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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14화 (114/169)

114화

아렌달을 찾아온 귀족들은 내 기대 이상으로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백화점은 물론이거니와 극장이나 미술관 등의 문화시설과 골프장과 해수욕장 같이 레져시설에서도 돈을 쓰는 데 아낌이 없었다.

그중 가장 많은 소득을 올린 곳은 해안가 호텔이었다.

원래부터 대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평민들이나 가난한 귀족들은 하루를 머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해안가 호텔이었다.

제법 생활에 여유가 있는 리암도 해안가 호텔의 가격은 부담스러워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호텔이 오랜만에 만실이 되었으니 숙박비만 해도 엄청나게 벌어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숙박비 이상으로 많은 돈이 호텔에 쏟아졌다.

"돌려!!!"

"이번에야 말로… 가즈아!!!"

돈 좀 있는 귀족들이 휠 안에서 구르는 작은 공 하나에 미쳐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호텔 지하에 만들어져 있는 카지노가 본격적으로 가동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몇 게임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귀족들을 미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도련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는 게…"

"지금 나보고 도망치라는 말이야? 이번 한 번만 따면…"

"벌써 5천 셀링이나 잃으셨습니다.

만약 백작님께서 이 사실을 아시게 되면 아무리 도련님이시라도 화를 면치 못할 겁니다."

"지금까지 얼마를 잃었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지금부터 다시 따면 돼!"

"도, 도련님!"

"어이! 다시 굴려! 이번에야말로 딴다. 돌려!!!"

다행히 시험 운영 중이라 많은 금액은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을 두고 있었지만, 귀족들의 주머니를 털기에는 무리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볼튼이 호텔 관리자들에게 말했다.

"돈을 많이 잃은 귀족들을 주의해서 지켜보도록.

특히 젊은 귀족들은 화를 못 이겨 사고 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만약 경비병들로도 감당이 안 된다면 언제라도 나를 부르게."

"예. 주인님."

관리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볼튼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는 완전히 경영자가 되었네.

나중에는 상단을 차려도 되겠는데?"

내 농담에 볼튼이 고개를 저었다.

"데우스님께서 이 호텔을 제게 넘겨주신 게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10년이나 되었으면 이 정도 지시는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써 그렇게 되었나?"

"네.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다."

볼튼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려 도시를 바라봤다.

해안가에는 볼튼의 호텔 말고도 귀족들의 별장이 줄을 서서 지어져 있었다.

뉴렌달에 별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귀족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었다.

별장의 주인들은 아렌달을 찾아온 귀족들을 별장으로 초대해 친분을 쌓았다.

"뉴렌달에 별장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부럽습니다."

"아렌달에 빠르게 투자했던 보상이지요.

그때 투자한 귀족들 중에 이만한 별장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스톨 가문의 별장이 정말 괜찮다고 하던데..."

"스톨의 별장이야 말해 무엇합니까?

그곳은 해안가 호텔보다 오션뷰가 좋은 곳 아닙니까?"

"스톨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이번에 스톨에서 주최하는 골프 대회에 다들 참가하십니까?"

"그냥 대회가 아니라 투어 아닙니까?

스톨이라면 상금이 가장 크게 걸린 메이져 대회인데 빠지는 것은 말도 안 되죠."

이렇게 귀족들은 별장이나 호텔에 모여서 친목을 나누고 파티를 즐기며 뉴렌달의 재정에 도움을 주었다.

뉴렌달의 백성들도 귀족들의 소비에 낙수 효과를 받으며 주머니가 든든해져 가고 있었다.

"가끔씩 시비가 붙기는 해도 사고 치는 귀족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확실히 귀족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귀족들도 조심하는 것 같습니다."

"귀족들이 많이 들어와 있는 만큼, 귀족들끼리 친목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잖아?

이번에 열린 투어에 참가한 귀족들 숫자만 해도 역대급이었다고."

"제가 듣기로는 다음 대회인 스톨 대회에서도 참가하는 귀족들이 엄청날 거라고 하더군요."

"우리 장인은 골프에 진심이니까. 스톨 대회가 아렌달 대회보다 상금이 쎈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스톨 대회의 총상금이 5만 셀링이나 된다고 하던데…"

베르겐 왕국시절 바깥을 개발하겠다고 빌리려고 했던 돈이 5만 셀링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저에게는 그 기회조차 없다는 게 아쉽네요."

장인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리오도 골프에 제법 진심이었기 때문에 정말 아쉬워 보였다.

하지만 투어는 귀족들만 참가가 가능한 귀족들의 대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평민들도 참가할 수 있는 날이 있겠지."

"그런 날이 올까요?"

리오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샤를로트의 신작이 신문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한 달.

한 달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자 아렌달을 찾아왔던 귀족들 중 대부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샤를로트에게 진심인 귀부인들은 여전히 아렌달에 머물렀지만, 고향에서 할 일이 많은 남편들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머니가 텅텅 비어 버린 귀족들도 아렌달의 높은 물가에 부담을 느끼며 아렌달을 떠났다.

"이런 걸 보면 아렌달의 귀족들은 참 여유가 넘쳐."

"아렌달에서 생활하는 귀족들이 왕국에 갈 때마다 돈을 너무 펑펑 써서 왕국의 백성들은 아렌달의 귀족들이 와 주기만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도대체 얼마나 펑펑 쓰길래 그런 이야기까지 나와?"

