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22화 (122/169)

122화

"테이아 여신이요? 당연히 알죠."

"당연한 일이야?"

"하늘의 여신 테이아. 땅의 여신 가이아. 바다의 여신 테티스.

세상을 만든 창조신들인걸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 했지만, 미리아를 제외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신이 하나가 아니었구나."

"네. 마법사라면 당연히 알게 되는 존재들이에요."

"마법사라면 알게 된다고?"

"진리의 문을 들여다보면 알게 되는걸요.

물론 저는 이제 더 이상 진리의 문을 보지 못하지만, 그래도 여신들의 존재는 잊지 않고 있어요."

미리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

그들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진리의 문을 통해 여신들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라는 건가?'

어디 종교의 이야기처럼 계시를 받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았다.

포교활동을 하지 않을 뿐 마법사야말로 이세계의 종교인들이었다.

"그런데 왜 보통 사람들은 신들의 이름도 모르는 거야?"

"그거야 잊어버렸으니까요."

"잊어버려?"

"네. 아주 옛날에는 보통 사람들도 신들의 존재를 알았어요.

그런데 왕국들이 신들의 존재를 지우기 시작했죠."

'종교탄압이 있었던 건가?'

"그래서 점점 신들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없어진 거예요."

"마법사들은 왜 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은 거야?"

"굳이 알릴 필요가 있나요?"

"……"

미리아의 말대로였다. 굳이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알릴 필요는 없다.

어떠한 교리도 없이 신이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 종교적 위안이 될 리도 없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신의 존재를 좋아하지 않았고, 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마법사들은 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기에 점점 잊혀진 것이다.

"사람들이 신들의 존재를 모른다고 해서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잖아요."

마법사들에게는 말 그대로 '굳이'라는 것이다.

신의 존재를 알려 봐야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진리를 탐구하는 마법사들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마법사들에게는 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보다 진리에 다가가기 위한 연구 활동이 훨씬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종교인과 비슷하지만, 종교인은 아니라는 건가.'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 덕분에 중앙대륙의 정보들이 아렌달로 전해졌다.

"중앙대륙의 발전이 상당히 빠른데?

남대륙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야."

"그렇군요. 이 정도면 거의 아렌달을 제외한 동대륙 어느 국가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아스타나 왕국의 첫 번째 원정 때는 아스타나 왕국이 기술적으로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중앙대륙의 왕국들은 연합까지 하면서 아스타나 왕국의 침공을 막아 냈었다.

덕분에 아스타나 왕국은 원정으로 재미를 보지는 못했지만, 병사들의 피해는 별로 없는 상태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원정은 지난 원정과는 조금 달랐다.

"마법 무기의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것 같습니다."

"보고대로의 위력이라면 초기 A2모델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겠어."

"아직 아렌달처럼 다양한 무기는 존재하지 않지만, 마법 무기로 군대를 무장시킬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마법 무기로 무장한 전쟁이었기에 전쟁의 속도는 이전보다 훨씬 빨라졌고, 그 피해 역시 훨씬 커지는 모양이었다.

"중앙대륙에는 왕권이 강한 나라들이 제법 있다고 하던데.

힘이 중앙에 집중되는 만큼 기술 발전이 빨랐던 것일 수도 있겠네."

"아무래도 견제하는 세력이 적어지면 그만큼 일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까?

중앙대륙에는 지방 세력이 완전히 몰락해 버린 왕국들도 있다고 하니까요."

중앙대륙에는 동대륙의 왕국들과 달리 절대왕권을 가지고 있는 왕국들도 있었다.

기술 발전에는 봉건제보다 절대왕권을 가진 왕국이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기에 중앙대륙의 발전 속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전쟁이 얼마나 가려나?"

"죽은 선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니 생각보다 오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화병으로 죽은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전쟁을 한다니... 그게 이유가 되는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네."

내 말에 리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에 무심한 것은 아렌달뿐이었다.

베르겐 왕국이나 나르비크 왕국은 적극적으로 아스타나 왕국에 물자를 팔아 치우며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브레튼이나 북부의 왕국들도 꽤 많은 재미를 보고 있었다.

특히 각 왕국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마법 무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아스타나 왕국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아스타나 왕국에서도 부족한 무기를 수급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왕국들의 마법 무기를 받아들였기에 서로 윈-윈이 되는 그림이었다.

"이러다가 대륙 전쟁으로 번지는 것 아니야?"

"일단은 전면에 내세워진 것은 아스타나 왕국뿐이지 않습니까?

다른 왕국들이 개입되었다는 확증이 없는 이상 대륙 전쟁으로 번지지는 않을 겁니다."

"아무리 전쟁 특수가 좋다고는 해도 너무 개입하다가는 같이 휘말릴 텐데."

알려진 바로는 중앙대륙은 대륙의 크기만 해도 동대륙보다 두 배 이상 큰 대륙이었다.

대륙의 크기만큼이나 인구 역시 중앙대륙이 훨씬 더 많았다.

대륙 전쟁으로 번진다면 동대륙의 왕국들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륙 전쟁으로 번지기 전에 베르겐 왕국과 나르비크 왕국에 경고의 메세지를 보내야겠어."

"경고의 메세지요?"

"만약 대륙 전쟁으로 번지더라도 아렌달은 절대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이야.

그러면 두 왕국도 적당히 재미만 보고 물러나겠지."

아렌달이 전쟁에 무심하다는 것을 보여 주면 다른 왕국들도 이 이상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괜히 중앙대륙과 원한을 만들어 봐야 왕국에 좋을 것은 없을 테니까.

