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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현대인-111화 (111/169)

111화

예술적 감성이 떨어지는 나는 회색 도시를 보며 불편함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이세계의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회색 콘크리트 건축물들에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아리아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 이만큼이나 다양성을 가지게 된 도시의 외향이 이렇게 단조로운 건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문화적 성장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한 색으로 도시를 꾸며도 좋지 않을까.

아렌달이 가지고 있는 문화력을 생각하면 지금의 회색 도시보다는 아리아가 그린 다채로운 색의 도시가 더 어울릴지도 몰랐다.

아리아가 그린 뉴렌달 그림에 리오가 말했다.

"이건… 뉴렌달입니까?

정말 잘 그렸네요. 어떤 화가가 그린 겁니까?"

"아리아가 그린 거야."

"…아리아 아가씨께서요?

그림을 그리시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아리아의 재능에 감탄하는 리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잘 그렸지? 하하-"

"설마 저에게 자랑하시려고 가지고 오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그럼 왜 가지고 오신 겁니까?"

리오의 물음에 그에게 다시 물었다.

"예쁘지 않아?"

"자랑하려고 가지고 오신 게 아니라면서요."

"자랑도 하면 좋지.

그보다 이 그림을 잘 보라고. 도시가 조금 다르지 않아?"

"음-"

내 물음에 눈을 부릅뜨고 그림을 주시하던 리오는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를 꾸미실 생각이십니까?"

"맞아. 도시에 색을 입혀 보면 어떨까 해서 아리아에게 이 그림을 달라고 했어."

내 계획에 리오는 흥미로운 듯 아리아의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내게 말했다.

"확실히 회색보다는 이렇게 다양한 색으로 채워지면 뉴렌달이 더 화려해지기는 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굳이 색을 입히지 않아도 도시가 더 나빠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이 넓은 도시에 색을 입히는 게 작은 일은 아니고, 이 작업에 투입될 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요."

리오의 말대로 이대로 지낸다고 백성들의 삶이 나빠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이세계 어느 도시보다 뉴렌달은 살기 좋은 도시였다.

"리오의 말대로 지금의 회색 도시도 나쁘진 않지.

그래도 나는 이 일을 하고 싶다."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리오의 질문에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리아가 '우리 도시가 예쁜 색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거든."

뉴렌달에는 화가들도 많이 살고 있었다.

처음 도시에서 극장을 열고, 극단을 받아들인 이후로 많은 예술가가 뉴렌달을 찾아올 때 당연히 화가들도 있었다.

뉴렌달에서 화가들은 자신들의 그림으로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었고, 백성들이 본격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기 시작한 이후로는 굶주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축제가 열리면 제법 돈을 쥘 수도 있었기 때문에 축제 기간은 화가들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런 화가들에게 한 가지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데우스님께서 그림과 관련된 사업을 하시려고 한다는데?"

"그림과 관련된 사업이라니… 세상에 그런 사업이 어디 있어?"

"나도 모르지! 그래도 데우스님이라면 우리에게도 뭔가 일을 만들어 주시지 않을까?"

그런 기대는 다음 날 발행된 신문을 통해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술가, 특히 색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다 모이라는데?

색이라면 우리 화가들이 제일 잘 아는 것이지!"

"데우스님께서 정말로 우리에게 일감을 만들어 주시는 건가 봐!"

예술가들의 흥분 어린 목소리에 백성들도 하나둘 목소리를 내었다.

아렌달의 백성들도 이제는 예술에도 눈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있었다.

"이번에는 데우스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것을 보여 주실까?"

"사실 나는 회색 건물들이 조금 답답했어."

"말이 예술이지 그 녀석들은 열심히 일도 하지 않고, 노는 녀석들이잖아.

그런 놈들에게까지 일감을 만들어 주다니."

"데우스님께서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이군."

기대와 우려가 섞인 목소리가 뉴렌달 곳곳에서 들려왔다.

내 집무실은 달리아가 찍어 온 사진들로 도배가 되었다.

뉴렌달부터 스톨과 기르만까지.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모두 있었다.

"여기는 어디예요?"

"스톨이란다."

"엄마의 고향이네요."

스톨의 사진을 보며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기르만인가요?"

"맞아."

"역시 들었던 대로 기르만은 조금 작네요."

기르만의 백성들이 들었다면 실망했을 말을 툭 뱉은 아리아는 열심히 사진을 관찰했다.

뉴렌달과 다르게 조금씩 색이 들어가 있는 도시들을 보며 아리아가 색연필을 들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물었다.

"여기에 색칠해도 돼요?"

"아리아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활짝 웃은 아리아는 색연필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며 사진 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뉴렌달은 바다가 이쁘니까 파란색을 섞어야지.

음- 코아스탈도 바다가 있기는 한데… 그럼 코아스탈에는 에메랄드색이 좋겠다.

엄마랑 할아버지가 스톨에는 광산이 많다고 했으니까…"

하나하나 도시의 특색에 어울리는 색을 찾는 아리아의 모습에 나는 꽤 놀라고 있었다.

'아리아는 어반보다 도시 설계에 재능이 있는 것 아닐까?'

"아리아. 나중에 도시 공학이나 도시 설계 같은 거 배울래?"

"그게 뭐예요?"

"도시를 만드는 공부인데…"

"싫어요!"

"……"

단호하게 싫다고 대답한 아리아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그건 공부를 많이 해야 하잖아요. 공부보다 그림 그리는 게 더 좋아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림을 그릴 거예요!"

"그, 그러니?"

"네!"