리오의 말에 동남아에 가면 돈 쓰는 맛이 난다고 했던 선임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물가가 비싼 아렌달보다는 다른 왕국에서 돈을 쓰는 게 부담이 덜하기는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귀족들의 소비가 줄어든 건가?"

"가장 큰 영향은 청탁금지법 때문이겠지만, 그 영향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아렌달의 높은 물가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다.

식량자급률도 충분했기에 급작스러운 인플레이션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다 보니 다른 왕국과의 차이가 눈에 띌 만큼 벌어진 것이다.

물론 아렌달의 백성들은 그만큼 높은 임금도 받고 있기에 생활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귀족들이 베르겐 왕국이나 나르비크 왕국에서 쓰고 돌아오는 돈이 아쉬운 것이다.

"근데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평민들과 다르게 귀족들의 이동은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왕국에서 쓰는 돈 이상으로 아렌달에서도 쓰고 있고요."

"그렇긴 하지."

"만약 아렌달의 귀족들에게 왕국에서 돈을 쓰지 말라는 지시를 내린다면, 다른 왕국들에서도 똑같은 조치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아렌달의 귀족들이 왕국에서 돈을 쓰는 것 보다 왕국의 귀족들이 아렌달에서 쓰는 돈이 훨씬 많다는 것도 생각하셔야죠."

"그것도 그렇네."

사실 아렌달의 귀족이라고 해 봐야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바깥의 영토를 분양받은 초창기 이주 귀족들과 브레튼이 독립하는 과정에서 아렌달로 탈주한 귀족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귀족들의 소비를 늘리게 하고 싶으면 백화점 명품관의 물건들을 늘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음-"

"명품관을 이용하는 것은 거의 귀족님들 아닙니까?

극소수의 부유한 상인들을 제외하면 귀족님들 말고는 관심도 못 가지는 곳이 명품관이지 않습니까?"

리오의 말에 생각해보니 귀족들의 주머니를 열기 위해 만든 명품관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명품관의 물품들이라고는 대부분 뉴렌달 브랜드의 고급 상품들 뿐이었기 때문에 귀족들에게는 익숙한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자동차나 냉장고, 에어컨 등의 마법 아이템들은 한번 사면 큰 이상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교체할 필요가 없는 상품들이었으니, 처음 명품관을 이용했던 귀족들은 다시 찾는 일이 적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명품관을 만들어 놓고 정말 이상하게 사용하고 있었네."

정말로 고품질의 아이템을 팔고 있었으니, 제구실을 못 하는 것도 당연했다.

명품이라고 진열해 놓은 것들이 왕국의 장인들에게 가지고 온 무구들이나 아렌달에서 만든 마법 아이템들이었으니 말이다.

'백화점의 명품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말이야.'

생각해 보면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정말 좋은 물건을 사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남들에게 보여 주는 과시의 의미를 가진 명품이 더 중요했다.

가방이야 물건만 잘 넣으면 되는 상품인데, 굳이 고가의 명품 브랜드 가방을 들고 다니는 이유가 뭐겠는가?

'장인들의 무구나 마법 아이템같이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보다는 들고 다니면서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상품이 명품관에는 더 어울리는 상품이지.'

그런 면에서 뉴렌달 브랜드는 명품관에 어울리는 상품은 아니었다.

뉴렌달 브랜드의 상품들은 전부 실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었느니 말이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볼까?"

"새로운 브랜드요?"

"명품관에 어울릴 만한 브랜드 말이야."

뉴렌달 브랜드는 이미 실생활 아이템으로 명성을 쌓은 브랜드였다.

높은 품질의 상품은 맞았지만, 남들에게 과시하기 좋은 상품들은 아닌 것이다.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상품. 그런 것을 명품관에서 팔아야 했다.

"저, 정말 제가 만든 의상을 백화점에서 팔아도 되는 건가요?"

리지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백화점에서 그냥 파는 게 아니야. 명품관에서 파는 것이다."

"며, 명품이라니… 제가 장인도 아닌데 어떻게…"

"리지의 실력이라면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리고 샤를로트나 아이들도 리지가 만들어 주는 의상을 좋아한다고.

아렌달 가문의 전속 디자이너로서 장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것도 우습지 않겠어?"

내 말에 리지는 황송하다는 얼굴로 연신 허리를 숙였다.

"부족한 실력임에도 이렇게 옷을 만들 수 있는 건 데우스님과 샤를로트님의 은혜 덕분이에요."

"그럼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명품관에 어울릴 의상들을 만들어 줘."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리지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그녀의 눈빛은 똑바로 빛나고 있었다.

장인의 눈빛이었다.

백화점 명품관에 귀부인들이 모였다.

드디어 아렌달의 새로운 브랜드가 공개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던 귀부인들은 명품관에서 나오는 샤를로트의 모습에 눈을 번쩍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리지의 의상을 브랜드화시킨다는 말에 샤를로트가 직접 나서서 브랜드를 공개한 것이다.

"샤, 샤를로트님!"

"샤를로트님께서 입고 계신 저 의상이 새로운 브랜드인가요?"

"저 가방은 도대체 뭐죠? 너무 작아서 무언가를 넣기에는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앙증맞은 게 너무 예쁘지 않나요?

어차피 큰 가방은 들고 다니지도 않잖아요."

귀부인들의 시선에 샤를로트는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 명품관을 찾아 주신 귀부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샤를로트를 따라 명품관으로 들어온 리지와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의상과 가방, 악세사리등을 귀부인들에게 소개했다.

실용적인 면은 하나도 없이 그저 과시를 위한 브랜드였지만, 귀부인들의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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