아렌달이 부상하기 전에는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앙대륙이 동대륙보다 앞서 있었던 만큼,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저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에 아렌달의 문화를 끼워 넣는 건 잘 되고 있나?"

* * *

아스타나 왕국을 출발한 배는 짧은 항해를 마치고 그람 왕국에 닻을 내렸다.

항구로 들어오는 배에 아스타나 왕국의 병사들은 기대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이번에는 뭘 실고 왔으려나?"

"지난번에 들어온 배는 온통 무기들만 실려 있어서 한숨만 나오던데."

"제발 이번에는 상인들의 배였으면 좋겠는데…"

"맞아. 특히 먹을 게 많이 실려 있는 배였으면 좋겠어."

전쟁물자가 실린 왕국의 배가 아닌 기호품이 잔뜩 실려 있는 상인들의 배이기를 기대하는 병사들은 배에서 내려지는 물자들을 보며 환호를 보냈다.

"상인들의 배다!"

"이번에 들어온 배에 아렌달산 물건들이 있다는 것 같은데?"

"그게 사실이야?"

"사람들의 말로는 초콜릿뿐만 아니라 뉴렌달브랜드의 상품들이 잔뜩 있었데."

초콜릿이라는 말에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지휘관들에게는 한 조각이라도 떨어지겠지?"

"귀족님들이 나누고 나면 그다음은 지휘관들 아니겠어?"

"빨리 가서 네로 대장의 장화라도 닦고 있어야겠군."

"왼쪽은 내가 닦을 테니 너는 오른쪽을 닦아."

아스타나 왕국에서는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만 즐기던 뉴렌달브랜드를 이곳에서는 일반 병사들도 누릴 수 있었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그 맛에 병사들 사이에서는 싸움도 빈번하게 일어날 정도였다.

초콜릿 한 조각이면 전투에서 후방으로 배치될 수도 있다고 하니 그 가치는 말할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당연히 그런 가치 있는 물건들에 그란 왕국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이기에 전투에서 빼 준다는 말이 나와?"

"한번 맛보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올 정도라는데?"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맛있다고?"

"소문에는 귀족님들 사이에서는 아스타나 왕국에 돈을 주고서라도 받아 오는 물건이라더군."

"전쟁 중에 적국에 돈을 준다고? 미친 거 아니야?"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지라 뉴렌달브렌드의 상품들은 그람 왕국의 병사들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구해야 하는 물건이 되었다.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것이 아렌달의 물건을 구하는 일이라는 게 우스갯소리로 들려올 만큼 아렌달의 이야기가 중앙대륙의 백성들에게도 전해지기 시작했다.

아렌달에서 유행하는 축구와 스포츠들은 베르겐 왕국을 거쳐서 다른 왕국들로도 전파가 되었다.

당연히 아스타나 왕국의 백성들도 축구와 스포츠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터에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아스타나의 병사들은 아렌달에서 시작된 축구와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오늘 경기에 타냐 백작님께서 포상으로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내려 주신다는 이야기 들었지?"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무조건 이겨야 한다.

질 것 같으면 상대도 못 먹게 담궈 버려."

귀족들이 주체해서 내기를 거는 통에 경기는 더욱 과열되기 일상이었다.

그만큼 전쟁의 밑바닥에서는 빠르게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다.

이러한 이야기는 아스타나 원정군에 주목하고 있는 그람 왕국군에도 당연히 전해졌다.

"아스타나 왕국의 병사들이 하는 저게 무엇인지 알아보셨습니까?"

"축구라는 이름의 경기더군요.

골대를 만들어서 그 안에 둥근 공을 차 넣는 단순한 운동이라고 합니다.

저들은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운동을 하더군요."

"그게 전쟁에 무슨 도움이 되길래 매일같이 하는 걸까요?"

"글쎄요… 저희 병사들에게도 한번 시켜 보면 그 효과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아렌달에서 시작된 스포츠들이 중앙대륙의 백성들에게 전파가 되는 순간이었다.

* * *

"울드 상단주가 동력선의 구매를 요청했다고? 그것도 세 척이나?"

"중앙대륙의 귀족들 사이에서 뉴렌달브랜드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알음알음 전해지던 상품이 이제는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라고 하더군요."

중앙대륙의 물건을 동대륙으로 가지고 오던 울드 상단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동대륙의 물건, 정확하게는 아렌달의 상품을 중앙대륙으로 파는 게 주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동력선을 한 번에 세 척이나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였는 줄은 몰랐네."

"울드 상단은 동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입니다.

그리고 거의 독점적으로 아렌달의 상품을 중앙대륙에 파는 상단인걸요.

지금까지 쌓은 재산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좋아. 울드 상단이라면 동력선을 넘겨줘도 괜찮겠지."

자동차와 달리 동력선은 단 한 번도 다른 세력에게 넘겨준 적이 없었던 물건이었다.

하지만 울드상단은 군사적으로 쓰일 일도 없었고, 아렌달의 문화를 중앙대륙으로 많이 전파해 주는 상단인 만큼 첫 고객으로 적당한 상대였다.

더군다나 뉴렌달브랜드의 주력상품인 초콜릿과 커피의 수입을 울드 상단이 맡고 있는 만큼, 울드 상단의 운송능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렌달에도 이득인 부분이었다.

"다른 상단에서도 동력선의 구매를 희망한다면 요청하라고 해.

물론 동력선을 다른 왕국에 넘기면 어떻게 될지는 알아서 하라고 경고는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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