나는 그런 아리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아리아는 내 손길에 "히히-"하고 웃고는 다시 도시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아리아의 손길을 받은 사진들이 예술가들에게 공개되었다.

예술가들은 색이 입혀진 사진을 보며 다양한 의견을 내었다.

"누가 색칠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예술적 감각이 남달라.

어디 유명한 화가분께서 색을 칠한 것이 틀림없겠지."

"나라면 이런 색을 칠하지 않았을 거야.

여기는 파란색보다는 하얀색이 더 어울리지."

"단조로운 색의 배합보다는 상징적인 그림을 추가하는 건 어떨까?"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리오가 말했다.

"예술가들이 시끄러운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시끄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잘 모르지만, 예술적 창의력은 저런 다양한 생각이 있어야 만들어지나 봐."

"다양한 생각이요? 그냥 시끄럽게 자기주장만 떠드는 것 같은데요?"

나 역시 리오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예술의 완성에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 같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며칠이 지나도 시작을 못 하겠는데요?"

"그렇지?"

리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시했다.

"일단 뉴렌달부터 색을 칠한다."

"데우스님! 예술은 그렇게 급하게 시작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더 고뇌해서 작품을…."

"공사판에서는 일단 첫 삽부터 뜨라는 말이 있다.

일단 시작을 해야 뭐라도 만들어질 것 아니야."

내 말에 예술가들이 난처한 듯 어물쩍거렸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예술하는 사람들이라 잘 모르나 본 데, 지금 너희들이 하는 것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야.

도시를 아름답게 꾸미는 '사업'이다.

계획이 이미 다 나와 있는 일이야.

그 계획안에서 얼마든지 예술을 하라는 말이다."

"……"

"사업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예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도시에 어울리는 색을 다시 칠해도 좋고, 상징물을 그려 넣고 싶으면 그려도 좋다."

내 말에 예술가들이 예술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에 나는 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시에 색을 입혀라.

이 뉴렌달을 이 세계 그 어느 도시와도 '색'다른 도시로 만들어라!"

회색 도시에 다채로운 색이 입혀지는 모습에 아리아는 신이 나서 매일 같이 마탑을 찾았다.

"와! 파란색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흰색과 하늘색도 되게 예쁜 것 같아요.

마치 하늘이 더 넓어진 것 같아서 좋아요."

"그, 그렇구나."

솔직히 나는 큰 차이를 모르겠지만, 아리아가 좋다고 하니 좋은 거겠지.

"그런데 이렇게 매일 찾아오실 생각이십니까?"

"왜? 싫어?"

"싫은 건 아니지만, 저도 마법 연구를 해야 하고…"

"아리아가 질릴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그리고 마탑주가 자하라고 해도, 이 마탑- 건물의 주인은 나잖아?

내 건물에서 아리아가 그림 좀 그리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허업!"

건물주의 갑질에 자하는 어이가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자하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말한 건 잘 되고 있어?"

"보여 드릴까요?"

"벌써 된 거야?"

내 물음에 자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이나 지났으면 조금이라도 성과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탑에 남아 있으려면 마법사들도 그 정도는 해야죠."

악덕 관리자 같은 자하의 말에 나는 기대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자하는 잠시 연구실을 나가더니 달리아를 붙잡아 돌아왔다.

"달리아가 웬일로 마탑에 있어?"

"얼마 전에 아렌달의 도시란 도시는 다 돌아다녀서요."

아리아가 색칠했던 사진들이 전부 달리아가 찍어 온 사진이었다는 걸 떠올린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방랑벽이 있는 달리아라도 단기간에 그 많은 도시를 돌아다녔으니 마탑에 있는 것이 이해되었다.

뭔가 마법을 준비하는 달리아의 모습에 아리아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 무슨 마법이에요?"

"음- 뭐라고 설명을 해 줘야 할까?"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리아에게 나는 달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에 달리아가 우리 가족 사진을 찍어 줬던 걸 기억하니?"

"네! 우리 집에 있는 사진!"

아렌달 가문의 가족사진은 항상 달리아가 찍어 줬었다.

아리엘이 태어나고 다시 찍은 가족사진이 아렌달 가문의 저택에 크게 걸려 있었다.

"그럼 사진을 찍는 마법이에요?"

"사진은 사진인데, 움직이는 사진이란다."

"?"

움직이는 사진이라는 말에 아리아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달리아가 살짝 웃으며 아리아에게 말했다.

"아리아 아가씨. 여기를 보시겠어요?"

아리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달리아가 주문을 외웠다.

"……지금 순간을 기록하라. 픽쳐!"

사진을 찍을 때와 주문이 약간 달라지기는 했지만, 역시나 플래시가 없었기에 맥없는 영상 마법이었다.

달리아의 주문에도 달라지는 게 없자 아리아는 조금 실망했는지 나에게 말했다.

"무슨 마법인지 모르겠어요."

"음- 영상 마법도 찍을 때는 전혀 모르겠네."

"재미없어."

아리아의 말에 달리아를 바라보자 달리아는 웃으면서 다시 주문을 외웠다.

"……기록된 순간을 움직여라. 플레이!"

그러자 마나석을 통해 방금 전 나와 아리아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마법인지 모르겠어요.]

[음- 영상 마법도 찍을 때는 전혀 모르겠네.]

[재미없어.]

영상으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아리아가 깜짝 놀라 내 뒤로 숨었다.

"얼마나 저장되는 거야?"

"3분을 넘어가면 마나 소모량이 너무 커져서…"

"3분이라… 한 시간까지는 늘릴 수 있지?"

내 물음에 자하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뭐-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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