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현대인-119화 (119/169)

119화

몬스터나 바깥의 일은 백성들이 잘 알기 어려운 정보였다.

군에 관련된 정보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서 공개되지 않는 부분이었고, 백성들이 공포심을 느끼게 되는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도 굳이 공개할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모든 백성이 그러한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의 가족이나 친분이 있는 사람들은 알음알음 바깥이나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입을 통해 몬스터가 얼마나 나타났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뉴렌달이나 다른 도시에 소문처럼 번져 가는 일도 있었다.

"내 친구 아들이 얼마 전에 아렌달 군에 들어갔는데, 올해 몬스터가 엄청나게 내려오고 있다고 하더라고."

"몬스터가? 몬스터가 내려와 봐야 얼마나 내려온다고?"

"수천에서 수만 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구스강 인근을 기웃거린다고…"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게.

몬스터가 얼마라고? 수천에서 수만?

그 정도로 몬스터가 나타났다면 당장 짐 싸서 도망쳐야지.

아니 남대륙으로 가는 배를 얻어 타서 피난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라니! 그 친구가 거짓말을 할 친구는 아니야.

물론 조금 과장이 섞이기는 했겠지만, 내가 알아본 바로도 몬스터가 자주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인 것 같더라고."

"그, 그래? 그럼 몬스터를 피해 도망쳐야 하는 건가?"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내가 여기서 자네랑 떠들고 있었겠나?

몬스터가 많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백성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왜?"

"몬스터가 구스강은 넘어오지 못 하도록 아렌달 군이 전력을 다해서 방어를 하고 있다고 하니까.

듣기로는 데우스님께서 직접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게 해 주셨다더라고.

마탑의 마법사님들도 힘을 보태고 있고 말이야."

"그게 사실이야?

역시 데우스님이야! 데우스님께서 계시는 한 아렌달보다 안전한 곳은 없을 거야."

그렇게 알음알음 이야기들이 전파되면서 백성들의 행복도는 매우 높아졌다.

홍수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던 백성들마저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 주고 있었으니, 아렌달의 백성들 중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 아렌달의 백성들은 데우스님께서 전쟁에 임하신다고 하면 맨손으로도 전쟁터로 뛰어들 기세입니다."

"내가 전쟁을 왜 해?

그리고 전쟁에 나갈 거면 최소한 호미는 쥐어 줘야지, 맨손으로 전쟁터에 나가라는 건 너무한 것 아니야?"

"말이 그렇다는 거죠."

리오의 말에 어깨를 으쓱한 나는 정례보고서를 내려놓고 말했다.

"나르비크에서는 언제까지 시간을 달라고 하는 거야?

브레튼의 의원들은 다음 기차역은 자신의 도시에 만들자고 안달 나 있는데 말이야."

"나르비크도 아렌달과 마찬가지로 수해 복구 작업으로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친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수해 복구를 하고 있는 거지?"

브레튼과 마찬가지로 아렌달이 철도부설권을 가지고 있는 나르비크 왕국은 철도를 깔려고만 하면 시간을 달라며 도망치고 있었다.

물론 철도 건설에 어마어마한 자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르비크 왕국에서는 부담스러워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렌달도 처음으로 겪는 적자 상황이었기에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고, 나르비크 왕국의 철도 공사보다 좋은 건수는 없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무조건 공사를 시작한다고 나르비크 국왕에게 전해.

아서 대공의 이름을 팔아서 공사를 시작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알겠습니다."

나르비크 왕국을 계속 쪼이다 보면 어떻게 해서든 왕국에서도 어떤 답이 나올 것이다.

왕국의 숨겨 둔 비밀금고를 열 수도 있고, 영주들을 압박해서 영주들에게 분담금을 내놓으라고 하던지 말이다.

"베르겐 왕국의 철도부설권도 우리가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가지고 오려면 얼마든지 가지고 올 수 있었지 않습니까?

데우스님께서 보리스 국왕을 안타까워하셔서 가만히 놔둔 거죠."

만약 베르겐 왕국의 철도부설권이나 다른 큰 사업권을 빼앗아 왔다면 보리스의 왕권은 더욱 약해졌을 것이다.

지금보다 왕권이 더 약해졌다면 영주들이 나서서 보리스를 왕위에서 끌어내렸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허수아비 왕으로 살아갔거나.'

그래도 보리스가 그동안 나에게 보여 준 호의와 아렌달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선왕의 인연이 있었기에 베르겐 왕국에는 더 이상 손을 쓰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베르겐 왕국에 영향을 주지 않아도 이미 아렌달의 상품을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곳이 베르겐 왕국이었다.

베르겐 왕국은 흔들어 봐야 아렌달에도 별로 이득이 되는 게 없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일이 많았다.

"베르겐은 그냥 놔두는 게 좋겠지?"

"베르겐 왕국은 아렌달의 상품을 계속 수입하도록 그냥 두시는 게 최선입니다."

아렌달이 한창 급격하게 불어난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겨울.

추수가 끝난 시점이니 식량 자원의 가격이 다시 안정을 찾아야 했지만, 올라간 가격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동대륙에서 가장 커다란 영토와 생산량을 가지고 있는 아스타나 왕국이 식량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더 큰 이득을 얻고자 식량을 묶어 두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왕국들은 아스타나 왕국의 행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고질병이 도진 건가?"

"아스타나의 국왕은 전쟁하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것 아닐까요?"

"그럴지도 몰라."

