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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15화 (115/169)

115화

명품관의 상품들은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샤를로트가 모델로 새로운 브랜드를 소개했으니 아렌달을 넘어 왕국들에도 이야기가 퍼져 나가는 것은 당연했다.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낭비에 가까운 소비로 보였지만, 귀부인들은 주머니를 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제야 명품관이 명품관다워졌네. 역시 백화점이 성공하려면 명품관이 잘 돌아가야 해."

"이번에 멤버쉽에 가입하는 고객들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의상과 가방 같은 거에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들이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서 그런 거겠지.

귀족들의 소비는 거의 그래 왔으니까. 명품을 두르면서 자신이 진짜 귀족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것 아닐까?"

"데우스님과 샤를로트님도 그렇습니까?"

"이번에 명품관에 들어간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전부 샤를로트의 의상과 악세사리를 만들던 사람들인 거 몰라?"

따지고 보면 샤를로트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명품들을 둘둘 두르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샤를로트 때문에 브랜드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샤를로트가 입고,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귀부인들에게는 필수로 가져야 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신작 연재로 인해 명성이 올라 있는 덕분에 브랜드의 광고 효과도 엄청나게 좋은 상태였다.

"명품관이 이렇게 잘되는 걸 보면 계속해서 상품을 만들어야겠네요.

새로운 브랜드도 하나둘 늘려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아니지."

"지금처럼 잘 팔릴 때 많이 팔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비싼 값을 받으며 팔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비쌀 때 팔아야 하는 건 맞지만, 언제 팔아도 비싼 게 명품이다.

"아니. 더 적게, 때에 따라서는 한정판으로 팔아야 명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법이지.

앞으로 명품 브랜드는 퀄리티를 최우선으로 최소한의 수량만 팔 거야."

"진심이십니까?"

"명품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진짜 명품이지.

명품이 너무 흔하면 그건 명품이 아니다."

그 말에 리오는 나를 지긋이 보면서 말했다.

"상단주들이나 할 법한 말을 하시는군요. 장사에 도가 튼 사람 같습니다."

"장사에 도가 튼 건 아니지만, 상단주는 맞잖아?"

"아- 아렌달 상단이 있었군요."

"내가 동대륙 최고 상단의 실제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아렌달의 백성들은 다른 왕국들의 백성들과는 조금 다르다.

의무적으로 모든 백성이 기초 교육을 받고, 그 이상의 고등 교육을 받은 백성들도 적지 않다.

처음 기초 교육을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평민이라고 해도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생각할 줄 알고, 일하는 만큼 재산을 쌓기도 했다.

이제는 불합리함을 말하고, 불만을 이야기할 정도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백성들이었다.

당연히 귀족들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겠지만, 나는 언젠가 이런 백성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귀족들의 불만이 상당합니다.

귀족보다 평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으니 귀족들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요.

아무리 아렌달에서 귀족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귀족이라는 신분마저 무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분의 벽이 있으니까 귀족들의 불만도 당연한 거지."

"그렇습니다. 데우스님.

데우스님도 귀족이신데 어떻게 귀족보다 평민들의 이권만 챙겨주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귀족들이지?"

"그렇습니다만, 아렌달의 귀족님들도 그리 좋게 바라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아렌달의 귀족들은 적극적으로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렌달의 귀족들은 대부분 뉴렌달 브랜드를 생산하며 많은 부를 쌓은 귀족들이었기에, 왕국의 귀족들보다 훨씬 부유했고, 나와 아렌달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이다.

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내게 불만을 나타내기에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벌어들이는 소득을 놓치고 싶은 마음도 없겠지.

웬만한 왕국의 대귀족들보다도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니까 말이야.'

아렌달의 귀족들을 선동하는 귀족들도 많았지만, 아렌달의 귀족들이 조용히만 있어 준다면 외부에서 들어온 귀족들의 목소리는 무시해도 괜찮았다.

'문제는 평민들이 귀족들을 쉽게 보면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지.'

지금까지 아렌달 교도소에 들어갔던 귀족들이 얼마나 많던가?

대부분이 귀족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워 평민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 귀족들이었다.

"그동안 평민들에게 너무 많은 권리를 주신 것 아닙니까?

평민에게는 평민으로서의 역할이 있는 것 아닙니까?

평민들이 주제도 모르고 귀족들에게 도전할까 걱정입니다."

"리오는 그런 걱정도 하는 거야?"

"자칫하다가 지금까지 데우스님께서 평민들에게 내어 주셨던 권리마저 다 사라질까 걱정이 됩니다."

리오는 실제로 걱정이 되는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데우스님께서 저를 중용해 주셨기에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아마 저야말로 대륙에서 가장 성공한 평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베일리 백작처럼 정말 특수한 인물이 아니라면 평민이 귀족이 되는 일은 없다.

