만 들어야 하는 날도 많이 있어서요."

모든 경기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기는 했다.

특히 공사판에서는 모든 스포츠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팬심이라기보다는 그저 시간을 때우거나 도박을 위해서 보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직 영상 기술은 안 되는 겁니까?"

기대 어린 리암의 표정을 보니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마탑이야? 군이야?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기에 날 떠보는 거야?"

"떠보다니요?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 겁니다. 하하-"

내가 살짝 흘겨보자 리암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탑이나 아렌달 군은 아렌달 건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인 만큼 리암이 영상 기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조금만 기다려."

"조금이요?"

"그래. 지난 겨울에 영상 기술이 대폭 발전하기는 했지만, 아직 조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니까."

몬스터 군단을 관측하기 위해 처음 실전에 배치하면서 비행 마법과 영상 마법은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겨우 5분 남짓 녹화가 가능했던 것이 이제는 거의 20분 가까이 영상을 담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20분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지만, 아직 목표로 한 1시간에는 조금 모자랐기에 공개를 하지는 않았다.

사진과 다르게 종이에 기록을 저장하고 끝나는 물건이 아니었기에 출력을 위한 영사기를 만드는 기술도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암은 몰랐지만, 영상 기술이 확실히 실용화할 수 있게 되면 가장 먼저 투입하려고 했던 곳이 스포츠와 연극 등의 문화 산업이었다.

'스포츠와 연극 공연 등의 문화 산업을 이용하면 미디어를 더 쉽게 지배할 수 있겠지.'

그저 백성들을 우민화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빠르게 미디어를 전파 시키기 위해서는 쾌락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었다.

"조정이 많이 필요한 겁니까?

리그가 끝나기 전에 시범 도입이라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축구를 못 보면 죽는 병이라도 걸린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그럼 기다리라고. 언젠가는 라디오 중계를 넘어 영상 중계도 가능하게 만들 생각이니까."

영상 중계라는 말에 환한 미소를 짓는 리암이었다.

그런 리암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근데 브레튼의 철도 공사는 리암이 직접 관리하는 것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아렌달에 있는 거야?"

"…브레튼에 가는 건 내일입니다. 진작에 보고드렸지 않습니까?"

"그랬나?"

"네. 한동안은 어쩔 수 없이 브레튼의 수준 낮은 경기나 봐야 합니다."

리암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만약 영상 마법이 축구 경기를 녹화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이 된다면 브레튼에 바로 보내 줄게."

"진심이십니까?"

"그러니까 열심히 하라고. 체스터고 요크고 가문의 이름은 생각하지 말고, 아렌달이 얻어 낼 수 있는 건 전부 얻어 내."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체스터 출신이라고 해도 브레튼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렌달인으로서, 아렌달 건설의 관리자로서 브레튼을 탈탈 털어서 돌아오겠습니다."

아렌달의 상품은 대부분 동대륙의 시장에서 소비된다.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으로 중앙대륙에서도 아렌달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눈에 띌 만큼 효과를 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앙대륙보다 남대륙으로 가는 물건이 훨씬 많았다.

아렌달에 부족했던 마나석을 수급하기 위해서 처음 교역을 한 이후로 지금까지도 교역이 끊이지 않았기에, 아렌달의 상품들도 남대륙에 많이 전해졌다.

특히 아렌달에서 항로를 가지고 있는 타자트 왕국의 경우는 처음 교역 때부터 아렌달의 상품을 받아들이면서 문화적인 영향도 많이 받았다.

"타자트 왕국에서 제로스 왕자의 유학을 요청했습니다."

"왕자가 유학?"

"네. 제로스 왕자는 왕위 계승권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어렸을 때부터 아렌달을 동경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준 것 같습니다."

"제로스 왕자가 지금 몇 살이지?"

"15살입니다."

"겨우 15살인데 대학에 들어갈 수준까지 공부했다는 말인가?"

"아직 대학은 무리지 않겠습니까?

제로스 왕자는 고등학교부터 먼저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음- 그게 더 설득력이 있겠네."

확실히 15살이라면 아직 대학에 들어갈 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아렌달에서도 고등교육을 마친 뛰어난 인재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대학이었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아렌달에서 교육을 받아온 귀족 가문의 후계자들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나 준비를 하는지 나 역시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은 타자트 왕국에서도 충분히 받을 수 있을 텐데…

그저 공부를 위해서 보내는 것은 아니겠네."

"타자트 국왕은 아렌달이 떠오르고 있는 만큼 지금보다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제로스 왕자의 유학을 허락해 준 것 같습니다."

"좋은 관계라…"

귀족들 특히 왕족이 말하는 좋은 관계는 말 그대로의 좋은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타자트 왕국이 아리아를 노리는 건가?"

지금부터 몇 년간 아렌달에서 공부를 한다면 아리아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렌달에 머물 수 있다.

그동안 아리아와 어떠한 접점이라도 가지게 된다면 그들이 바라던 대로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리아를 노리는 사람이 타자트 왕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리아는 아렌달의 대공녀일 뿐만 아니라 베르겐 왕가에도 이름이 올라가 있는 왕족.

당연히 주변 왕국의 국왕이나 영주들에게는 가장 탐내는 신붓감이었고, 귀족 가문에서도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아렌달의 귀족 가문에서도 아리아가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식들을 모두 초등학교에 보낼 정도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아이였다.

더군다나 아렌달 가문에는 아들이 없지 않은가.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리아의 짝은 누구보다 후계자에 가까운 인물이겠지.'

"제로스 왕자의 유학 요청을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타자트 왕국에서 스스로 볼모를 보내겠다는데 거부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어."

"제로스 왕자의 유학을 받아들이면 다른 왕국에서도 똑같이 왕족을 아렌달에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 똑같이 받아 주면 되지."

"전부 다요?"

"유학생 좀 받아 주는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유학생이 아니라 왕족이지 않습니까?"

"왕족은 사람 아닌가?"

"허업!"

내 대답에 리오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렸다.

"왕족이라고 해 봐야 조금 더 이름 있는 귀족일 뿐이지.

그리고 잊었나 본데 나도 베르겐 왕가에 이름을 올린 왕족이야."

"아- 그, 그랬죠."

"이미 아렌달에서 공부를 했던 귀족들도 있는데 왕족이라고 받지 않겠다고 하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왕족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해 줄 생각은 없다.

아렌달을 방문하는 다른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왕족들도 죄를 지으면 똑같이 벌할 생각이다.

"자칫하다가 왕국과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자기네들이 볼모로 보낸 주제에 분쟁은 무슨…

만약 아렌달의 조건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냥 돌려보내면 그만이다.

나는 아쉬울 게 하나도 없으니까 말이야."

내 말에 리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로스 왕자의 유학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렌달을 동경하고 있었다고 하니까 아렌달 문화에도 잘 적응할 수 있으려나?"

왕족이 나서서 아렌달 문화를 광고해 준다면 그것보다 나은 게 없었다.

왕족마저 빠져드는 문화라니. 백성들에게 전해질 파급력은 계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왕국의 왕족이나 귀족들이 아렌달에 계속해서 유학을 와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왕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겠지. 거기에 아렌달에 유학을 갔다 온 것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미지를 만든다면…'

그 영향력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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