선왕이 전쟁으로 인한 화병으로 죽었다는 걸 잊어버린 건지, 빅터 국왕은 또다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스타나 왕국에서 동력선과 마법 무기만 지원해 준다면 전쟁 소득에 대한 지분을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또 대륙 원정이야? 중앙대륙에서 손해만 보고 돌아온 게 몇 년이나 되었다고…"

"동대륙의 왕국들보다는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중앙대륙의 왕국들도 아스타나 왕국과의 전쟁 이후 마법 무기 개발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아스타나 왕국의 원정 실패 이후, 중앙대륙의 왕국 간의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소모된 자원과 물자들이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중앙대륙에서 자원과 물자 소모가 컸다면 기회라고 생각하고 물건을 팔 생각을 해야지.

전쟁으로 있는 것까지 다 빼앗으려고 하는 건 무슨 심보야."

평화주의자인 내 관점에서는 절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그런 내게 리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법 무기와 동력선은 아니더라도 아스타나 왕국에 물자를 팔 수는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먹을 식량이 없는데 무슨 물자를 팔아?

철이나 광산 자원이라도 팔라고?"

"아니요. 광산 자원은 저희 산업에 쓰기에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무기도 식량도 자원도 아니라면 뭘 팔 수 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답을 찾지 못하는 내 모습에 리오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스타나 왕국에 쓰레기를 팔아 버리죠."

아스타나 왕국에서는 아렌달의 쓰레기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 주었다.

갑작스럽게 엄청나게 생겼지만, 아렌달에서는 하등 쓸모가 없는 쓰레기.

몬스터 부산물.

아렌달에서야 군이 바깥을 관리하기 때문에 몬스터를 사냥하는 용병이 없지만, 사냥 용병들이 돈을 버는 수단이 바로 몬스터 부산물이었다.

"옛날에는 몬스터의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고, 뼈나 이빨로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전쟁 특수로 재미를 보는 것이지만, 쓰레기를 공짜로 처리하는 것으로 모자라 돈까지 벌 수 있다니. 리오의 행정력에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일부 대형 몬스터들의 두개골은 따로 빼 두었습니다."

"장식품으로 팔려고?"

"귀족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가 좋습니다."

덴프린스 같은 놈들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

아스타나 왕국에 몬스터 부산물을 팔아 치운 덕분에 아렌달의 경제 상황은 한순간에 흑자 상태로 돌아섰다.

"역시 군수 물자를 파는 게 돈이 많이 되기는 하네."

"마법 무기를 팔았다면 몬스터 부산물과 비교도 안 됐을 겁니다."

그랬다면 아마 아렌달은 이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아렌달이 가장 부유한 나라인가?

'1인당 GDP를 따지면 아렌달은 얼마나 나오려나?'

새로운 봄이 오면서 아렌달에도 새로운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해를 겪으면서 힘든 겨울을 보낸 백성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소비를 줄이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예전부터 돈을 모으던 백성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아렌달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어든 적은 거의 없었기에 아렌달의 경제 상황은 조금 침체되어 가는 분위기였다.

"백성들에게 간 돈이 어디에 있을까?"

"다들 집안에 꽁꽁 꿍쳐 놓고 있을 겁니다.

언제 또 재난이 있을지 모르니 돈이라도 모아 놓으려는 생각이겠죠."

"리오도 그래?"

내 물음에 리오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데우스님께만 말씀드리지만, 저도 얼마 전에 금고를 하나 샀습니다."

"……이제 리오도 귀족이 다 되었네."

"크흠- 아렌달에서 임금을 제일 많이 받고 있는 평민이 바로 저 아니겠습니다.

귀족님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저도 제법 모아 놨습니다."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오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렌달 가문에는 금고가 없는데."

"정말입니까?"

"아렌달 상단과 관청, 마탑에 나눠서 밀어 넣고 있으니까."

"……"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수백만 셀링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금고가 필요 없으시군요."

"뭐- 그런 거지."

그래도 금고 이야기가 나오니까 갖고 싶은 마음은 들었다.

아렌달의 영주일 때도 금고는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귀족들은 다들 금고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지?"

"적어도 영주 가문은 가지고 있겠죠."

"그럼 나도 금고 하나 만들어 볼까?"

"필요하십니까?"

"필요는 없지만, 귀족으로서 금고 하나쯤은 괜찮잖아."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왕이면 커다란 걸로. 아렌달의 자금이 다 들어가도 문제가 없는 금고를 만들어야겠어."

"……그건 이미 금고가 아니지 않습니까?"

리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이미 금고가 아니었으니까.

광장 한쪽에 5층짜리 건물을 비워 새로운 간판을 달았다.

뱅크 오브 아렌달.

아렌달 가문의 금고를 병행하는 아렌달 최초의 은행이었다.

도둑이 들지 못하도록 몇 겹으로 된 보호 마법이 걸려 있었고, 아렌달 경비대가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근데 저기에 내 돈을 맡겨도 괜찮을까?"

"아렌달 가문의 금고가 저 건물 안에 있다고 하잖아?

저기에 맡기면 아무도 훔쳐 가지 못 할 거야."

은행의 보안에 걱정하는 백성들이나,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붙여서 돌려준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거기에 은행에 예금하는 백성에게는 신용이라는 걸 준다고 하던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렌달에서 인정해 주는 거라면 좋은 거겠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이야기하는 백성들,

"음- 은행에서는 신용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마을에 새로운 공장을 만들어 볼까 하는데…

우리 가문에서도 돈을 빌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운송을 위해서는 상단에 자동차가 몇 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은행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귀족들이나 상단들도 많았다.

단 며칠 만에 수백만 셀링이 모일 정도로 은행은 대단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아렌달의 백성들이 이렇게 돈을 모아 놓았을 줄은 몰랐습니다."

"백성들이 돈을 꿍쳐 놓는다면 그걸 꺼내야 하는 게 정부가 할 일 아니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