리오처럼 귀족들과도 동등한 위치에서 협의할 수 있는 평민은 거의 없었다.

아니 귀족들도 아렌달의 수석행정관인 리오를 쉽게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의 권력을 가졌음에도 귀족들에게 대항할 생각은 전혀 없구나.'

이세계는 철저한 신분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일단은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다면 특별히 관리하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래도 귀족에게 도전하려는 평민은 위험분자로 구분해야겠지.

아직까지는 귀족과 평민을 같은 선상에 두고 볼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가만히 놔두더라도 다른 귀족들은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평민을 그냥 놔두지 않을 것이다.

결국, 사달이 났다.

한 귀족 마을에서 평민들이 임금을 올려 달라고 귀족에게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을의 주인인 팔라스 가문은 평민들의 요구를 거부했고, 임금을 올려 줄 때까지 일하지 않겠다는 평민들의 목소리에 마을 사람들을 잡아다가 폭행했다.

"감히 평민 주제에 어떻게 귀족에게 시위할 수 있습니까?"

"팔라스 마을에서는 임금을 얼마나 주지?"

"데우스님의 지시를 따라 생활에 어려움은 없도록 주었습니다."

팔라스 가문의 이야기대로 마을에서 생활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임금이었다.

다만 정말 열심히 일해야만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만큼의 금액이었다.

팔라스 가문의 주장에 폭행당한 평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저희는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팔라스 가문에서 조금만 더 마을 사람들을 챙겨 주기를 바랐을 뿐입니다.

마을의 주인으로서 마을을 위해 일하는 백성들을 챙겨 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도 아니지 않습니까?"

백성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몸이 아파 하루라도 일을 쉬게 되면 생활이 어려워지곤 했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이나 일하기 힘든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임금을 올려 달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 주장에 팔라스 가문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마을에서 도시와 같은 임금을 달라고 할 수 있지?"

"도시의 백성들과 저희가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이 다르지 않은데 도시의 임금과 마을의 임금이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데우스님. 임금을 많이 주게 되면 그만큼 일을 열심히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까도 들으셨지 않습니까? 숨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 말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일하지 않고 쉬고 싶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까!

데우스님.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몸이 아파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 말입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귀족 가문에서 백성들의 생활을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영주가 영지민들의 삶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지 않았던가?

분명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자는 것까지 영지민들의 생활은 전부 영주의 관리 아래 있었다.

그렇게 반박하는 평민들의 목소리에 팔라스 가문에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데우스님. 감히 평민이 귀족에게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게 가능했겠습니까?"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노예가 되거나 즉결 처분이었겠지."

팔라스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평민들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잊고 있던 귀족의 공포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떨리는 눈동자를 주체하지 못한 한 평민이 나와 팔라스의 눈치를 보며 땅바닥에 머리를 숙였다.

"감히 평민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귀족님들께 헛소리를 지껄였습니다."

땅바닥에 머리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처음 이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 모습이 당연한 행동이었다.

다른 평민들도 그 공포가 전염되었는지 하나둘 머리를 땅에 숙이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팔라스에서는 다시 저런 모습을 보고 싶은 건가?

왕국의 영주들처럼 백성들을 지배하고 싶은 건가?"

내 물음에 팔라스는 나에게 되물었다.

"그렇게 해 주실 겁니까?"

내 침묵에 백성들의 떨림이 더 커졌다.

내가 팔라스에게 그런 권한을 주는 순간 그들의 목숨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아는 것이다.

"데우스님께서 그러지 않으실 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맞아. 잘 알고 있네."

내 대답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백성들에게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그 한숨 소리에 팔라스는 내게 말했다.

"팔라스 가문 역시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어째서?"

"지금이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영주로서 백성들의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임금을 주고 백성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 마을을 운영하는데 훨씬 편합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효율적인 면에서도 훨씬 이득이고요."

과거처럼 백성들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결코 귀족들의 생활이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팔라스의 말처럼 백성들의 삶을 책임져야 하는 귀찮음이 줄어들어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귀족 가문들도 분명 있었다.

나는 그런 팔라스를 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팔라스는 과거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없나 보네."

"그렇습니다."

팔라스의 대답에 머리를 숙이고 있던 평민들이 고개를 들었다.

당연히 권력으로서 자신들을 찍어 누를 것이라 생각했는지, 그들의 눈빛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내 성향을 알고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거겠지. 아렌달에서 자리를 잡기로 했으면 저게 정답이지.'

"그럼 마을 사람들을 폭행한 책임은 져야겠지?"

내 말에 팔라스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평민들은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행에 책임을 지라는 내 말에도 팔라스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팔라스는 한동안 조용히 있겠군.'

평민들의 마음속에 귀족에 대한 공포를 상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팔라스는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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